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자폭
‘어떻게 진화하나 볼까?’
특성 진화는 미지의 영역이니.
두근거리는 마음이었다.
[특성 진화 : 마창 게이볼그의 주인]
-전설 -> 재앙급
-창에 맞은 상대방은 10분간 회복 불가 디버프를 받는다.
‘와.’
믿어지지 않았다.
잠깐 동안 몇 번이나 다시 특성창을 읽었다.
회복 불가는 치명적일 만큼 강력한 디버프였다.
보통 디버프를 없애려면, 디버프를 건 사람보다 더 높은 등급의 힐러가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나보다 더 높은 등급의 힐러는 존재할 수 없지.’
그러니 이 디버프는 없애는 게 불가능했다.
이대로라면 너무 사기여서 그런지.
원래는 한 가지 제한이 있었다.
투창, 즉 창을 던져야만 특성이 발동할 수 있었다.
이번에 재앙급 특성으로 진화하면서, 특성창에서 문구 하나가 사라졌다.
‘창을 던지면’이라는 문구가 통째로 들어내진 것이다.
‘그냥 창을 들고 찌르든, 휘두르든 간에. 아니 창날에 스치기만 해도 회복 불가가 먹힌다.’
대신 10분이라는 제한시간이 생기긴 했다.
별달리 손해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한건우가 누군가를 죽이려 창을 꺼내든다면.
10분은 충분하다 못해 여유로운 시간일 테니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악마의 권능(유일) 발동 : 탐식]
‘어?’
-죽인 자의 특성을 흡수합니다.
-특성 흡수 중
···
-특성 흡수 완료
‘아, 그랬지.’
한건우는 스스로의 부주의를 탓했다.
이걸 잊을 뻔했다니.
천명환은 두 개의 특성을 가진 각성자였다.
끝내 개화하지 못한 <마창 게이볼그의 주인>, 그리고···.
[특성 진화 : 염동력]
-일반->희귀급
“....”
한건우의 시선이 천명환의 시체로 향했다.
‘진작 죽일 걸 그랬나?’
효율이 좋았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하긴 이전에는 천명환을 죽이고 싶어도 그럴 기회가 없었다.
그의 곁에는 항상 특수안보부가 있었으니까.
남들의 눈을 피해 몰래 움직이던 천명환.
그게 바로 죽음을 부를 줄은 몰랐겠지.
한건우는 차가운 눈으로 천명환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천명환은 눈을 크게 뜨고, 두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려는 듯 뻗은 채 죽어 있었다.
“....”
천명환의 시체를 이렇게 방치할 생각은 없었다.
되도록이면 한건우에게 살해당한 게 알려지지 않고, 의문의 실종 정도로 처리되면 좋을 것 같았다.
마침 딱 적당한 특성이 있었다.
‘유적 사냥꾼··· 범죄자들에게 얻은 특성을 이렇게 쓰는군.’
[특성 발동 : 부패의 시간]
-대상의 부패나 부식을 빨라지게 한다.
스스스···.
휘이이이-
단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천명환의 시체가 옷가지와 함께 순식간에 썩어들어갔다.
백골이 허옇게 드러났다.
회색 가루가 푸스스 흩어졌다.
천명환을 세상에서 지워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이건, 생각보다···.’
한건우는 밀려오는 감정에 놀랐다.
분명히 천명환이 밉긴 했지만.
덤덤한 마음일 줄 알았다.
이미 회귀 직전에 그를 죽이지 않았나.
두 번째이니 특별한 감정이 들 것 같지는 않았다.
완전히 오산이었다.
가슴이 뻥 뚫리는 듯 후련했다.
그동안 상황 때문에 억눌러 온 분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래, 내 동생을 건드린 걸 생각하면··· 백 번 죽여도 모자라지.’
회귀 전, 천명환의 장난질에 고통받다 죽은 여동생 지윤이.
지윤이의 잃어버린 행복을 생각한다면.
천명환이라는 인간은 당연히 죽어 마땅했다.
