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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먹는 플레이어-133화 (133/238)

#133파주 임진강 (2) - 수장룡

수장룡의 아가미 옆에 검은 구멍이 보였다.

슈우우우···.

호숫물이 그 구멍을 타고 들어갔다.

수장룡의 배가 한껏 부풀어오르는 게 보였다.

‘아까도 저렇게 물을 빨아들여서 입으로 쏘았지.’

한건우는 수장룡을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상대는 B급 균열의 주인.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미 한건우의 상대가 될 급은 아니었다.

물을 것도 없이 마창 게이볼그로 수장룡을 반으로 갈라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임진호와 임수호에게는 어려운 미션이었다.

그들은 여기서 답을 찾아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트드드드···.

임수호는 얼음 바닥을 넓혔다.

안정적으로 서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얼음으로 된 방벽 구조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물대포의 위력을 상쇄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태일제의 특성을 보고 배웠군.’

태일제가 대지의 금속 성분으로 철로 된 방벽을 만든 것이 생각났다.

이곳은 천지 사방이 물이었다. 얼음을 만들 재료로 가득했다.

수장룡은 긴 목을 치켜들어 형제를 조준했다.

쿠구구구-!

물대포가 쏘아졌다.

얼음 방벽이 물대포의 충격을 조금 완화하긴 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순간적으로 강력하게 가속하는 수장룡의 물대포 앞에서, 얼음 방벽은 취약했다.

“수호!”

임진호가 얼른 동생의 앞쪽을 가로막았다.

방패를 내리찍고 그대로 버텼다.

쿠과과- 치징!

“크윽···.”

임수호는 물대포 자체를 얼리려고도 해 보았다.

전륜성왕의 석장의 힘을 빌려도 소용없었다.

쿠구구···.

물대포가 잦아들었다.

“이제 알겠어.”

임수호는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눈빛이 형형했다.

수장룡에 대한 판단이 내려졌다.

수장룡은 몸집이 압도적으로 크고, 물대포 공격 역시 위협적이었다.

큰 호수 안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점도 까다로웠다.

그러나 수장룡의 형태에 주목했다.

목이 길고 머리가 작았다. 큼직한 몸통에는 지느러미가 달려있을 뿐이었다.

‘물대포, 그리고 육탄 공격 외에는 별다른 공격 수단이 없는 거야.’

가장 중요한 공격수단은 물대포.

빨아들인 물의 양에 대비해서 물대포의 강도와 지속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이제 계산이 끝났다.

“!”

멀리서 그 눈빛을 본 한건우는 흠칫했다.

‘그전 수호의 모습도 보이는구나.’

지금의 임수호를 보면, 과거의 모습이 믿어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회귀 전, 이능력 특수전단에서 자신의 부관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임수호.

그때 그는 매사에 시니컬하고 냉정한 편이었다.

상대를 조용히 관찰해서 약점을 찾아내는 것이 주특기였다.

강한 법사였지만 높은 직위에 이르지는 못했다.

마법을 못 쓰는 상황에서 너무 취약한 게 흠이었다.

체력이 낮고, 방어 능력도 떨어졌다.

지금은 듬직한 형인 임진호가 살아있어서 그런지.

천진하고 밝은 모습을 보일 때가 많았다.

그리고 그를 보완해주는 형이 항상 곁에 있었다.

기세등등해진 수장룡이 용틀임을 했다.

푸웅-

수장룡의 굵은 꼬리가 수면을 쳤다.

호수에 거대한 파도가 일었다.

푸웅- 철썩!

“으윽!”

임수호는 전륜성왕의 석장을 휘둘렀다.

다가오던 파도가 그대로 얼어붙었고, 발밑의 얼음판도 단단해졌다.

슈우우-

수장룡은 다시 물을 빨아들였다.

수중 환경에서 유리한 건 임수호만이 아니었다.

공격의 재료가 무한정 주어지는 건, 수장룡도 마찬가지였다.

‘이 큰 호수를 통째로 얼려버릴 수도 없고.’

임수호는 수장룡을 관찰했다.

수장룡이 금세 목을 치켜올렸다.

‘어! 이번에는···.’

아까와 비교해보니 알 수 있었다.

물을 충분히 삼키지 않고 물대포를 쏘려고 하는 것이었다.

임수호가 임진호를 불렀다.

“형, 이번 한 번만 그냥 버티자.”

“그래.”

임진호가 믿음직스럽게 대답했다.

동생이 하는 말에 아무런 의심도 없는 것 같았다.

콰악!

두터운 얼음판에 임진호가 아다만티움 방패를 박았다.

자칫 얼음판이 갈라질 뻔했으나, 예상하고 있던 임수호는 바로 얼음판을 보강했다.

