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118화 (118/238)

#118언데드 (2) - 본 드래곤

스스스···.

한건우의 눈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주시자의 뱀>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의 마음이 급해졌다.

“빨리 돌아가야겠어.”

한건우가 드래곤의 목에 돋은 뿔을 고삐처럼 움켜쥐었다.

달리는 말에 박차를 가하려는 듯, 드래곤을 탄 채로 몸을 일으켰다.

펄럭- 펄럭-

드래곤의 날개가 크게 움직였다.

한건우의 검은 망토가 바람에 휘날렸다.

그의 뒤에는 이비현과 차은비가 드래곤을 붙잡고 매달려 있었다.

“잠시만요. 지금 회복이 덜 됐···.”

“저쪽을 봐요.”

화들짝 놀란 차은비가 그를 말렸다.

이비현은 멀리 언덕 너머의 하늘을 가리켰다.

온 세상의 먹구름이 다 모여든 것처럼.

하늘 한구석이 시커멨다.

그쪽만 햇빛이 완전히 가려졌다.

밤이 온 듯했다.

보기만 해도 불길한 광경이었다.

크르르릉!

드래곤이 비행하면서 이빨을 드러냈다.

뚜렷한 적개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헉, 저건 뭐야!”

“아마도 2차 몬스터 웨이브··· 이번에는 상급 언데드가 나왔군요. 날씨를 바꾸는 주술을 쓴 것 같은데요.”

놀란 차은비에게 이비현이 냉정하게 설명했다.

한건우는 이번에도 놀랐다.

<주시자의 뱀>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이비현의 추측은 꽤 사실에 가까웠다.

“그래, 아크 리치가 나왔어.”

한건우가 단언하자, 차은비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둘 다 어떻게 잘 아는 거예요? 지금 나만 바본가?”

“최대한 빨리 가야 해. 아크 리치를 놓치기 전에.”

한건우가 빨리 움직이자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아크 리치가 눈앞에 제 발로 걸어 나오다니.

이건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뭔진 몰라도··· 알겠어요!”

차은비는 다시 한건우의 등에 손을 얹었다.

‘지금 회복이 급한데. 내가 무슨 고속 충전기인 줄 아나?’

그녀가 속으로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어라?’

차은비는 깜짝 놀랐다.

한건우가 회복 속도가 빠른 줄은 알고 있었다.

희귀한 자동 회복 아이템이라도 가진 걸까, 추측했다.

지금은 그 이상이었다.

“힐을 엄청나게··· 잘 먹는데요?”

무슨 차이인지는 몰라도.

아까 땅에 있을 때보다 드래곤 위에 타 있을 때의 회복 속도가 훨씬 빨랐다.

‘게다가··· MP 통이 그사이 이렇게 늘었다구?’

차은비는 정신이 어질했다.

잠시 현기증이 났다.

터억!

“아··· 헉!”

이비현이 차은비의 목덜미를 잡았다.

“···고마워요.”

하마터면 정신을 놓고 수백 미터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차은비의 간담이 서늘했다.

‘방금은··· 힐을 주려다가 깊은 바다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어.’

대체 무슨 조화일까.

차은비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

균열 근처.

1선에 있던 군부대는 장벽 뒤로 물렸다.

태일제가 만든 장벽이 방어선이 되었다.

이미 구울과의 전투를 겪은 이들이었다.

패닉을 수습하고 진을 구축했다.

김도경과 태일제가 장벽 위 지휘선에 섰다.

“한건우 플레이어는 어디 갔소?”

“모릅니다.”

태일제의 물음에 김도경은 차갑게 답했다.

김도경은 언데드에게 쓸데없이 힘을 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 자신을 바라보니 도리가 없었다.

“이건··· 쉽지 않겠군요.”

태일제가 수염을 쓰다듬었다.

상대편 전장에는 아크 리치가 제왕처럼 기세등등하게 서 있었다.

뱀파이어는 수십 마리밖에 안 되었다.

