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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먹는 플레이어-132화 (132/238)

#132파주 임진강 (1) - 호수의 괴물

펄럭!

한건우를 본 드래곤이 날갯짓을 했다.

“잘 있었어?”

쿠우우!

드래곤이 콧구멍으로 차가운 숨을 훅 내쉬었다.

주위의 온도가 한층 낮아지고, 보랏빛의 전격이 튀었다.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어딘가 놀란 눈치였다.

“왜 그래?”

한건우는 다정하게 말을 걸며 다가갔다.

속으로는 짚이는 것이 있었다.

‘클래스 등록하고 나서 변화를 느꼈나?’

희귀한 클래스는 등록과 동시에 스킬이나 룬 아이템을 받기도 했다.

희귀한 걸로 따지면 용기사를 따라올 게 없지 않나.

내심 클래스 특전을 기대했는데.

스킬 창을 봐도 새로운 것은 안 보였다.

보상 스킬이 없어도 상관없었다.

자기 능력에 맞는 클래스를 등록하면, 누구나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변화를 느꼈다.

그걸 각성자들은 ‘일치감’이라고 불렀다.

한건우도 웨폰 마스터라는 클래스의 장점을 쏠쏠히 활용했었다.

전직하면 그 장점을 잃을 걸 각오했는데.

시스템의 오류인지 뭔지. 아무것도 잃지 않게 되었다.

한건우는 드래곤의 목덜미를 가만히 두드렸다.

“밥은 먹었어?”

드래곤 옆에는 마수의 뼈가 듬뿍 쌓여 있었다.

살을 야무지게 발라먹고 흰 뼈다귀가 드러나 있었다.

그르르릉-

드래곤이 만족스럽게 목을 울렸다.

배가 부른 모양이었다.

‘말은 여전히 안 들리네.’

다른 마수의 언어는 자연스럽게 들려오는데.

정작 드래곤만 말이 들리지 않았다.

쭉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확실히 지능은 높은데.’

그 증거로, 전장에서 피아 식별이 확실했다.

광역 공격기를 가지고도 전혀 아군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걸 보면.

사람들의 얼굴을 분명히 구별했고, 그에 따라 행동도 달리 했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자존심이 강하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편이라서 티가 덜 날 뿐.

혹시 용기사 클래스를 등록하면 드래곤의 말이 들리지 않을까, 기대도 했건만.

드래곤은 야구공만한 눈을 꿈뻑이기만 했다.

“어른이 되면 말을 하려고 그래?”

그때 옥상 문이 열리고, 임수호와 임진호가 뛰쳐 들어왔다.

“건우 형!”

“방금 그 균열, 우리 길드에서 공략 신청했다며?”

길드원은 모두 휴대폰에 온 재난문자를 받았다.

[<긴급> 경기도 파주시 B급 균열(수중 계열) 발생 / 길드 지원 요망]

파주 인근에 있는 길드라야 중소형 길드뿐.

그런 곳에는 S급은커녕 A급 각성자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수중 계열의 균열.

특별히 계열까지 알려준 이유가 따로 있었다.

공략이 몹시 어렵기 때문이었다.

호흡은 아이템이나 포션으로 해결한다 해도, 운신이 어려운 물속에서 싸우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수중 계열 균열은 한 단계 윗급으로 봐야지.’

경기도 인근의 길드들이 공략을 고사했다.

서울 길드에 알림이 울렸다. 여기서도 지원 길드가 안 나오면 울며 겨자먹기로 군부대가 출동했을 것이다.

다른 길드들이 채 메시지를 확인하기도 전에, 한건우는 1초도 안 되어 공략 신청을 넣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은 특별한 기회를 주는 균열이니까.

“여기. 수중 호흡 포션이랑 힐링 포션도 여러 개 챙겨왔어.”

두 형제는 흥분으로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호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잠깐 사이에 아이템 창고에 들러서 나름대로 준비도 해온 모양이었다.

“응, 가자.”

한건우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형제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왜 자기들만 불렀는지, 아직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한건우는 드래곤의 날개 사이에 훌쩍 올라탔다.

