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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먹는 플레이어-158화 (158/238)

#158아프리카의 무칸 (4) - 상위 호환

한건우가 창을 빙글 돌려서 어깨에 멨다.

투지를 다지는 그를 보고 로지 마소크가 신중하게 덧붙였다.

“아마 무칸은 황궁의 꼭대기 층에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지하 감옥은 어디 있지?”

“황궁 지하에 있습니다. 저도 거기에 갇혀있다 왔지요.”

“고맙다. 큰 도움이 됐어.”

한건우가 씩 웃었다.

로지 마소크가 결연한 표정으로 다가섰다.

“제가 길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아니, 여기까지인 것 같군.”

“예? 하지만···.”

로지 마소크가 무심코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때 주위에서 함성이 울렸다.

“와아아!”

“!”

아직 자리를 떠나지 않고 사태를 지켜보며 남아있는 군중이었다.

로지 마소크의 옛 지지자들이 상당수였다.

“마마! 마마!”

“마마 마소크!”

아까 무칸을 연호하던 외침과는 달랐다.

진심 어린 열렬한 눈빛에 희망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었다.

한건우가 말했다.

“저 사람들에겐 지금 구심점이 필요해. 바로 당신이지.”

로지 마소크가 자세를 꼿꼿이 가다듬었다.

뼈가 툭 튀어나올 정도로 앙상해졌지만, 그녀의 눈빛은 또렷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이제는 무칸의 폭정을 끝내야 할 때입니다.”

“마마! 마마!”

“거리로 나오십시오!”

로지 마소크가 입을 열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뻗어 나왔다.

조그만 중년 여성의 몸에서 어떻게 그런 에너지가 나오나 싶었다.

사람들의 환호성은 더욱 높아졌다.

압도적인 힘도, 죽음의 공포도 없이.

그녀는 몇 마디 말과 행동만으로 군중을 사로잡고 있었다.

‘천생 정치인이군.’

한건우는 그녀의 판단을 존중했다.

‘사람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뿔뿔이 흩어진다면, 몇 안 되는 각성자 병사에게도 쉽게 통제되겠지.’

차라리 모두 거리로 튀어나와 뭉치는 게 나을 것이다.

반대편 군인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어떤 쪽이 더 곤란한지는 자명한 일이니까.

물론 거기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었다.

군인들에게 명령을 내릴 지배 세력이 없는 경우.

오직 그 경우에만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로지 마소크는 그 판단을 내린 것 같았다.

‘방금 무칸의 사도들은 거의 전멸했고.’

타타우가 꽁지 빠지게 도망치는 걸 봤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주인을 따라갔을 테니까.

“자.”

한건우가 이비현을 한쪽 팔로 끌어당겼다.

이비현이 쭈뼛거리는 자세로 안겼다.

파아앗!

한건우가 빛의 날개를 펴고 공중으로 떠올랐다.

“오오···.”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건우가 로지 마소크에게 말했다.

“오늘이 바로 너희 국민들이 기다리던 날일 거다. 다음날을 준비해.”

슈우웅-

한건우가 수직으로 솟구쳤다.

*

수도 황궁의 꼭대기 층.

최고급 리조트를 연상시키는 곳이었다.

평소에는 아름다운 노예들이 풍기는 향내로 가득했건만.

지금은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무칸 님.”

타타우가 무칸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 멍청한 놈. 내 하이에나는 안 데려오고 혼자 왔단 말이야?”

“...예?”

가죽 소파에 앉은 무칸이 역정을 냈다.

타타우는 아연실색해서 무칸을 바라보았다.

“다른 놈들은. 다 죽었나?”

“예. 놈에게 당했습니다.”

“이몸을 위해 살다 죽었으면 영광인거지.”

무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다운 반응을 보였다.

타타우가 고개를 들었다.

“저는 침입자 놈이 누군지 알 것 같습니다.”

“뭐, 대체 누구냐?”

무칸이 벌떡 일어났다.

타타우를 잡아먹기라도 할 듯 고개를 들이댔다.

“모용황의 사도, 한국의 한건우입니다.”

“...!”

무칸이 입을 벌린 채로 바짝 굳었다.

“그때 한국에서 저를 꺾었던 게 그놈입니다. 직접 싸워봤으니 확실합니다.”

“모용황, 이 썩을 노인네.”

무칸이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의 얼굴이 분노로 붉으락푸르락했다.

