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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먹는 플레이어-108화 (108/238)

#108심연의 부름 (2) - 용기사

파앗- 펄럭-

파즈즈즉···.

드래곤이 날개를 제자리에서 펄럭였다.

날개 주위에 심상찮은 공기 흐름이 생겼다.

이내 전류가 튀었다.

쫙 펼친 피막 날개는 크고 탄탄했다.

원래 4개였던 날개도 6개로 늘어나 있었다.

이제 누가 봐도 어린 해츨링이 아니었다.

한건우는 기특한 마음에 드래곤의 목덜미를 토닥였다.

‘아성체로 진화하는 장면을 놓쳤군.’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저절로 커 있는 자식 같았다.

부우우-

여섯 개의 날개가 동시에 아래로 내리쳐졌다.

아직 가벼운 드래곤은 도움닫기 없이 날갯짓만으로 허공에 몸을 띄웠다.

“앗!”

한건우의 길드원들은 강한 바람의 압력에 뒤로 넘어질 뻔했다.

“와··· 형.”

그들은 경외심을 가지고 한건우를 올려다보았다.

살아생전 드래곤을 탄 플레이어를 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것도 바로 자기들의 길드 마스터였다.

“가장자리로 돌아. 가운데는 위험할 거야.”

“알겠습니다, 형님!”

박이경이 선선히 대답했다.

그가 전장을 둘러보았다.

자칫하면 구울들이 황무지로 뿔뿔이 흩어질 수도 있었다.

다른 마수여도 곤란한데, 언데드인 구울은 더 문제였다.

한군데 몰아넣고 해치울 필요가 있었다.

슈우우-

드래곤은 순식간에 창공으로 솟구쳤다.

대지에 선 사람들이 점처럼 작아졌다.

한건우는 조금 긴장했다.

그는 드래곤의 튀어나온 비늘을 꽉 쥐었다.

예전에 한건우는 그리핀을 타고 날아본 적이 있었다.

그리핀은 자존심 강하고 거칠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드래곤에 비할 수 있을까.

드래곤은 오만함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생물이었다.

‘등을 허락했다는 건, 날 인정한다는 거겠지.’

한건우는 호흡을 가라앉혔다. 마음이 안정되었다.

그러자 드래곤의 날갯짓과 숨소리도 한결 차분해졌다.

“!”

확실히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반대로 드래곤의 감정이 한건우에게 밀려들어왔다.

이제 막 커진 몸과 힘을 한껏 뽐내고 싶은 치기.

자신을 부모처럼 키워준 한건우에 대한 신뢰감.

드래곤은 날개를 넓게 펴고 창공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지상의 모든 생명체가 드래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장벽에 올라선 각성자들은 물론이고, 꿈틀대는 구울들까지도.

이성이 없고 본능의 식욕만 남은 구울들이 두 팔을 허공으로 뻗었다.

큼지막한 드래곤을 먹잇감으로 생각한 것 같았다.

크르르···.

드래곤의 분노가 느껴졌다.

대지를 가득 채운 언데드에 대한 본능적인 혐오였다.

한건우는 미소를 지으며 드래곤에게 말했다.

“그래, 쓸어버리자.”

크워어어어!

드래곤이 그 말에 화답하듯, 대지를 향해 입을 크게 벌리고 포효했다.

“!”

솨아아-

드래곤의 피어.

실체화된 공포의 기운이 손에 잡힐 듯 대지를 덮쳤다.

각성자들은 모두 못박힌 듯 제자리에 굳었다.

귀를 막은 자들도 있었다.

이 자리에 민간인이 있었다면 정신을 잃고 기절했을 것이다.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린 구울들의 텅 빈 눈동자에도 공포심이 들어찼다.

필멸자를 얼어붙게 만드는 마력의 파동이었다.

아직 성체 드래곤이 아닌데도, 그 위력은 엄청났다.

한건우가 이제껏 본 마수의 피어 중 최고였다.

‘다른 것들은 진짜 피어의 흉내일 뿐이었군.’

파아아앗!

드래곤은 지상에 가깝게 활강했다.

마치 곡예 비행을 하는 전투기 같았다.

한건우는 한 손에 창을 들고 반쯤 일어섰다.

자세가 아슬아슬해 보였다.

지켜보던 이들이 손에 땀을 쥐었다.

쿠르르릉···.

드래곤의 입 주위에서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가 났다.

푸른 번개가 번쩍였다.

쉬이익-

콰과과과아앙-

뇌전의 폭풍이 몰아쳤다.

전격을 담은 드래곤의 브레스였다.

“!”

드래곤은 성체가 되어야 제대로 된 브레스를 쓴다고 했다.

이게 미성숙한 아성체의 브레스라니.

충격적인 일이었다.

