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136화 (136/238)

#136습격 (2) - 가짜 뉴스

“흐음···.”

<과학자>, 련화의 반응은 영 뜨뜻미지근했다.

“왜 그러십니까?”

“그건 대책이 안 됩니다.”

련화가 무시하는 듯한 눈으로 김도경을 바라보았다.

김도경은 화나기 전에 의아했다.

“예? 충분히 가능합니다. 저는-”

백 퍼센트는 아니더라도, 99% 정도는 원하는 상황대로 판을 만들고, 그 위에서 활동하는 것.

특수안보부의 기본 철학이었다.

‘1%의 예외는 언제나 있지만···.’

실패를 모르던 김도경을 꺾은 한건우가 아니었다면.

조금 더 자신있게 제안했을 테지만.

“드래곤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까? 아무리 기습을 한다 해도 소용없습니다. 다른 지방에 있다 해도 순식간에 접근해 옵니다.”

련화는 그것도 모르냐며, 힐난하는 말투와 눈빛이었다.

김도경은 오랜만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

“<천망> 소속이시라··· 특별히 그런 것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을 줄 알았습니다.”

련화의 얼굴색은 변함 없었다.

오랜 훈련으로 화가 났을 때도 무표정하도록 포커 페이스를 연습한 것이리라.

그러나 본능적인 분노는 감출 수 없는지.

목깃 사이로 목이 붉어지는 게 보였다.

김도경은 그 모습을 흘깃 보고, 그녀의 눈을 마주보았다.

련화도 자신과 비슷한 사람 같았다.

‘역시, 무시당하는 걸 죽도록 싫어하는군.’

“지금 그 말. 제대로 설명이 안 된다면 모욕으로 받아들일 겁니다.”

련화의 몸 주변에 검은 독기가 일렁였다.

김도경은 얼른 대답하지 않고 스위트룸의 미니바 냉장고를 열었다.

그가 즐겨 마시는 호박색 위스키를 잔에 따르며 시간을 끌었다.

김도경이 련화에게 위스키 잔을 내밀자, 련화는 어이없다는 듯 김도경을 노려보았다.

김도경은 항상 그래 왔듯이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그런 대책도 없이 덮칠까요? 그런 건 습격이 아니라 돌발 행동에 지나지 않겠죠.”

“....”

련화의 눈빛에서 독기가 차츰 옅어졌다.

그녀의 몸 주변을 안개처럼 둘러싼 검은 기운도 흩어졌다.

이어진 김도경의 설명을 듣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저도 준비하겠습니다.”

*

“세상에, 너무 귀여워!”

은설아의 눈에 하트 표시가 떠오른 게 보였다.

임수호가 빙긋 웃었다.

“설아, 동생이 생겼네?”

인간형이 된 드래곤은 뾰루퉁한 표정으로 임수호를 쏘아보았다.

“헉···.”

조금 친해졌다고 생각했던 임수호였다.

아이가 눈을 뾰족하게 뜨자, 금방 위축되어서 뒤로 물러났다.

“우와··· 어떡해. 진짜 앙증맞아.”

설아는 위험한 말을 계속 내뱉었다.

수호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아이는 뚜렷하게 사람을 차별했다.

수호를 대하는 태도와 설아를 대하는 태도가 아주 딴판이었다.

설아가 무슨 소리를 해도, 아이는 평안한 눈으로 설아의 옆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왜 나만!’

임수호는 억울한 마음에 주먹을 부여쥐었다.

‘드래곤일 때도 건우 형만 따르고 다른 남자들은 싫어하더니··· 똑같구나.’

은설아는 정말로 동생이 생긴 기분이었다.

길드 전체에서 막내인데다, 키가 작은 편이라서 스스로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아이는 설아보다도 훨씬 작아서,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

남들이 보기엔 둘이 붙어있는 모습이 올망졸망해 보이기만 했지만.

“그 균열 갔다온 건 어땠어?”

“재미있었어.”

설아가 신나서 답했다.

한건우가 파주 임진강의 <호수의 괴물> 균열에 들어갈 무렵.

은설아는 다른 길드원들을 이끌고 지방의 균열 공략을 다녀왔다.

“네가 또 사람들 버스 태워준 건 아니고?”

“아이, 그런 거 아니야. 결국 균열의 주인은 직접 잡아야 하더라. 다른 마수들 데리고 덤벼도 안 될 것 같아서 우리 길드원들도 함께 싸웠어.”

“아하··· 하긴 그렇지.”

은설아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그녀의 위력을 아는 임수호는 그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듯 그려졌다.

‘설아가 적이 아니어서 참 다행이다!’

