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126화 (126/238)

#126초대장

한건우는 정남준 대통령이 보낸 초대장을 살펴보았다.

간단히 초대한다는 말만 쓰여있을 뿐 다른 문구는 없었다.

다른 사람은 누가 참석하는지도 안 쓰여 있었다.

“3일 후라. 꽤 급박하게 잡았네?”

원정대가 귀국하고 급하게 잡은 일정일 테니까. 그럴 만도 했다.

“우편으로 온 게 아니라, 누가 직접 전해주러 왔어요. 형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일단 초대장만 놓고 갈 테니 다시 형님께 찾아오겠다고 하던데요?”

“누구? 어떻게 생겼어?”

짚이는 사람이 있었다.

“30대 후반 정도에··· 머리가 짧고 완전히 참군인처럼 보인달까요.”

“그렇군.”

“아시는 분입니까?”

“응.”

이능력 특수전단의 권석진 분대장.

지금 그의 나이는 32살이지만.

겉보기에는 실제보다 나이들어 보였다.

‘대통령의 속뜻을 직접 전할 사람이라면 권석진이겠지. 내가 먼저 그쪽에 연락하려 했는데 잘 풀리는군.’

지금 정남준 대통령은 한건우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권석진을 통해서 특수안보부에 대해 수상한 보고를 잔뜩 받은 상황.

정남준 대통령이 제정신이 박힌 자라면, 지금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각성자 중에서 자기 편을 확보해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1순위는 나겠지.’

특수안보부와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지 않을까 싶었다.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겨 있는데, 옆에서 계속 금해준이 쭈뼛거렸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저, 형님···.”

“왜 그래?”

피곤할 텐데 들어가서 쉬라고.

그렇게 말하려던 참이었다.

금해준은 어제부터 눈썹을 휘날리며 바쁘게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원정을 다녀온 이후 정리할 보상만 말 그대로 한 트럭.

아레스 길드원들이 S급, A급 균열에서 가져온 아이템을 보고, 금해준은 거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

여기서 길드원이 길드 소속으로 가져온 부산물은 길드와 일정 비율로 나누게 되어있었다.

아레스 길드는 길드원 쪽의 비율을 높게 잡았다.

그런데도 길드까지 크게 숨통이 트일 판이었다.

- 이제 저희도 중소 길드는 아니거든요. 인원 규모를 키우고 나니 새는 돈이 많아져서 고민이었는데, 다 털었습니다.

계산기를 두드리며 감격해하는 금해준을 보자, 한건우는 절로 미소가 나왔다.

집에서 기다리던 자식에게 선물을 안겨준 아버지가 된 심정이었다.

- 이건 빨리 내다 팔고, 이것들은 시세를 보면서 조금씩 풀고··· 이건 길드에 남겨두고 직접 쓰죠!

금해준은 밝은 얼굴로 종일 들떠 있었다.

그랬던 금해준이기에, 지금의 조심스런 표정이 뜻밖이었다.

“말해 봐.”

“아, 아닙니다.”

한건우는 고개를 갸웃하며 지하층으로 내려갔다.

“집에 가십니까?”

“아니, 지하 벙커에.”

“같이 가시죠.”

금해준이 다시 웃으면서 따라왔다.

*

길드 건물의 지하층, 아이템 제작자 장영표는 어제부터 쭉 밤을 지새고 있었다.

장영표의 눈이 벌갰다.

“흐흐흐.”

어두운 벙커 속에서 장영표는 악당처럼 웃었다.

그의 앞에는 드래곤의 뼈가 수북히 쌓여있었다.

“으하하!”

그야말로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한건우가 가져온 본 드래곤의 뼈였다.

전부 다는 아니었다. 일부는 마켓에 판다고 했다.

“나보다 운 좋은 대장장이가 있을까?”

장영표가 망치와 끌을 들고 콧노래를 불렀다.

핏발 선 눈과 진득한 미소는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는 행복한 고민을 하는 중이었다.

“어디 보자···. 스태프로 탄생할 재료는?”

한건우에게 의뢰받은 게 있었다.

<전륜성왕의 구슬>이라는 아이템을 끼워서 법사 스태프를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임수호에게 준다고 하니, 그의 키와 팔 높이에 맞추면 될 것 같았다.

아레스 길드원들의 신체 수치 정도는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터엉! 턱!

장영표가 망치와 끌로 관절 부위를 능숙하게 때렸다.

