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다섯 명의 주인 (2) - 부메랑
“이봐, 내가 한 가지 맞혀 볼까?”
“네? 어떤 걸요.”
포털 출구로 나가기 전.
한건우가 소소를 보며 미소지었다.
“이 도시에서 아르고스의 주인들이 모이는 건, 예언 석판에 관한 일이지?”
“....”
웃고 있던 소소의 얼굴이 미세하게 굳었다.
“누군가 다섯 번째 조각을 찾은 거야. 안 그래?”
“한건우 씨가 그걸 어떻게···?”
“다섯 명의 주인이, 굳이 직접 얼굴을 마주하기 위해 모인다···. 조직에서 중요한 일은 두 가지지. 인사 문제, 아니면 조직의 목표와 관련된 문제겠지.”
소소는 졌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한건우 씨는 항상 저를 놀라게 하는군요.”
“너야말로. 아직 습관적으로 숨기는 게 너무 많아.”
한건우는 일부러 섭섭한 체하며 툴툴거렸다.
“제가요?”
“그래. 내가 찾아야 했는데···. 이번 석판은 어디서 찾은 거지?”
한건우는 조직에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소소는 순순히 대답했다.
“이곳, 이집트요. 고대 신전에 생긴 균열 안에서 찾았다고 하더군요.”
“이집트의 균열이라··· 괜히 동북아시아에서 헛수고 했군.”
한건우와 길드원들은 그동안 한중일의 균열을 온통 들쑤시고 다녔다.
게다가 경매장이나 마켓에 석판 형태의 아이템이 나오면 전부 입수했다.
모용황과 소소가 보기에는 미친 듯이 석판을 찾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엄청난 금전적 지원을 받아낸 건 덤이었다.
다섯 번째 조각이 발견된 걸 알았을 때.
한건우도 다른 이들 못지않게 기뻐했다.
아니, 한건우보다 더 기뻐한 이도 없을 것이다.
‘이제 열쇠는 온전히 나에게 있어.’
앞으로 아르고스의 수하들이 평생토록 세계 구석구석을 다 뒤져도, 예언 석판을 완성할 수는 없을 터.
결정권은 온전히 한건우의 손에 달린 셈이었다.
“다른 주인들은 아직 이집트에 도착하지 않았을 테고. 회담의 장소는 석판이 발견되었다는 신전의 균열 안인가?”
“어머···.”
소소는 이제 당황한 표정이었다.
추측이 맞아떨어졌다.
상위 직급이 나중에 오는 건 당연하고, 장소도 거기가 아니면 굳이 이집트에서 모일 이유가 없으니.
한건우는 그녀를 제쳐두고 나가며 말했다.
“시각만 말해. 현지 가이드는 필요 없으니 이따가 보지.”
소소를 따돌리고 나서, 한건우는 바로 이비현에게 연락했다.
“비현아, 외국 각성자 정보를 찾아줘. 죽은 사람도 포함해서.”
아까 목격한 주인들의 정보를 알아내고 싶었다.
‘특히 그 인도인 놈.’
분명히 어디서 봤다고 생각했는데.
백작부인의 얼굴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둘 다 사진 파일로 접한 것이었다.
회귀 전, 군사 기밀이었던 외국의 1세대 각성자 정보에서.
‘이름이 분명히···.’
[어떤 사람의 정보를 찾으면 될까요? 데이터베이스 접근 중이에요.]
이비현은 왠지 신이 난 목소리였다.
한건우가 자신에게 부탁한 게 기분 좋은 것 같았다.
“다섯 명. 첫째, 인도의 아소카 싱.”
[네. 쭉 말씀해 주세요.]
“둘째, 북유럽의 백작부인. 본명은 잊었고 별명이야. 이 둘은 공식적으로 사망자일 거야.”
[알겠습니다.]
“세 번째로는 아프리카의 무칸. 그리고 은코노 부족의 타타우. 둘이 밀접한 관계가 있을 거야.”
[네. 타타우라면 이미 찾아놓은 게 있습니다.]
타타우는 이비현의 앞에서 당당히 자기소개를 했다.
이비현이 그걸 놓치지 않고 파악해놓은 모양이었다.
아르고스의 주인은 모용황처럼 정체를 숨기고 살 수도 있겠지만, 사도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한 각성자일 확률이 높았다.
아르고스에서 그런 자들에게 마수를 뻗치기 때문이다.
“잘했어. 마지막으로는 음···. 딱히 단서가 없는데.”
