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용기사 클래스 (2)
“예, 문제 있습니까?”
한건우가 물었다.
“뭐, 뭡니까!”
부스 뒤에서 얼쩡거리던 센터장이 호들갑을 떨었다.
이제 조금 거슬렸다.
“....”
한건우가 말없이 고개를 돌려 센터장을 돌아보았다.
“허억!”
방비할 새도 없이, 강력한 살기가 센터장을 향했다.
한건우는 아주 미미한 힘을 드러낸 것에 불과했다.
센터장의 온몸 털이 꼿꼿이 곤두서고, 순식간에 등판에서 땀이 쫙 쏟아졌다.
“죄, 죄송합니다. 그럼 일처리 잘 하시고, 이만···..”
센터장이 고개를 숙이며 사라지자, 이쪽을 쳐다보던 사람들도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모른 척했다.
‘이제 좀 조용히 일을 보겠군.’
한건우의 고개가 다시 돌아갔다.
담당 직원을 보니,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도 오랫동안 여기서 일했지만, 처음 들어보는 클래스라···.”
직원은 낯선 이름에 당황하며 자료를 뒤적였다.
클래스 등록 담당자조차 낯설어하는 클래스라니.
한건우도 이비현에게 듣고, 희귀 자료까지 몽땅 뒤져서 찾아보기 전까지는 그 존재를 잘 몰랐으니까.
“어! 있네요. 불편 드려 죄송합니다.”
직원은 한건우의 영상을 떠올리며 속으로 납득했다.
한건우가 드래곤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며 싸우는 그 영상.
과장 좀 보태서 텔레비전을 틀 때마다 나올 정도였다.
아무리 무관심한 사람이라도 모를 수 없었다.
“그러면 전직 처리하겠습니다.”
차분하던 직원이 바짝 긴장하면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몇 번의 조작 끝에, 직원은 <용기사>라는 항목을 찾아냈다.
“손을 올려주세요.”
직원이 마석으로 된 석판을 내밀었다.
한건우는 석판 위에 손을 올렸다.
‘외국 각성자들은 아무 때나 시스템 상태창으로 클래스 등록이나 변경을 할 수 있다는데.’
한국에서는 각성자 등록을 하면서 클래스 등록, 변경 기능을 막아놓는다.
그래서 클래스를 등록하거나 전직할 때마다 직접 각성센터에 찾아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시스템>에 접근하는 건 고도의 기술이라서 개발도상국에서는 따라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클래스 전직, 기존의 웨폰 마스터에서 용기사로 변경하겠습니다.”
직원이 버튼을 조작했다.
띠링-
한건우의 눈앞에 시스템 알림창이 떴다.
[클래스 전직 등록 - 용기사]
“처리됐습니다.”
“음?”
한건우의 눈썹이 꿈틀했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이상이라도 있으신지요.”
“....”
“잠시만요, 제가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직원이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다시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던 직원이 흠칫 놀랐다.
“이런, 제가 여태껏 이런 경우는···.”
한건우도 상태창을 통해 같은 항목을 보고 있었다.
[클래스 - 웨폰 마스터, 용기사]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2개의 클래스가 등록되어 있었다.
한 사람이 여러 클래스를 가질 수는 없었다.
그게 보통 알려진 상식이었다.
“...잠시만요···. 제가 실수한 건 없는데요.”
직원은 눈을 크게 뜨고 코드 입력 기록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분명히 난 <클래스 전직>을 선택했는데···. 그냥 클래스가 흡수된 것처럼 들어가 버렸어.’
한건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확한 원리는 모르겠지만, 손해 볼 건 하나도 없었다.
웨폰 마스터 클래스의 특전을 잃은 것도 아니고, 새로운 클래스는 정상적으로 등록됐으니까.
“문제 없으니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당황해서 따라 일어나는 직원을 남겨두고, 한건우는 돌아섰다.
그때 창문 밖을 본 한건우가 피식 웃었다.
‘벌써 기자들이 달려온 걸 보니, 설아가 S급으로 재판정을 받았나 보군.’
요즘 설아의 성장세는 조금 무서운 감도 있었다.
히든 스탯인 ‘친화력’이 벌써 200을 넘겼다.
처음에는 포유류 형태의 마수한 테이밍이 되었으나, 은설아는 점점 자신의 한계를 부수고 있었다.
최근 한 균열에서는 주목할 만한 사건도 있었다.