본 드래곤의 날개뼈 중에서 매끈하게 직선을 이루는 뼈가 깔끔하게 분리되었다.

“여기다 구슬을 넣으면 딱 맞겠어.”

장영표가 계속 중얼거렸다.

날개뼈 끝은 연골을 감싸도록 둥글게 파여 있었다.

이 부분을 다듬으면 구슬이 고정될 것 같았다.

그러면 전륜성왕의 구슬이 끝에 달린 멋진 흰 스태프가 만들어지리라.

“손 닿는 부분에는 전에 남겨둔 빙룡 가죽으로 마감을···.”

장영표의 머릿속에 순식간에 공정 과정이 영상처럼 지나갔다.

“좋아, 해보자!”

장영표가 작업대로 향하는 도중, 지하 벙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식사는 됐다고 했···!”

장영표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곧 그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마스터!”

자신을 이런 천국에서 살게 해준 건 한건우였다.

장영표로서는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고생이 많군. 쉬엄쉬엄 하지.”

“뭘요. 전혀 피로하지 않습니다.”

장영표는 진심이었다.

원래 거짓말이라고는 모르는 성격인데다, 상식적으로 드래곤 부산물을 가공하면서 피곤할 대장장이가 어디 있겠는가.

“이건 스태프로 만들 건가?”

“맞습니다.”

한건우가 바로 알아보자, 장영표가 이를 드러내며 밝게 웃었다.

뒤따라온 금해준이 드래곤 뼈를 유심히 바라보며 물었다.

“이걸로 스태프를 만들면 뭐가 좋나요?”

“가볍고 견고한 거야 말할 필요도 없고요. 마력 증폭 기능이 더 강화될 겁니다. 거의 새로운 아이템이 탄생하는 거죠.”

금해준이 고개를 크게 흔들었다.

금해준은 장영표의 존재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지하 벙커에 작업장을 차려줬더니, 이 드워프 같은 각성자는 쉬지도 않고 아이템을 쏟아냈다.

‘역시 천재는 다르다니까.’

처음부터 한건우가 데려온 사람이니 실력은 보증된 셈이었지만. 특히 장영표는 기대 이상이었다.

손재주가 좋은데다, 창의력과 미적 감각까지 갖췄다.

‘LK그룹 기술자들보다 훨씬 나아. 뭐 비교할 수조차 없지!’

그때 한건우가 품속에서 뭔가를 조심히 꺼냈다.

“이것도 한번 봐줄 수 있나?”

“그럼요.”

장영표는 호기심을 드러냈다.

한건우가 꺼낸 물건은 실험용 플라스크였다.

바로 천망의 여자 요원에게서 이비현이 빼내온 그 물건이었다.

투명한 플라스크 안에는 석탄처럼 시커먼 액체가 가득 들어있었다.

장영표는 플라스크를 서서히 흔들어보기도 하고, 불빛에 비추어 빛을 관찰했다.

귀를 가까이 대고 소리를 들어보기도 했다.

장영표가 괴상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런··· 액체는 처음 봅니다. 이게 뭡니까?”

“민간인의 생명력을 농축해서 만든 거야. 수십 명은 넘을 거다.”

“예?”

장영표와 금해준이 펄쩍 뛰며 기겁했다.

“다른 이들이 만든 걸 빼앗아온 거다.”

“휴, 그렇군요.”

무슨 생각을 했던 건지. 금해준이 안심했다.

“잘못 던지면 폭발하는 것 같더군. 조심해서 조사해볼 수 있을까? 원리가 뭔지, 정확한 성분은 어떤 건지 말야.”

“흐음··· 알겠습니다. 우선 안정화를 시켜야겠군요.”

장영표는 벙커 맨 끝으로 조심조심 이동했다.

거대한 냉장고처럼 생긴 장치를 열고 플라스크를 넣어놓았다.

잠시 문이 열린 사이로, 온갖 끔찍한 마수 표본이 담긴 병들을 본 것 같았다.

한건우와 금해준의 눈이 마주쳤지만, 그냥 모르는 척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

지하 벙커를 나와서도, 금해준은 가지 않았다.

계속 한건우의 주위를 맴돌며 헛기침을 했다.

한건우가 참다 못해 먼저 물었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금해준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쏟아냈다.

“편하게 말해.”

“사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형님이 설명해주실 걸요···. 이번 만주 사태가 그냥 단순한 게 아니죠? 저에게도 진실을 알려 주십시오.”

한건우는 잠시 침묵했다.

