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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먹는 플레이어-101화 (101/238)

#101크로노스의 미궁 (4) - 미노타우르스

함정만 해도 까다로운데, 미노타우르스까지 나타나다니.

파티원들의 얼굴이 굳었다.

그러나 다들 S급 각성자들이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교전을 준비했다.

쿠우웅- 쿠웅-.

우워어어···.

모퉁이 너머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드르르륵···. 드르륵···.

뭔가를 바닥에 끄는 소리도 들렸다.

그런데 한쪽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반대편 모퉁이에서도 미노타우르스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

파티원들은 양쪽을 번갈아 바라보며 긴장했다.

한건우는 바람 골렘을 두 마리 연성해서, 미노타우르스들이 있는 쪽으로 보냈다.

한 마리는 왼쪽, 한 마리는 오른쪽으로.

바람 골렘 두 마리는 뭔가를 기다리는 듯이 모퉁이 근처에 서서 얼쩡거렸다.

당연히 일격이 날아왔다.

부우웅- 콰직!

콰아악!

양쪽에서 시간차를 두고 굉음이 들렸다.

아직 미노타우르스는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질질 끌고 오던 무기를 휘둘러 바람 골렘을 해체시킨 것이다.

가공할 만한 속도였다.

“무기를 들고 있군. 도끼인가···.”

박이경이 중얼거렸다.

한건우는 무기 따위를 알아보려 한 것이 아니었다.

미노타우르스 두 마리가 나타나는 속도를 맞추려 했을 뿐.

우어어어-!

쿠웅···.

미노타우르스 두 마리가 동시에 모퉁이를 돌아 모습을 드러냈다.

높은 뿔이 난 누른 황소의 머리가 우뚝 솟아 있었다.

털이 뒤덮인 근육질의 몸은 거대한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황소 꼬리가 달려 있었고, 두 발에는 발굽이 달려 있었다.

두 미노타우르스의 키는 4m 가량.

거인화된 박이경보다 조금 큰 정도였다.

박이경도 이건 자기의 판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당장이라도 달려들려 했다.

“원유선 씨.”

“음?”

그때 한건우가 조용히 원유선을 불렀다.

“지금입니다.”

“!”

원유선은 준비하던 특성을 썼다.

[특성 발동 : 마인드 컨트롤]

원유선의 눈에서 붉은 빛이 번뜩였다.

평소 온화해 보이던 그녀와는 백팔십 도 다른 모습이었다.

우워어···.

쿠웅, 쿵, 쿵···.

강철 도끼를 든 미노타우르스가 신경질적으로 발굽을 바닥에 찍었다.

“어?”

먼저 다가오는 놈에게 덤비려던 박이경이 이상한 낌새를 채고 멈췄다.

크워어어!

우우우!

두 미노타우르스는 한건우의 파티는 안중에도 없었다.

아예 사람들 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미노타우르스는 자기들끼리 공격적으로 이빨을 드러냈다.

성난 황소처럼 발굽을 박았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쿠웅, 쿵, 쿵, 쿵···.

투두두두-

미노타우르스 두 마리가 전속력으로 서로를 향해 질주했다.

박이경은 얼른 벽 쪽으로 물러났다.

어물쩍대다간 미노타우르스에게 충돌할 판이었다.

콰지익!

퍼억!

미노타우르스는 혼신을 다해 동족을 죽이려 들었다.

박이경은 혼자서 당황했다.

“뭐지? 마수들이 왜···.”

균열 안에 나오는 마수들은 인간을 공격하는 게 기본이었다.

자기들끼리, 그것도 동족끼리 싸운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었다.

박이경이 잠깐 뒤에 있는 파티원들을 돌아보았다.

그가 움찔했다.

“윽.”

원유선의 두 눈이 새빨간 빛이 요요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미궁 자체가 어두침침해서인지, 붉은빛이 더 강했다.

원유선은 깊이 집중하고 있었다.

미노타우르스의 정신을 파고들어 환각을 심고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은 접신한 무당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건우와 차은비는 원유선의 주위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녀의 집중이 깨지지 않도록.

“와, 미리 말 좀 해주지.”

박이경이 툴툴댔다.

그는 이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미노타우르스가 환영을 보고 있구나.’

미노타우르스의 눈에, 한건우 일행은 동족으로 보였다.

반면 진짜 동족은 자기에게 덤비는 인간으로 보였다.

‘거 쓸만하네.’

그워어어!

끄으윽···.

미노타우르스의 싸움은 벌써 어느 정도 결판이 났다.

그들 사이에 체급 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몸집이 큰 놈이 작은 놈의 위에 올라탔다.

‘저러면 끝이지.’

퍼억! 퍽! 콰악!

위에 있는 놈이 도끼를 잡고, 아래에 깔린 놈을 잔인하게 박살냈다.

우어어!

몸집이 큰 미노타우르스는 승리에 도취되었다.

도끼자루를 치켜들며 기뻐하는 미노타우르스의 뒤로, 한건우가 창을 들고 다가갔다.

슈웅-.

그으윽!

미노타우르스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한건우를 돌아보았다.

