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아프리카의 무칸 (6) - 다이아몬드 폼
‘내가 무칸의 심복인 타타우를 이겼어.’
하지만 승리를 만끽하는 건 이후의 일.
본래 목적은 따로 있었다.
‘여기 갇힌 사람들을 구해내야지.’
자신들이 이 나라를 떠나고 나면, 이곳을 이끌고 안정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멀쩡한 상태이길 바랄 뿐이었다.
쿠르르르···.
본관 쪽에서 들리는 굉음이 심상치 않았다.
‘어서 사람들을 데리고 나와야겠어.’
이비현은 잠시 숨을 고른 후에 지하 감옥 안쪽으로 들어갔다.
*
첨탑 아래 지하감옥에서 이비현이 타타우와 대치하고 있을 무렵.
황궁 본관의 꼭대기 층은 이미 반파된 상태였다.
쿠르르···.
스스스···.
한건우와 무칸.
첫 번째 격돌의 충격으로 천장 지붕에서 돌조각이 떨어지고 있었다.
“네놈. 정체가 뭐지?”
무칸이 자세를 가다듬으며 물었다.
치리리리···.
전신을 다이아몬드 폼으로 변환한 상태.
무칸의 온몸은 금강석의 광채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내 공격을 받아냈다고···?’
무칸은 방금 간을 본 게 아니었다.
단숨에 적의 숨통을 끊을 생각으로 혼신의 일격을 던진 것이었다.
그걸 받아낼 수 있는 자는 정말 드물었다.
아르고스의 주인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알 것 없어.”
투다다다-
까앙!
차아아앙-
두 번째, 세 번째의 충돌.
한건우의 창은 무칸의 팔에 자라난 다이아몬드 검과 부딪쳤다.
그러나 아까와는 감각이 사뭇 달랐다.
상황을 파악한 한건우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창날을 흘려내고 있잖아?’
치리리링-
무칸의 몸을 이루는 다이아몬드 결정이 미세하게 재정립되고 있었다.
‘무칸, 바보는 아니군.’
무칸은 아까 주먹으로 한건우의 창을 정면으로 막았다가 낭패를 보았다.
다이아몬드 폼에 손상을 입은 것이다.
그 후로 무칸은 한건우의 창날을 정면으로 맞는 걸 피하는 듯했다.
격돌하는 순간 다이아몬드 결정을 회전시켜서 충격을 상쇄하는 식이었다.
‘충격을 누적시켜서 다이아몬드 폼을 깨려고 했는데.’
<마창 게이볼그의 주인>의 회복 불가 특성을 이용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이면 한 세월이 걸려도 안 먹힐 판이었다.
한건우는 접근 방법을 바꾸었다.
화르륵-
한건우는 마창 게이볼그에 <아그니의 화염>을 실었다.
창날에 지옥의 겁화가 넘실거렸다.
한건우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화염의 온도를 높인다.’
치지지지···.
불꽃의 색깔은 처음에 붉은색이었다가 점점 희어졌다.
거의 푸른빛에 가까운 초고온의 불꽃이 창에 실렸다.
그 열기만으로 주위의 벽이 꺼멓게 타들어갔다.
“!”
무칸의 표정이 변했다.
타아-
무칸이 뒤로 물러났다.
한건우에게서 조금 거리를 벌린 것이었다.
“건방진 놈. 감히 사도 주제에 이 나를!”
무칸이 일갈하면서 오른팔을 앞으로 펼쳤다.
그의 손끝에서 미세한 다이아몬드 결정이 뿜어져나왔다.
휘우웅-
“!”
무칸의 <다이아몬드 폼> 특성의 중거리 공격, 다이아몬드 더스트.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다.
모래처럼 작은 다이아몬드 결정이 한건우를 향해 휘몰아쳤다.
그러나 그 위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
반짝이는 결정들이 피라냐 떼처럼 한건우를 덮쳤다.
그 모습을 보던 무칸이 낄낄거렸다.
“잘 가라.”
예감이 좋지 않았다.
한건우는 우선 몸을 움직여 피했다.
다이아몬드 더스트는 살아있는 것처럼 유연하게 방향을 바꾸었다.
한건우를 목표로 끝까지 쫓아올 듯했다.
무칸이 기고만장하게 말했다.
“모용황이 오냐오냐 싸고돌 때부터 알아봤다. 역시 개에게 잘해주면 주인을 무는 법.”
쾅- 콰앙-
결정의 회오리에 말려들어서, 홀에 서 있던 조각상들이 넘어졌다.
츠르르르···.
다이아몬드 더스트가 조각상을 통과했다.
결정의 회오리 속에 대리석 조각상은 순식간에 풍화되어 밋밋한 돌조각이 되어버렸다.
저 속에 한번 말려들면 골치아플 것 같았다.