쿠구구-!

자세를 잡자마자, 수장룡이 물대포를 발사했다.

이번에는 확실히 그전보다 물줄기가 약했다.

그러나 임진호가 방패 하나로 버티기에는 만만치 않았다.

이번에 임수호는 얼음 방벽조차 만들지 않았다.

임진호는 조금 의문이 들었지만, 신음 하나 흘리지 않고 동생을 믿고 그 자리에서 버텼다.

쿠구우-

드-드득. 드드득···.

“....”

방패가 꽂힌 자리에서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임진호의 투구 속에서 안광이 번뜩였다.

‘동생이 무슨 생각이 있겠지. 난 그때까지 버티면 돼.’

쿠오오!

수장룡은 화가 나서 큰 울음소리를 냈다.

펄럭- 펄럭!

한건우의 드래곤도 아래에서 펼쳐지는 전투에 덩달아 흥분했다.

당장이라도 끼어들고 싶은 듯했다.

“기다려.”

한건우의 명령을 듣고, 드래곤은 깊은 콧숨을 내뱉었다.

흥분한 건 수장룡도 똑같았다.

자신의 필살기와 같은 물대포 공격이었다.

조그만 인간이 방패 하나로 버텨내자,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후우욱- 슈우우우-

이번에는 아가미 옆의 구멍이 완전히 개방되었다.

호숫물이 끝간 데 없이 빨려들어갔다.

“이건-”

임진호가 동생인 수호를 돌아보았다.

척 봐도 엄청난 양이었다.

저건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돌아본 자리에 임수호는 없었다.

“수호···?”

놀란 임진호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동생을 발견한 임진호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임수호가 수장룡의 아가미 아래로 가 있었던 것이다.

“위험해!”

형의 절박한 목소리를 못 들은 척하고.

임수호가 전륜성왕의 석장을 치켜들었다.

치지지징-

트드드드드···.

드넓은 호숫물 전체를 얼려버릴 수는 없었다.

엄청난 속도와 압력으로 쏘아지는 물대포도, 얼릴 수 없는 건 같았다.

‘하지만 이건 가능하지.’

수장룡이 깊이 빨아들이고 있는 물.

임수호는 그 물을 얼리기 시작했다.

그워어억!

뒤늦게 이상한 감각을 느낀 수장룡이 몸부림쳤다.

수장룡의 몸 속 공간에 얼음이 들어차고 있었다.

수장룡이 아무리 해도 막을 수 없었다.

트드드···.

그어어-

수장룡은 몸통을 크게 흔들지도 못했다.

몸 속에 들어찬 얼음이 내부를 찔렀기 때문이다.

지느러미만 흔들거릴 뿐이었다.

임수호는 수장룡의 등 위에 올라타, 전륜성왕의 석장을 내리쳤다.

트드드드- 스으으···.

증폭된 마력을 아낌없이 쏟았다.

얼음의 온도가 초저온으로 낮아졌다.

수장룡의 피부에서 마치 드라이아이스가 된 것처럼 흰 연기가 났다.

임수호는 수장룡의 등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물 위가 아닌 얼음 발판 위였다.

아직 수장룡은 죽지 않았다.

잠시 움직임을 멎게 했을 뿐이었다.

가만 내버려둔다면 얼음이 녹고, 아무 일 없다는 듯 헤엄칠지도 몰랐다.

“수호···.”

임진호가 놀라서 입을 달싹거렸다.

“형, 지금이야.”

임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이를 악물면서 투구를 내렸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건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심장을 노린다.’

[특성 발동 : 일점돌파]

뭐든지 뚫고 나가는 임진호의 고유 특성.

그걸 보던 한건우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이 특성은··· 내가 잘 알지 못하는군.’

한건우가 가진 수많은 특성은 당연히 회귀 전에 보았던 것들이었다.

그외 길드원들의 특성도 마찬가지였다.

임진호는 달랐다.

한건우가 알던 세계에서는, 어른이 되기 전에 일찍 죽어서 만나지 못했던 인물.

그러니 <일점돌파>의 한계도 미지수일 수밖에.

투두두··· 콰아아!

먼저 얼음 발판이 산산조각나는 게 보였다.

얼음 결정이 무지개를 만들며 흩날렸다.

임진호의 몸 전체는 한 개의 점을 중심으로, 수장룡의 몸 깊이 파고들었다.

끝이 날카로운 아다만티움 방패가 수장룡의 몸통 한가운데에 정통으로 박혔다.

그워억···.

수장룡이 힘없는 울음소리를 냈다.

꼬리를 휘둘러 임진호를 후려치려 하는 것 같았다.

체액이 얼어붙고 있어서 잘 움직이지 않았다.