“한건우 그놈. 보통내기가 아닙니다. 회담 날에 보셨겠지만···.”

타타우는 자신이 싸워본 한건우에 대해 설명하려 했다.

그런데 무칸이 한쪽 입꼬리를 픽 올렸다.

“혓바닥이 길군. 한번 졌다고 겁먹은 개가 된 거냐?”

“....”

“쓸모없는 놈. 지하 감옥에나 가.”

“감옥, 말씀입니까?”

지금 이 긴박한 상황에 지하 감옥 앞을 지키라니.

농담인지 진담인지, 타타우는 혼란스러웠다.

“그래. 처형식은 이제 안 할 거다. 흥미가 떨어졌어.”

“예.”

황궁 지하 감옥에는 중요한 인물들이 많이 갇혀 있었다.

과거 공화국 시절의 주요 인사들, 유명한 학자들과 언론인까지.

“귀찮은 일 생기기 전에 감옥 안을 싹 청소해버려.

“알겠습니다.”

타타우는 깊이 머리를 숙였다.

그의 이마가 대리석 바닥에 닿을 듯했다.

‘차라리 잘 된 거다. 한건우 그놈과 두 번 마주치고도 살아남은 건 천운이야.’

타타우는 한건우와 다시 마주치는 게 무척 두려웠다.

이제 은코노 부족의 위대한 전사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한건우의 모습을 상상하기만 해도 오금이 저렸으니까.

*

슈우- 터억!

“앗.”

한건우가 빛의 날개를 수평으로 펴고 황궁 지붕의 첨탑 위로 내려앉았다.

그의 팔에 안긴 이비현이 놀라서 숨을 삼켰다.

“속도가 너무 빠른가? 심장 박동이 불규칙한데.”

“....”

이비현은 발이 첨탑 위에 닿자마자 한건우의 품에서 스르륵 빠져나갔다. 그녀의 뺨이 사과처럼 새빨갰다.

한건우는 첨탑 주위를 살폈다.

“저격이나 방벽이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아직 방해물이 없어.”

두터운 담장이나 외벽은 포격 방어에 집중한 것 같았다.

하지만 한건우는 방심하지 않았다.

이 정도의 방어를 갖춘 건물이 침입자를 대비하지 않았을 리 있나.

“들어가자마자 트랩이 나올 것 같군.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조심해. 무조건 은신으로만 이동하고.”

“네.”

“황궁에 들어가면 네가 할 일이 있어.”

“지하 감옥 쪽 말씀하시죠? 남은 죄수들을 없애려 할 수도 있으니까요.”

한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하고, 어려울 것 같으면 무리하지 말고 기다려.”

“뭘요. 이것도 받았잖아요.”

이비현은 자기 로브를 살짝 걷어서 안쪽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빙룡의 가죽으로 된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빙룡의 가죽 중에서도 가장 희고 부드러운 배 쪽의 피부로 만든 것.

두께가 얇고 유연한 편이었다.

물론 한건우에게 받은 것이었다.

장영표가 제작한 드래곤 방어구는 아레스 길드원 중에서도 주요 멤버만 받은 물건이었다.

다른 길드원들이 몹시 선망하는 아이템이기도 했다.

이비현은 공식적으로 아레스 길드 소속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건우가 그녀에게 드래곤 방어구를 선물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조심해. 알겠지?”

“네.”

이비현은 자연스럽게 벽을 타고 내려가 황궁의 창문 틈으로 스며들었다.

<그림자 맹시>가 있으면 못 들어갈 곳은 없었다.

‘정말이네. 온통 트랩투성이야.’

이비현은 혀를 내둘렀다.

벽과 바닥, 천장 구석구석에 침입자를 막는 트랩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림자 속에 숨어든 이비현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녀가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아래로 이동했다.

이비현을 먼저 보내고, 한건우는 혹시나 해서 상태창을 열었다.

‘혹시 쓸만한 특성이 나오려나?’

오늘만 각성자 병사 일개 사단에, 무칸의 사도들 너덧 명까지 죽였다.

죽은 자의 특성을 흡수하느라 한참 동안 권능창이 요란했다.

요새 한건우는 특성 중첩 공격에 맛이 들인 상태였다.

두 개 이상의 특성을 융합해서 사용하는 특성 중첩.

그로 인한 이점이 상당했다.

첫째, 특성의 상성만 잘 맞으면 위력이 몇 배가 된다는 것이었다.

방금도 마찬가지.