그러나 구울과는 차원이 달랐다.

구울은 보병과 같았다.

속도가 느렸고, 단거리 공격밖에 못 했다.

수가 많아도 한계가 뚜렷했다.

그에 비하면, 뱀파이어는 기병과 같았다.

날아다니며 빠르게 이동하고, 에너지 드레인 공격의 사정거리는 꽤 길었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위험했다.

직접 붙잡히면 피가 빨려 죽기 십상이니까.

쉬이이익-

뱀파이어가 망토 자락을 휘날리며 수십 미터를 날아왔다.

장벽 근처로 뱀파이어가 접근해오자, 각성자들이 긴장했다.

군인, 길드원 할 것 없었다.

한데 섞여서 장벽 뒤에서 맹공을 퍼부었다.

슈웅-

퍼어엉-

타다다다···.

평범한 공격은 뱀파이어를 맞혀도 별 타격을 주지 못했다.

신성력 계열의 공격이 효과적이었다.

“안 통한다!”

“공격에 신성력을 담아야 해.”

“성수를 있는 대로 꺼내라!”

급한 대로 성수 아이템에 화살촉과 탄알을 적셨다.

뱀파이어는 그 모습을 보자 더 사납게 날뛰었다.

솨아아아-

“크아아악!”

에너지 드레인에 걸린 각성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김도경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가 광선검의 손잡이를 치켜들었다.

[특성 발동 : 빛의 군주]

파아앗!

어둠 속, 눈이 시리도록 강렬한 빛기둥이 하늘까지 솟구쳤다.

김도경의 파괴 광선이었다.

슈웅-

김도경은 파괴 광선이 깃든 광선검을 사선으로 그었다.

키이잇!

캬아아아!

치이익···.

파괴 광선의 궤적을 따라, 뱀파이어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타올랐다.

사람들이 환호했다.

“역시, 광휘의 성기사!”

아레스 길드와 박이경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만들어 놓고 쇼하기는···.’

김도경의 활약을 보고, 아크 리치의 안광이 번쩍 빛났다.

아크 리치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파다다다···.

그의 소매에서 무수히 많은 박쥐 떼가 날아올랐다.

시커먼 박쥐 떼의 안광이 빛났다.

“뭐야?”

파아앗- 파앗!

“으헉!”

“뱀파이어다!”

아크 리치가 소환한 박쥐 떼는 전부 뱀파이어로 변했다.

언뜻 봐도 백여 마리.

그 많은 뱀파이어를 소환하고도, 아크 리치는 미동도 없이 꼿꼿이 서 있었다.

힘들어 보이는 기색조차 없었다.

“못 넘어오게 막아!

이쪽 진영에 드디어 공포가 엄습했다.

임진호가 마른침을 삼켰다.

“건우 형은, 차은비 씨는··· 언제 돌아오지?”

촤아아아-

백여 마리의 뱀파이어가 동시에 높이 솟았다.

그와 동시에, 아크 리치가 뼈마디만 남은 손을 위엄 있게 뻗었다.

「데스 필드.」

아크 리치가 저주의 진언을 내뱉었다.

캬아아악!

“으··· 으아아!”

아크 리치를 중심으로, 어둠의 기운이 번져나갔다.

땅에서 시체의 얼굴과 손과 같은 형상이 솟아났다.

지옥도가 펼쳐졌다.

죽음의 얼굴을 마주한 듯한 느낌.

광역 흑마법, <데스 필드>가 장벽까지 타고 올라왔다.

피가 따뜻한 생물에게는 디버프와 대미지를 주고, 언데드에게는 버프를 주었다.

쉬이이익-

뱀파이어 무리가 나란히 장벽 쪽으로 날아왔다.

입을 소름 끼치도록 크게 벌린 채로.

날카로운 송곳니가 비죽 튀어나와 있었다.

하급 각성자들은 혼이 빠져 뒤로 물러났다.

번쩍!

“?”

