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151화 (151/238)

#151다섯 명의 주인 (1) - 회담

‘뭐지? 모용황을 친다고?’

뜻밖의 이야기였다.

‘타타우··· 아르고스의 다른 주인이 보낸 게 아니었나?’

예언 석판의 정체를 알고 찾아다니는 세력은 아르고스뿐일 테니.

당연히 타타우라는 자도 아르고스의 일원인 줄 알았다.

대체 이들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설마 자신처럼 아르고스에 적대하는 또 다른 집단이 있는 걸까.

고민하던 한건우는 금방 해답을 얻게 되었다.

[타타우, 이번이 절호의 기회다. 왜 그런지 알아?]

[...모르겠습니다.]

<주시자의 뱀> 덕분에 타타우의 감정이 밀려 들어왔다.

타타우는 상대방을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모용황의 지하성 안에서는 그를 꺾을 수가 없어. 놈을 지하성 밖으로 꺼내야 그나마 승산이 있지.]

[....]

한건우는 귀를 기울였다.

상당히 귀중한 정보였다.

지하성이라는 공간 자체가 모용황을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는 걸까.

[나 말고 다른 ‘주인’들도 찬성할 거다··· 나머지 넷이 뭉친다면 제아무리 모용황이라도 어쩌겠어?]

한건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드디어 해답을 얻은 것이다.

‘이 자는 아르고스의 다섯 주인 중 하나였군!’

이제까지 정체를 알아내지 못한 아르고스의 주인이었다.

그렇다면 타타우 역시 이자의 사도일 가능성이 높았다.

‘사도치고는 약한 편 아닌가? 김도경이나 검귀에 비한다면···.’

한건우는 거의 아이 다루듯이 타타우를 박살 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단순히 비교하기는 어려울 듯했다.

한건우의 수준이 달랐기 때문이다.

한건우는 대마도에서 검귀를 죽였을 때보다, 또 파주에서 김도경을 죽였을 때보다도 훨씬 강해져 있었으니까.

타타우가 만나고 있는 주인의 얼굴이 궁금해졌을 무렵.

때마침 타타우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들었다.

[크르르르···.]

타타우가 얼굴을 들자, 주인의 발치에 있던 애완용 하이에나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쉬이- 괜찮다.]

하이에나의 먹이 그릇은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 안에는 사람의 다리뼈처럼 보이는 것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미친 놈.’

한건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한건우는 타타우의 시선을 통해서 그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상대는 짙은 갈색 피부의 흑인 남자였다.

그의 나이는 생각보다 젊었고, 차림새는 무척 눈길을 끌었다.

화려한 금박에다 뱃지가 덕지덕지 붙은 제복 차림에, 붉은색 벨벳 망토.

그 위에는 옅은 노란색 보석으로 된 선글라스까지 걸쳤다.

전체적으로 탐욕스러운 인상이었다.

‘꼭 아프리카의 젊은 독재자 같군.’

처음으로 본 게 모용황이라서인지.

아르고스의 주인이라는 자들은 뭔가 세상에 초연한 노고수처럼 생겼을 줄 알았는데.

그런 선입견을 보기 좋게 부서뜨리는 상대였다.

“....”

우스꽝스러울 만큼 요란한 복장에도 불구하고, 그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주시자의 뱀>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는데도 상대방이 얼마나 강한지가 느껴졌다.

모용황과는 반대로, 이 자는 자신의 기척을 하나도 감추려 하지 않았다.

한건우는 그들이 있는 장소도 자세히 살펴보았다.

돈을 있는 대로 처바른 궁전 같은 곳이었다.

실내라서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한국은 아닌 듯했다.

[사도 타타우, 위대한 은코노 부족의 이름을 걸고, 무칸 님과 끝까지 함께할 것입니다.]

무칸이라 불린 주인이 씩 웃었다.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사방에 지지직거리는 홀로그램 영상이 나타났다.

‘!’

한건우는 무칸의 손끝에 집중했다.

분명히 그의 손가락이 순간적으로 다이아몬드처럼 영롱하게 변했다.

‘신체 강화나 변형 능력인건가?’

무칸의 능력을 추측하고 있는 동안.

홀로그램 영상이 또렷해졌다.

세 명의 사람들이었다.

한건우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모용황을 빼고, 4명의 주인이 모인 거야!’

한건우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제까지 다른 주인과 소통하거나 접근할 길이 없었는데, 한 번에 모든 이들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모두를 부르게 된 것은-.]