[특성 발동 : 골렘 연성]
휘잉-
한건우는 그에 맞서서 공기로 바람 골렘을 연성했다.
보이지 않는 바람 골렘이 뭉글뭉글 형성되었다.
치지지지···.
다이아몬드 더스트는 바람 골렘에 달라붙었다.
바람 골렘은 형체를 자유자재로 바꾸며 다이아몬드 더스트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그 사이.
한건우는 초고온의 불꽃이 둘러진 창을 돌리며 무칸에게 돌진했다.
파아악-
콰아아-
무칸은 미처 회피하지 못하고, 팔을 들어 창을 막았다.
그가 충돌의 충격으로 벽까지 밀려났다.
치직···.
푸른 불꽃이 닿은 부분.
회전하는 다이아몬드 결정의 빛깔이 어둡게 변하는 게 보였다.
“끄윽···.”
무칸은 다이아몬드 폼 상태로 열기를 버텨냈다.
그것만 해도 대단했다.
화염 특성을 가진 한건우는 기본적으로 화기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무칸은 달랐으니까.
다이아몬드 폼의 방어력이 얼마나 좋은지 새삼 실감했다.
까아앙-
콰아-
한건우와 무칸은 두어 번의 합을 더 주고받았다.
‘아직도 흠집 없이 버틴다고?’
다이아몬드가 그을리긴 했지만, 그것뿐.
파괴하기에는 아직 멀었다.
무칸의 신체가 너무 견고하니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다이아몬드 폼은 그의 몸 자체를 방어구이자 무기로 만들었다.
역시 최강의 신체 강화 특성다웠다.
‘박이경과는 비교가 안 되는군.’
박이경의 <신체 강화> 특성도 탐이 난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에 댈 게 아니었다.
[특성 발동 : 그래비티 필드]
한건우는 다시 한 번 중력 가중을 걸었다.
무칸을 통째로 찌그러뜨려 보려 했다.
A급 마수도 단번에 짜부라뜨린 특성이었다.
터엉-
터어엉-
중력 5배. 10배. 30배.
순식간에 무칸에게 강한 중력을 가중했다.
우웅-
주변의 중력장이 일그러져, 바닥에 떨어진 지붕의 잔해들이 잠시 떠오를 정도였다.
“크윽···.”
무칸이 신음을 흘렸다.
다이아몬드 폼은 중력 가중도 버텨냈다.
단지 동작이 조금 느려졌을 뿐이었다.
‘무칸이 방심하고 있던 때와는 다르군.’
무칸이 제대로 마음 먹고 방어에 총력을 다하니, 흠집 하나 내기도 쉽지 않았다.
<인드라의 뇌전>도, <빛의 군주>도.
한건우가 애용하던 많은 공격 특성이 먹혀들지 않았다.
한건우가 새로운 특성을 꺼내어 공격할 때마다, 무칸의 표정은 못 볼 걸 본 듯이 일그러졌다.
“대체 뭐냐 너···?”
스킬 주문서로 살 수 있는 수준의 공격이라면 모를까.
각성자의 극의에 가까운 특성이 쉴새없이 바뀌어 나오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건우의 체력과 마력량이었다.
HP나 MP를 강화해주는 버퍼를 달고 온 것도 아니고, 포션 한 병도 마시지 않았다.
퍼내도 퍼내도 끝이 없는 바다처럼, 한건우의 공격은 끊임없이 쏟아졌다.
아르고스의 주인 말고도 이런 각성자가 있다니.
무칸은 정신이 혼미해질 판이었다.
법사나 창술사, 둘 중 하나만 해도 만만치 않은데.
마법 특성을 창에 실어 공격하니 사기 수준이었다.
‘이대로라면 위험할 수 있어.’
여러 명의 적과 싸우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무칸은 점점 생존의 위기가 닥쳐오는 걸 느꼈다.
아르고스의 주인이고 뭐고, 자존심도 살아남아야 의미가 있는 것.
‘도망가야 해!’
무칸은 자기도 모르게 주의가 흐트러졌다.
시선이 흔들리면서 도망갈 길을 찾게 된 것이다.
팽팽하던 대치 중.
균형추가 한건우 쪽으로 미묘하게 기울었다.
‘좋아.’
한건우가 설핏 미소지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바로 승기를 잡을 때의 감각이었다.
한건우는 방금 무칸의 병사를 죽이고 얻은 특성을 떠올렸다.
세상 단순하고 미약한 전투 보조 특성.
오히려 그렇기에 지금의 무칸에게는 더 효과가 있을 것이었다.
이런 치졸한 수가 튀어나올 거라고는 예상치도 못할 테니까.
‘이건 연습할 필요도 없지.’
한건우는 창을 크게 사선으로 휘둘렀다.