한건우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와 동시에 맹공을 쏟아냈다.

[특성 중첩 : 돌풍]

[특성 중첩 : 아그니의 화염]

파아아악-

한건우는 강력한 두 개의 특성을 하나로 겹쳤다.

초고온의 불꽃으로 이루어진 회오리바람이 지상을 쓸었다.

드래곤이 동시에 두 개의 브레스를 뿜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실전에서 쓸 일이 있을까 했는데.’

혼자서 전쟁터에 나가서 수백, 수천의 적을 상대할 때나 쓸 능력이었다.

바로 지금 같은 경우였다.

그어억!

구울들이 도망칠 새도 없었다.

파스스스···.

드래곤 피어에 얼어붙은 구울들은 처참하게 쓰러져갔다.

전격의 브레스에 맞아 튀겨졌고, 화염의 돌풍 속에 재가 되었다.

불과 전류로 이뤄진 허리케인이 지상을 뒤엎었다.

몬스터 웨이브로 튀어나온 수천 마리의 구울.

그 중 절반 이상을 단 한 차례의 공격으로 해치웠다.

끼에에에!

드래곤이 드높은 울음소리를 냈다.

이번에는 드래곤 피어는 아니었다.

수컷 고릴라가 가슴을 두드리는 것처럼, 자신을 한껏 과시하는 행동이었다.

‘꽤 영리하군.’

한건우도 드래곤이 자랑스러웠다.

드래곤은 거침없이 공격하는 듯하면서도, 상대를 가렸다.

태일제가 쌓은 장벽이나 한건우의 길드가 있는 쪽에는 전혀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

목덜미 옆쪽을 긁어 주자, 드래곤이 날개를 펄럭이며 자신의 영리함을 뽐냈다.

허공을 크게 여러 바퀴 돌자, 금방 HP와 MP가 차올랐다.

[섭취형 아이템 활성화 : A급 고대 히드라의 꼬리 고기]

- 감소된 HP와 MP를 초당 1%씩 자동 회복한다.

전투 중에는 거의 항상 떠 있는 한건우의 메시지 창이었다.

초반에 변이 균열에서 얻은 섭취형 아이템, 히드라의 꼬리 고기.

누구나 좋아할 만한 물건이었다.

특성 여러 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한건우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슈우우우-

바람이 시원하게 스쳤다.

한건우는 그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다.

초반에 한 끗 차이라고 생각한 선택이, 나중에 와서는 엄청난 격차를 만들었다.

그가 걸어온 길이 그랬다.

가장 확실한 증거가 바로 이 드래곤 아닌가.

“한번 더 들어가자.”

드래곤은 말을 알아들은 듯 목을 울렸다.

드래곤이 날개를 펴고 활강했다.

남아있는 구울을 없애 버리기 위해서였다.

*

“세상에, 이럴 수가.”

원유선은 태일제와 함께 장벽 위에 서 있었다.

원유선의 얼굴이 새파랬다.

오늘은 그녀가 알던 상식이 무너지는 날이었다.

“원 대표. 자네도 나도, 똑같은 실수를 했군.”

“응?”

태일제는 창공을 가르는 아성체 드래곤의 궤적을 보고 있었다.

그의 바위 같은 얼굴이 무서울 정도로 일그러졌다.

“우리는 안이했어. 현재에 안주했던 거야.”

“그렇게까지 생각할 건···.”

원유선은 반박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도 잠겨 있었다.

신흥 루키가 나타나서 경계심을 느낀다던지.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1, 2위 자리를 놓고 다투었던 그들은 직감했다.

규격외의 강자가 나타났다는 걸.

한국에서 100위권 랭커, 또는 S급.

그 이상이었다.

“한건우의 어린 나이, 부족한 경험···. 겉으로 보이는 것에 휘둘렸던 게 실책이었네. 게다가 날개까지 달아준 꼴이니···.”

태일제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보통 사람에게는 점으로 보이겠지만, 두 사람에게는 또렷하게 보였다.

태일제는 차은비와 박이경을 보고 있었다.

‘그러게 차은비 문제는 내가 진작 경고했잖아, 영감!’

원유선은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태일제라면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뻔히 알리라.

“태 사장, 사실 긴히 할 말이 있어.”

“김도경 지부장이 한건우에게 패배한 얘긴가?”

“어?”

원유선은 깜짝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걱정할 것이 없지만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이미 주변에는 <마인드 컨트롤> 특성으로 심리 조종을 걸어놓았다.

사람들에게 태일제와 원유선의 대화가 들리지 않도록 조치한 것이다.

그런데 태일제가 균열에서 있었던 사건을 어떻게 알았을까.

거만한 김도경 지부장이 먼저 자기가 졌다고 말했을 리는 없었다.