<빛의 군주>와 <검풍>의 중첩으로 무칸의 사도들을 일격에 갈라버렸다.

김도경이 쓰던 파괴 광선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둘째로 상대가 방어하기 까다로웠다.

예측하기도 어렵고 복합적인 성질을 가지니.

당연한 일이었다.

단점 역시 뚜렷했다. 바로 난이도였다.

특성을 중첩해서 사용하는 건, 한 가지 특성을 각각 다루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또한 평범한 무구는 특성 중첩을 견디지 못했다.

자칫하면 스스로 파괴되기 십상.

그러나 한건우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백 개를 훌쩍 넘기는 특성을 수시로 조합하다 보니 요령이 붙었다.

게다가 신화급 무구가 있는 한 내구도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어디 볼까.’

한건우는 특성 뽑기라도 돌리는 마음으로 목록을 훑었다.

그가 새로 흡수한 특성을 살펴보았다.

[특성 : 화염검]

- 무기 아이템에 꺼지지 않는 불꽃을 두른다.

‘아그니의 화염이 있으니 별 의미 없군.’

[특성 : 검독수리의 눈]

- 검독수리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이것도 화식조의 눈을 따라올 수 없고.’

[특성 : 아이스 스피어]

- 얼음의 창으로 적을 공격한다.

‘음···.’

몇 개를 더 살펴봐도 비슷했다.

한건우는 가벼운 실망감을 느꼈다.

‘이제 웬만한 각성자에게 얻을 만한 특성은 큰 의미가 없는 건가?’

이미 한건우가 유사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상위 호환으로 말이다.

특성창을 닫으려는데, 마지막 특성 목록이 눈에 들어왔다.

‘음?’

정말 실소가 나올 정도로 미약한 특성이었다.

전투 보조 특성 정도로, 그닥 기발하거나 희귀한 것도 아니었다.

연습을 안 해도 누구나 쉽게 쓸 수 있을 만큼 단순한 특성이기도 했다.

‘아무리 말단 병사라도 저것만으로는 각성자 취급을 받기 힘들었을 텐데.’

두 가지 특성을 가진 자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한건우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좋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한건우는 새로 얻은 특성을 잘 기억해두었다.

타아앗!

한건우가 첨탑 벽을 박차고 멀리 뛰었다.

수십 미터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황궁 본관의 지붕을 노린 것이었다.

슈우웅-

마창 게이볼그가 풍차처럼 회전했다.

[특성 중첩 : 아그니의 화염]

[특성 중첩 : 검풍]

파아아-

쿠콰과과과-

지옥의 겁화가 허공을 찢는 칼바람을 타고 한층 맹렬해졌다.

천망의 환영진을 부수었던 중첩 기술이었다.

콰아아앙-

창끝이 황궁 지붕에 닿으면서 큰 폭발을 일으켰다.

지축이 흔들리면서 지붕이 산산조각났다.

타앗!

그 중심에 있던 한건우가 꼭대기층 안으로 착지했다.

한건우가 코웃음을 쳤다.

“포격 방어가 되어있다고?”

흩날리는 분진 너머로, 눈이 시리도록 반짝이는 인영이 보였다.

전신을 다이아몬드 폼으로 바꾼 무칸이었다.

치지징!

무칸의 모습은 아까와 달랐다.

사람의 형상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다.

두 팔의 끝에는 손 대신에 길고 날카로운 다이아몬드 창이 자라나 있었다.

발 역시 악마처럼 길고 날카로웠다.

그야말로 전신이 무기와도 같았다.

“정말이군. 모용황의 사도가 맞군.”

“!”

“역시 모용황 그놈은 그날 죽였어야 했어.”

무생물 같은 무칸의 눈빛이 한건우를 응시하며 번뜩였다.

그는 뭔가 단단히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를 모용황이 보낸 것으로 생각했나?’

“모용황 놈. 그 긴 혓바닥으로 우릴 어디까지 속인 거냐?

“글쎄. 저승에서 직접 물어봐라.”

무칸의 표정이 허물어졌다.

“뭐, 뭐라고? 모용황이··· 죽었다고?”

“가서 기다려. 곧 길동무로 보내주마.”

한건우가 창을 겨누며 자세를 잡았다.

둘의 시선에서 스파크가 튀는 듯했다.

타닥-

둘은 거의 동시에 발을 박찼다.

쿠과광-!

지붕을 부술 때보다 더 큰 폭발음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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