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153화 (153/238)

#153다섯 명의 주인 (3) - 최강자

4명의 주인들이 예언 석판 쪽으로 순식간에 다가왔다.

아이템에 접촉해서 아이템 창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모용황의 화안금정이 번뜩 빛을 발했다.

그 반응을 보고 한건우는 확신했다.

‘두 번째 히든 메시지가 풀렸군!’

어떤 내용을 보고 놀란 것인지.

한건우도 궁금했다.

그때 한건우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떡하니 떠올랐다.

[히든 아이템 : 예언 석판 (5/7)]

- 황혼의 시간을 멈추는 방법이 담겨 있다.

- 예언 석판을 완성시키는 자에게는 <시스템>의 관리자 권한이 주어진다.

“어?”

무칸이 놀란 소리를 내뱉었다.

한건우에게만 보이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한건우는 미공략 균열 안을 채운 이들을 훑어보았다.

다섯 명의 주인, 그리고 얼음처럼 굳어서 도열한 사도들.

그들의 표정을 보자, 상황이 그려졌다.

‘다섯 명의 주인과 나에게는 아이템 창이 보이고, 다른 이들은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야.’

히든 메시지를 보니,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석판 조각을 가지고 있거나, 가졌던 이들. 그러니까 ‘예언 석판을 완성시키는 자’의 조건이 되는 자들에게만 뜨는 건가?’

그보다 중요한 건 두 번째 히든 메시지의 내용이었다.

이제껏 ‘???’라는 표시로 가려져 있던 문구.

‘첫 번째 히든 메시지보다 중요한 내용일거라 생각은 했지만···.’

“뭐, 뭐라고?”

무칸은 경악한 눈으로 모용황과 예언 석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자신의 무기인 다이아몬드 부메랑이 손짓 한 번에 파괴되었을 때보다 더 놀란 표정이었다.

충분히 그럴 만했다.

‘<시스템>의 관리자 권한!’

그 문구가 벼락처럼 모두의 눈에 꽂혔다.

균열이 발생하고, 각성자가 나타난 이후.

그들의 생과 사를 지배하는 것은 <시스템>의 규칙이었다.

균열의 공략 조건, 아이템의 능력, 각성자의 스테이터스까지.

모든 건 시스템에 의해 지배받고 있었다.

각성자는 시스템의 메시지를 보고, 간혹 선택지를 고를 수 있을 뿐.

아무것도 직접 창조하지는 못했다.

지구에 있는 모든 각성자는 시스템의 ‘이용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일반인에 비하면 대단한 특권이긴 했다.

일반인은 시스템의 메시지조차 보지 못하는 외곽의 존재였으니.

“관리자 권한이란 건 말도 안 됩니다. 뭔가 잘못됐어요. 그런 건 존재할 수 없어요.”

인도의 아소카 싱이 강하게 부정했다.

아소카 싱의 말을 듣고, 한건우는 혹시나 했던 가능성을 지웠다.

‘모두에게 똑같은 메시지가 보인 게 맞군.’

“안 될 건 뭐야, 아소카? 시스템에 나온 메시지는 진리야. 한 번도 우리를 배반한 적이 없지.”

마리아 베르타가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 뒤에서 총기를 뽑았다.

대형 구경의 마력 총화기였다.

총이라기보다 함포에 가까워, 어떻게 들고 서 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철컥!

흥분한 마리아 베르타가 총을 뽑자, 그녀 뒤에 서 있던 사도들도 총화기를 뽑았다.

“저게 있으면 살아있는 신이 되는 거야!”

“마리아, 그만두세요.”

드 라모트 백작부인이 경고했다.

슈우우웅-

백작부인의 주위에 검붉은 마기가 위협적으로 일렁였다.

마리아 베르타가 코웃음을 쳤다.

“왜 이래? 우리는 어차피 서로 죽이지도 못하잖아. 맹약서의 기한은 무기한인 걸.”

‘맹약?’

한건우는 그녀의 말에 주목했다.

여차하면 전투에 뛰어들 준비를 한 채였다.

맹약서라면 계약서 스크롤의 최상위 호환으로, 맹약을 어기면 곧바로 존재가 소멸한다.

맹약서는 시중에서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굉장히 비쌌다.

계약서와 달리 단순한 명제밖에 반영할 수 없고, 조건을 다는 것도 불가능했다.

