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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먹는 플레이어-134화 (134/238)

#134파주 임진강 (3) - 용언

번쩍-

흰 광선이 순간적으로 <호수의 괴물> 균열을 뒤덮었다.

한건우의 눈앞이 희게 번뜩였다.

“대체 왜···!”

한건우는 드래곤의 돌발 행동에 당황했다.

평상시에는 제멋대로여도 눈치는 빨랐다.

전장에서는 손발처럼 굴던 드래곤이었다.

한건우는 확실히 느꼈다.

방금 드래곤의 행동은 실수가 아니라는 걸.

의도적으로 한건우를 방해한 것이었다.

파아앗!

드래곤의 온몸에 백색의 빛이 쏘여졌다.

짙은 보라색 비늘이 하나하나 희게 빛났다.

쿠웅-

한 박자 늦게 폭발의 충격이 덮쳐왔다.

드래곤은 날갯짓을 하며 제자리에서 견뎌냈다.

그러나 임수호와 임진호는 그러지 못했다.

“으아아!”

임수호와 임진호는 폭발에 정면으로 휩쓸려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들의 몸은 흰 빛에 뒤덮여 있었다. 어쩐지 점성이 있는 듯한 묘한 빛이었다.

터엉- 촤아악-

형제가 동시에 물 표면에 떨어졌다.

양쪽에서 거창한 물보라가 일어났다.

“하···.”

사람이 물 위로 떨어져도 크게 다칠 수 있었다.

무방비하게 빠른 속도로 부딪치면 아스팔트 바닥이나 수면이나 큰 차이가 없으니까.

“하···.”

한건우가 수호와 진호 형제를 건져올렸다.

둘 다 눈을 감고 축 늘어져 있었다.

그나마 튼튼한 드래곤 방어구를 입혀 놓아서 다행이었다.

화아악-

한건우의 등에 화염의 날개가 솟아났다.

한건우는 형제의 목덜미를 양 손에 잡고 날아갔다.

호수 균열의 가장자리, 흙이 드러난 뭍까지 가서 형제를 올려놓았다.

턱!

“커헉!”

“으···.”

형제는 금방 정신을 차렸다.

흠뻑 젖은 몸을 푸드득 털며 연신 기침을 해댔다.

비에 젖은 개 꼴이었다.

“...방금 대체 뭐였을까.”

“균열은 완전히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조심해야 한다더니···.”

한건우는 형제를 가만히 살펴보았다.

그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돌아가면 각성센터부터 보내야겠군.’

형제들 스스로는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했지만.

기운이 달라졌다.

C급 수준이었던 그들의 기운이, 계단을 밟고 올라간 것처럼 위로 쑥 올라간 게 느껴졌다.

두 사람이 똑같이, 동시에.

‘등급이 올라간 걸 알게 되면 얼마나 좋아할까?’

한건우는 형제의 고민을 잘 알고 있었다.

한건우의 길드 아레스는 점차 세력이 강해졌다.

자연히 강한 각성자도 늘어났다.

그 안에서 수호와 진호 형제는 초기 멤버이자 중심 멤버로 중요한 위치를 맡았다. 대접도 훌륭했다.

보통 사람이면 그 정도로 만족했을지 모르겠다.

아니면 조직 안의 권력을 누리며 텃세를 부렸을지도.

하지만 형제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노력했다.

- 강해지려고 훈련하는 건 좋지만, 무리하면 안되지 않을까요?

금해준이 근심하는 눈치로 한건우에게 말을 흘리기도 했다.

자제시켜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한건우는 알면서도 말리지 않았다.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이해했으니까.

‘결국 잘 풀렸어.’

한건우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균열 업적 달성 보상 같은 게 아니었군.’

한건우는 이 균열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수장룡이 품고 있던 비밀을.

‘수장룡의 몸 속에 농축된 마기를 맞는 게 핵심이었어.’

아무것도 몰랐던 한건우는 아까 그 폭발을 없애버리려 했다.

드래곤이 방해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막아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

‘기특하기 짝이 없군.’

드래곤도 자기가 잘한 걸 아는지, 수장룡의 사체 위에 당당하게 날개를 펴고 앉아있었다.

분명히 뭔가를 알고 그런 거라고, 한건우는 직감했다.

말이 안 통하니 시원하게 물어볼 수 없어 답답했다.

‘그런데 마기 폭발이 그런 빛이었나···?’