은설아가 잠시나마 트롤을 테이밍해서 조종한 것이다.
지능이 낮은 편이라고는 하지만.
명색이 인간형 마수였다.
이제껏 인간형 마수는 테이밍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두 꽤 놀랐다.
과거 정부에서 테이머를 탄압하던 게 조금은 납득이 될 정도였다.
다른 각성자는 아무리 강해봤자 한 명일 뿐인데, 강한 테이머는 대군단을 이끌 수도 있으니까.
그것도 마수로 이뤄진 대군단을 말이다.
‘설아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소도시 하나쯤 쓸어버리는 건 일도 아니겠어.’
한건우는 가뿐한 마음으로 입구로 향했다.
오늘 기자들이 찾는 건 자기가 아니라 은설아였다.
‘기자들 앞에서 또 쩔쩔매려나.’
처음 보는 마수들과는 친밀하게 지내면서.
아직도 사람들 낯을 가리는 은설아였다.
그런데 어딘가 꺼림칙했다.
각성센터 건물 안에 기감을 돌려보고, 한건우는 어이없어 웃었다.
‘벌써 도망갔나?’
은설아와 임수호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언론을 이용할 수 있으면 이용하는 게 좋지만.
요새 조금 질렸다.
한건우도 몇 걸음 걷더니, 그림자 속으로 스윽 사라졌다.
*
[하하, 아레스 길드에서도 많이 지치셨나 봅니다. 그럴 만도 하죠.]
문철민 기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로서는 우스울 수밖에 없었다.
타 언론사의 기자단은 모두 닭 쫓던 개가 되었다.
헛걸음을 할 수 없었던 기자들은 각성센터 직원과 민원인들을 붙잡고 늘어졌다.
거기서 영양가 있는 멘트가 나올 리 없었다.
‘나는 다르지!’
한건우 플레이어에게 언제든 직통전화를 걸 수 있는 기자.
오직 문철민 기자뿐이었다.
문철민은 어깨가 으쓱해지는 걸 느꼈다.
한건우가 거물이 되어가면서, 문철민의 입지도 따라서 올라갔다.
그전을 생각하면 정말 놀라웠다.
문철민은 각성자는 아니지만 각성자 세계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각성자 전문 언론인 PBS에 들어왔다.
과거의 자신은 냉정하게 보면 평범보다 조금 나은 수준.
한건우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저 그런 기자였다.
‘대체 한건우는 왜 나를 선택했을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한건우가 문철민의 은인이긴 했다.
한건우와 관계를 맺은 이후로, 문철민의 커리어는 날개 돋친 듯 올라갔다.
문철민도 한건우에게 도움을 줄 때가 있어서, 뿌듯하기도 했다.
이제 발도 넓어졌고, 고급 정보 채널도 늘었다.
국내외 각성자 세계를 머릿속에서 분석하고 있는 문철민이었다.
그런 그가 이번 소식을 듣고 생각했다.
‘은설아 플레이어의 S급 재판정··· 이건 하나의 계기야.’
대중들은 은설아의 어린 나이나 귀여운 외모 같은 데 집중하겠지만.
이건 사람들의 생각보다 더 엄청난 사건이었다.
‘힘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한건우의 세력은 아레스 길드에서 끝나지 않았다.
박이경이 있는 알파스는 물론이고.
만주에 다녀온 이후 홍염과 기사단 길드도 한건우 쪽으로 돌아서지 않았던가.
합당한 사연도 있었다.
‘아레스 길드원들이 홍염과 기사단 길드원들의 목숨을 구해줬다고 했지.’
그리고 더 소름 끼치는 건 은설아의 나이였다.
‘아직 16살. 그런데 이 정도면···.’
플레이어로서의 수명을 고려할 때, 최전성기가 아직 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문철민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다시 한 번 진심을 다해 말했다.
[한건우 플레이어. 길드에 나날이 경사가 많으시네요. 마지막으로 축하드립니다.]
문철민이 인사를 건네자, 한건우는 조금 놀랐다.
‘그 각성센터 직원, 입이 무거운 사람이군.’
각성센터에 무슨 일만 나면 기자나 방송인들이 몰려왔다.
그게 어떻게 이루어지겠는가.
직원들이 유출하는 게 뻔했다.
한건우를 담당한 직원은 그런 쪽에서는 믿을 만한 사람 같았다.
