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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먹는 플레이어-159화 (159/238)

#159아프리카의 무칸 (5) - 확인사살

그그극···.

“!”

황궁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에 이어, 대지 전체가 진동했다.

복도의 벽을 따라가던 이비현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폭발의 위치를 가늠해 보고, 그녀는 안심했다.

‘한건우 씨구나.’

한건우가 둥근 지붕을 뚫고 꼭대기층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숨막힐 듯 강렬한 기운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나는 내 일을 해야지.’

한건우는 어려울 것 같으면 무리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쿵- 쿠웅-

그때 짐승처럼 거칠고 묵직한 발소리가 들렸다.

이비현은 <그림자 맹시>로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그녀는 호흡까지 참고 기척을 죽였다.

괴물 같은 거구의 흑인 남자가 나타났다.

전통적인 문양의 문신이 근육질의 몸을 뒤덮었고, 표범 가죽과 색색의 천으로 엮은 옷은 급소만 겨우 가리고 있었다.

각성자에게 피지컬이 전부는 아니지만, 저 정도면 몸 자체로 무기다.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어 더욱 위협적으로 보였다.

‘타타우. 이쪽으로 도망 왔군.’

이비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녀는 타타우에게 감정이 안 좋았다.

타타우는 이비현이 지키는 블랙마켓 경매장에 침입한데다, 가드를 몇이나 때려 죽이지 않았던가.

이비현은 그의 그림자에 붙어 조용히 따라갔다.

들키지 않도록 극도로 주의를 기울였다.

‘한건우 씨 말고는 아무도 <그림자 맹시>를 꿰뚫어본 사람은 없었지만.’

한건우를 만나기 전에 이비현은 착각하고 있었다.

<그림자 맹시>가 완벽한 은신 특성인 줄로 안 것이다.

첫 만남에 한건우를 미행하다가 한눈에 간파당한 이후.

조심성이 많아졌다.

타타우는 돌벽 앞에 멈춰섰다.

“문 열어. 나다!”

타타우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아무 틈새도 없던 돌벽이 스르르 열렸다.

“!”

타타우가 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 감옥을 지키던 각성자 병사들이 꾸벅 인사했다.

숨겨진 감옥 문이 닫히기 전.

타타우는 낌새가 이상한 듯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는데?’

그때였다.

“커헉···.”

한 병사가 비명을 삼켰다.

지하 감옥의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도, 병사의 동공에서 빛이 사라지는 게 똑똑히 보였다.

“끄윽.”

연이어 반대쪽에 있던 병사도 신음을 흘렸다.

병사가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뭐냐!”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당하기라도 한 듯한 상황.

타타우가 으르렁댔다.

스응-

“큭!”

어둠 속에서 숨통을 노리며 다가온 살기.

타타우는 그야말로 동물적인 감각으로 그걸 피했다.

‘이런 미친···.’

방금 피한 건 천운이었다.

두 번의 공격이 온다면 막을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섰다.

타타우의 온몸에 난 털이 바짝 곤두섰다.

파앗!

그때 허공에서 이비현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첫 공격에 성공했어야 하는데.’

이비현이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그림자 맹시>를 연속으로 오래 지속할 수는 없었다.

이제부터는 몸을 드러내면서 싸울 수밖에.

‘할 수 있어.’

한건우가 경매장에서 타타우를 박살내고 나서.

그녀는 자신이 더는 한건우에게 도움을 못 준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했었다.

한참 후, 한건우가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말했다.

- 경매장에 침입한 놈 말이야. 너 혼자서 상대했어도 이겼을 거야.

한건우가 남 기분 좋으라고 빈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니.

그가 그렇게 판단했다는 것이었다.

이비현이 알기로, 한건우의 판단은 매우 높은 확률로 정확했다.

거의 100%의 정확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길 수 있어.’

타타우 역시 이비현을 알아보았다.

“넌, 그날 경매장에 있던 여자?”

그러면서 타타우가 움찔 뒤로 물러났다.

겁을 먹은 듯한 태도였다.

타타우의 왕방울만한 눈이 이비현의 주위를 재빨리 살폈다.

‘아하. 한건우 씨가 왔을까봐 그러는구나.’

타타우의 표정은 안심한 듯 조금 풀어졌다.

그녀가 혼자 왔다는 걸 알아챈 모양이었다.

“어이, 여자.”

“?”

이비현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타타우는 팔짱을 끼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둘의 몸집 차이는 엄청났다.

이비현이 네 명쯤 뭉쳐야 타타우 한 명과 엇비슷할 판이었다.

“나는 위대한 은코노 부족의 후예다. 여자는 죽이지 않으니 돌아가. 나도 네 부하를 죽였으니 이번 한 번은 봐주지.”

“....”

여기서도 그 드립이 나올 줄은 몰랐다.