“한건우 씨!”
“?”
이비현이 다급히 한건우를 불렀다.
위이이이-
모래의 회오리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드래곤은?’
한건우는 걱정이 되어 드래곤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키에에엑-
드래곤은 날개를 펄럭이며 위쪽으로 솟구쳤다.
공중에서 한 바퀴 돌면서, 독이 스며든 모래를 털어내고 있었다.
‘미안하군.’
자신이 천명환을 상대할 동안.
드래곤이 몸을 바쳐서 시간을 끌어준 것 같았다.
드래곤도 지독한 모래 공격을 버티기는 힘든 듯했다.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마수라는 드래곤이, 가장 작고 하찮은 모래 알갱이에 당하다니.
어이없는 일이었다.
「-.」
두건을 쓴 남자가 뭐라 주문 같은 단어를 중얼거렸다.
그는 이제 한건우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슈욱- 파바바밧-
사방에서 모래 알갱이가 날아와 회오리에 합쳐졌다.
회오리는 점점 빠르고 강력해졌다.
한건우는 그 안에 섞인 것을 눈치챘다.
잘 눈에 띄지 않지만.
맹독이 발라진 암기가 함께 섞여 있었다.
저 회오리를 정통으로 맞는다면, 누구라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우리라.
한건우를 보며, 흰 가운을 입은 여자 요원이 입이 찢어질 듯 웃고 있었다.
‘기가 막히는군.’
중국 천망의 요원, 두 사람의 콤비가 굉장했다.
둘이서 오랫동안 합을 맞춰온 것 같았다.
“이비현, 나한테 가까이 붙어.”
이비현이 말 없이 한건우의 뒤로 다가왔다.
그녀의 온몸이 긴장해 있었다.
몹시 불안해하는 듯했다.
‘몸에서 떨어진 물질을 조종하는 능력은, 기본적으로 염력 계열.’
염력 계열의 능력도 여러 종류가 있었다.
먼저 일반 특성인 <염동력>.
물체의 움직임만 조종하는 능력이다.
그보다 한층 수준 높은 특성도 있었다.
어떤 정해한 물질 자체를 다루는 것이다.
모래를 다루는 저 남자 요원처럼.
어쩌면 태일제의 <금속 조작>과 같은 수준일지도 몰랐다.
태일제는 금속 물체의 위치만 조종하는 게 아니었다.
태일제의 능력은 금속이라는 물질에 대해서는 거의 전능에 가까웠다.
구성 성분을 바꾸기도 하고.
고체를 액체로, 또 기체로.
물질의 성분과 형질까지도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한건우의 <염동력> 특성은 단순해 보였다.
하지만 방금, 염동력 특성은 희귀 특성으로 진화했다.
희귀 등급의 염동력이라면···.
‘광역화가 된다.’
물건 몇 개를 날려서 조종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래비티 필드>나 <마그네틱 필드>처럼.
일정한 범위 안에서 염력을 쓸 수 있었다.
평범한 각성자라면 이러나저러나 큰 차이가 없겠지만.
한건우는 마력만 1000이 넘는 괴물이었다.
[특성 발동 : 염동력(희귀)]
파아앗!
한건우가 MP를 염동력 특성에 쏟아부었다.
휘이잉-
동시에 거대한 모래 회오리가 한건우를 덮쳤다.
독과 암기가 섞인 죽음의 돌풍이었다.
“저기···!”
이비현이 보호 스킬을 두르고 몸을 움츠렸다.
“죽어라.”
여자 요원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파바바바···.
“?”
회오리가 사그라들었다.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듯했다.
한건우 가까이로는 접근할 수도 없었다.
파스스···.
투두둑.
모래가 비 내리듯이 흩뿌려졌고, 암기는 힘없이 땅에 떨어졌다.
한건우는 태연하게 그들 쪽으로 걸어왔다.
이비현도 한건우의 뒤에 바짝 붙었다.
“갑자기 뭐야!”
여자 요원, <과학자>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아까부터 불길한 느낌이었다.