진한 먹구름에 번개가 번쩍였다.

쿠르르르르···.

휘이이잉-

난파선을 타고 폭풍우의 한가운데 들어간 것처럼.

천지를 뒤흔드는 천둥소리와 함께 물기 섞인 바람이 몰아쳤다.

후욱-

“으아악!”

「-!」

아크 리치도 당황한 듯.

두개골을 올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구름 전체에 전류가 튀고 있었다.

*

한건우가 탄 드래곤은 먹구름 위, 밝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일부러 날씨를 조작해 먹구름을 만들었으니, 전기 에너지가 엄청나게 쌓여 있을 거야.’

한건우의 전격 특성은 조금의 도움만 주었을 뿐이었다.

전기 반응을 일으키는 촉매제였다.

‘여기군.’

먹구름 한복판.

드래곤의 머리가 아래로 향했다.

슈우우우-

드래곤은 날개를 접고 수직으로 떨어졌다.

“아악!”

차은비는 수직 낙하를 견디면서 비명을 질렀다.

한건우가 말한 대로,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런 게 정말로 통할까? 해본 적 없는데···.’

어쩔 수 없었다.

한건우와 함께하면 항상 이런 식이었다.

새로운 도전에 익숙해져야 했다.

콰르르르-

드래곤은 번개가 얽힌 먹구름을 통과했다.

장벽 바로 위, 사람들의 머리 위쪽으로.

괴물처럼 큰 비행체가 쑥 나타났다.

구름 위에서 드래곤이 내려온 것이었다.

“드, 드래곤···.”

치지지직···.

먹구름을 통과한 드래곤의 몸 주변은 푸른 전류로 빛나고 있었다.

처억-

드래곤은 여섯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리고 입을 쩌억 벌렸다.

치지직···.

드래곤의 목구멍 안에서 마력이 용솟음쳤다.

전류와 냉기가 섞인 에너지의 폭풍이 만들어졌다.

‘브레스.’

한건우가 차은비에게 신호를 보냈다.

드래곤의 어깻죽지에 매달려 있던 그녀가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녀의 손을 타고 <신의 가호>의 신성력이 전달되었다.

한건우가 아닌 드래곤에게.

쿠과과과과-

드래곤이 브레스를 쏘았다.

이제까지 보여준 브레스 중에 가장 강했다.

거기다 차은비의 신성력 속성까지 더해졌다.

파스스스···.

기세 좋게 날아오던 백여 마리의 뱀파이어 군단.

한순간에 허공에서 불나방처럼 스러졌다.

그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마치 화염방사기를 맞은 벌떼 같았다.

「-!」

그 뒤에 선 아크 리치도 뒤로 몇 발짝 물러났다.

분명히 타격을 입은 듯했다.

모든 이들이 턱을 다물지 못했다.

“형님.”

감격한 박이경이 주먹을 꽉 쥐었다.

“항상 타이밍이 기가 막히는데···?”

원유경도 어이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드래곤은 몹시 의기양양해졌다.

여섯 날개를 자신 있게 퍼덕이며, 사람들 앞에 위용을 뽐내며 날았다.

“이게 되네요?”

이비현이 말하자, 그제야 차은비는 정신을 차렸다.

“하···.”

방금 그건 한건우의 아이디어였다.

중국의 천망 요원들이 그랬듯, 서로 다른 각성자끼리도 특성 중첩이 가능했다.

그렇다면 드래곤의 브레스에도 중첩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브레스에··· 뭘 어떻게 한다구요?’

차은비는 몹시 당황했지만, 한건우는 진지했다.

‘이 드래곤의 브레스는 강하지만, 언데드를 죽이는 데는 상성이 안 맞아요.’

화룡이나 광룡 계열이라면 모를까.

한건우의 드래곤은 빙룡도 아니고 뇌룡도 아닌 혼종이었다.

언데드를 잡는 데는 적합하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지난번 구울 떼를 쓸어버릴 때도, 한건우가 화염 공격을 더해줘야 했다.

