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166화 (166/238)

#166마리아 베르타 (5) - 월척

“초대장의 주소가 맞는데···.”

권석진 대장이 말을 흐렸다.

‘PRISIÓN’이라는 표시 아래 두터운 방벽과 감시탑이 보였다.

삭막한 회색 방벽은 탈출을 막는 전기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누가 봐도 감옥이었다.

리무진 운전사가 유쾌한 말투로 말했다.

“손님, 사립 멕시카 교도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예?”

어둑해지는 저녁, 감시탑의 조명이 리무진 쪽을 비추었다.

철컥.

방벽의 철문이 열렸고, 리무진이 스르르 안쪽으로 들어갔다.

권석진 대장은 수틀리면 곧바로 전투태세로 튀어들 준비를 하고 있던 차였다.

다른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방벽 안쪽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놀란 박이경이 고글을 벗었다.

“엥?”

교도소 담장 너머로 어마어마하게 화려한 대저택이 보였다.

상아색 바탕에 과감한 원색 타일로 장식된 2층 저택이었다.

층고가 워낙 높아서 궁전이나 최고급 리조트처럼 보였다.

“세상에.”

차은비 역시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이건 정말 반전이었다.

“여기가 교도소라구요?”

“장난치는 건가?”

드넓은 정원에는 마석 조명이 박힌 분수와 인공 폭포가 돌아가고 있었다.

정원 곳곳에는 균열에서 잡아온 보석 공작새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눈부시게 화려하면서도 공격성이 약한 희귀 마수였다.

대부호들이 수집하느라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런 데에서 사가는 모양이었다.

‘땅 주인이 돈이 넘쳐 주체하지 못하면 이런 집을 지을 것 같군.’

한건우는 이곳을 그렇게 평했다.

그는 <그림자 맹시>로 은신한 채 리무진 지붕 위에 서 있었다.

비행기가 남미 땅에 착륙한 이후부터, 그는 없는 사람처럼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다.

‘교도소를 빙자한 대저택이라.’

무칸의 왕궁 못지않았다.

그러나 재력의 화려함만이 다는 아니었다.

한건우는 정원의 식물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이계 육식식물이잖아.’

파리지옥이나 끈끈이풀 같은 식충식물을 수백 배로 확대한 듯한 이계의 육식식물이 보였다. 뭘 먹였는지, 번들거리는 기름기를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키이잇-

크르르···.

한건우의 발달한 청력은 저택 뒤에서 나는 소리도 포착했다.

저건 보석 공작새 따위가 아니었다. 상위 포식자 마수의 울음소리였다.

그때 대저택 한가운데의 2층 정문이 열렸다.

투명한 계단이 무대장치처럼 스르륵 내려왔다.

한 여자가 여왕처럼 등장해서 계단을 걸어내려왔다.

나신에 가까운 파격적인 검은 가죽 드레스.

꿀처럼 윤기가 도는 갈색 피부와 탄력 있는 몸매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설표의 모피로 만든 긴 망토가 계단을 따라 몇 미터나 늘어졌다.

아르고스의 주인, 마리아 베르타였다.

한건우의 눈이 빛났다.

그녀가 직접 나올 줄이야.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기가 막히는군.’

멀리서 지켜보던 한건우는 짜릿한 흥분을 느꼈다.

복잡한 단계를 몇이나 뛰어넘어 근접 거리로 바로 들어간 느낌.

저인망 그물을 던졌는데 월척이 낚인 듯한 기분이었다.

‘하긴 이 둘은 관종 쪽에 가까웠지?’

아르고스의 다섯 주인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자신을 대중들의 시선에서 철저히 숨기는 부류와, 악명을 즐기는 부류로.

드 라모트 백작부인과 아소카 싱은 공식적으로 사망자로 되어있었고, 숨어서 지냈다.

모용황은 중국의 정보조직 천망을 이끌고 있었지만, 모든 공식 기록에서 자신의 정체를 삭제했다.

그에 반해 아프리카의 무칸과 마리아 베르타는 자기를 한껏 과시했다.

다른 이들이라면 사도에게 시킬 만한 일에도 직접 손을 댔다.

한마디로 아직 싱싱한 현역이었다.

마리아 베르타의 파격적인 등장에, 이능력 특수전단의 군인들마저 당황했다.