몸통 깊은 곳. 반쯤 얼어붙은 수장룡의 체액이 꿀럭이며 흘러나왔다.

타앗!

아다만티움 방패는 수장룡의 몸통에 깊숙히 박혀있었다.

임진호는 일단 방패 손잡이를 놓고 몸을 빼냈다.

그가 메이스를 쥐고 수장룡의 몸통 위로 올라갔다.

수장룡의 긴 목이 둥글게 말려 있었다.

몸통 위에는 머리가 올려져 있었다.

몸집에 비해서는 작은 머리였다.

키이익.

수장룡이 이빨을 드러내며 위협했다.

이 사이로 한기가 느껴졌다.

임진호가 메이스를 단단히 잡았다.

임진호의 싸움에는 아무런 기술도, 기교도 없었다.

단단하게 버티다가, 꼭 필요할 때 단순한 타격을 할 뿐이었다.

‘수호와 마찬가지구나.’

둘 다 혼자서는 한계가 뚜렷했다.

서로가 각자의 자리에서 뒷받침을 해준다면, 등급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슈우웅- 콰직!

임진호의 메이스가 한 방에 수장룡의 두개골을 부쉈다.

거대한 수장룡은 반응이 느렸다.

머리가 부서지고도 천천히 지느러미가 움직였다.

“?”

숨막힐 듯 집중된 순간.

띠링-

반가운 알림이 울렸다.

[B급 균열 - 호수의 괴물, 공략 완료]

- 잔여 시간 : 17시간 10분

- 공략 시간 : 1시간 6분

“우··· 와.”

힘이 다 빠진 임수호가 얼음판 털썩 쓰러졌다.

울컥, 얇아진 얼음판 위로 물이 올라왔다.

그것조차 돌보지 못할 정도로 그는 지쳐있었다.

스으으···.

주위의 얼음을 구성하는 냉기가 점차 약해졌다.

단단히 얼어붙었던 수장룡의 사체가 서서히 물 속에서 녹고 있었다.

“우리가 해냈어.”

임진호가 낮게 뇌까렸다.

그는 무딘 편으로,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편이었다.

심지어 한건우보다 무뚝뚝하다고들 했다.

그런 임진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C급 플레이어인 그들 형제가, B급 균열의 주인을 잡았다.

이제껏 더 어려운 균열도 많이 들어갔지만.

그때는 다른 파티원들의 도움이 있었다.

단 둘이서는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해냈다는 생각뿐.

이 순간, 다른 생각은 하나도 안 났다.

스으으-

임진호의 발밑, 수장룡의 사체가 둥둥 떠 있었다.

수장룡의 둥근 몸통 중앙에는 아직 임진호의 방패가 박혀있었다.

임진호는 방패를 회수하러 움직였다.

“정말, 잘했다.”

한건우도 뿌듯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애초에 여기까지 온 목적이 따로 있지 않던가.

‘이게 다인가?’

아직 특별한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은설아의 경우는, 등급 재판정을 받으러 가기도 전에 주변에서 알아챌 정도였다.

기감의 변화가 뚜렷하게 느껴졌으니까.

‘뭔가를 놓친 건가? 아니면 균열 보상을 확인해야 하나···?’

똑같은 업적을 쌓았는데도 등급이 올라가지 않는다면.

경험치나 보상은 따로 있다 해도 조금 김이 샐 것 같았다.

“어··· 형! 저게 뭐지?”

“?”

멀리서 보던 임수호가 외쳤다.

수장룡의 몸통이 수상하게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그가 가리키는 쪽을 본 한건우는 단박에 상황을 알아챘다.

균열에서 마수를 죽였을 때 드물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마기 폭발인가!’

오랜 세월을 살아온 수장룡이었다.

호수 안의 모든 마수를 잡아먹고, 뱃속에 고여있던 해묵은 마기가 폭발하려는 것 같았다.

먼저 알아챈 임수호가 얼음 방벽을 세우려 했지만, 마력이 고갈된 상태였다.

‘이런.’

피하기에는 늦었다.

한건우는 <아이기스의 보호>를 펼쳤다.

하지만 아이기스의 보호는 광역 방어는 되지 못했다.

임진호는 아직 방패를 빼내지 못한 상태였고, 임수호도 방어벽을 펼치지 못하는 상황.

‘폭발을 통째로 흡수해 버리면 돼.’

[특성 중첩 - 암흑의···]

[특성 중첩 - 그래비티···]

한건우의 한 손에 흑점이 맺히려다 사라졌다.

드래곤이 크게 요동치면서 날아오른 것이다.

“!”

이제껏 드래곤이 한건우가 하려는 행동을 방해한 건 처음이었다.

콰아앙-!

굉음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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