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120화 (120/238)

#120언데드 (4) - 아크 리치

한건우는 드래곤을 탄 채 상대와 스쳤다.

마창 게이볼그가 본 드래곤의 갈비뼈와 날개뼈에 부딪쳤다.

본래 창은 찌르고 베는 용도건만.

이번 상대는 살이나 근육이 없었다.

골조를 직접 때렸다.

스치잉-

쿠과앙-

본 드래곤의 뼈가 마디를 따라 갈라졌다.

뼈 자체가 부숴지지는 않았지만.

관절로 연결된 부분은 비교적 취약했다.

뼈만 남은 본 드래곤은 별로 강하지 않다고.

진짜 살아있는 드래곤에 비할 바는 못 된다고.

그렇게 알려져 있었다.

반은 맞았다.

언데드가 되어도 드래곤 피어는 흉내낼 수 있지만, 드래곤의 가장 위협적인 무기가 없었다.

‘확실히 브레스를 못 쏘는군.’

그러나 한건우를 괴롭히는 특징이 있었다.

‘아무리 때리고 부숴도 다시 돌아돈다!’

드드드득. 끼기긱-

파아악!

이번에도 마찬가지.

본 드래곤의 갈비뼈가 허공에서 맞춰졌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장난감을 조립하는 듯했다.

다른 언데드도 비슷하긴 했다.

구울이나 뱀파이어만 해도 물리 공격만으로는 죽이기 어려웠다.

아무리 칼과 몽둥이로 때려도, 잘린 채로 꿈틀거리며 달려들었다.

섀도우 스펙터는 더 악질이었다.

아예 물리 타격은 먹히지도 않았다.

손에 잡히는 실체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언데드는 약점이 있기 마련.

신성력을 담거나 화염 속성의 공격을 하면 격파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의 언데드는 모두 그렇게 해결했다.

하지만 본 드래곤은 달랐다.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물질인 드래곤 뼈.

신성력과 저주, 마법에 대한 내성은 드래곤 뼈가 최고였다.

그 뼈로 이루어진 언데드라, 웬만한 화염 공격에도 끄떡없을 수밖에.

‘드래곤 뼈가 튼튼하다는 게 좋은 줄만 알았지.’

본 드래곤이 <아그니의 화염>마저 멀쩡히 버텨내자, 한건우는 혀를 내둘렀다.

그나마 본 드래곤 하나와 싸웠다면 해볼 만 했을 텐데.

본 드래곤을 사역마로 부리는 아크 리치가 있어서 문제였다.

아크 리치의 특성 때문에, <마창 게이볼그의 주인> 특전도 무용지물이 되었다.

‘회복이 아니라 조립이라는 건가?’

아크 리치도, 그 사역마인 본 드래곤도.

제대로 된 생명체라고 볼 수 없었다.

아크 리치는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해 생명의 정수를 스스로 뽑아냈다.

해골바가지와 뼛조각으로 이뤄진 몸은 하나의 그릇일 뿐.

생명의 정수는 흑마법으로 어딘가에 봉인했다.

바로 저 손가락뼈에 끼운 보석 반지에.

게다가 그 반지는 미공략 균열의 핵이기까지 했다.

‘그걸 들고 다니는 멍청이가 있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반지를 부수는 건 만만하지 않았다.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한 건가.’

한건우도 가장 귀중한 아이템은 절대 몸에서 떨어뜨리지 않았다

자신을 죽이지 않고는 가져갈 수 없도록.

그만큼 아크 리치도 반지를 지킬 자신이 있다는 소리였다.

「피의 안개여, 피어오르라.」

아크 리치가 또 저주의 진언을 외었다.

화아악-

“윽!”

한건우의 눈앞에 피의 안개가 펼쳐졌다.

아크 리치의 흑마법 중 하나.

강한 산 성분의 안개였다.

한건우는 용갑으로 된 전신 방어구, <아머드 드래곤>에 감사했다.

그게 없었다면 공중에서 산 채로 녹았을지 모른다.

치지이익···.

키에엑!

