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171화 (171/238)

#171마리아 베르타 (10) - 무법지대

멕시코시티의 어딘가에, 한건우가 찾고 있는 물건이 있었다.

한국에서 지구 반대편 지점을 찍으면 남아메리카가 나온다.

이곳의 실상에 대해서는 믿을 만한 정보가 드물었다.

한건우가 원래 알고 있던 정보, 이비현이 가져온 각성자 정보, 그리고 정부에서 계약서 조항을 고친다고 수차례 오가면서 간접적으로 수집한 정보.

모두 어디서 찾을 수 없는 양질의 정보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랐다.

‘이럴 때는 기업 쪽이 정확할 수 있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세상을 보면, 그 목적이 눈을 가리기 마련.

아무런 선입견 없이, 오로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파악하는 내용이 정곡을 찌를 때가 많았다.

한건우는 금해준의 집안 기업인 LK를 동원했다.

금해준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 북미 쪽은 아시다시피··· 그렇게 됐구요.

균열이 처음 생기고, 세계가 큰 혼란에 뒤덮였을 때.

각국은 눈치를 보며 미국의 대응을 기다렸다.

군사력이든 과학기술이든 앞서는 미국이 뭐라도 해주겠지. 그런 의존성이었다.

운이 좋았다면,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동맹이 발전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균열의 영향을 가장 세게 받은 건 북미 땅이었다.

초기의 S급 균열이 하필 모두 북미에서 터졌다.

당시 우왕좌왕하던 사람들은 도무지 대응할 수 없었다.

전 지구의 사람들은 동시대 최강대국의 문명이 실시간으로 파괴되는 걸 보았다.

그 후로 각국은 외국과의 협력보다는 각자의 방식대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해왔다.

- 남미 쪽은 멕시코 중심으로 돌아가죠. 그쪽은 미공략 균열을 덮는 <피라미드>를 몽땅 자체 생산해 왔거든요. 분명히 기술력이 딸릴 텐데 말이죠.

- 그렇다면 수출을 성사시킨 적이 없겠군.

- 맞아요. 몇 번 타진해본 적은 있지만요.

- 단가가 안 맞아서 멕시코 측에서 포기한 건가?

임원회의 내용은 영업 비밀이지만, 한건우와 LK는 그 정도 관계가 아니었다.

- 아뇨. 최종 검토 결과 우리쪽 실무진에서 거부했습니다.

- 한국 측에서? 왜지?

금해준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 그 땅은 마약 카르텔이 완전히 점령한 무법지대입니다. 군벌이나 정부 단위면 모를까, 우리 같은 일반 기업으로서는 계약을 감당할 수 없었어요.

- 아무리 수익이 많이 나도 위험할 만한 곳이라 발을 뺐다는 건가.

- 바로 그겁니다!

금해준은 몇 가지 증거를 들며 열변을 토했다.

전세계의 마약의 절반 이상이 멕시코시티에서 생산되고 있고, 다른 산업은 의미가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반대파는 숙청당한 지 오래고, 정부나 공공기관은 아예 문을 닫아, 카르텔이 공식 정부를 대체했다고.

믿기지 않지만 그게 사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금해준의 정보는 이미 몇 년이 묵은 상태.

마리아 베르타의 부하에게 <주시자의 뱀>이라도 심었다면 모를까, 최근의 실태는 알 수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정찰을 나간 한건우는 머리가 띵할 정도였다.

‘각오했지만, 가관이군.’

명색이 남미에서 가장 발전한 대도시, 멕시코시티였다.

그러나 대도시는 맞되, 발전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해질녘, 전망대가 있는 탑의 지붕 위에서 내려다본 도시는 인세에 펼쳐진 지옥도 같았다.

전통적인 부촌 쪽에는 흰 대리석으로 지어진 소수의 대저택이 찬란하게 빛났다.

개중에는 파티 따위를 열고 있는지, 시끄러운 음악과 찬란한 마석 조명이 돌아가는 저택도 있었다.

그 외 저지대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질서 없이 빼곡하게 지어진 개미굴 같은 집들.

조명을 켤 돈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전력 상태가 불안정한 건지.

몇몇 동네는 아주 불빛조차 없이 어두컴컴했다.

그리고 저 멀리, 교외 쪽.

마리아 베르타가 사는 <사립 멕시카 교도소>가 보였다.

말이 교도소지, 화려한 왕궁을 연상케 했다.

‘멀리서 보니 엄청나게 크군.’

담장 안쪽 공간이 저렇게 넓은 줄은 몰랐다.

건물 자체의 크기는 파악했으니, 저 넓은 나머지 공간은 어두운 숲으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대도시의 에너지와 재화가 어디에서 어디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의문이 있었다.