“마지막 경고다. 다를 더 방해하면 죽···.”

쉬익-

이비현이 만곡도를 휘둘렀다.

뱀처럼 유연한 칼날의 만곡도.

바실리스크의 맹독을 묻힌 날이 위험하게 번뜩였다.

채앵-!

타타우가 맨손으로 만곡도를 막았다.

사실 맨손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의 손은 벌써 <수인화>가 일어나 있었으니까.

타타우의 손에는 빽빽한 검은 털이 돋아있었다.

갈고리처럼 휘어진 발톱이 만곡도의 날을 걸고 있었다.

치지징···..

맞서서 대치한 채로 타타우가 씩 웃었다.

두터운 입술 사이로 호랑이 같은 송곳니가 번뜩였다.

“여자, 경고를 무시했군. 이제 후회해도 소용없다.”

타타우의 눈이 붉게 달아올랐다.

“크와악!”

타타우가 맹수처럼 포효했다.

트드드드···.

타타우의 척추가 구부러지면서 상체 근육이 툭툭 불거졌다.

검은 털은 손목을 지나 팔뚝, 어깨까지 뒤덮기 시작했다.

<수인화>가 한층 심화되는 것이었다.

“!”

스르릉-

이비현이 만곡도를 한쪽 손에 들고 춤추듯이 벽을 박찼다.

파앗!

이비현의 형체가 점멸했다.

불이 꺼지듯이 허공에서 사라진 것이다.

마주보고 있던 이비현이 갑자기 없어지자 타타우는 놀라서 집중력을 잃었다.

스응-

“커흑!”

이비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상태.

그녀의 만곡도가 타타우의 드러난 옆구리를 베었다.

타타우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이었다.

‘은신 특성인가!’

이 정도로 감쪽같이 사라지는 은신은 타타우도 처음이었다.

‘아깝군.’

이비현이 혀를 찼다.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갔으면 간장을 찔렀을 텐데.

근육질이 워낙 두터운 탓에 조금밖에 베지 못했다.

‘독이 먹혔나?’

그녀는 조금 기대를 해봤다.

타타우는 피를 흘릴 뿐 멀쩡했다.

저만한 수준의 각성자이면 해독, 해주 능력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바실리스크의 맹독에도 멀쩡하다니. 괴물은 괴물이군.’

타닥!

이비현이 다시 벽의 모서리를 디뎠다.

거미처럼 가벼운 몸놀림이었다.

콰앙- 쿠과앙-

우르르릉···.

이비현의 미세한 발소리를 따라, 타타우가 감옥 벽을 주먹으로 타격했다.

그러나 타타우의 주먹은 이비현의 망토 끝자락도 스치지 못했다.

‘뭐 이렇게 빨라!’

타타우의 머리가 뜨거워졌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파앗-

다시 이비현이 나타났다.

타타우는 본능적으로 주먹을 날렸다.

부우웅-

‘맞았다!’

타타우의 강한 펀치가 이비현의 몸통에 명중했다.

분명히 그래야 했다.

그러나 그의 주먹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어? 없어?’

타타우가 당황했다.

일격에 온 힘을 실었던 터라, 그의 중심이 잠시 무너진 순간.

쉬익-

이번에는 타타우의 등짝에 섬찟한 느낌이 지나갔다.

등을 타고 뜨거운 피가 주르륵 흘렀다.

“속았군.”

타타우는 상황을 깨닫고 분노에 사로잡혔다.

방금 그건 별 것 아닌 스킬이었다.

‘고작 환영술 스킬···!’

환영술.

주인을 흉내내어 환영을 만드는 스킬이었다.

웬만한 마켓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스킬 주문서가 아닌가.

처음 나왔을 때와 달리,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지금은 실전에서 잘 쓰지 않는 스킬이었다.

환영술로 유인할 만한 마수가 사는 균열을 공략할 때라면 모를까.

그런데 이비현이 사용하니 굉장히 효과적이었다.

어둠 속에서 은신과 점멸을 반복하는 그녀였다.

언제 목을 노리고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

타타우는 기초적인 환영술에도 미끼를 문 고기처럼 덥썩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팟-

이비현이 또 사라졌다.

이제 그녀가 몸을 감추는 시간이 진심으로 두려웠다.

타타우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당황하지 말자. 딱 한 방만 제대로 맞추면 끝난다.’

이비현은 가냘프고 여리여리했다.

척 봐도 맷집이 없어 보였다.

속도에 치중하느라 몸을 가볍게 한 모양이었다.

제대로 타격하면 버티지 못하리라.

‘눈을 믿지 않는다.’

타타우가 으르렁대듯이 낮은 주문을 외었다.

그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뿜어져나왔다.

‘수인화 최고 단계.’

스으-

타타우의 얼굴에 검은 털이 자라났고, 머리 모양도 변형되었다.