[언짢네요. 중요한 일이어야 할 겁니다.]

무칸이 번드르르한 인사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냉소적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터번을 두른 인도인 남자였다.

희고 고급스러운 비단옷을 걸쳤고, 피부색이 밝은 편이었다.

한건우는 그 싸늘한 목소리와 깊고 검은 눈동자를 바로 알아보았다.

‘김도경을 질책하면서, 나를 사도로 만들라고 명령하던 그 자가 분명해.’

그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저 얼굴도 어디선가 본 듯했다.

‘뭐지···? 봤을 리가 없는데.’

회귀 전후를 통틀어봐도 인도인 고위 각성자를 본 기억은 없었다.

혼란을 느끼고 있는 가운데.

[무칸이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은데?]

이번에는 젊은 여자 목소리였다.

그을린 피부에 흑발의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왔다.

노출이 심한 옷차림에 풍만한 몸매가 인상적인 남미 여자였다.

[그렇군요. 아르고스의 첫 번째 주인이 안 보이는 걸 보니.]

다들 개성이 강했지만, 가장 독특한 건 마지막 사람이었다.

옅은 금발에 차가운 푸른 눈을 가진 유럽 여자였다.

피부는 뱀파이어처럼 핏기없는 회백색이었다.

그녀는 단추를 목까지 꼼꼼하게 채운 드레스를 입고, 허리와 목을 우아하게 세우고 있었다.

그녀의 키는 190cm는 훌쩍 넘어 보였다.

명화 속에서 막 튀어나온 것처럼 귀족적인 분위기였다.

‘저 여자는···!’

한건우는 백작부인의 고고한 얼굴만은 분명히 알아보았다.

현대 전쟁사 쪽에서는 워낙 유명인물이었으니까.

유럽의 1세대 각성자 중 한 명, 일명 ‘백작부인’.

북유럽 왕족의 후예로, 균열 발생 후 유럽 국지전에서 암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전쟁에서 죽은 게 아니었어?’

그렇다면 나이가 꽤 많을 텐데, 여전히 아름답고 고고했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무칸이 과장되게 귀족 예법으로 인사했다.

[자, 본론부터 말씀드리죠. 어제 5번째 예언 석판을 찾았습니다.]

[!]

모든 주인들이 동요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터번을 쓴 인도인 남자가 말했다.

[이제 남은 건 2조각이군요. 모용황 님에게 보내서 맞춰보죠. 이번에는 두 번째 히든 메시지가 열릴지도 모르니.]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무칸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무슨 소리죠?]

그때 한건우의 시야가 턱 막혔다.

타타우가 고개를 숙인 것이다.

아르고스의 주인들이 모인 자리.

사도에 불과한 자신이 감히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지 불안해하는 듯했다.

‘답답하군.’

한건우에게 보이는 건 대리석 바닥뿐이었다.

다행히 모두의 얼굴을 확인했으니, 목소리로 충분히 구분할 수 있었다.

무칸이 격양된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아르고스에는 리더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같은 권한을 가지고 있죠. 그런데 왜 모용황이 예언 석판의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걸까요?]

[독점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예언 석판에 대해 확실한 건 하나뿐이죠. ‘황혼의 시간을 멈추는 방법이 담겨 있다’는 것. 나머지는 사실 모용황의 입으로 들은 것이 아닙니까?]

[대체 무칸 님이 말하고자 하는 게 뭐죠?]

인도인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우리 아르고스는 이제껏 함께 전 세계를 지배하며 예언 석판을 함께 찾아내 왔습니다. 그 석판의 정보는 아마도··· 이제까지 알지 못한 어떤 강한 힘에 대한 것이겠죠?]

[물론. 일종의 결합형 아이템이니, 결합을 완성하면 특별한 힘을 주는 경우가 많죠.]

백작부인이 수긍했다.

무칸이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모용황이 그 힘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이번 석판의 결합은 모두 모인 자리에서 하도록 하죠. 두 번째 히든 메시지가 어떻게 보이는지도, 우리는 동시에 확인해야 하니까요.]

[무칸. 그게 다예요? 아니잖아?]

남미 여자가 나른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무칸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꾸했다.

[우리는 모두 모용황을 두려워했죠. 그러나 우리 넷이 한마음을 먹는다면 그를 제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때 다시 4명의 모습이 보였다.

놀란 타타우가 고개를 쳐든 모양이었다.