임수호는 마른침을 삼켰다.

설아는 그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들었다.

“수호 오빠, 축하해. 진호 오빠도.”

등급 재판정을 축하하는 것이었다.

둘 다 한건우의 말대로 C급을 탈출했다.

B급도 끝에 걸친 B급이 아니었다.

잘 하면 A급까지도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

남들 같으면 마음이 해이해질 수도 있겠지만, 형제는 그 반대였다.

- 우리, 꼭 랭커로 올라가자.

- 좋아.

등급 재판정을 받자마자 한 다짐이었다.

이제 괜히 조급해하거나 열등감에 사로잡히지는 않았다.

“고마워!”

“...고맙다, 설아.”

그런데 임진호의 목소리가 멍했다.

그는 떨어진 소파에 걸터앉아 있었다.

겉보기에는 메이스의 내구도를 점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쓸데없는 행동이었다.

길드원들의 무기는 최고의 아이템 장인 장영표가 항상 점검해 주니까.

저건 그러니까··· 사랑에 빠진 남자의 모습이었다.

‘에휴. 알 바 아니지.’

임수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예고된 비극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사정을 아는 건 임수호 뿐.

설아와 아이는 화기애애하게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

길드 안팎에 괴소문이 번졌다.

한건우에게 숨겨둔 딸이 있다는 소문이었다.

갑자기 길드 건물에 일고여덟 살 정도 되어 보이는 귀여운 아이가 쪼르르 뛰어다녔다.

눈길을 끌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 아이가 폴리모프한 드래곤이라는 건, 핵심 멤버 말고는 철저히 비밀이었다.

“그 꼬마, 각성자로는 안 보이던데.”

“계속 대표실이랑 최상층 복도에 왔다갔다 한다며?”

그 소문은 플레이어 소식을 전하는 커뮤니티에까지 나타났다.

플레이어 인증을 하고 들어가는 폐쇄 커뮤니티가 아니었다.

관심을 가진 일반인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게시판이었다.

즉,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는 없었다.

각성자를 연예인 대하듯 하는 곳이었다.

이용자들도 직장인보다는 학생들이 많았다.

[질문) ㅇㄹㅅ 길드 소식 잘 아는 사람? (1036)]

- 한건우가 어린 딸 데리고 다닌대.

아는 사람이 그 길드 건물에 뭐 수리할 때 봤는데 진짜라고 함

└ 아직도 이런 인증도 없는 루머를 믿는 사람이 있나?

└ 헐 이건 나도 들었어··· 7살 정도 되는 것 같대

└ 오잉? 한건우가 몇 살인데. 친척이나 조카 아닐까?

└ 애 엄마가 그때 그 사람이래. 기자회견 때 사진 나온···.

└ 헐···. 그 여자도 되게 어려 보이던데 대체 몇 살 때 낳은 거?

└ 각성자들은 결혼도 빨리 하고 애도 빨리 낳더라. 내 친구도 그랬음

└ 그런 수준이 아닌데??

└ 아 난 그냥 부럽다···. 태어나보니 아빠가 한건우?

└ 금수저? 아니죠 다이아 수저 아다만티움 수저

[공식) 한건우 딸 아니고 친척 조카라고 해명함 (2357)]

- 는 내 뇌피셜.

그랬으면 좋겠다. 내 남편 될거거든.

└ 아 어그로 작작해ㅡㅡ

└ 낚였네. 사진 없어? 한건우 닮았으면 좋겠다

└ 미쳤냐 ;; 한건우 애든 친척이든 몰래 사진 찍다가는 목 날아가지······

“이게 도대체 다 뭐야!”

한건우의 여동생, 한지윤은 너무 놀라서 휴대폰을 집어던질 뻔했다.

이 커뮤니티는 말로만 들었지, 들어와본 건 처음이었다.

‘지윤아··· 이거 봤어?’

집에 있는 공부방에서 학교 과제를 하던 중.

반 친구가 조심스럽게 링크를 보내주기에 클릭해본 것이었다.

지윤은 게시글이 올라온 시간을 살펴보고 더 놀랐다.

‘한 시간도 안 됐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열을 올리며 댓글을 달고 있다니.

새삼 오빠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게 실감났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을···.”

심지어 어느새 기정사실이 되어가는 분위기였다.

지윤은 가슴이 쿵쿵거렸다.

오빠한테 연락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윤은 한건우에게 먼저 연락이 오지 않으면 전화를 하지 않기로 했다.

‘혹시라도 나 때문에 위험해지면 안되니까···.’

한건우는 괜찮다고, 언제든지 지윤의 연락은 1순위로 받을 테니 용건이 없어도 자주 연락하라고 했었다.