‘근처에 미공략 균열은 없는데, 어떻게 된 거지?’

분명히 한건우는 이계 마약을 멕시코시티에서 직접 생산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근처에 대마도처럼 <피라미드>가 보여야 하는데, 아무런 흔적도 안 보였다.

‘내가 못 보고 있는 게 있나?’

한건우는 오감을 극대화했다.

이럴 때 가장 괴로운 것은 후각 쪽이었다.

“후우···.”

한건우의 코에 지독한 악취가 맡아졌다.

흔한 대도시의 악취라기에는 좀 더 깊었다.

‘화약 냄새와 시취가 풍기는군.’

거기다 한건우는 <진동 감지>를 발동했다.

3차 개화한 <진동 감지>. 감지 범위가 극대화되었다.

멕시코시티의 대지 전체가 거대한 고막처럼 느껴졌다.

투두두두-

쿠웅- 쿵-

“으아아!”

“안돼! 도망가!”

“....”

조명이 없는 빈민가 쪽, 포화와 비명이 한건우의 귀를 때렸다.

‘마력 자동소총에 수류탄까지?’

시가지 내에서 전쟁을 방불케 하는 총격이 일어난 것이다.

보통의 도시라면 경찰의 사이렌 소리가 뒤따를 텐데.

역시나 아무 반응도 없이 조용했다.

까악- 까악-

파드드득···.

도시 곳곳에서 까마귀 떼만 새카맣게 밤하늘로 날아올랐다.

스으으-

한건우는 도시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는 포화 소리가 들린 곳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어둠이 서린 빈민가 쪽.

금해준이 특별히 언급한 제13구역이었다.

- 민간인은 물론이고, 웬만한 각성자도 잘못 들어갔다가는 뼈도 못 추리는 동네랍니다.

이동하는 도중, 한건우의 눈살이 더욱 찌푸려졌다.

큰 철교 밑이나 터널 위.

목 매달린 시체가 줄지어 매달려 있었다.

자살은 아니었다.

몸통에 구멍이 뚫리고, 온몸이 훼손되어 있었으니까.

한건우는 시신의 상태를 보고 사인을 판단했다.

‘각성자들의 짓이군. 마력 총화기고.’

누가 봐도 본보기로 걸어놓았다는 티가 났다.

피해자의 가족이나 지인이 있을 텐데도, 아무도 그 시체를 감히 치우지 못한다는 건···.

‘그 상대 앞에서 꼼짝도 못 한다는 이야기지.’

매달린 시신이 훤히 보이는 공터, 어린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칼싸움을 하며 놀고 있었다.

아이들은 쓰레기장에서 주워 입은 듯한 누더기 차림이었다.

말문이 턱 막히는 장면이었다.

‘무법지대라더니.’

법이 없는 곳. 무질서 그 자체.

금해준의 표현이 정곡을 찔렀다.

‘그나마 특수안보부가 양반인가?’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중국, 아프리카, 남미.

이제까지 아르고스의 주인이 터를 잡은 곳치고 제대로 돌아가는 곳이 없었다.

각성자 아닌 사람을 가축 정도로 여기니, 당연한 일이었다.

회귀 전, 한건우가 본 한국의 미래도 암울하지 않았던가.

그 배경에 있던 원흉, 아르고스의 주인들을 막지 못하면, 그 역사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한건우는 빈민가의 건물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보았다.

“이거 놔요!”

“다물어. 죽고 싶어?”

소년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우악스러운 군인들이 소년과 소녀를 끌고 가고 있었다.

열서너 살 정도로 어려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정식 군인은 아니고, 마리아 베르타가 거느린 사병들이었다.

그들의 총화기는 웬만한 특수부대 못지않았다.

“어차피 데려가서 죽일 거면서!”

“아니, 얘야.”

얼굴이 문신으로 뒤덮인 군인이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

“감히 퀸 마리아의 규칙을 어기고 금지된 물건을 소지하다니. 곱게 죽여주면 다행인 줄 알아라.”

소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금지된 물건?’

한건우의 귀가 솔깃해졌다.

어쩌면 한건우가 찾는 물건일지도 모르겠다.

한건우는 조용히 그들의 뒤를 밟았다.

척, 척, 척.

군인들이 향한 곳은 근처의 헌 경찰서였다.

현재는 마리아의 사병들이 아지트로 이용하는 것 같았다.

군인들은 경찰서 마당에 아이들을 꿇어 앉혔다.

몇몇은 뒤쪽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며 구경했고, 두 명이 아이들 쪽으로 다가왔다.

“어이, 꼬마들! 지금 여기로 누가 오는 줄 아니?”

“....”