한건우 쪽에서 말한 건가?

아니, 그들은 곧바로 저 전장으로 나갔다. 태일제와 대화를 나눌 시간은 없었다.

‘설마 이능력 특수전단 부대원들 내에 쁘락치를 심었나?’

원유선이 의심하는 가운데, 태일제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자네가 생각하는 그건 아닐세.”

“어어?”

원유선은 당황했다.

태일제가 희게 돋아난 턱수염을 매만졌다.

‘바보가 아니라면 추측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원래 김도경 지부장의 계획대로라면, <크로노스의 미궁> 균열에서 알파스의 박이경이 죽었어야 했다.

박이경은 저토록 쌩쌩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대신에 김도경이 반죽음 상태로 실려나왔다.

공식적으로는 균열에서 다쳤다지만, 태일제는 안 믿었다.

‘누가? 김도경 지부장 그 자가?’

다 죽고 마지막으로 살아남았다면 모를까.

다른 이들은 멀쩡한데 혼자서 부상을 입을 인물이 아니었다.

김도경 지부장이 하려던 일은 실패했다.

크게 다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단순했다.

김도경은 누군가에게 방해를 당한 것이다.

그럴 만한 인물은 하나뿐이었다.

태일제는 한건우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신화 속 영웅처럼 드래곤을 타고 전장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태일제의 결정은 확고했다.

“김도경 지부장도 쓰임 받는 사람일 뿐. 그런 사건은 상관없어. 작전은 원래대로 가야 하네.”

“...정말?”

태일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

“와아아-”

“한건우! 한건우!”

장벽에는 한건우의 이름을 연호하는 이들로 가득했다.

진심이 느껴지는 환호였다.

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한건우가 나오기 전까지는 고전하며 밀리고 있었다.

자칫하면 퇴각하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거의 한건우 혼자서, 수천 마리의 구울을 해치운 것이다.

모두 알고 있었다.

언제든지 2차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잠시라도 좋으니, 승리의 기쁨에 취하고 싶었다.

그리고 희망도 보였다.

“아레스 길드 최고다!”

심지어 다른 길드의 마스터들까지 기뻐했다.

꼭 마수들을 해치워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용기사의 모습.

그 위용을 목격하고 흥분했던 것이다.

체통을 버리고 환호하는 이들 사이로, 몇몇 사람들만 똥 씹은 표정이었다.

일성과 환인의 길드원들, 그리고 특수안보부 소속 각성자들이었다.

그 중에는 김도경 지부장의 비서인 천명환도 있었다.

치료를 받고 있는 김도경 대신 바깥 상황을 살피러 나와 있던 그였다.

천명환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이를 빠드득 깨물었다.

“저건 또 뭐야···.”

드래곤을 본 천명환의 눈이 질투로 불타올랐다.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보랏빛의 비늘, 여섯 개의 날개.

“아룡종이 아니잖아!”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다.

한건우와 아레스 길드를 감시해야 하는 게 자신의 역할인데.

완전히 큰 펑크를 낸 것이다.

‘아예 몰랐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천명환은 억울했다.

아레스 길드에 드래곤이 있다는 제보는 진작 들었다.

그러나 천명환은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형식적으로 차은비에게 물어보기는 했다.

그녀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아, 그거요? 아룡종 새끼 같던데요.

천명환은 당연히 상부에 보고도 하지 않았다.

‘망할 년이···.’

뻔뻔스러운 차은비의 얼굴을 생각하니 분통이 터졌다.

일부러 모른 척한 게 분명했다.

만주에 와서, 몇몇 이들이 드래곤 새끼를 봤다고 말했다.

테이머인 은설아가 데리고 있고, 크기도 작다고 했다.

그때 오히려 천명환은 확신했다.

블랙마켓에는 와이번 같은 아룡종 새끼를 드래곤이라고 속여서 파는 경우가 많았다.

드래곤을 데리고 있다고 허풍을 떨고, 사실은 아룡종이나 불도마뱀인 게 대부분, 아니 100%였다.

애초에 살아있는 드래곤도 희귀했을뿐더러, 드래곤은 인간이 길들이지 못하는 고등 생물로 알려져 있었으니까.

“고등 생물은커녕···.”

천명환이 혀를 찼다.

드래곤은 한건우의 손에 이마를 갖다대고 부비적대고 있었다.

“하···.”

그때 특수안보부의 후임이 천명환에게 달려왔다.

“작전회의 소집입니다. 저쪽으로 전체 대표자 다 모시랍니다.”

천명환이 뒤를 돌아보았다.

임시로 세워진 막사에 김도경이 들어가고 있었다.

“!”

방금까지 부상 치료를 받고 있었던 사람이 맞는지.

제복을 완벽하게 갖춰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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