그녀는 보기 드문 미인이기도 했다.

웬만한 유명 배우도 필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일행을 태운 리무진은 그녀가 내려온 계단 앞에 멈추었고, 스르르 차문이 열렸다.

마리아 베르타가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권석진 대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요, 장군님.”

“처음 뵙겠습니다. 일전에 연락 드린 권석진입니다.”

외교용으로 쓰는 고급 통역 스킬 주문서를 장착한 터라, 통역인 없이도 대화가 통했다.

“제 이름은 마리아 베르타예요. 이제까지 한국 대통령님과 소통한 사람은 제 변호사고, 저는 음··· 이 집 주인이죠.”

그녀는 장난스럽게 자기를 소개했다.

그 말인즉슨 자신이 총 책임자라는 뜻이었다.

“그러면 계약 건은···.”

“오늘만 날인가요, 일 얘기는 나중에 해요. 우선 저희 집을 소개하고 숙소로 안내해 드리죠.”

마리아 베르타가 권석진 대장의 팔짱을 꼈다.

터무니없이 가까운 거리.

팔에 느껴지는 낯선 감촉에 권석진 대장이 뻣뻣하게 굳었다.

“사립 멕시카 교도소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살던 곳이에요. 저도 여기서 태어났고요.”

“···교도소에서 말입니까?”

“아버지는 존경받는 분이셨지만, 당시에는 워낙 큰 조직을 이끌다 보니 몇 가지 사소한 법조항을 어길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래서 교도소에 들어가야 했죠.”

“아, 예···.”

권석진 대장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직접 하나 지으셨답니다.”

“으음. 그렇군요.”

권석진 대장은 침음을 흘렸다.

그의 상식이 하나하나 파괴되는 듯했다.

권석진 대장과 일행은 마리아 베르타의 안내를 따라서 계단을 올라갔다.

저택 내부의 화려함은 눈이 부셔서 괴로울 정도였다.

턱시도를 차려입은 악사들이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연회?’

저택 안에는 이미 손님이 많았다.

드레스를 입은 관능적인 여인들과 셔츠 차림의 남성들이 왁자하게 어울리고 있었다.

각성자도 있었고 일반인도 있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동공에 묘하게 붉은 기운이 어려있다는 것이었다.

과장된 웃음, 환각을 보는 듯한 행동, 그리고 비틀거리는 걸음걸이.

권석진 대장은 그 정체를 알아보았다.

‘한국에 팔려는 이계 마약인가.’

갑자기 한국의 군인들이 나타났는데도, 연회장 안의 손님들은 웃고 떠들기만 할 뿐.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듣기로··· 한국 사람들은 일을 좋아한다면서요?”

“예?”

마리아 베르타가 권석진 대장의 귓가에 속삭였다.

“우리는 달라요. 재밌게 해드릴테니 좀 여유롭게 쉬다 가세요. 당신 부대원들도 같이.”

마리아 베르타가 흘긋 뒤를 돌아보았다.

차은비와 박이경, 그리고 이능력 특수전단 부대원들은 저택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은설아도 작게 맞춘 군복을 입고 있었다.

미성년자도 각성하면 전투원으로 복무하는 나라가 많으니, 아주 이상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 옆에, 각성자도 아닌 작은 여자아이가 따라온 건 좀 독특했지만.

“일단 짐을 푸셔야죠. 방에 안내해 드릴게요.”

“예, 감사합니다.”

“아참! 저택 안은 괜찮지만, 밤의 정원에는 함부로 산책 나가시면 안되니··· 조심하셔야 해요.”

마리아 베르타는 사람을 홀리는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

“이런 분위기일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박이경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손님 방이라며 안내한 곳은 저택 한켠의 스위트룸.

몇 개의 침실이 하나로 이어진 구조였다.

일행은 각자의 침실에 짐을 풀고, 거실 같은 공간으로 나와있었다.

“저는 그 아줌마, 완전 무섭던데요.”

“동감이야.”

은설아가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차은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대화가 더 깊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 어딜 가든 CCTV나 도청 같은 감시가 있을 겁니다. 우리끼리 있을 때에도 언행에 각별히 조심하시죠.

한건우가 비행기 안에서 당부를 했던 것이다.

드래곤은 좀이 쑤시는지 자꾸만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기 오면 아빠랑 같이 있을 줄 알았는데···.”