어차피 균열에서는 전화가 터지지 않으니, 지장을 줄 일도 없다면서.

‘신경 쓰게 하지 말아야지. 집에 들어오면 물어보면 되잖아.’

지윤은 휴대폰 화면을 껐다.

다시 책상 위의 문제집을 펴는데, 문제가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으···.”

아직 한건우는 몇 시에 퇴근하겠다고 연락하지 않았지만.

저녁밥을 차려 놓기로 했다.

지윤은 공부방을 나와서 냉장고 앞으로 갔다.

밥을 차린다고 해서 대단히 힘든 건 아니었다.

음식은 가정부 아주머니가 다 반조리 상태로 손질해 냉장고에 넣어 놓아서, 데우기만 하면 되니까.

‘오늘은 직접 요리를 해볼까? 오빠가 좋아하는 오므라이스로···.’

어차피 지윤이 할 줄 아는 요리는 그것뿐이었다.

괜한 생각에 빠져있느니 다른 데 집중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계란물을 풀고 야채를 볶다가, 참지 못한 지윤은 결국 전화를 들었다. 상대는 한건우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여보세요.”

[지윤아! 무슨 일이야?]

목소리에 반가운 기색이 가득했다.

항상 유쾌하게 지윤을 맞아주는 금해준이었다.

한건우가 만주 원정을 가느라 한국을 오래 비웠을 때.

금해준이 지윤의 생활을 살뜰하게 챙겼다.

평소라면 학교에서 있던 얘기도 하고 다른 수다를 떨었겠지만, 이번에는 급했다.

“해준 오빠. 다른 게 아니라요···.”

지윤은 조심스럽게 자신이 본 걸 말했다.

바쁜 사람을 귀찮게 하나 싶기도 했지만,

[아하, 그 얘기구나.]

“네, 오빠도 들으셨어요?”

해준은 그 얘기를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지윤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사이트나 언론사는 협조 공문 보내고 있어. 최대한 쓸데없는 이야기 안 퍼지게 하려고.]

“네···?”

[응.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지윤은 해준의 대답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해준 오빠. 그거 가짜 뉴스··· 아니었어요?”

딸 운운하는 이야기가 통째로 가짜인 줄 알았다.

당연히 오빠가 자기에게 아무 말도 안 했으니까!

지윤은 팔팔 끓는 냄비 앞에서 국자를 들고 멈춰 서 있었다.

[앗, 그게···.]

금해준이 당황하며 말을 고르는 사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오빠가 왔나봐요. 직접 물어볼게요···. 고맙습니다!”

[어어, 주말 잘 보내!]

금해준은 황급히 대화를 마무리했다.

전화를 내려놓고 현관으로 달려간 지윤은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악!”

한건우가 정말 아빠처럼, 한쪽 팔에 어린 여자아이를 안아들고 있었던 것이다.

“건물 옥상에 놔두고 오기가 그래서.”

한건우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

몇 주 후.

한건우가 어린아이 하나를 끼고 균열로 들어갔다는 보고를 받고, 김도경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한건우가 단독 행동을 했다.

줄곧 기다렸던 순간이지만, 예상치 못한 게 끼어있었다.

“어이가 없군. 아무리 낮은 등급의 균열이라 해도···.”

각성자도 아닌 평범한 어린애를 균열에 데려가다니.

그 아이가 누군지는 이미 김도경도 알아보았다.

나오는 건 없었다.

주민등록 기록조차 없는 걸 보니, 정확한 사정은 몰라도 누군가가 꽁꽁 숨겨서 키웠던 모양이다.

한건우의 친딸이든 친척이든 알 바 없었다.

집에도 데려가고 친딸처럼 귀여워하며 키운다고 하니. 어느 정도 이용 가치는 있을 것이다.

“아니면, 애완동물 수준으로 보는 건가. 하여간 못 배운 것들은 티가 나.”

김도경이 혀를 쯧쯧 찼다.

진짜 소중히 대하는 아이라면, 각성자도 아닌 어린애를 위험한 균열에 데리고 들어갈까.

물론 김도경이 할 말은 아니었다.

습격이 성공하면, 그 애도 한건우와 같이 죽을 테니까.

“안타깝지만, 네 탓이다.”

김도경은 흰 제복 코트를 걸쳤다.

그의 손에서 찬란한 흰빛의 광선검이 뻗어나갔다.

그의 등 뒤로 <과학자>, 련화가 스윽 다가왔다.

그녀가 손을 뻗자, 광선검을 이루는 빛의 밀도가 확 올라갔다. 백색의 광선검이 점점 불길한 흑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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