일부러 궤적을 뚜렷하게 해서, 무칸이 본능적으로 피할 수 있도록 했다.
[특성 발동 : 그리스]
- 마력으로 바닥을 미끄럽게 한다
주르르-
“억!”
무칸이 볼썽사나운 자세로 중심을 잃었다.
우스울 만큼 제대로 먹혀들었다.
‘미끄러운 데는 장사가 없군.’
한건우는 곧바로 원래 가지고 있던 특성을 연계했다.
이것 역시 단순한 특성이라 별로 쓸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특성 발동 : 디그]
- 바닥에 얕은 구덩이를 만든다.
쿠당탕-!
“크억!”
무칸이 미끄러진 그대로 구덩이에 빠져 넘어졌다.
‘내가 이런 기초적인 수에 당했다고?’
무칸은 상황이 몹시 황당한 듯, 얼빠진 표정이었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 구덩이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렇게는 안되지.’
한건우 앞에서 취약점을 보인 이상, 그걸로 끝이었다.
지금보다 약했던 회귀 전에도.
한건우는 한번 약점을 보인 상대를 살려보낸 적이 없었다.
‘이제까지 세 번.’
무칸의 <다이아몬드 폼>은 무적인 것 같았지만, 몇 차례 약점을 보였다.
무방비 상태로 주먹에 투창을 맞았을 때 한번.
초고온의 화염을 맞았을 때 한번.
그리고 중력장 속에서 움직임이 느려지던 것도.
한건우는 먼저 무칸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무거운 중력장을 쏟아부었다.
[특성 발동 : 그래비티 필드]
터엉-
터어엉-
쿠르르···.
중력을 가중할 때마다 <디그>로 파인 구덩이가 더욱 깊어졌다.
콰아앙!
콰르르르···.
“크윽!”
급기야 무칸과 한건우는 층의 바닥을 뚫고 아래층으로 떨어졌다.
한건우는 중력 가중을 멈추지 않았다.
터엉!
콰아아-
콰지직!
2층, 1층.
지층에 이르러서는 한 번 더 구덩이를 팠다.
무칸이 미처 일어나기도 전.
[특성 중첩: 아그니의 화염]
[특성 중첩: 검풍]
지옥의 겁화가 칼날처럼 날카롭게 창을 감싸며 회전했다.
초고온으로 달아오른 화염이 구덩이 속으로 쏟아졌다.
화르르르-
무칸이 쓰러진 구덩이 속은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크어억···!”
열기가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
화염의 온도가 끝간 데 없이 올라갔다.
한건우가 만들어낸 열인데, 그 자신마저 진땀을 흘릴 정도였다.
무칸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콰직!
화룡점점으로, 한건우의 창이 다이아몬드 몸통을 찔렀다.
아까와 달리 창날이 빗겨나가지 않고, 끄트머리가 쿡 박혔다.
한건우는 희열을 느끼면서 창끝을 더 깊이 찔렀다.
콰아아-
치직···.
검풍의 칼바람이 창끝에 집중되었다.
다이아몬드 폼에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차르르···.
무칸의 다이아몬드 결정이 피부를 타고 움직였다.
한번 입은 손상은 회복되지 않았다.
하지만 무칸은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열화의 고통을 이겨내고 손으로 창날을 잡았다.
치이이이-
다이아몬드 폼으로 된 손바닥이 검게 타올랐다.
“크아아!”
“!”
무칸이 괴성을 지르며 창날을 뽑아내려 했다.
그가 지옥처럼 파인 불구덩이에서 몸을 꿈틀거렸다.
이제 무칸의 다이아몬드 폼은 영롱한 광채를 잃었다.
그의 몸 군데군데 부서진 석탄처럼 검댕이 날렸다.
쑤욱-
한건우가 먼저 창을 당겨 뽑았다.
창날을 잡고 있던 무칸의 손이 허공을 휘젓는 순간.
한건우가 두 손으로 창대를 잡고 높이 들었다.
창끝이 아래를 향하게 든 자세.
한건우는 온 힘을 다해 마창 게이볼그를 아래로 내리꽂았다.
콰지익-!
무자비한 창끝이 무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쿵···.
쿵···.
창대를 타고 심장의 맥동이 느껴졌다.
다이아몬드 폼으로 변한 심장이 거세게 뛰고 있었다.
“죽어라.”
한건우가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게 무칸이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무칸의 눈이 죽음의 공포로 두 배는 커졌다.
콰직-!
무칸의 다이아몬드 심장이 쩍 소리를 내며 쪼개졌다.
치지직···.
티디딕.
무칸의 심장에서부터 거미줄 같은 금이 그어졌다.
금속 망치로 원석을 깬 것처럼, 무칸의 온몸이 잘게 쪼개졌다.
차르르르-
무수히 많은 다이아몬드 결정이 사방으로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