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용기사 클래스 (1)
그 무렵.
한건우의 길드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먼저 아레스 길드의 자랑인 테이머 은설아가 S급으로 재판정을 받은 것이었다.
“정말요? 이거···. 잘못된 거 아니죠?”
“그럼요.”
“세상에···.”
“은설아 플레이어, 축하드립니다. 대한민국 14번째 S급 각성자세요.”
은설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몇 번이고 되물었다.
직원은 웃으면서 정확하다고 확답을 해주었다.
설아가 그제야 방방 뛰면서 좋아했다.
일명 태생 S급, 즉 첫 각성부터 S급이 뜬 것보다는 임팩트가 덜했다.
그래도 큰 경사임에는 분명했다.
“우와···. 설아야, 진짜 축하해.”
측정실에 같이 따라간 임수호는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건넸다.
예상했던 일이기에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요새 은설아의 테이밍 능력이 부쩍 강해진 게 보였으니까.
만주에서 실전을 겪은 후에 한 꺼풀 껍질이 벗겨진 것 같았다.
<비스트 마스터>라는 특성의 이름은 과장이 아니었다.
‘하긴, 그게 S급이 아니라면 무서울 정도지···.’
균열에 들어가서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만사형통으로 해결한 게 몇 번인지.
수백의 마수들을 일사불란한 군대처럼 다루는 모습에, 가끔씩은 전율이 흐를 정도였다.
‘예전 코볼트 광산도, 지금 같으면 싸우지도 않고 쉽게 해결했겠어.’
정작 은설아 본인은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몰랐다.
매일같이 보는 드래곤 탓도 있었다.
- 우리 마스터는 테이머가 아닌데도 드래곤을 길들였는데, 저는 명색이 테이머인데도 드래곤과는 소통이 안 되는걸요.
- 그, 그건···.
항상 능력의 한계를 겪는 바람에, 자신감이 살짝 떨어진 것이다.
“우리 길드 이제 S급만 3명이네?”
등급외지만 S급으로 알려진 한건우.
그리고 차은비와 은설아까지.
공식적으로는 그랬다.
“박이경 아저씨도 우리 길드에 들어오면 좋을텐데. 그럼 4명이잖아.”
은설아의 순진한 말을 듣고, 임수호가 살짝 웃었다.
설아가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알파스 길드의 박이경은 허구한 날 한건우를 보러 놀러왔다.
대련을 청하고, 식사를 청하고.
깡패 같던 박이경의 낮선 모습은 양 길드원들을 당황하게 했다.
나이도 어린 한건우에게 형님 운운하며 다가오고, 한건우의 길드원들에게도 호의적이었다.
특히 은설아를 조카처럼 무척 귀여워했다.
그 모습에 모두 익숙해졌을 무렵.
박이경은 급기야는 알파스 길드를 이사해버렸다.
한건우의 길드 바로 옆 건물로.
“그래도 그럴 순 없지. 박이경 플레이어는 자기 길드가 있는걸.”
“왜? 길드를 합치면 더 커지고 좋은 거 아냐? 사람도 늘어나고, 엄청 강해질텐데.”
은설아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주 황당무계한 소리는 아니었다.
아레스와 알파스, 두 길드의 합병.
실제로 각종 찌라시에서 한번 불탄 적이 있는 떡밥이었다.
“동맹 관계로 있는 게 편하지. 우리 길드는··· 음, 좀 특별하잖아.”
“그런가?”
은설아가 고개를 갸웃했고, 임수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설아는 잘 모르는구나.’
대부분의 길드는 회사나 마찬가지였다.
길드원들이 어느 정도 소속감을 가지긴 해도, 거기까지였다.
더 좋은 조건이 있으면 이동하는 게 당연했다.
아레스 길드는 달랐다.
들어오기도 어려웠지만, 한번 들어오면 아무도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초기 멤버는 말할 것도 없었다.
가족처럼 끈끈한 인연으로 엮여 있었으니 당연했다.
“새로 온 길드원들도 여기만한 데가 없다더라.”
“정말?”
은설아의 얼굴이 화색을 띄었다.
후발로 뽑힌 길드원들이 직접 말했다.
보수나 복지, 훈련 시스템.
모든 조건이 일성 길드 못지않게 좋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고.
자신이 완벽한 구조물에 꼭 필요한 마지막 피스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짜여진 구성이 좋다고 했다.
게다가 아레스 길드는 누구나 인정하는 신성이었다.
솟아오르는 로켓에 탄 것처럼 끝없이 몸값이 높아지니.