현실에서 그걸 쓰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르고스의 주인끼리는 서로 죽이지 않는다는 맹약을 했군.’

그러니 아까 무칸의 행동도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모용황을 기습하고도 장난이었다면서 도리어 큰 소리를 친 무칸.

애초에 죽일 만큼의 공격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무기를 꺼낸 거죠?”

백작부인이 차갑게 묻자, 마리아 베르타가 말했다.

처컥! 우우웅-

마리아 베르타가 마력 총화기를 장전했다.

“들러리가 되는 건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

“마리아!”

“우리 다섯은 모두 예언 석판 조각을 하나씩 찾았어. 안 그래? 이 자리에 남들보다 더 큰 권한이 있는 사람 있나?”

즈으으응-

그때 모용황을 중심으로 동심원처럼 기운이 번져나갔다.

좀처럼 표정이 드러나지 않던 노인의 얼굴에 분노가 어렸다.

“무칸도 그렇고···. 젊은 친구들이 재미있는 작당을 했나 보군.”

“마리아 님, 모용황 님을 자극하지 마십시오.”

아소카 싱이 만류하러 나섰다.

스으으-

그의 반신에는 강신의 기운이 일어나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충돌하게 둘까?’

그들이 한 자리에서 자멸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한건우에게는 결과가 뻔하게 그려졌다.

‘차이가 너무 압도적이야.’

아마도 모용황 편의 승리로 끝나겠지.

무칸과 마리아는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죽음만 면한 채로 유폐되던가.

‘그건 아냐. 다른 쪽으로 틀어야 해.’

스르릉-

한건우가 마창 게이볼그를 꺼냈다.

콰앙-!

한건우가 창자루를 대지에 내리찍자, 다섯 주인의 시선이 한건우에게 몰렸다.

“모용황 님의 사도 아닌가?”

아소카 싱이 말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믿지 못하겠다는 듯,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무례하고 건방지군요.”

백작부인이 싸늘하게 말했다.

스스스- 휘익!

아르고스의 주인은 말로만 경고하는 법이 없었다.

백작부인이 다루는 검붉은 마기가 독사처럼 휘면서 한건우를 덮쳤다.

터엉-! 타아악!

한건우는 창대를 돌리면서 유형화된 마기를 막아냈다.

“감히···?”

백작부인의 창백한 얼굴이 한층 새파랗게 질렸다.

그녀의 권속인 사도들도 동요했다.

“저 놈이었습니다.”

타타우가 자신의 주인인 무칸에게 고했다.

“뭐가 말이냐?”

“한국에서 저를 때려눕힌 자가 저 자였습니다.”

타타우는 나지막히 말했지만, 들을 사람은 다 들었다.

무칸이 웃음을 흘렸다.

“서로 사도인 줄도 모르고 싸웠단 말이야?”

“...그렇습니다.”

“이거 재미있군. 저놈이 다른 사도들을 여럿 잡네.”

“예?”

“김도경과 검귀를 죽인 것도 저 자거든.”

“!”

그들의 대화를 듣고 한건우에게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때 아소카 싱이 입을 열었다.

“모용황 님. 후계자를 바꾼 겁니까?”

모용황을 향한 질문이었다.

“모용씨의 피가 흐르는 손녀를 후계자로 생각하시는 줄 알았습니다만.”

아소카 싱이 턱끝으로 소소를 가리켰다.

그녀는 모용황의 뒤에 서서 벌어지는 일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한건우는 나름대로 깜짝 놀랐다.

‘소소가 모용황의 손녀라고?’

어릴 때부터 심부름을 하고 있다고만 들었다.

혈연 관계가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후계자라니.’

새삼 그녀가 달리 보였다.

그녀가 감추는 게 더 있나 궁금해질 정도였다.

모용황은 목젖을 드러내며 껄껄 웃었다.

“허허허, 모용씨의 혈통은 물론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

“그렇다면···.”

“노인네의 생각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뀐다네. 어떻게 장담을 하겠나?”

모용황이 너스레를 떨었다.

모든 이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한건우와 소소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특히 한건우를 보는 시선이 변했다.

‘모용황의 후계가 될지도 모르는 자라고!’

가장 놀란 건 타타우였다.