그가 고개를 숙여 드래곤에게 속삭였다.

“내 동료들이야. 멀리 안 갈 건데. 태워도 괜찮지?”

푸르르···.

드래곤이 못마땅한 듯 콧숨을 내쉬며 고개를 홱 돌렸다.

“우리가 타도 될까?”

임진호가 조심히 물었다.

드래곤의 고집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래곤은 기분이 좋으면 여자는 태워주지만, 남자를 태우는 건 굉장히 싫어했다.

오직 한건우만 예외였다.

“특별히 부탁했으니 괜찮을 거야.”

한건우가 드래곤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배도 부르고, 기분이 좋은 상태인 드래곤은 형제에게 순순히 등을 내주었다.

그러나 아직 심술기가 남아있던 모양.

드래곤은 도움닫기도 없이, 옥상 난간을 넘어 몸을 던지듯이 떨어졌다.

휘익!

“악!”

그야말로 자유낙하였다.

임수호의 외마디 비명이 빌딩 숲을 울렸다.

파아-!

땅에 닿기 전. 여섯 개의 날개가 쫙 펼쳐졌다.

드래곤이 지상에 큰 바람을 일으키며 위로 솟구쳤다.

운전하던 사람들이 입을 떡 벌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세 사람을 태운 드래곤은 금방 구름 위로 올라갔다.

드래곤은 그제야 안정적으로 날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뻔뻔스럽게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으아··· 간 떨어질 뻔했네.”

임수호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드래곤의 등 비늘에 얼굴을 파묻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마찬가지로 임진호도 동생의 모습을 보고 긴장이 풀려 큭큭 웃었다.

한건우는 거기에 대꾸할 겨를이 없었다.

‘와···.’

기이한 충족감이 온몸을 사로잡았다.

마치 드래곤의 몸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드래곤의 온몸 비늘 하나하나가, 드래곤의 몸을 이루는 강력한 근육 하나하나가 모두 자기 몸처럼 느껴졌다.

‘이 느낌이 왜 익숙하지?’

한건우는 몸에 익은 감각의 정체를 알아냈다.

김도경에게 심은 <주시자의 뱀>과 비슷했다.

그러나 분명한 차이는 있었다.

상대방 몰래 숨어들어 감각을 훔치는 <주시자의 뱀>과는 달랐다.

이건 드래곤과의 일치감이었다.

드래곤도 같은 느낌을 받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넓게 펼쳐진 푸른 하늘에서 시원한 바람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서쪽으로 가자.”

말로 할 것도 없이, 드래곤은 서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었다.

여섯 개의 날개가 물결치듯이 속도를 냈다.

한건우는 수호와 진호 형제를 돌아보았다.

“지금 가는 균열에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어.”

“뭔데?”

균열에 대한 정보가 나오자, 두 형제가 바짝 귀를 기울였다.

*

어디가 균열인지, 상공에서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인적이 드문 강변.

눈에 띄는 구조대 차량이 보였다.

형광색 조끼 차림의 구조대원들이 장화를 신고 강물 안으로 들어는 중이었다.

균열 입구는 임진강 한가운데였다.

“으헉!”

“우와아!”

한건우의 드래곤이 구름 사이로 나타나자, 대원들이 경악했다.

몇몇 눈치 빠른 이들은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한건우는 드래곤에 탄 채로, 속도도 줄이지 않은 채 그대로.균열 입구로 들어갔다.

“헉···!”

겉보기에는 사람 두셋이 드나들 정도로 보이는 틈.

그 사이로 드래곤이 쑥 들어가 사라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스스스-

균열 입구를 통과하자, 건너편의 이계는 물 속이었다.

드래곤은 빠른 속도로 위쪽으로 솟구쳤다.

파아앗- 파바바박!

수면으로 올라온 드래곤은 날개를 회오리치듯 한 바퀴 털면서 물을 털어냈다.

한건우는 짙은 사파이어 빛의 너른 호수를 내려다보았다.

파주 임진강 근처, <호수의 괴물> 균열.

이 균열에는 특별한 점이 있었다.