‘뭔가가 잘못됐어.’
한건우라는 자의 존재는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
한국와 일본의 강한 각성자 정도는 파악해야 하니까.
특히, 이번 만주 사태에 출동한 한국 각성자들.
그들에 대해서는 전부 보고받아서 알고 있었다.
‘저건 한건우가 확실한데?’
한건우의 외형.
그리고 아성체 드래곤을 조종한다는 것.
이미 아는 정보였다.
‘한건우라는 자가 이 정도로 강했나?’
한국은 중국의 한 성 크기 정도 아닌가.
한국에서 날고 기어봐야, 중국의 최상급 각성자들에 비할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방금까지는···.
여자 요원은 보고서에 있던 이상한 문장을 기억해냈다.
‘※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나, 고유 특성이 5개 이상이라는 제보가 있음.’
고유 특성이 5개를 넘는다니?
여자는 그 보고를 비웃었다.
온 중국을 통틀어도 그런 사람은 없었다.
천망의 정보이니 확실했다.
‘그럴 리 없어. 중국에 없으면 세상에 없는 거니까.’
여자는 보고서를 쓴 부하를 질책하기까지 했다.
오늘 보니 그 부하가 옳은 것 같았다.
‘마치 여러 강한 각성자가 한 몸에 모인 것 같아. 어떻게 이럴 수가···?’
여자 요원은 타오르는 듯한 눈으로 한건우를 바라보았다.
가능하다면 한건우를 당장이라도 실험실로 데려가고 싶었다.
낱낱이 파헤쳐 연구하고 싶었다.
스으으···.
여자의 몸 주변에서 어두운 기운이 뿜어져나왔다.
슈웅-
한건우가 창을 돌리며 뛰었다.
경이로운 신체 능력으로, 한달음에 십수 미터를 좁혔다.
‘!’
드래곤의 갑주를 뚫고, 독기가 느껴졌다.
한건우의 몸이 둔감해지는 듯했다.
‘마비독이군.’
한건우가 주춤했다.
여자 요원이 웃으면서 등에 메고 있던 무기를 잡았다.
소형 크로스보우였다.
암기를 조종하는 게 안 통하니, 직접 쏘려는 것 같았다.
한건우는 곧바로 보호 특성을 썼다.
물리적 보호가 아니었다.
마비독을 없애는 것이었다.
[특성 발동 : 아이기스의 보호]
-물리적 공격을 제외한 모든 마법, 독, 저주에 대해 신체 보호막을 형성한다.
드래곤 갑주를 입은 뒤에는 거의 쓸 일이 없던 특성이었다.
이걸 써야만 할 정도로 마비독의 독성이 강했다.
슈욱-
여자가 크로스보우를 발사했다.
한건우의 머리 부분을 노린 것이었다.
머리는 맞추기 어려운 부위다.
그러나 마비독을 맞은 상대라면 식은 죽 먹기였다.
거대한 마수도 단숨에 마비시키는 독이니까.
“어?”
여자가 당황했다.
분명히 한건우는 마비독의 범위 안에 들어왔다.
그런데도 여전히 민첩하게 움직였다.
스치잉-
마창 게이볼그가 여자를 노리고 쇄도했다.
쿠구구구···!
모래의 벽이 한건우를 방해했다.
압축되어 굳은 모래가 창살 모양으로 한건우를 향했다.
단순히 모래를 움직이는 염력은 통하지 않는 걸 알았는지.
모래 자체의 형질을 바꾸며 대응한 것이었다.
터엉!
‘무슨 방어력이.’
압축된 모래는 웬만한 물질보다 훨씬 견고했다.
게이볼그의 일격을 버틸 정도였다.
‘물리력으로는 안 되겠군.’
한건우가 한 손을 높이 들었다.
[특성 발동 : 인드라의 뇌전]
번쩍!
우르르릉-
밤하늘에 푸른 번개가 번쩍였다.
콰앙- 파지직!
벼락이 내리꽂혔다.