과거 한건우도 다른 작전 중 마기 폭발을 목격한 적 있었다.

부대원들과 함께 커다란 마수를 사냥했을 때였다.

마찬가지로 마수의 뱃속에 수백 년간 고여있던 마기가 폭발했다.

그때 본 폭발은 칠흑같이 검었다.

중국 천망의 요원들이 억지로 뽑아낸 인간의 생명력과 똑같이, 타르처럼 시커먼 색이었다.

지독한 마기에 당한 부상자가 많이 생겨서, 부대의 힐러들이 한참 고생했다.

‘검은빛도 아니었고, 폭발의 충격 말고는 아무런 해도 없었어.’

다른 목격담을 봐도, 보통 시커먼 폭발이라는 식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왜 그러···. 헉.”

빠드득!

한건우를 보고 묻던 임수호가 숨을 삼켰다.

통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던 것이다.

우왁스럽게 생고기를 뜯는 소리도 들렸다.

형제가 동시에 뒤쪽을 돌아보았다.

한건우의 드래곤이었다.

드래곤이 수장룡의 사체 위에 타고 앉아서 고기를 뜯어먹고 있었다. 새로운 맛에 눈뜬 듯. 정신없이 심취해서 맛보고 즐기는 모습이었다.

형제는 조금 꺼림칙한 느낌에 살짝 물러났다.

“동족··· 아닌가?”

“동족은 아닐 거야. 수장룡은 드래곤이 아니라 아룡종이니까.”

“그런가···.”

파주에 날아오기 전, 드래곤이 마수를 잔뜩 잡아먹고 뼈를 산처럼 쌓아놓은 것도 봤다.

식탐이 무서울 정도였다.

“좀··· 많이 먹네.”

“성장기라서 그래. 아직 어리잖아.’

“...저게 덜 큰 거면···?”

한건우가 드래곤을 두둔했다.

임수호는 무럭무럭 자라나는 드래곤을 경외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지금도 큰데 여기서 성체가 되면 어떨까.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화아아-

한건우는 손가락을 튕겨서 아그니의 화염을 만들었다.

“어차피 드래곤을 양껏 먹이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어. 물기를 좀 말리자.”

그들 사이에 모닥불처럼 은은하고 둥근 불이 만들어졌다.

마력으로 만든 모닥불을 보던 임진호가 갑자기 옛날 얘기를 툭 던졌다.

“우리 어렸을 때 생각난다.”

“그러게. 까마득하네.”

어린 시절 그들이 함께 지냈던 고아원.

15년을 회귀한 한건우에게는 정말로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폭력이나 심한 학대를 당한 건 아니었지만,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반쯤 방치된 아이들은 공터에서 드럼통에 모닥불을 피우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멍하니 앉아있던 임수호도 말을 꺼냈다.

“그때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그지?”

“말해 뭐해.”

“옛날의 우리한테 누가 와서, 나중에 우리가 이렇게 될 거라고 했으면··· 믿었을까?”

“구라 치지 말라고 했겠지.”

한건우는 형제의 말을 들으며 가만히 미소지었다.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임진호가 엄숙한 표정으로 한건우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사람답게 사는 건 다 건우 형 덕분이야.”

“맞아. 최대한 강해져서··· 형과 끝까지 같이 갈 거야.”

한건우는 씩 웃었다.

“돌아가서 각성센터 들러서 확인해 봐. 아마 뭔가 달라졌을 걸.”

“···어?”

두 형제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은설아의 변화를 가장 처음 눈치챈 것도 한건우였다.

그들은 서둘러 자신의 상태창을 살펴보았다.

단 둘이서 균열을 공략했으니, 경험치와 아이템이 엄청나게 쌓였을 터였다.

형제들이 가장 먼저 본 건 스테이터스였다.

“허억!”

스탯 포인트를 바꾸지도 않았는데.

스탯이 쑥 올라 있었다.

얼른 봐도 C급 각성자 수준이 아니었다.

“이··· 이건.”

임수호가 숨 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그들이 마음 놓고 기뻐할 수 있도록, 한건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슈우우-

한건우는 드래곤이 있는 쪽으로 날아갔다.

식사가 꽤 만족스러운 모양인지, 드래곤이 작게 트림을 했다.

꺼억!

트림에서 보라색 전격이 튀었고, 주위의 중력이 일그러지는 게 느껴졌다.

“....”

한건우는 드래곤의 머리 비늘을 쓰다듬으면서, 평소와 같이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많이 먹었어?”