코가 늑대처럼 길쭉해졌고, 귀도 삐죽하게 길어졌다.

인간의 몸에 늑대의 머리가 달린 것처럼 되었다.

크르릉···.

타타우가 이빨을 드러내자 늑대와 같은 울음소리가 울렸다.

타타우의 변화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의 다리 역시 늑대의 뒷다리처럼 변했다.

발톱이 튀어나오고, 관절이 날렵하게 뻗었다.

“!”

후욱!

타타우가 긴 코로 숨을 들이켰다.

검은 털로 덮인 늑대 귀가 쫑긋거렸다.

후각과 청각.

<그림자 맹시>로는 완전히 커버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이비현은 타타우의 변한 모습을 보고 살짝 뒤로 물러났다.

스르릉-

이비현은 만곡도를 집어넣고, 그녀에게 가장 익숙한 무기를 꺼냈다.

암살자의 검, 시미터였다.

이비현이 무기를 바꾸자, 타타우의 늑대 귀가 쫑긋 섰다.

타다닥!

이비현이 벽 위를 달리듯이 움직였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타타우는 그녀의 궤적을 속속들이 읽고 있었다.

팟!

시미터를 겨눈 이비현의 모습이 앞쪽에 나타났다.

부웅-

타타우가 정권을 휘둘렀지만, 그건 환영술로 만든 가짜였다.

툭- 타앗-

진짜 이비현은 시미터를 들고 타타우의 리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몹시 가벼운 몸놀림이었다.

시미터의 날카로운 칼날이 타타우의 턱밑을 사선으로 노리고 들어갔다.

“어딜.”

타타우가 씩 웃었다.

그는 방금의 환영술에 속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를 가까이 유인하기 위해 속은 척 했을 뿐.

퍼어억!

타타우가 이비현의 몸통을 정통으로 가격했다.

쿠콰앙-

이비현이 그대로 날아가 돌로 된 천장에 부딪쳤다.

털썩!

그녀가 끈 떨어진 인형처럼 힘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팔다리가 부러진 듯 처참한 모습이었다.

“크큭....”

타타우가 늑대의 머리를 하고서 웃었다.

회심의 일격이 성공한 것이다.

스으-

타타우의 머리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수인화 최고 단계를 유지하는 건 타타우에게도 부담이었다.

그러나 양 주먹은 수인화를 풀지 않은 상태였다.

‘방심했다가는 당하기 십상이니까.’

죽은 것처럼 보여도 확인 사살은 필수였다.

타타우는 엎드린 채 쓰러진 이비현에게 다가갔다.

타타우가 한쪽 무릎을 꿇고, 주먹을 치켜올렸다.

콰아앙-!

타타우는 어리둥절했다.

이비현의 머리를 가격하려 내리친 주먹이었다.

그런데 그의 주먹은 돌바닥을 때리고 있었다.

“억?”

치직···.

어찌나 세게 내리쳤는지, 단단한 돌바닥에 실금이 갔다.

얼얼한 주먹에 타타우가 당황한 순간.

쿠슉.

치이익.

날카로운 날붙이가 가죽을 긋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후두둑.

타타우의 목에서 걷잡을 수 없이 많은 양의 피가 흘렀다.

아무리 강한 각성자여도 이 정도의 출혈은 위험했다.

그는 생전 처음으로 심한 어지럼증을 느꼈다.

‘대체 어떻게?’

타타우는 쓰러진 이비현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환영술···이었다고?’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타타우가 분노의 신음을 흘렸다.

이비현이 자신의 주먹에 맞아 천장에 부딪힌 순간.

바로 그 순간.

환영으로 바꿔치기한 것 같았다.

단 한 순간의 방심으로 삶과 죽음이 갈리는 것.

그게 각성자의 전투였다.

‘하지만··· 이 여자가 내 주먹을 맞고도 버텼다고?’

온몸의 뼈가 바스라졌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이비현은 멀쩡해 보였다.

‘드래곤 방어구가 사기긴 하네.’

이비현은 한건우가 준 선물의 위력에 새삼 감탄했다.

고통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참을 만했다.

“크악!”

타타우가 남은 힘을 다해 바디 블로우를 들어왔다.

죽더라도 저승길 동무로 데려가겠다는 심산이었다.

스치잉!

이비현은 타타우와 달리 끝까지 방심하지 않았다.

그녀가 벽을 밟으며 한 바퀴 공중제비를 돌았다.

타악!

마지막 일격이 떨어졌다.

쿠웅-

비틀거리던 타타우가 쓰러졌다.

그의 정수리에는 시미터가 깊이 꽂혀있었다.

타타우의 눈동자에서 초점이 사라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하···.”

해냈다.

타타우를 죽이고 나서, 이비현이 처음 한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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