아무도 내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응, 훈련하면서 얘기하다 들었어.”
반면 임수호의 심경은 조금 복잡했다.
초기 멤버로서 어쩐지 위기감이 들었던 것이다.
‘설아도 이제 S급이고, 나랑 진호 형으로··· 괜찮을까?’
쌍둥이 형제는 둘 다 최초 각성등급 C급이었다.
스스로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통계적으로 그랬다.
C급 각성자는 국내에 1천 명도 안 되었다.
전체 각성자 중에서 3퍼센트 가량.
어딜 가도 쓸만한 인재였다.
게다가 한건우가 내준 아이템 덕분에, 형제는 등급보다 훨씬 강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길드의 대장장이가 전륜성왕의 구슬을 박아 가공한 스태프, <전륜성왕의 석장>.
그걸로 임수호의 <빙정난류>는 가공할 만한 공격 마법이 되었다.
임진호의 용갑과 아다만티움 방패는 또 어떤가.
임진호에게 준 아머 수트는 한건우의 <아머드 드래곤>보다도 훨씬 묵직했다.
드래곤의 가죽으로 된 방어구를 입은 것 자체가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전부 건우 형에게 받은 거잖아.’
이제 한건우 곁에는 수많은 각성자들이 있었다.
임수호와 임진호 형제 못지않게 뛰어난 각성자들도 있었다.
‘우리가 일찍 들어온 것만으로 너무 대접받는 건 아닐까?’
배부른 소리일 수 있지만, 죄책감이 들었다.
그들은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게 부끄럽지 않은 인재가 되고 싶었다.
‘진호 형도 같은 생각인 게 분명해.’
그런 생각을 입밖에 낸 적이 없는데도.
최근 임수호와 임진호는 약속이나 한 듯이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무리해서 훈련과 균열 공략에 매진하는 것이었다.
노력한 게 헛되지 않았는지, 소기의 성과는 있었다.
형제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특성 진화를 겪었다.
<빙정난류>와 <일점돌파> 모두 한 단계 위의 경지로 올라간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
아직도 본체는 C급 플레이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 마스터는 어떻게 알았을까? 새로 뽑은 사람들이 그렇게 괜찮을 줄.”
임수호의 속도 모르고, 은설아가 신나서 말했다.
신규 인력을 대폭 늘릴 때, 기존 길드원들은 내심 우려했다.
길드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이번에도 한건우의 선택은 맞아들어갔다.
마치 그들이 미래에 어떻게 발전할지 미리 엿보기라도 한 것처럼.
“글쎄.”
임수호는 어깨를 으쓱했다.
한건우가 어떻게 알았을까? 또는 어떻게 해냈을까?
그런 답 없는 질문은 이제 식상할 지경이었다.
임수호는 한참 전부터 그냥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건··· 건우 형이니까.”
“뭐야.”
은설아가 웃었다.
그때 임수호가 복도 창밖을 내다보고, 긴장한 투로 말했다.
“어, 기자들이 온다.”
각성센터에서 흘러나간 내부 소식을 전해 들었는지.
언론사 마크를 단 차량이 입구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마치 발빠른 하이에나 같았다.
“으으···.”
은설아와 임수호는 진땀을 흘렸다.
둘 다 인터뷰에는 젬병이었다.
“수호 오빠, 어쩌지? 우리 마스터. 일처리가 안 끝나셨나 본데?”
은설아가 뒤를 돌아보았다.
“설아야.”
“응.”
“건우 형에게 뒤를 맡기자.”
은설아와 임수호는 몸을 날리듯이 움직였다.
*
한건우는 각성센터 1층에 있었다.
은설아와 임수호를 측정실로 보낸 참이었다.
이제껏 길드의 각종 행정처리는 금해준이나 행정직원들이 전담했다.
오늘은 본인이 직접 와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10분도 안 걸리는 간단한 일처리를 하려 했을 뿐이었다.
한건우가 나타나자, 각성센터는 그야말로 벌집 쑤신 듯 난리가 났다.
“....”
신경쓰지 않으려 해도 소용없었다.
안내 직원이 안쪽으로 뛰어가는 거 것 같더니, 곧 나이 지긋한 공무원이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대기줄에 서 있던 다른 사람들도 이쪽을 돌아보았다.
“헉! 저 사람 한건우 플레이어 아냐?”
“쉿, 조용히 해.”
“실물로는 처음 본다···.”
한건우는 시선에 예민한 편은 아니었지만.
이런 건 부담스러웠다.
‘느낌 탓이 아니었군.’
요즘 사람들의 시선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한건우에 대한 언론의 지나친 관심 때문이었다.