그는 바로 얼마 전 한건우와 싸웠으니까.

비록 한건우가 타타우를 일방적으로 때려눕히는 것에 가까웠지만.

타타우의 턱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모용황이 예언 석판을 높이 치켜들었다.

“모두 한 조각씩의 권리가 있다고 했나? 맞는 말일세.”

“....”

다른 이들의 표정이 바짝 굳었다.

“허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석판은 아무 의미가 없네. 다섯 조각을 모으는 데만 수십 년이 걸렸지 않나.”

“첫 번째 조각과 두 번째 조각 사이만 길었죠. 첫 히든 메시지를 보고 나서는 빨라졌고.”

모용황이 말을 돌리려 하자, 마리아 베르타가 바로 반박했다.

“맞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큰 힘이 한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은 다들 오늘 처음 알았죠. 안 그렇습니까? 누가 그 힘을 가질지는 7개의 조각을 다 모으기 전에 결정해야죠.”

무칸이 상황을 정리하자, 다른 주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힘을 얻은 무칸이 힘을 주어 말했다.

“그런데 지금처럼 모용황 님이 석판을 보관하고 있으면··· 믿을 수 없다는 얘깁니다.”

“뭐라?”

다시 도돌이표가 되었다.

이들은 각 대륙을 호령하는 주인들이었다.

서로 존중하는 척 했지만, 압도적인 권력 앞에서 믿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가.’

한건우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맹약을 걸어 뭉치게 된 것일지도 모르지.’

한건우는 다시 전면으로 나섰다.

“한 가지 제안 드리겠습니다.”

“모용황 님. 아무리 소중한 후계라도, 주인들의 대화에 끼는 걸 내버려두십니까?”

백작부인이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한건우는 그녀를 흘긋 바라보고, 다시 제 할 말을 했다.

“예언 석판을 누가 보관하든, 문제는 마찬가지죠?”

“귀여운걸. 무슨 소릴 하는지 들어나 보자구.”

마리아 베르타가 총기를 까닥거리며 대답했다.

그녀는 한건우에게 호기심을 가진 듯, 농익은 웃음을 띠고 있었다.

“간단합니다. 예언 석판 조각을 가장 많이 찾은 이가 석판의 소유자가 되는 겁니다.”

석판의 조각은 총 일곱 개.

이제까지 각자 하나씩을 찾았다고 하니, 모두가 똑같은 조건인 셈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말을 바꾸지 못하도록, 존재 소멸을 걸고 맹약하는 겁니다.”

한건우가 맹약서 이야기를 꺼내자, 주인들이 흠칫했다.

“뭐··· 단순하지만 일리는 있어. 일단 열심히 찾으려고 눈에 불을 켜겠는걸?”

“공평해 보이는군!”

마리아 베르타와 무칸은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비교적 약해 보이는 이들이 찬성한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맹점이 있지 않나요. 조각을 두 명이 하나씩 찾은 경우는 어떻게 되죠? 한 개의 석판을 두 명이 나누어 가질 수는 없을텐데요.”

물론 이런 반박이 나올 건 예상했다.

“그런 경우, 자신의 주인을 대표해서 두 명의 사도가 생사결을 벌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

‘여기서 이기려면 제일 먼저 두 개의 석판을 찾던지, 아니면 한 개의 석판을 찾고 나서 강한 사도를 싸움에 내보내야 한다!’

주인들은 각자 자신의 사도를 한건우와 견주어보고 있었다.

한건우가 내민 해결책은 몹시 단순하고 직관적이었다.

그러면서도 주인끼리 직접 싸우거나 죽이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쉽사리 거절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상황.

그때 모용황이 고개를 저었다.

“그 의견은 받아들일 수 없구만.”

“!”

모용황과 한건우의 의견이 갈리다니.

이건 사람들이 상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모용황과 사전에 얘기가 된 게 아니라고?’

‘아니면··· 이것까지 계획인가?’

‘제길, 어디까지가 노인네의 생각인지 짐작이 안 가.’

모용황은 한건우의 눈을 바라보며 느릿느릿 말했다.

“만약 나머지 석판 조각을 미리 찾고도 숨겨둔 이가 있다면 어떻게 할 건가?”

“....”

“그러면 그 자는 맹약서에 힘입어 피를 흘리지 않고 최강의 힘을 차지할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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