드래곤이 괴로워하며 울부짖었다.

드래곤의 비늘 틈새는 어젯밤 미세한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맹독이 스며든 모래가 파고든 길이 남은 모양이었다.

‘이런!’

생각지 못한 문제였다.

드래곤이 날개를 크게 퍼덕거리며 몸을 뒤집었다.

한건우는 중심을 잡고 버텼다.

피의 안개가 펼쳐진 곳을 겨우 통과했다.

그때 아크 리치의 진언이 들렸다.

「피의 소나기여, 내려오라.」

‘뭐?’

한건우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심상치 않은 징조가 일었다.

우르르릉···.

쏴아아아-

하늘을 뒤덮은 검은 먹구름.

거기서 강한 산성의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솨아아-

핏빛 소나기가 한건우와 드래곤 위로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키에엑!

드래곤이 당황했다.

“진정해!”

한건우가 다급히 <믿음의 방패>로 보호막을 씌워주었지만.

흑마법을 담은 피의 소나기는 보호막을 뚫고 스며들었다.

괴로워하는 드래곤을 보고 아크 리치가 웃었다.

해골 바가지 얼굴이라 표정이 보이는 게 이상하지만.

분명히 웃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마력이···.’

한건우는 아크 리치의 마력량에 당황했다.

대마법사 아크 리치의 마력은 어쩌면 자신에 필적하는 것 같았다.

「이 땅에 밤이 오면, 나를 이길 자가 없다.」

이번에는 진언이 아니었다.

한건우를 향한 경고였다.

화려한 왕관 아래 두개골이 안광을 빛내며 웃었다.

「그리고 나는 영원한 밤을 불러올 수 있다.」

“....”

슈우-

한건우는 거리를 벌려 뒤로 물러났다.

이제껏 수많은 적을 물리쳐왔다.

아크 리치도 예외가 아닐 줄 알았다.

한건우는 벽에 부딪친 듯했다.

물리적 공격은 물론이고.

신성력과 뇌전을 섞은 공격, 화염 마법.

공간 마법, 중력 마법, 그리고 특성 중첩을 통한 폭발.

‘다 시도해도 안 먹혀.’

더 하면 먹히겠다 싶은 약점도 보이지 않았다.

‘저 먹구름 위로 올라오게 유도해볼까?’

아크 리치가 불러온 시커먼 먹구름.

해를 가려 밤을 불러온 저 구름 위로 올라가면, 밝은 태양이 있을 것이다.

‘저놈이 바보가 아닌 이상, 따라 올라올 리 만무해.’

원거리 흑마법이 주 종목인 아크 리치다.

굳이 가까이 따라붙을 이유도 없었다.

한건우는 슬슬 위치를 바꾸며 유도해봤다.

아크 리치는 끄떡도 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아크 리치는 슬쩍 장벽 쪽을 쳐다보았다.

한건우만 해치우면 장벽에 있는 사람들을 쓸어버리고 싶은 것 같았다.

“!”

한건우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쪽으로 날아오는 흰 그리핀을 발견한 것이다.

두 마리 드래곤 사이로 겁도 없이 팔랑대며 날아오는 그리핀.

그리핀도 크고 강한 마수였지만.

마치 독수리 사이의 나비처럼 취약하게 느껴졌다.

“설아··· 아니 이비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본 드래곤이 긴 꼬리를 휘둘렀다.

휘이익-

두터운 뼈로 된 꼬리 공격.

제대로 맞으면 그리핀과 이비현이 함께 날아갈 것 같았다.

퍼엉-

한건우는 손에서 불덩이가 발사되었다.

휘두르는 꼬리를 멈추는 정도는 되었다.

슈우웅- 파악!

한건우의 드래곤이 뒷발로 그리핀을 잡아챘다.

마수를 사냥할 때와 같은 솜씨였다.

끼익!

“악!”

그리핀과 이비현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발톱은 말아 넣었지만, 그리핀은 많이 놀란 듯했다.

“이비현, 위로 올라와.”

“네···.”

이비현이 드래곤의 뒷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파앗-

끼에엑!