[응, 고기 맛있어요.]

“그거 잘 됐··· 어, 뭐라고?”

한건우는 정지 상태가 되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이상하다.’

물론 한건우는 마수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건 일종의 통역기 같은 것이었다.

마수들끼리 의사소통을 하려고 내는 소리나, 혼잣말로 내뱉는 울음소리.

그 의미가 통역되어 들려오는 식이었다.

한건우가 드래곤의 입 주변을 살폈다.

분명히 울음소리 하나 새어나오지 않았다.

입 속에 남은 수장룡 고기를 씹고 있을 뿐이었다.

‘꼭 사람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한건우는 고개를 살짝 모로 기울였다.

한번 더 시험해 보면 되었다.

“아까는 왜 그랬어?”

[아까?]

드래곤이 고개를 갸웃하듯이 옆으로 기울였다.

어쩐지 한건우의 습관을 닮은 것도 같았다.

“!”

한건우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가 태연한 척 다시 말을 걸었다.

“방금 폭발할 때, 내가 막으려 했는데 방해하길래.”

[아, 아빠! 그건 내가 잘했어요. 칭찬해줘요.]

“...?”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한건우의 동공이 커졌다.

이게 대체 무슨 경우인지.

별안간 자식을 둔 아버지가 된 기분이었다.

아버지라면 아버지가 맞았다.

이 드래곤을 알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키워왔다.

해츨링 시절에는 어깨에 올려놓고 손으로 마수 고기를 먹였다.

자신을 부모처럼 따른다는 걸 알고, 꽤 정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진짜로, 아빠처럼 보고 있었다니?

한건우는 아연실색한 눈으로 드래곤을 살펴보았다.

아무리 살펴봐도 드래곤의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세로로 갈라진 눈이 물끄러미 한건우를 바라볼 뿐.

‘이건 귀로 들리는 소리가 아냐.’

드래곤의 크고 맑은 목소리는 고막이 아니라 머릿속을 직접 파고들었다.

어린아이 같기는 한데.

목소리로 들어서는 성별은 잘 알 수 없었다.

드래곤도 그랬다.

아성체 때까지는 생식기가 보이지 않아, 암컷인지 수컷인지도 모르는 판이었다.

한건우는 다급히 뒤를 돌아봤다.

호숫가에 앉은 임진호와 임수호는 아무 소리도 못 들은 듯, 자기들끼리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이 목소리는 자기에게만 들린다는 얘기였다.

한건우는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그 폭발이··· 뭔데?”

[아빠가 말했어요. 저 인간들, 강하게 해준다고.]

“...맞아.”

드래곤은 그전부터 쭉 대화를 듣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냥 알았어요.]

드래곤의 말은 느리고 또박또박했다.

마치 글씨를 열심히 연습하는 어린 학생처럼.

표현은 서툴렀지만 알아들을 만했다.

‘사전 지식은 없지만, 직감으로 알아봤다는 건가.’

새삼 드래곤이 기특했다.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리며 긁어주자, 드래곤이 목구멍을 울리는 소리를 냈다.

[아빠 좋아요.]

지상 최강의 생물인 드래곤이, 지금은 마냥 귀엽기만 했다.

이제야 대화를 한 게 아쉬울 정도로.

“진작 말을 걸지 그랬어.”

[계속 말 했어요.]

“음....”

방금 마기 폭발의 영향을 받아서 말이 트였나 했다.

말이 트인 쪽은 드래곤이 아니라 한건우인 셈이었다.

‘진호와 수호는 스탯이 상승했지.’

한건우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스탯 창을 켜 보았다.

생각대로, 변화는 없었다.

스탯이 어느 수준 이상이면 변화를 주지 못하는 모양.

그렇다면 드래곤은 어떨까.

이미 강하기 때문에 별다른 변화가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넌 방금 이후로 바뀐 게 있어?”

[바뀐 거 있어요.]

우우-

드래곤을 둘러싼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중력장도 미세하게 변했다.

공간 특성과 중력 특성을 동시에 가진 한건우라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의 변화는 너무나 극명했다.

한건우뿐 아니라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헉···.”

멀리 뒤쪽에서 임수호가 헛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경악한 표정이 눈에 선했다.

“말도 안 돼.”

침착한 임진호마저 얼이 빠져서 낮게 중얼거렸다.

드래곤이 있던 자리.

반쯤 파먹힌 수장룡의 사체 위에 한 아이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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