다갈색 피부에 터질 듯한 몸매를 뽐내던 남미 여자가 떠올랐다.
이 여자는 이름조차 몰랐다.
[특징이라도 말해 주시면 최대한 찾을게요.]
“좋아, 아마도 남미권의 젊은 여성 각성자이고, 최고 실력자겠지···. 위의 두 사람들처럼 공식적으로는 사망했을 수도 있고.”
[젊은 여자요? 다른 특징은요?]
“몸매가 육감적이고, 얼굴이 눈에 띄게 아름다운 여자인데···.”
[아··· 그래요?]
설명하다 보니 왠지 수화기 너머로 싸늘한 냉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한건우는 얼른 얼버무렸다.
“하여간 그렇게 다섯이야. 찾아지는 대로 파일 보내줘.”
[네.]
뚝!
어쩐지 이비현이 평소보다 전화를 빨리 끊은 듯했다.
몇 분 되지도 않아서, 휴대폰으로 자료가 도착했다.
“역시 솜브라.”
명불허전.
아시아 최고의 정보 조직이라 불릴 만했다.
‘내가 군대에서 보았던 기밀 파일보다도 훨씬 나아.’
한건우는 한 글자 한 글자를 놓치지 않고 기억에 담았다.
<기억의 석판> 특성을 사용한 것은 물론이었다.
몇 시간 후, 균열을 덮는 <피라미드>가 아닌 진짜 피라미드 근처.
석양이 번지는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듣던 대로 고대 신전 안에는 뻥 뚫린 균열 입구가 보였다.
미공략 균열이었고, 이미 파훼되어 안전한 상태였다.
“사도 한건우. 반갑네.”
신전의 기둥을 따라 모용황과 소소가 나타났다.
그들은 균열 입구로 선뜻 들어가려 했다.
“잠깐만요.”
“왜 그러나.”
한건우는 균열 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쩌면 함정일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허허허!”
모용황은 목청이 보일 만큼 껄껄 웃었다.
“이 노인네를 위해 애써 함정을 준비했다면··· 놀아줄 수도 있겠지.”
모용황은 균열 입구로 훌쩍 들어갔다.
한건우도 그를 뒤따랐다.
슈우웅-
공간을 뛰어넘는 순간.
다이아몬드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부메랑이 덮쳐왔다.
정확히 모용황을 노린 것이었다.
“!”
스슥-
다이아몬드 부메랑은 모용황의 손짓 한 번에 검은 재가 되어 흩날렸다.
“환영이 과하군.”
모용황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균열 안에는 4명의 주인이 나란히 서 있었다.
그들의 뒤에는 심복인 사도들도 도열해 있었다.
인도인 남자가 한껏 비웃음을 머금고 아프리카의 무칸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무칸?”
한건우는 먼저 그 인도인 남자의 정보를 되새겼다.
■ 아소카 싱(19XX. X. X. ~ 20XX. X. X. 사망), 남
- 현재 기준으로 S급 추정
- 강신 능력자로, 인도의 신을 몸 속에 소환하여 전투했다고 알려짐
- 부친은 고왕조의 후손인 브라만 계급. 모친은 불가촉 천민이라는 설
- ···.
‘강신 능력이라.’
한건우는 긴장했다.
전통적인 종교의 발현지나, 신화의 역사가 깊은 나라에서 매우 드물게 개화하는 특성이었다.
한국에도 간혹 만신을 모신다는 각성자들이 나왔지만, 의미 있을 만큼 강한 각성자는 한 명도 없었다.
‘이 자도 나처럼 여러 종류의 능력을 쓸 수 있을지도.’
어쩌면 모용황만큼이나 까다로운 상대일지도 모르겠다.
무칸이 대답하기도 전에, 백작부인이 코웃음을 쳤다.
“어서 무례를 사과하는 게 좋겠어요.”
한건우는 키가 190cm가 넘는 장신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아까 기억해둔 인물 정보가 떠올렸다.
■ 드 라모트 백작부인(19XX. X. X. ~ 20XX. X. X. 사망), 여
- 현재 기준으로 S급으로 추정되며, 별칭은 <피의 백작부인>.
- 북유럽 왕족의 후손이자 대부호, 미술 애호가
- 흡혈 특성으로 상대의 HP를 흡수하고 자신의 권속으로 만들 수 있음
‘저건 인간이야 뱀파이어야?’
백작부인의 회백색 피부는 오싹한 구석이 있었다.
한건우는 두려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수백 마리 뱀파이어를 권속으로 부리던 아크 리치도 해치우지 않았나.