‘하긴 지난번에 웨폰 마스터 클래스 등록한 것도, 아무데도 알려지지 않았지.’
심지어 정보조직을 데리고 있는 이비현조차 모를 정도였으니.
정말 그 직원 혼자만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한 가지 소스는 더 드릴 수 있습니다.”
[앗, 소스는 언제나 환영이죠. 어떤 겁니까?]
문철민이 자세를 고치며 화색을 띄었다.
그가 반가워하는 게 수화기 너머로도 느껴졌다.
한건우가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특종까지는 아니어도 관심거리 정도는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클래스를 등록했습니다.”
[헉, 드디어요! 어떤 클래스시죠?]
“용기사입니다.”
[....]
문철민 기자는 입을 떡 벌렸다.
용기사(dragoon).
듣기에는 일반 ‘기사’나 ‘성기사’ 같은 클래스와 비슷했다.
실상은 전혀 다른 차원에 있는 클래스였다.
[그··· 용기사요? 드래곤을 타고 싸우는 전사?]
“그렇죠.”
[이건 엄청난데요. 국내는 물론이고··· 아마 세계에서도 유일한 클래스일 겁니다.]
클래스 등록은 이론적으로 누구나 할 수 있겠지만.
등록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조건이 몹시 까다로웠으니까.
우선 살아있는 드래곤을 만나는 것부터가 로또 맞을 확률이었다.
한건우가 드래곤을 서울로 데려오기 전까지는 그랬다는 얘기다.
드래곤을 어렵게 만난다 해도 문제였다.
드래곤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중 가장 강력한 생물이자, 그 자체로 살아있는 재앙이 아닌가.
등에 타고 싸우기는커녕, 목숨을 부지하면 다행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드래곤 앞에서는 무력한 불쏘시개에 불과했다.
문철민은 모르는 일이었지만, 특수안보부 요원들마저 드래곤의 브레스를 맞고 한방에 시체가 되었다.
“그렇습니까?”
[네, 그럼요. 테이밍이든 정신 조종이든 드래곤을 정신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니까요.]
문철민은 <용기사> 클래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한건우가 드래곤을 확보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혹시나 해서 따로 알아봤다.
기자로서 그 정도 노력은 기본이니까.
“그렇군요.”
[이미 드래곤을 조종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셨으니··· 정말 탁월한 선택이시네요.]
문철민은 한건우에게 드래곤과 관련된 능력이 있을 거라 믿는 듯했다.
정작 한건우는 뚜렷한 확신은 없었다.
‘정확히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군.’
알에서 깨어난 드래곤은 한건우를 아빠로 인식했는지.
한 번도 공격성을 보이지 않았다.
그게 각인 효과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한건우는 <비스트 마스터> 특성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 특성으로 테이밍을 할 수 없었으니, 그걸로는 다 설명이 안 되었다.
‘드래곤이 알에서 깨어나는 자리에는 나뿐만 아니라 설아와 장영표도 있었어. 깨어나자마자 처음 본 사람은 내가 아닌 설아였고.’
논리적으로 따지면 자신이 아닌 은설아가 드래곤의 주인이 되었어야 맞다.
드래곤이 한건우를 부모처럼 따르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게 분명했다.
한건우는 조금 상상력을 발휘해봤다.
어쩌면 드래곤은 자신을 동족의 어른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뇌룡의 심장 조각이 한건우의 몸과 융합되어 있는 상태니까.
그건 한건우의 몸에 새겨진 회귀의 증거이기도 했다.
‘세상에 우연이 없군.’
한건우의 주변을 이루는 환경이 하나하나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앗, 균열 알림이네요.]
“알림이라뇨?”
한건우의 휴대전화는 잠잠했다.
[하하, 아직 초기단계인 모양입니다. 저희 회사에는 먼저 통보가 옵니다.]
균열이 발생하면 먼저 담당구역에 있는 길드에 알림이 가고, 아무도 수락하지 않으면 점차 알림 범위가 넓어졌다.
[어디 보자··· 그쪽 영역을 담당하는 길드는 대처 능력이 안되어서 패스할테니, 곧 울리겠군요.]
띠링!
문철민의 말대로 균열 알림이 울렸다.
“하하···.”
그 균열 이름을 본 한건우가 놀라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왜 그러십니까?]
“역시 세상에 우연이 없군요.”
[예?]
한건우는 직통 엘리베이터를 타고 길드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드래곤이 쉬고 있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