“쉿.”

은설아가 서둘러 주의를 주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드래곤을 제어할 수 있는 건 은설아뿐이었다.

불만스러워 입이 댓발 나온 드래곤을 보고, 은설아는 미리 준비한 육포를 꺼냈다.

“자, 간식이야.”

“와!”

드래곤이 제일 즐겨 먹는 마수, 가시 글리토돈 고기를 말려서 만든 육포였다.

드래곤은 철사처럼 딱딱한 육포를 맛있게 뜯어먹었다.

‘대체 저 꼬마는···?’

권석진 대장과 군인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은 아직 드래곤의 진짜 정체는 몰랐다.

한건우는 몸을 감추기 전, 드래곤에게 몇 가지 주의를 주었다.

한건우가 자리를 비울 동안에는 정체를 드러내지 말 것.

또 한건우가 허락하기 전에는 다른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것이었다.

- 아빠 나갔다 올 동안 얌전히 있어야 해.

“흐음.”

어린 드래곤은 은근히 좀이 쑤셨다.

아빠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요즘 부쩍 다리와 날개 부근이 간질거렸다.

무언가를 잔뜩 부수고 파괴해 버리고 싶은 충동도 들었다.

‘그때처럼 하고 싶어.’

드래곤은 만주 원정 때가 그리웠다.

만주의 하늘을 날며 한건우를 태우고 싸웠을 때.

그날만큼 짜릿한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조금도 힘을 제어할 필요가 없었다.

지상에 있는 피조물들은 모두 자신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런 말을 하면 아빠가 싫어하겠지?’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한건우는 드래곤에게 많은 제동를 걸었다.

재앙 취급을 받지 않고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다면서.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속으로는 아쉬웠다.

‘그날처럼···.’

드래곤은 숨을 깊이 들이켰다.

목안이 간질거렸다. 브레스를 내뱉고 싶었다.

어쩐지 그전보다 더 강한 브레스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

금세 밤이 어두워졌다.

한국과 멕시코는 시차가 있어, 낮밤이 완전히 바뀐 셈이었다.

쉽게 잠을 이루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아래층에서 흥겨운 악기 연주와 사람들의 웃음소리, 함성까지도 들려왔으니까.

그런데도 권석진 일행은 금세 피로함을 느꼈다.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들어가서 수면을 취하는 게 좋겠습니다.”

“좋아요.”

차은비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푹신한 침대에 누웠다.

여자들끼리는 한 방을 쓰기로 했기에, 옆 침대에는 은설아와 드래곤이 나란히 누웠다.

‘왜 이렇게 머리가 띵하지?’

차은비의 시야가 뿌얘졌다.

많이 피곤했던 걸까. 눈꺼풀은 천근만근이었다.

‘이상하다. 내가 왜 이러지?’

최상급 각성자는 쉽게 피로를 느끼지 않는 게 정상이었다.

균열에서 몇날 며칠 밤낮없이 싸워도 버티는 체력이다.

전투를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비행기를 좀 탔을 뿐인데.

“설아야.”

은설아를 불러봤지만, 설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침대 위에 올라간 상태 그대로, 이불도 안 덮고 정신없이 잠들어 있었다.

차은비의 머릿속에 경고등이 켜졌다.

‘이건 뭔가 이상한데?’

그러나 아무리 감각을 올려봐도, 감지되는 결과는 깨끗했다.

S급 힐러인 자신이 공격을 눈치채지 못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때 드래곤이 침대에서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드래곤은 숨을 훅 들이키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무언가 껄끄러운 악취를 맡은 듯했다.

드래곤이 차은비에게 말했다.

“공기에서 낯선 냄새가 나.”

그 말을 듣자마자, 차은비는 깨달았다.

‘무색 무취의 가스구나.’

차은비조차 감지하지 못하는 유독 기체라면.

다른 이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숙소는 공간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스위트룸이었다.

드래곤이 말했다.

“나는 괜찮지만, 다른 인간들에게는 은비의 가호가 필요할 것 같아.”

차은비는 꺼져가는 정신 속에서 <신의 가호>를 펼쳤다.

‘제발······ .’

차은비의 손끝에서 은빛의 광채가 부채처럼 펼쳐졌다.

그러나 광채는 무척 희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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