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123화 (123/238)

#123이건 된다

카메라 렌즈로 한건우를 지켜보던 기자가 중얼거렸다.

“야, 이건 된다.”

“표정 좋네요.”

물론 표정도 좋지만,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전에는 군인처럼 딱딱하고 좀 사납지 않았어?”

“그러게요. 벌써 반응이 좋아요.”

“그래? 어디서?”

막내 기자가 실시간 중계 중인 채널을 보여주었다.

화면 옆에 시청자가 다는 댓글이 실시간으로 올라갔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댓글을 읽기조차 어려웠다.

카메라는 잠시 플래카드를 흔드는 금해준을 비췄다가 다시 한건우로 돌아왔다.

‘기자들이 예상보다 더 많이 몰렸군.’

한건우는 문철민 기자에게 전해 들었다.

입국장에서 기자회견을 준비 중이라고.

프레스에 배정된 티오를 넘은 지 오래였다.

인터넷 신문 기자나 개인 방송인까지.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바람에 입국장은 인산인해였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던가···?’

한건우는 습관처럼 회귀 전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때는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언데드 균열을 두고 국경에서 후퇴하는 잘못된 선택 때문이었다.

각성자, 민간인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그때부터 공포 정치에 가까운 계엄상태가 이어졌다.

‘그래서 이렇게 반응이 다르군.’

만주 사태는 더이상 국가적인 재앙이자 비극이 아니었다.

한건우가 그 흐름을 바꾸었으니까.

그 기억은 이제 한건우의 마음 속에만 있는 것이었다.

‘이게 맞는 거야.’

그런데 왜일까.

행복한 마음으로 자신을 영웅 취급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조금은 씁쓸했다.

“이쪽입니다, 잠깐만 시간 내주시죠.”

긴 책상에 의자가 여러 개 놓인 기자회견 자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자리마다 길드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일성, 환인, 알파스, 그리고 아레스.

그외에 가디언과 홍염, 기사단···.

원정에 참여한 길드의 이름이었다.

길드의 대표들이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태일제와 원유선은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들은 비서진에 둘러싸여 자리를 떴다.

“가버리네···.”

“에이.”

사방에서 작은 탄식이 나왔다.

그러나 그들이 가는 길을 가로막거나, 소리 높여 불만을 표시하는 간 큰 기자는 없었다.

태일제와 원유선을 대신해서, 정장을 차려입은 길드측 대리인이 나왔다.

대리인 2명은 쌍둥이처럼 비슷한 차림이었다.

한건우는 길드의 대표자로서 회견 자리에 앉았다.

자리는 정가운데였다.

‘여론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야.’

한건우는 이 자리를 놓칠 수 없었다.

한건우의 옆자리에 박이경이 털썩 앉았다.

의자가 위태로운 소리를 내며 삐걱거렸다.

“이런 거 처음인데요? 이야, 유명인 된 기분인데.”

박이경이 너스레를 떨며 씩 웃었다.

한건우는 의아했다.

“왜, 많지 않나?”

“언제 한 번, 기자 한 놈이 귀찮게 달라붙길래 멱살을 잡고 흔들었더니 꽁지 빠지게 도망가더만요. 그때 소문이 났는지 다가오는 놈이 없던데요.”

“음.”

“아니, 절 어떻게 보십니까. 당연히 힘을 하나도 안 쓰고 겁만 줬죠.”

한건우는 박이경을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우락부락한 거구와 흉기 같은 팔로 멱살을 잡히다니.

기자가 기절을 안 하고 도망간 게 용했다.

기자들이 손을 들고 질문을 시작했다.

처음은 평이한 질문이었다.

“이번 원정은 어떻게 참가하게 되셨습니까?”

길드 대표자들은 서로 누가 대답할지 눈짓했다.

생생한 감정을 물으니 대리자가 대답할 수는 없었다.

저절로 한건우에게 발언권이 몰리는 분위기였다.

“먼저 대통령님의 도움 요청이 있었고, 또한 각성자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깔끔하고 정석적인 대답이었다.

한건우가 매끄럽게 답하자, 기자들의 손이 일제히 올라갔다.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저어··· 너무 두렵거나···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없었나요?”

막내 티를 못 벗어난 앳된 기자의 질문이었다.

기자들 사이에 낮은 웃음이 번졌다.

하지만 한건우는 웃지 않고 진지하게 답했다.

“모든 균열은 위험하고, 위험은 두렵습니다. 그러나 플레이어는 위험을 감수하고 이기는 플레이를 하는 사람입니다.”

“...가, 감사합니다.”

점점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질문으로 흘렀다.

한건우의 드래곤에 관한 질문이 한 무더기.

“드래곤은 어디서 얻었나요?”