피시시식···..
연기가 올라왔다.
“죽었나요?”
이비현의 기대와는 달리.
천망의 요원들이 서 있던 자리에는 모래로 된 돔이 만들어져 있었다.
드래곤의 브레스를 버틴 것처럼.
그 안에서 인드라의 뇌전도 버틴 것이다.
한건우가 의도한 바였다.
피이잉-
한건우가 하늘 위로 작은 불꽃을 쏘아올렸다.
높이 올라간 드래곤에게 보이도록, 신호를 보냈다.
정확히는 그 위에 올라탄 차은비를 부른 것이었다.
‘이 정도면 봤겠지.’
신호를 봤는지 확인하지는 않았다.
[특성 발동 : 아그니의 화염]
콰아아-
모래 돔을 향해 화염을 퍼부었다.
화력이 모자랐다.
아까부터 연속으로 고도의 특성을 썼다.
회복할 틈도 없었던 것이다.
한건우가 살짝 초조해질 무렵.
‘그렇지!’
때맞춰 어마어마한 힐이 들어왔다.
더할 나위 없이 활력이 차올랐다.
콰과과과과-
지옥의 겁화라는 별명에 걸맞도록, 초고온의 불꽃이 퍼부어졌다.
치이이이-
모래 돔은 고열을 받아 도자기처럼 번쩍거렸다.
그 안은 참을 수 없을 만큼 뜨거울 것이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보통 수준의 각성자라도 온몸이 익어서 사망할 열기였다.
콰아앙!
“크어억!”
역시나였다.
열기를 견디지 못한 그들은 모래의 방어벽을 풀고 나왔다.
어쩔 수 없었겠지만.
잘못된 판단이었다.
바깥의 화염은 한층 더 뜨거웠으니까.
콰과과···.
아그니의 화염이 그들을 덮쳤다.
“아악!”
천망의 요원들은 서로 거리를 두고 떨어졌다.
서로 붙어있는 건 손해라는 판단이었다.
그나마 여자 요원 쪽은 급히 물약을 먹으며 회복했지만, 남자 요원의 상태는 더 나빴다.
남자가 두건을 벗어던졌다.
두건이 피부에 달라붙어, 억지로 뜯어내다시피 했다.
치이익-
남자의 피부는 회색에 가까웠고, 돌처럼 딱딱해 보였다.
잔뜩 달아올라 얼룩덜룩해진 피부에서 연기가 피어났다.
천망의 요원 둘은 서로 마주보며 말없이 눈빛을 교환했다.
‘?’
한건우의 뒤에서, 이비현이 속삭였다.
“여기, 누군가 더 있어요.”
“뭐라고?”
한건우는 재빨리 <진동 감지>를 돌려봤지만, 다른 움직임이 느껴지는 건 없었다.
이비현이 뭘 잘못 본 건 아닌가, 생각하는 동안.
남자 요원이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스으으으···.
그의 몸이 변형되고 있었다.
‘저건?’
염제 신광우가 죽기 전에 화염으로 변하던 것처럼.
남자의 몸 자체가 모래로 변하고 있었다.
주위의 모래가 자석처럼 달라붙기 시작했다.
트드드드···.
모래가 아무리 달라붙어도, 남자의 몸 크기는 그대로였다.
극도로 압축되고 있다는 소리였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남자가 자폭을 준비한다는 걸.
“피해!”
한건우는 이비현을 뒤로 밀쳐내면서, 창공에 있는 드래곤에게 들리도록 소리쳤다.
“잘 가라.”
여자 요원의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파앗-
여자의 옆에 갑자기 누군가가 유령처럼 나타났다.
온몸을 검은색으로 두른 자였다.
여자는 그 자의 팔을 꽉 잡았다.
파앗-
그들의 형상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순간이동···?’
대처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한건우는 본능적으로 아공간 무기집에 손을 넣었다.
[크로노스의 왕홀(신화급)]
-왕홀을 가진 자를 제외하고, 모든 것의 시간이 1초간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