균열 안은 깊고 드넓은 호수이고, 균열 전체에 마수는 단 한 마리뿐이었다.

오랫동안 외롭게 지내며 힘을 키워온 호수의 괴물.

그 마수가 바로 <호수의 괴물> 균열의 주인이었다.

한건우는 균열 알림을 확인했다.

[B급 균열 - 호수의 괴물]

-공략 조건 : 균열의 주인을 죽인다

-잔여 시간 : 18시간 16분

단순하고 명쾌한 공략조건이었다.

‘똑같아.’

임수호와 임진호는 비늘을 단단히 붙잡은 채로 호숫물 속을 샅샅이 살폈다.

아까 한건우의 말을 들으니 정신이 바짝 들었던 것이다.

- 우선 나쁜 점. 균열의 주인을 사냥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거야.

- 그야··· 각오하고 있어.

- 좋은 점. 이 균열의 주인을 잡으면 아마도 크게 성장하게 될 거야.

성장이라는 말을 듣자, 임수호 형제의 눈이 반짝였다.

등급은 B급이지만, 웬만한 A급 균열만큼이나 공략하기 까다로운 수중 균열.

과거에도 많은 길드가 도전을 회피했다.

끝내는 군부대가 용병단을 이끌고 들어갔다.

거의 공략시간이 다 되어갈 었고, 파티원 대다수는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살아남은 건 단 3명.

군 소속의 부대장 하나와 용병 둘뿐이었다.

마지막까지 버텨서 균열의 주인을 잡았을 때.

그들은 고생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되었다.

‘살아남은 파티원 전원이 등급이 동시에 올라갔지.’

우연히 등급 상승이 겹쳤다기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순전히 B급 균열에서 나오는 경험치나 스탯으로는 설명이 안 되었으니까.

등급이 올라가는 원리는 아직도 뚜렷이 밝혀지지 않았다.

‘아마도 상태창에 보이지 않는 레벨링 시스템이 있겠지.’

등급이 하나 올라간다는 건, 어느 등급이든 인생의 수준이 바뀌는 일이었다.

F급에서 E급으로 올라가도 대우가 확연히 달라지는데.

그 윗 등급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 사실이 소문나자, <호수의 괴물> 균열을 놓친 사람들이 땅을 치며 후회했다.

- 그 좋은 기회가 하필 군인과 용병에게 돌아가다니!

배아파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한건우는 수호와 진호를 돌아보았다.

둘은 이미 수중 호흡 포션을 마신 상태.

금방이라도 호수에 뛰어들 듯 의욕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건우 형.”

임수호가 어울리지 않게 무거운 표정으로 말을 걸자, 한건우는 씩 웃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뻔했다.

“알겠어. 난 방해 안 하고 위에서 지켜만 볼게.”

“...고마워.”

임수호는 멋쩍어했다.

한건우와 드래곤이 나선다면, B급 균열의 주인 정도는 한방에 나가떨어질 것이다.

그때 깊고 어두운 수면 아래로 거대한 마수의 그림자가 보였다.

울렁-

물 표면이 크게 소용돌이쳤다.

“상황이 위험해지면 도와줄게.”

“알겠어.”

임수호가 대답했다.

임진호는 결연한 얼굴로 아래를 보고 있었다.

우우웅-

촤아악!

물 속에서 폭발적인 기세로 마수가 올라왔다.

‘균열의 주인!’

짙은 녹색의 수장룡이었다.

긴 목과 둥근 몸통, 비교적 짧은 지느러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드래곤의 방계 격인 아룡종이었다.

풍덩-

호숫물이 해일처럼 높이 파도쳤다.

임수호가 전륜성왕의 석장을 찌르듯이 내질렀다.

[특성 발동 : 빙정난류]

치지지징-

“!”

파도치는 물이 한순간에 얼음이 되었다.

한건우는 임수호의 특성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벌써 이 정도라고?’

마력을 증폭해주는 전륜성왕의 석장 덕분도 있겠지만.

한번에 운용할 수 있는 MP 통 자체가 크게 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확실히 노력을 많이 했구나.’’