다른 길드원들 누구도 금해준에게 이 사건의 전말을 터놓고 얘기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금해준을 따돌리려고 그런 건 아닐테고, 아마 그건 한건우의 역할이라고 생각한 것이겠지.

“해준아.”

“예.”

한건우가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금해준도 그와 한 배를 탄 사이였다.

진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이번에 만주에 가서 알게 된 사실이 있어.”

“뭡니까?”

“이 사태는, 기획된 거였어.”

“예?”

금해준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중국의 <천망>, 그리고 한국의 <특수안보부>. 두 조직이 비밀리에 추진한 일종의 작전이야.”

“아하, 그랬던 거군요.”

금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받아들이는 게 빨랐다.

“안 놀라네?”

한건우가 도리어 의아했다.

“사실··· 세상에 비슷한 일이 많지 않나요?”

“많았다고?”

“일부러 전쟁이나 불안을 조장해서 돈을 버는 거야 옛날부터 흔히 있어왔던 것 같아요.”

“음···.”

금해준은 순수하게 자본의 시각으로 모든 걸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 사태도 쉽게 받아들여지는 모양이었다.

“사실 저희 집안에서는 외국 정부나 군수업체와도 꽤 교류를 합니다. 일부러 내전을 하게 만들거나 늑장 대응을 해서 상황을 커지게 만드는 수법, 걔네들도 많이 써요.”

“직접 균열을 만드는 수법도?”

“예? 그런 경우는··· 그게 가능한가요?”

금해준의 표정이 변했다.

“정확히 말하면 미래 언젠가, 수십 년 후에 발생할 수도 있는 균열을 당겨온 거지.”

“와···. 세상에. 균열을 잠깐 방치하는 게 아니라··· 일부러 연다고요. 기획이란 게 그럼···.”

금해준은 이제야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다.

그의 멍해진 얼굴에 혼란이 번졌다.

“그래, 그거였어.”

“게다가 2개 정부조직들이 합작을 해서 그랬다고요? 죽은 군인들도 있었는데요.”

“그뿐 아니야. 원래 특수안보부는 국경 뒤로 원정대를 물리려고 했어. 국내 주민들이 많이 죽어서 상황이 커지기를 의도한 거지.”

“허···.”

금해준에게는 완전히 상황의 장르가 달라지는 소리였다.

길드 육성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첩보 액션으로 변한 느낌이라고 할까?

한참 이마를 짚으며 괴로워하던 금해준은 섭섭한 티를 냈다.

“형님, 그런 걸 왜 이제 알려주십니까? 제가 형님의 1번 길드원이자 투자자인데요. 남들은 다 알고 있는 거죠?”

“만주에 갔던 우리 길드원들, 그리고 알파스 길드까지. 모두 알고 있는 사항이야.”

금해준이 울컥했다.

한건우가 자기에게 선을 긋는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다들 만주에 가서 자리 비우신 동안, 저도 나름대로 새 길드원 뽑고 교육시킨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비록 목숨을 걸지는 않았지만! 우리 길드 키운다고 밤낮 없이-.”

“···.”

금해준의 기세가 맹렬했다.

한참 동안 자신이 해낸 일을 열심히 읊더니, 한순간 뚝 멈추었다.

금해준이 깊은 숨을 푹 내쉬었다.

“형님, 한마디로 그런 엄청난 조직과 적이 되더라도, 그런 짓 못하게 막고 싶다 이 말씀이죠?”

“...그렇지.”

한건우는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하게 요약하니 동화 속 얘기 같이 들려서 민망했다.

사실 그게 맞았다.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파리 목숨처럼 희생시키려는 걸 보고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한건우도 회귀 전에 당했던 일이기도 했고.

천명환이 죽었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진짜 원흉은 따로 있는 셈이었다.

‘아르고스··· 그놈들을 먼저 친다. 그 아래에 있는 놈들은 쉬울 거야.’

금해준이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저 가벼운 마음으로 형님과 함께하는 것 아닙니다. 그냥 평범한 길드 만들고 싶었으면 까짓거 제가 직접 해도 그만이죠.”

“?”

“처음부터 말씀드렸잖아요. 형님 가는 길은 아무리 위험해도 끝까지 따라가겠다구요.”

“...고맙다.”

“고맙긴요. 형님이 없었으면 이게 다 가능했겠어요? 그리고 설령 지금까지 이룬 걸 다 잃는다고 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잖아요?”

금해준의 거침없는 말을 들으니, 한건우도 머리가 깨끗이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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