“드래곤을 대체 어떻게 길들인 겁니까?”

“드래곤은 가장 위험한 마수로 알고 있는데요?”

한건우는 거기에 대해서는 딱 잘랐다.

“길드의 내부 정보라 자세히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안전 문제는 없을 겁니다. 테이밍된 마수와 비슷하게 봐주시면 됩니다.”

드래곤이 아공간에 안 들어가겠다고 떼를 쓰는 걸, 겨우 집어넣느라고 고생했다.

억지로라도 아공간에 넣을 수 있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성체 드래곤이 되면 그냥 풀어놓고 키워야 할 것 같았다.

도심지에 풀어놓을 수는 없으니, 다시 인공 균열이나 미공략 균열 안에서 키워야겠다.

한건우가 생각에 잠긴 동안.

아까 잘못 들은 줄 알았던 질문도 다시 나왔다.

“한건우 플레이어! 최근 열애설이 도는데 사실인가요?”

한건우는 황당했다.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자신이 연예인도 아니고, 연애를 하면 하는 거지 열애설이 웬 말인가.

물론 사실도 아니었다.

“누가 쟤네한테 프레스 완장 줬냐?”

“어우, 쪽팔리게.”

다른 기자들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언론이 사람들의 흥미를 쫓아간다지만, 품격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질문한 기자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사생활 침해로 유명한 사설 정보지에서 나온 기자였다.

그는 이런 분위기가 익숙한 듯, 뻔뻔스럽게 주위의 시선을 무시했다.

“엥?”

멀리서 지켜보던 금해준이 입을 떡 벌렸다.

한건우의 길드원들도 뜨악한 표정이었다.

“아니, 건우 형이 언제···? 형! 형은 알고 있었어?”

임수호가 임진호를 홱 돌아보았다.

자기만 몰랐나 하고, 배신감으로 목소리가 떨렸다.

“아하, 드디어.”

“설아야! 뭔데?”

은설아가 의미심장한 소리를 냈다.

임수호가 캐물었지만, 은설아는 입을 꾹 닫았다.

차은비는 불길한 예감에 손으로 입을 막고 있었다.

‘설마 내 얘길 하는 건 아니겠지?’

차은비가 한건우의 애인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그건 알고 있었다. 박이경이 그걸로 조롱한 적 있었으니까.

차은비의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길드 마스터들이 고개를 돌려 한건우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뭔가 웃음을 참는 듯한 반응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사실 무근입니다.”

한건우가 딱딱하게 넘기려 했다.

사설 정보지 기자가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그럼 이 여자분은 누굽니까? 저희가 확인해보니 원정대 소속도 아니라고 하는데요!”

기자는 준비한 사진까지 번쩍 들었다.

‘하···.’

한건우는 이마를 짚었다.

그 사진에는 자신과 이비현이 찍혀 있었다.

이비현의 얼굴이 다 드러나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갸름한 턱과 입술만 봐도 여자라는 건 확실했다.

‘내가 언제 저랬지?’

각도 탓인지.

한건우가 웃으면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놈이냐 진짜.’

놀라울 따름이었다.

군인인지 길드 각성자인지 모르겠지만, 거기서 찌라시 기자에게 팔아넘길 사진을 찍는 놈이 있다니.

‘잠깐, 꼭 나쁜 건 아닌데?’

한건우의 표정이 바뀌었다.

‘딱 저것만 찍지는 않았을 거야.’

“해명 부탁드립니다!”

사진을 치켜든 사설 정보지 기자가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그 기세 하나는 대단했다.

“따로 해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주세요.”

좌중이 술렁거렸다.

인정하는 거나 다름없다 생각했는지, 사설 정보지 기자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였다.

이번에는 문철민 기자가 손을 들었다.

한건우가 문철민을 지목했다.

“원정대의 승리에 공이 가장 큰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한건우를 바라보았다.

최선의 대답은 정해져 있지 않을까.

- 원정대에 참가한 한명 한명이 모두 공로자입니다.

겸손한 태도를 보여주지 않으면 곧 적이 생길 테니까.

하지만 아직 나이 어린 한건우였다.

젊은 치기로 자신감을 드러낼지도 몰랐다.

많은 기자들이 눈을 빛내며 주목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

기자들이 어리둥절해졌다.

서로의 얼굴을 살폈지만, 다들 감을 못 잡고 있었다.

“승리는 기쁜 일이죠. 그러나 원정대 중에는 목숨을 잃은 각성자도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국민을 지킨 그들의 공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좌중에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플레이어는 목숨을 내놓고 하는 위험한 직업이었다.

사람들도 그걸 알기에, 플레이어의 죽음에 조금은 무감각한 면이 있었다.