‘그··· 그래서요?’

‘마수의 공격이나, 각성자가 특성을 쓰는 거나 비슷합니다. 차은비 씨의 신성력을 드래곤의 브레스에 중첩해 보시죠.’

‘하지만, 연습도 없이···.’

‘연습은 실전에서 해 보면 됩니다.’

그리고 그게 진짜 통했다.

‘하긴 마수한테도 포션이나 힐이 먹히니··· 인간 각성자와 똑같은 게 당연한 건가?’

차은비는 얼떨떨했다.

쿠웅-

드래곤이 장벽 위에 뒷다리를 걸치고 내려앉았다.

한건우가 눈짓했다.

이비현은 얼른 차은비를 데리고 내렸다.

‘놓칠 수 없지.’

한건우는 다시 드래곤과 함께 날아올랐다.

아크 리치가 균열 안으로 숨거나, 다른 곳으로 도망치기 전에.

이 자리에서 해결을 봐야 했다.

[특성 발동 : 인드라의 뇌전]

파지지직-

먹구름 속에서 번쩍이는 발광이 계속되고 있었다.

모든 전기 에너지가 한건우의 창끝에 모였다.

슈우우우-

드래곤이 균열 입구 쪽으로 날아갔다.

슈욱-

한건우가 창을 아래로 내리쳤다.

창끝이 가리키는 곳은, 아크 리치가 서 있는 장소였다.

바로 그 지점에 낙뢰가 떨어졌다.

우르르- 콰광!

수십 개의 벼락이 모여 떨어진 듯했다.

먹구름의 전기 에너지를 모두 이용한 것이었다.

보통 <인드라의 뇌전>이 만드는 벼락보다 훨씬 강한 위력이었다.

치지이익-

아크 리치의 몸에서 연기가 났다.

흑마법 방어막을 쳤지만, 타격을 다 막아내지 못했다.

툭, 푸스스···.

아크 리치는 온몸의 뼈가 산산조각이 난 채로 쓰러졌다.

“엇!”

“해치웠나?”

장벽 위에서 지켜보던 이들이 흥분에 차서 소리쳤다.

하지만 아크 리치의 생명력은 강했다.

덜그럭, 덜그럭.

큼직한 보석 반지를 낀 손가락뼈가 맞추어졌다.

손목과 팔꿈치가 연결되었다.

드그그그극.

갈비뼈와 목뼈가 맞춰지고, 다른 팔다리도 연결되었다.

마지막으로 두개골을 목 위에 올려놓았다.

두개골 위에 왕관까지 얹자, 다시 푸른 안광이 올라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크 리치는 언데드의 제왕이었다.

저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의 보석은 아크 리치에게 무한한 생명력을 주었다.

한건우는 또 다른 중요한 비밀도 알고 있었다.

‘저 보석은 <심연의 부름> 균열의 핵이야.’

저것만 없애면 미공략 균열은 파훼된다.

굳이 균열 안으로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현재 만주에 열린 균열이 모두 봉합되는 것이다.

한건우의 특성 중에서 순간적인 파괴력이 가장 센 건 <인드라의 뇌전>이었다.

그걸 수십 배 증폭하고도 파괴하지 못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신성력을 담아야 하나?’

「-」

그때 아크 리치가 불길한 주문을 외었다.

그 주문의 뜻을 알아들은 한건우는 귀를 의심했다.

[용이여, 나타나라.]

‘뭐라고?’

끼기기기기···.

뼈가 마찰하는 듯,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쉬이익-

허공에서 거대한 형체가 나타났다.

‘본 드래곤....’

해골만 남은 드래곤이 어둠 속에서 날아왔다.

지면에 스칠 정도로 낮은 비행이었다.

슈우우- 타악!

본 드래곤의 위로, 아크 리치가 올라탔다.

키에에엑!

해골만 남은 본 드래곤이 괴성을 질렀다.

한건우의 드래곤보다 두 배는 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