드래곤은 뒷발을 놓았다.

그리핀이 허공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황급히 도망쳤다.

“왜 왔어? 지금은 널 못 챙겨.”

한건우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이비현은 겨우 숨을 돌렸다.

어딘가 비장한 표정이었다.

스르릉-

이비현이 아공간 무기집에서 투핸드 소드를 꺼냈다.

척 봐도 만듦새가 휼륭했고, 고고한 기운까지 느껴졌다.

크기는 얼마나 크고, 무게는 또 얼마나 무거운지.

호리호리한 이비현이 들자 중장비처럼 보였다.

한건우는 그 검을 알아보았다.

“이건···!”

솜브라가 가진 가장 귀한 아이템.

전임 대장 유영원이 목숨처럼 아끼던 검.

전설급 무구, 마검 스톰브링거였다.

“이건 한건우 씨가 쓰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이비현의 눈빛이 결연했다.

그녀가 부모처럼 생각하는 유영원 대장의 보검이었다.

유영원은 예지 능력자이면서 검사였다.

검사나 창술사, 궁수처럼 무기를 다루는 각성자는 각자 자신이 목숨처럼 아끼는 무기가 있다.

유영원은 그런 검을 만주에 가는 이비현에게 말없이 건네줬다.

‘저는 이렇게 큰 검을 다룰 수 없어요.’

‘이 검은 내 물건이 아니야. 주인을 찾을 때까지 맡아둔 것뿐이야.’

놀란 이비현이 사양했지만, 유영원은 알 수 없는 말만 했다.

그리고 이비현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나에게 쓰라고 준 게 아니었어. 처음부터 한건우 씨를 의도한 거야.’

한건우는 대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영혼을 빨아들이는 듯한 먹색의 검신이 아름다웠다.

투박한 가드 아래, 가죽으로 마감된 손잡이는 묵직하고 단단했다.

[마검 스톰브링거(전설급)]

- 폭풍을 불러온다.

마검의 손잡이에 마력을 주입했다.

슈우우-

한건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검 스톰브링거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한건우의 마력을 흡수했다.

목마른 짐승이 물을 달게 삼키는 듯.

약한 각성자가 이 검을 섣불리 잡았다면, 순식간에 MP가 바닥나서 쓰러졌을지 모른다.

양껏 마력을 흡수한 검신이 크게 꿈틀거렸다.

우우웅-

새카만 검신에 은은한 문자가 나타났다.

뜻을 알 수 없는 이계의 문자였다.

「-!」

아크 리치는 심상치 않은 공기의 파동을 느꼈다.

‘폭풍을 불러온다, 그렇게만 되어있군.’

어떤 아이템이나 특성도, 그 위력은 쓰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같은 <폭풍>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찻잔 속의 바람처럼 작을 수도, 돌개바람 정도에 그칠 수도 있었다.

천지를 뒤엎는 폭풍이 일 수도 있다.

바로 지금처럼.

휘이이이···.

쿠구구··· 콰아아악!

굉음이 일고, 강풍이 몰아쳤다.

처음에는 끄떡도 하지 않던 본 드래곤이 날개를 삐걱이며 피하려 했다.

쿠과아아-

폭풍의 날개가 지면을 쓸었다.

한건우가 마검 스톰브링거를 휘둘렀다.

쿠우우···.

그가 마검을 휘두르는 방향대로, 돌풍이 일어났다.

파아앗!

강한 회오리가 지면을 때렸다.

황야의 언덕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패인 자국만 보였다.

이비현이 뭐라 소리질렀지만, 입 모양만 보일 뿐 아예 들리지도 않았다.

‘이게 전설급이라고?’

한건우는 마검 스톰브링거의 등급에 의문을 가졌다.

일반, 희귀 등급의 무기는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잘 써도 무기에 불과했다.

전설급 무기는 말 그대로, 혼자서 전설을 쓸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한건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재앙급이 아니고?’

한 단계 위의 재앙급 무기가 되면,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다.