다들 그걸 돌아보며 반성하는 분위기였다.

‘인물은 인물이야.’

한편, 문철민 기자는 뼛속까지 기자였다.

한건우의 말에 울림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었다.

문철민 기자가 한건우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이거였다.

‘새파랗게 어린 나이에 어떻게 저런 관록이 나오지?’

한건우에 대해서는 조사가 끝났다.

나이도 어리고, 가정환경도 불우한 편이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교육이나 폭넓은 경험으로 커버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아니라는 뜻이었다.

‘말이나 행동을 보면, 10년 넘게 조직의 리더를 맡아온 사람 같다니까.’

한건우가 입을 열면 다른 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조용해졌다.

남다른 카리스마가 있다는 뜻이었다.

‘저건 타고난 자질이야.’

기자회견만 해도 시장바닥처럼 요란한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어떤가.

질서정연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한건우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저희만 주목을 받고 있지만, 함께 목숨을 걸고 싸웠던 군인 여러분, 그리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함께 싸워주신 다른 분들께도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그냥 훈훈하게 넘어갈 수도 있는 말이었다.

문철민은 약속된 대로 추가 질문을 했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함께 싸웠다는 건, 누굴 말씀하시는 겁니까?”

한건우는 PBS의 카메라를 응시했다.

“국가 기록에 없는 각성자, 미등록자들입니다. 그들도 함께 사선에서 싸웠습니다.”

기자회견장이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곳곳에서 노트북으로 한건우의 발언을 받아적던 이들의 손이 동시에 멈췄다.

침묵은 오래 가지 않았다.

흥분한 기자들이 가열차게 키보드 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건우 플레이어. 미등록자는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자들이 아닙니까?”

문철민 기자가 냉철하게 물었다.

그건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기도 했다.

미등록자라고 하면 대부분 무서운 범죄자를 떠올렸다.

물론 일반 각성자보다는 범죄자의 비율이 높았다.

아무래도 어두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뿐이었다.

‘예전에 내가 했던 일은 잘못됐어.’

미등록자는 대부분 반정부주의자였다.

국민들도 그들을 두려워했다.

오직 그 이유였다.

이능력 특수전단의 한건우는 죄가 확실하지 않은 이들을 짐승처럼 사냥했다.

상부의 명령을 받았다고 해도 자기 손으로 저지른 일.

자기 합리화를 할 생각은 없었다.

이번에는 새로운 기회가 왔으니, 시작부터 바로잡을 것이다.

‘어차피 여기서 사람들의 생각을 다 바꿀 수는 없어. 그럴 필요도 없고.’

특수안보부는 미등록자에 대한 과도한 공포심과 증오를 조장했다.

그게 쉽게 먹히지 않도록 하는 건, 약간의 정보만으로 충분했다.

“잘 모르는 건 말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확실히 아는 건 이겁니다.”

“그게 뭐죠?”

“이번 전투에서 그들은 아무런 보상도 약속받은 게 없이, 국민들을 위해 싸웠다는 겁니다.”

이비현은 2층 구석의 기둥 뒤에서 기자회견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뭘 저렇게까지.”

한건우를 도우러 갔을 뿐인데 지나치게 금칠을 해대자, 이비현은 조금 민망해졌다.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스르륵 사라졌다.

주변의 아무도 그녀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

한건우는 길드에 들르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당연히 여동생 지윤을 보러 가려는 것이었다.

여동생을 보호하려고 걸어놓은 <신성한 보호> 특성은 한 번도 발동되지 않았다.

패시브 상태로 잠잠한 걸 보니, 여동생은 안전한 게 분명했다.

그게 없었다면 지윤이를 떼고 어딜 다니지도 못했으리라.

“오빠!”

“어?”

지윤이 금해준과 같이 서 있었다.

같이 마중을 나왔던 모양이다.

“해준 오빠한테 소식 듣고 달려왔는데, 조금 늦었네.”

지윤이가 환하게 웃었다.

한건우가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해준 오빠?”

금해준과 지윤이는 서로 마주칠 일이 없는데.

부르는 목소리가 제법 다정했다.

대체 언제 그렇게 가까워졌는지 모를 일이었다.

“오빠가 한국에 없는 동안 해준오빠가 많이 챙겨줘서···.”

“아.”

한건우는 자기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 한건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화는 걸려오는데, 상대방의 번호가 뜨지 않았다.

‘뭐지?’

무심코 전화를 받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한건우 플레이어, 중계는 잘 봤습니다. 한국에는 잘 들어오셨죠?]

낮고 친절하지만 어딘가 신경을 긁는 목소리.

듣자마자 알았다.

김도경이었다.

한건우는 피식 웃고서 대답했다.

"무슨 일입니까. 그때 덜 맞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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