지상파 방송에 만주에서 입수된 전투 화면이 방송된 것이다.
균열 안에서는 휴대폰이나 카메라 같은 전자기기가 작동하지 않으니.
원래 일반인들은 각성자들이 싸우는 모습을 생생히 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심지어 드래곤을 타고, 백골만 남은 본 드래곤과 맞서 싸우는 장면이라니.
국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방송가에서도 신이 났다.
2절, 3절. 자료 화면을 아무리 틀어도 질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 이러다 위인전 나오시겠어요.
차은비가 비웃듯이 말한 적도 있었다.
- 그게 사실은 말입니다!
- 그만.
금해준이 신나서 입을 털려다 한건우에게 제지당했다.
벌써 몇몇 출판사에서 길드에 연락을 취했다.
한건우의 자서전과 명언집, 영상 화보집을 만들자며···.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건 일반인들이니 그렇다 치고.’
각성센터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각성자 아닌가.
그들마저 연예인이라도 본 듯 호들갑을 떨다니.
각성자들의 동경 어린 시선이 꽂혔다.
종류는 다르지만, 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누리고 있는 차은비가 생각났다.
‘차은비도 꽤 생활이 불편하겠어.’
차은비에게 뭔가 공감이 가는 건 처음이었다.
각성센터장이 흥분한 어투로 말했다.
“한건우 플레이어 님! 반갑습니다. 대기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VIP실로 가시죠.”
“괜찮습니다. 금방 돌아갑니다.”
민간 은행도 아닌 공공기관에 VIP실이 있다니.
회귀 전에는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게,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제가 실은 여기 센터장입니다. 시간 되시면 차 한잔 드셨으면···.”
그의 말을 듣고 한건우는 나이든 공무원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기억나는 게 있었다.
‘그때 그 목소리로군.’
- 이거, 그냥 S급이라고 발표하자.
- 등급외 측정불가···? 이런 게 나가면 감당이 안 돼. S급으로 등록하고, 나중에 이 자료는 파기해.
한건우가 자연 각성하고 등급외 판정을 받았을 때.
그 사실을 묻어버린 센터장이었다.
한건우가 피식 웃었다.
‘덕분에 고마웠다.’
처음에는 저 자의 행동이 호재인지 악재인지 애매했다.
지금 돌아보니, 위장 아닌 위장이 되었달까.
겁먹어서 그 사실을 숨겨준 덕분에, 여기까지 별 탈 없이 올 수 있었다.
만일 그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면, 아르고스 같은 조직에서 한건우를 일찍 찍어누르려 했을지도 모른다.
쌀쌀한 날씨와 안 맞게, 센터장의 이마와 목에 습기가 느껴졌다.
몹시 긴장한 모양이었다.
상식적으로 S급이 재판정을 받으러 올 일은 없을 텐데.
한건우가 왜 직접 나타났나, 머리를 굴리고 있겠지.
“간단한 업무만 보려고 합니다. 바로 가봐야 해서 시간이 없네요.”
한건우가 적당히 대응하자, 센터장이 한결 안심하는 듯했다.
센터장은 얼른 한 발짝 물러났다.
“아쉽습니다. 제가 곧 퇴임을 하는데···. 그전에 한번 얼굴이라도 뵈어서 다행입니다. 구국의 영웅이신데요, 허허.”
“아닙니다. 저도 반가웠습니다.”
한건우는 적당히 대꾸하고 직원 앞에 앉았다.
센터장이 직원을 보며 강조했다.
“어이, 김 주임! 친절하게, 공정하게, 신속하게 해!”
“예, 알겠습니다.”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에 비해 직원은 놀라울 만큼 차분했다.
한건우가 각성자 등록증을 내밀었다.
등록증은 신분을 증명하는 증표이자, 본인의 각성센터 시스템에 접속하는 보안 키이기도 했다.
직원이 한건우의 등록증을 받아 시스템에 접속했다.
“한건우 플레이어, 무슨 업무 보러 오셨나요?”
“클래스 전직입니다.”
'아....'
직원은 살짝 아쉬움을 느꼈다.
국내 유일한 웨폰 마스터 클래스였던 한건우.
웨폰 마스터 클래스인 상급 각성자는 세계적으로도 드물었다.
그 발전상을 지켜보고 싶었던 것이다.
“무슨 클래스로 전직 등록하시겠습니까?”
직원은 개인적인 아쉬움을 감추고 차분하게 물었다.
“<용기사>, 드라군이요.”
“네?”
그 직원은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일해왔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