각성자의 능력에 따라서는 자연재해에 가까운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크 리치는 태연했다.

고고하게 서서 한건우를 비웃었다.

「고작 바람 정도로 나를 해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한건우는 마검 스톰브링거를 높이 쳐들었다.

아크 리치는 그에 맞서 흑마법 방어막을 쳤다.

폭풍으로 자신을 공격하려는 줄 안 것이다.

그러나 한건우가 불러일으킨 폭풍은 다른 쪽을 향했다.

위쪽이었다.

파아아악!

검신을 따라 폭풍의 회오리가 솟구쳤다.

이비현은 겨우 눈을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온 하늘이 빙빙 돌고 있었다.

시커먼 먹구름이 소용돌이쳤다.

어지러울 정도였다.

‘역시.’

두터운 암막 커튼이 걷히는 것처럼.

흑마법이 불러온 검은 먹구름 사이로 환한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폭풍을 직격으로 맞은 먹구름이 산산이 흩어졌다.

빛줄기 하나를 시작으로, 작열하는 태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새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었다.

폭발하듯 들이치는 밝은 빛에 눈이 멀 듯했다.

‘역시··· 한건우 씨.’

이비현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둠··· 있으라.」

아크 리치가 다급히 진언을 외었다.

이미 어쩔 수 없는 단계였다.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 힘없이 모인 구름은 금세 조각조각 흩어졌다.

키이이이잇!

태양광을 정면으로 받은 본 드래곤이 몸부림쳤다.

언데드에게 태양광은 쥐약이었다.

치이이이···.

약점이 없는 줄 알았던 본 드래곤의 뼈에서 연기가 나기 시했다.

본 드래곤은 어두컴컴한 균열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강한 직사광선이 낯선 본 드래곤이 불에 데인 듯 날뛰었다.

슈욱-

아크 리치가 혀를 차며 뛰어내렸다.

본 드래곤을 포기한 것이다.

아크 리치는 햇볕 아래서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다.

다만 힘이 한풀 꺾인 건 어쩔 수 없었다.

소리 없이 착지한 아크 리치가 아래쪽에서 기습했다.

파아앗!

암흑의 광선이 솟구쳤다.

마치 김도경의 파괴 광선이 어둠 속성으로 변한 듯했다.

촤아악!

빛을 흡수하는 직선이 천지를 사선으로 갈랐다.

울렁-

중력이 우그러졌다.

한건우의 드래곤이 자기도 모르게 회피기를 발동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건우는 이미 아크 리치의 그림자 아래로 이동해 있었다.

스치이잉-

한건우의 검이 아크 리치의 허벅지를 베었다.

까앙-

아크 리치의 왕관이 땅에 떨어지고, 허벅지 윗부분이 분리되어 쓰러졌다.

트드드드···.

쓰러진 아크 리치의 다리뼈가 금방 붙었다.

아크 리치는 또다시 소환수를 불러냈다.

이번에도 박쥐 떼였다.

파다다다-

박쥐 떼가 어지럽게 날아올랐다.

‘또 뱀파이어가 되나?’

아직 드래곤 등에 타고 있던 이비현이 긴장했다.

그러나 박쥐 떼는 뱀파이어로 변하지 않았다.

밝은 햇볕에 놀란 박쥐 떼는 균열 쪽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지금 죽여야 해···!’

이비현이 조마조마하게 한건우를 바라보았다.

아크 리치는 무방비한 상태였다.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건우는 아크 리치는 내버려두고, 박쥐 떼를 쫓았다.

“하, 한건우 씨?”

팍!

한건우가 박쥐 한 마리를 벌레 잡듯 움켜잡았다.

터진 박쥐 시체를 털어냈다.

한건우의 손바닥 위에서 아크 리치의 보석 반지가 반짝 빛났다.

‘본체는 이거지.’

아크 리치의 육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본체만 살아있으면, 몸의 그릇 정도는 새로 만들 수 있을 테니까.

한건우는 보석 반지를 땅에 툭 떨어뜨렸다.

그리고 마검 스톰브링거의 칼끝을 갖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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