임수호과 임진호가 드래곤의 등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슈우우-

형제는 얼음으로 만든 경사로를 타고 회오리치듯이 내려갔다.

임진호가 먼저 수장룡의 등 위로 올라탔다.

크우우우!

화난 수장룡이 울음소리를 냈다.

지느러미를 저었지만, 물 속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치지지지···.

수장룡이 헤엄치는 주변의 물이 점차 얼음이 되었다.

파바박!

날카로운 얼음의 창이 수장룡의 피부를 찔렀다.

크와악!

수장룡이 몸부림쳤다.

비늘로 덮이지 않은 수장룡의 피부에서 점액이 흘러나왔다.

‘특성이 2차 개화했다더니. 얼음의 창이 그전보다 훨씬 단단해졌어.’

임수호가 내뿜는 냉기가 한건우가 있는 자리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특성의 냉기가 셀수록 얼음의 경도 역시 단단해질 수밖에.

아무리 비늘이 없다지만, 아룡종은 아룡종.

그 피부를 뚫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임진호는 수장룡의 등에 똑바로 선 채로, 목과 몸통이 이어지는 연결부위를 노렸다.

[특성 발동 : 일점돌파]

역시 2차 개화한 임진호의 특성.

한건우는 기대하는 마음 반, 냉정한 마음 반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B급 아룡종. 쉽게 잡기는 어려울 거야.’

쿠과과광-!

온몸을 무기처럼 부딪치는 임진호의 일점돌파.

전보다 훨씬 빠르고 강해진 건 물론이었다.

그러나 수장룡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수장룡이 긴 목을 비틀며 피했다.

임진호의 타격은 수장룡에 명중하지 못하고 스치며 빗나갔다.

‘목을 잘라 일격에 죽이려던 게 오산이었어.’

성공했다면 최고의 선택이었겠지만.

몸통을 노렸으면 좋을 뻔했다.

콰아악!

수장룡은 굵은 꼬리를 얼음판에 내리쳤다.

얼음판 위에 선 임수호를 노린 것이었다.

파지지직-

“허억!”

얼음판이 몇 조각으로 갈라졌다.

그 틈새로 물이 왈칵 들어오자, 수장룡은 그 사이로 큰 몸을 통과시켰다.

푸웅-

임수호도 거기 말려들어갔다.

물에 빠졌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수중 호흡 포션을 먹은 상태.

게다가 물 속은 원래 임수호에게 두려운 공간이 아니었다.

드드드드···.

임수호는 수중에서 발밑에 얼음을 자라나게 했다.

금세 얼음 기둥을 타고 수면 위로 솟아났다.

“수호! 괜찮아?”

“응. 지금 어디 갔지?”

“뒤 조심해!”

쿠구구구-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임수호의 뒤쪽에서 물대포가 쏟아졌다.

파아앗!

얼음으로 보호막을 만들 겨를도 없었다.

형제는 수장룡이 쏘아낸 물대포를 정면으로 맞았다.

터엉!

연타로 긴 꼬리가 형제를 공격했다.

블랙아웃.

잠시 눈앞이 검게 흐려졌다.

“후우···.”

임수호가 본능적으로 얼음판을 만들어낸 모양이었다.

겨우 수면으로 올라온 형제가 코에서 피 섞인 물을 쏟아냈다.

스으으-

수장룡은 호수 안에서 다시 자유롭게 헤엄쳤다.

크게 원을 그리면서 형제가 올라탄 얼음판에 접근하고 있었다.

‘안 되겠군.’

드래곤에 올라타서 지켜보던 한건우가 굳은 표정으로 창을 들었다.

막 수장룡에게 창을 던지려던 순간, 임진호가 소리쳤다.

“잠깐!”

“?”

임진호의 목소리에 절박함이 담겨있었다.

한건우는 흠칫했다.

“건우 형··· 이번엔, 우리한테 끝까지 맡겨줘.”

“....”

임수호도 같은 의견인지, 눈빛을 풀지 않고 수장룡을 노려보고 있었다.

형제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좋아.”

한건우는 창을 내려놓았다.

수장룡이 다시 물대포를 쏘려는 듯, 물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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