한건우도 새로운 정보에 귀를 기울였다.

‘...아르고스 안에 내분이 일어나는 건가?’

견고한 줄만 알았던 비밀 조직 안에 파벌이 생긴 모양이었다.

‘무칸의 태도를 보아하니, 오랫동안 쌓여온 공감대가 있던 것 같군.’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공개적으로 표출하지는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한건우는 가만히 생각을 정리했다.

‘다들 모용황에게 불만이 있었고, 무칸이라는 자는 예언 석판을 찾은 김에 총대를 멘 건가?’

[솔직히 난, 듣던 중에 반가운 말이야.]

[...!]

남미 여자는 시원스럽게 받아들였다.

[모용황이 우리에게 모든 정보를 공유해주지 않은 지 좀 됐어. 최근에 얻은 새로운 사도에도 접근 못 하게 하잖아?]

그녀의 말을 듣고 한건우는 흠칫했다.

‘새로운 사도라면, 날 말하는 건가.’

그러나 나머지 2명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글쎄요, 저는 내키지 않습니다.]

[내키지 않는다?]

터번을 쓴 인도인 남자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우선 두 번째 히든 메시지가 열리고 나면, 그 내용을 확인해보고 움직여도 늦지 않을 것 같군요.]

마지막 남은 건 한 사람.

백작부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여인이었다.

[제가 보기에, 무칸 당신은 그저 또 다른 모용황이 되고 싶은 것으로 보이는데요.]

[뭐?]

그녀가 차갑게 빈정거렸다.

실내에 팽팽한 긴장감이 어렸다.

‘의견이 갈리는군.’

아프리카의 무칸과 남미 여자.

비교적 젊어 보이는 그 둘은 모용황을 향한 적개심을 쉽게 드러냈다.

인도 남자와 백작부인. 언뜻 보기에 중년에 가까운 둘은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무칸의 말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모용황을 함께 제압하자는 의견에는 회의적이었다.

‘오히려 잘 됐어.’

아르고스의 네 주인이 합심하는 것보다 이 쪽이 낫다고 생각했다.

이제 패가 갈리는 것이다.

막강한 강자인 모용황 1명과 반대파 2명, 그리고 중립 혹은 온건파인 2명으로.

‘1대 2대 2 구도.’

견고하게만 보이던 아르고스의 철옹성에 틈이 생겼다.

한건우가 기다리던 때가 온 것 같았다.

*

스스스-

한건우는 <주시자의 뱀>에서 벗어났다.

슬며시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낀 것이다.

“누구지?”

“저예요, 소소.”

한건우가 피식 웃었다.

오늘은 그녀의 방문이 반가웠다.

“무슨 일 있어?”

“모용황 님의 호출입니다. 함께 가시죠.”

그녀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나를 부르다니, 잘 됐군.’

모용황이 자신을 부르지 않아도 그곳을 혼자 찾아가야 할 판. 공식적으로 호출해 주니 수고를 덜었다.

“어디야? 오래 걸리나.”

한건우는 내용을 짐작하면서도 모르는 척 물었다.

“목적지는 이집트, 카이로예요. 일정은 하루면 될 겁니다.”

“이집트라··· 알겠어, 준비하지.”

소소는 등을 돌려 나가려다, 한건우를 돌아보았다.

“아마 새로운 사도를 주인들에게 처음으로 소개하는 자리가 될 거예요.”

“그래? 다른 주인들을 보게 된다니 기대되는군.”

한건우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자, 소소는 왠지 몸이 단 듯했다.

“조심하세요. 아르고스의 주인들은 모두 존귀한 분들이에요.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면··· 좋지 못해요.”

다들 각 대륙에서 한 가락씩 하는 인물인 듯, 하나같이 오만해 보이긴 했다.

“알겠어, 조심하지.”

한건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소소는 안심이 된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전용기가 아니라 포털인가?”

“네, 이번에는요.”

정부의 포털 중에서도 정부 주요인사들만 이용하는 비공식 포털로 들어갔다.

일반 포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기 시간이 짧았다.

소소의 신분을 십분 활용한 것이었다.

슈우웅-

균열로 들어갈 때와 똑같이 공간이 비틀리는 느낌.

그들은 순식간에 지구 반대편에 도착했다.

[카이로, 이집트.]

도착지의 표지판을 보고, 한건우는 품속에 손을 넣었다.

예언 석판 2조각이 든 아공간 금고를 확인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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