아이들은 입을 꼭 다물고 아래쪽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치료사가 오고 있어.”

“?”

소년과 소녀는 영문을 몰라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군인들은 재미있는 일을 기대하는 듯 낄낄거렸다.

“치료사가 없으면 아무도 고문을 하루 이상 버티지 못하거든.”

“!”

‘고문을 한다고?’

한건우는 군인들이 두 아이를 경찰서로 데려온 이유가 궁금했다.

죽이려 한 거라면 아까 죽였을 것이고.

단순히 처벌을 위한 것이라면 치료사까지 부를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고 시간이 남아서 재미로 이러는 것 같지는 않았다.

‘고문을 한다는 건, 상대에게서 뭔가를 알아내려 한다는 건데.’

“흐윽.”

둘 중에서 더 어린 소녀가 울음을 터뜨렸다.

소년은 용감하게 군인들을 쏘아보았다.

그러면서 옆에 앉은 소녀에게 말했다.

“레이나, 울지 마. 울어도 달라지는 건 없어.”

“잘 아는군. 역시 그 삼촌에 그 조카인가?”

소년의 눈에서 독기가 쏘아졌다.

피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원통한 눈이었다.

“감히 우리 삼촌을 입에 담지 마요.”

“하하···.”

쉬익!

군인이 허리춤에 맨 손도끼를 꺼냈다.

그가 도끼날의 옆면을 혀로 핥았다.

“끅.”

소녀는 오빠의 말을 듣고 울음을 참으려 했지만, 두려움에 찬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군인이 손도끼를 소년의 얼굴 근처로 가까이 댔다.

“혀를 자르고 싶지만, 너에게 들어야 할 말이 있으니.”

군인은 소년의 귀를 잡고 놀리듯 흔들었다.

소년은 공포심에 얼굴을 찡그렸다.

“귓바퀴 하나쯤 없어져도 상관없겠지.”

“안돼요!”

소녀가 오빠 쪽을 보면서 비명을 질렀다.

휘잉-

군인이 손도끼를 함부로 허공에 휘둘렀다.

공기 가르는 소리가 날 때마다 아이들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다음은 손, 그다음은 발. 자를 곳은 많아.”

“아저씨, 사, 살려주세요.”

손도끼를 든 군인은 소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꼬맹아. 우리 치료사는 야매라서, 제대로 된 치료 같은 건 할 줄 모른단다. 오빠가 병신 되는 게 싫으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

“말할게요, 오빠를 살려주세요.”

“레이나, 입 다물어!”

다른 군인이 바싹 다가와서 장갑 낀 손바닥을 폈다.

황금색의 씨앗처럼 생긴 게 보였다.

은행 열매와 닮았는데 훨씬 컸다.

‘저거군.’

한건우가 찾던 물건이었다.

“원래 이걸 갖고 있기만 해도 즉결 처형감인 거, 너희도 알지?”

“....”

“하지만 애들이니까 실수할 수도 있어. 한 가지만 알려주면 집에 보내줄게.”

씨앗처럼 생긴 물건을 든 군인이 은근하고 친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희 삼촌이 죽기 전에 말이야. 이것들을 다 어디에 숨겼지?”

“그, 그게, 삼촌이···.”

마음이 약해진 소녀가 입을 열려고 했다.

소년이 목에 핏발을 세우고 소리쳤다.

“레이나! 다 거짓말이야. 말해봤자 우릴 죽일 거라고.”

“이 새끼가!”

처억!

화가 난 군인이 손도끼를 높이 쳐들었다.

쑥!

손도끼가 군인의 손에서 뽑혀나갔다.

“어!”

군인들이 하늘을 쳐다보며 황망해 했다.

휘이잉- 콰직!

손도끼가 공중에서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더니, 불시에 아래로 뚝 떨어졌다.

손도끼를 던진 군인의 이마가 수박처럼 쪼개졌다.

“커억!”

“기습이다!”

철컥-

위잉-

군인들이 벌떡 일어서서 마력 총화기를 장전했다.

“흩어져서 사격해!”

한건우 앞에서는 의미 없는 발악에 불과했다.

[특성 발동 : 빛의 군주]

슈우우-

한건우의 눈동자가 희게 번쩍였다.

스응-

“!”

지상에서 1.5미터 정도의 높이.

가느다란 파괴광선이 평행으로 지나갔다.

투두둑.

무릎을 꿇고 앉은 아이들만 빼고.

군인들의 몸과 총기가 반토막났다.

“허억···.”

소년과 소녀는 너무 놀라서 숨도 쉬지 못했다.

그들의 앞에 한건우가 나타났다.

“괴물이야, 도망가!”

“이런.”

군인들보다 더 무서워 보이는 게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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