그러나 한건우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십수 년 전의 기록이잖아. 기록이 끝난 후에 훨씬 강해졌을 가능성이 더 크겠군.’
두 사람이 조롱하자, 무칸은 수세에 몰린 듯했다.
방금 다이아몬드 사슬을 이용한 공격.
그걸 누가 했는지는 삼척동자라도 알 법했다.
그러나 무칸은 도리어 큰 소리를 쳤다.
“장난을 좀 쳤기로소니, 남의 소중한 무기를 부서뜨리긴가?”
무칸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두 손을 들었다.
‘저놈의 정보가 가장 의외였지.’
뜻밖에 무칸은 공인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 정복자 무칸(20XX. X. X. ~), 남
- S급, 북부 아프리카 제국 동맹의 황제
인물 정보의 첫 줄부터 숨이 턱 막힐 판이었다.
‘뭐? 정복자? 황제?’
요즘 세상에 제국을 칭하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진짜 예스러운 황제는 아니지만, 악명은 못지않았다.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가 모여서 만든 국제 동맹의 원수이자 독재자였다.
주변국을 침략하고, 내국인마저 가혹하게 착취했다.
‘첫인상이 맞았군.’
아프리카의 독재자.
돌아보니 정확한 판단이 아닌가.
그리고 그의 능력에 대해서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 신체 강화 특성의 극의, 다이아몬드 폼 능력자.
- 다이아몬드 부메랑을 무기로 사용
신체 강화라면 박이경이 가진 특성이었다.
‘박이경은 근육이 돌덩이처럼 단단해지는 정도였는데, 다이아몬드의 경도라니.’
무칸의 뒤에 서 있던 타타우는 입을 떡 벌리고 한건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타타우는 눈을 희번득하게 뜨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허억··· 너, 너는!”
황당하고도 억울한 표정이었다.
타타우의 입장에서는 같은 편에게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은 셈이니, 그럴 만도 했다.
한건우는 이제 타타우에게 관심이 없었다.
은코노 부족의 마지막 후계자라는 정보를 봤지만 대충 넘겼다.
‘수인화 능력자라는 건 알고 있으니.’
타타우는 한 번 완벽하게 쳐부순 상대였다.
패자에게는 더이상 호기심이 들지 않는 법이었다.
이때 한건우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도 있었다.
“모용황 님의 새로운 사도구나, 드디어 비싼 얼굴을 보네.”
■ 마리아 베르타(20XX. X. X. ~), 여
- 남미 최강의 각성자 범죄 카르텔, 도스 시엔토스의 수장.
- 마력 총화기를 다룸
역시 만만치 않은 여자였다.
마리아 베르타가 한건우를 쓱 훑어보았다.
탐나는 장난감을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이 여자의 정체는 못 찾을 줄 알았는데.’
마음속으로 이비현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한건우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한 명 한 명에게서 인간 이상의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한건우는 확신했다.
‘모용황에 비하면··· 해볼 만은 하겠어.’
모용황은 너그러운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
무칸의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끄··· 끄억···.”
치지지징-
무칸의 온몸 피부가 불규칙적으로 다이아몬드 폼으로 변형되고 있었다.
무칸은 스스로 몸을 제어할 수 없는 듯했다.
‘!’
터엉-
반쯤 금속성으로 변형된 무칸이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허억, 헉···.”
“무칸.”
모용황이 낮지만 천둥 같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 순간 무칸의 다이아몬드 폼이 풀렸다.
“...커억···.”
“일어나라. 이번 일에 공이 있으니 넘어가마.”
모용황은 명백히 윗사람의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체험한 무칸은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모용황··· 내 오판이다. 전보다 훨씬 강해졌어.’
무칸이 입술을 꾹 깨물고 예언 석판 조각을 내밀었다.
아무 글자도 없는 새까만 금속 판이었다.
[히든 아이템 : 예언 석판(1/7)]
-???
-???
“제대로 찾았군.”
그 조각을 보는 모용황의 눈빛은 타오르는 것 같았다.
모용황은 품속에서 4개의 조각이 한데 붙은 두꺼운 석판을 꺼냈다.
곧바로 새로운 석판과 결합했다.
처억!
두 개의 석판은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완전히 하나로 결합되었다.
[히든 아이템 : 예언 석판(5/7)]
모용황은 아이템 창을 들여다보고 서 있었다.
“히든 메시지가 풀린 겁니까?”
다른 주인들은 더는 기다리지 못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동시에 모용황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