그워어···?

[왜···?]

아직도 환영을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한건우가 대답 없이 창을 뽑았다.

미노타우르스의 심장에 박혀있던 창이 쑤욱 뽑혀나왔다.

쿠웅-!

기습을 당한 미노타우르스의 숨이 끊어졌다.

거대한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한건우는 원유선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에서 붉은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이건 정말 탐이 나는군.’

*

그들은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3단계 미궁을 헤쳐나갔다.

그리고 테세우스의 실타래를 따라 이동하던 중이었다.

그워어억!

스으응-!

타앗-!

치열한 전투의 소리가 났다.

“저 소리··· 김도경 지부장인가?”

박이경은 별 관심 없다는 듯이 말했다.

솔직히 특수안보부의 지부장 따위.

죽으나 사나 박이경에게는 상관 없었다.

“!”

반면 한건우는 창을 돌리면서 빠르게 앞서나갔다.

다른 이들은 오해했다.

한건우가 김도경 지부장을 구하러 달려가는 줄로만 알았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놈이 죽는 건 상관없지만, 가능하면 내 손에 죽어야지.’

김도경의 특성, <빛의 군주>.

최강의 원소를 다루는 그 특성을 눈앞에서 뺏길 수는 없었다.

김도경은 혼자서 아무런 정보 없이 3단계 균열을 주파하고 있었다.

목숨이 간당간당한 상황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김도경은 멀쩡했다.

생각보다는.

쉬이익!

김도경이 섬광처럼 움직이며 광선검을 수직으로 휘둘렀다.

미노타우르스 한 마리가 정수리부터 가랑이까지 반으로 잘렸다.

쿠웅-!

쿵-!

깔끔하게 반으로 갈라진 미노타우르스의 몸이 양쪽으로 쓰러졌다.

“한건우 씨, 오셨군요.”

“....”

김도경의 제복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치명상은 없었고, 팔다리도 성하게 붙어있었다.

“선배님···.”

차은비가 김도경을 바로 치료해 주었다.

그러나 한건우에게 들은 바가 있었다.

‘끝까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치유 능력도 한계가 있으니 마지막 순간까지 능력을 아끼세요.’

‘균열이 공략될 때까지요? 그럼요. 그러고 있죠.’

차은비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힐러로서 본인의 한계를 넘지 않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힐러가 퍼져버리면 그만한 민폐가 없기 때문이다.

도리어 이런 걸 이해해주지 않고, 왜 무리하지 않느냐고 힐러에게 윽박지르는 사람도 있다는데.

먼저 짚어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한건우는 고개를 저으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아뇨. 균열 공략이 전부가 아니라, 균열에서 완전히 나올 때까지. 이번에는 그 때까지 조심하세요.’

‘...?’

균열이 공략되고 나면 모든 공격 요소가 사라진다.

위험할 것이 없는데 왜일까.

차은비는 그 말이 인상 깊었다.

지금도 약간은 힘을 아꼈다.

김도경을 치유해 주었지만, 최상의 상태까지 채워주지는 않았다.

“고맙다.”

그걸 모르는 김도경은 차은비에게 미소를 지었다.

기운을 차린 김도경은 앞쪽을 가리켰다.

“거의 다 왔군요. 조금만 더 가면 균열의 끝입니다.”

김도경은 세 번째로 찾아오는 길이었다.

이제는 구조를 거의 외울 정도였다. 확신에 차 있었다.

한건우는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마터면 4단계 미궁이 나올 뻔했군.’

4단계 미궁까지 갔다면 <테세우스의 실타래>도 소용 없었을 것이다.

그때부터는 미로의 구조가 실시간으로 변형되니까.

김도경은 테세우스의 실타래가 남긴 자취를 따라 앞장섰다.

그들 앞에 김도경이 보았던 공간이 펼쳐졌다.

청동으로 된 크로노스 거신상.

그 앞에 나란히 놓인 다섯 개의 관.

그리고 룬 문자가 쓰여진 표지석.

<죽음 안에 정답이 있다>

“죽음 안에 정답이 있다···?”

“엉?”

차은비가 룬 문자로 된 표지석을 더듬더듬 읽었다.

박이경은 그녀가 이계의 문자를 읽자 놀란 눈치였다.

룬 문자는 이계의 문자였지만, 연구자들에 의해서 일부가 해독되었다.

그녀도, 김도경도 각성자 사관학교에서 룬 문자를 배웠다.

차은비가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죽음이라면 이 관을 말하는 거겠죠? 그리고 균열의 정답이란 건 균열을 해결하는 방법?”

“....”

“지금 우리가 찾는 건 크로노스의 왕홀인데, 이 관 속에 있다는 걸까요. 한번 열어 볼까요?”

그녀는 김도경과 같은 생각을 한 것이었다.

“제가 왼쪽에서부터 두 번째까지 열어 봤습니다.”

“안에 뭐가 있던가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틀린 답을 고른 거죠. 그때마다 랜덤 장소로 이동하고, 미궁의 단계가 올랐습니다.”

“단계가 오른 게 그것 때문이었네요.”

차은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머지 세 개의 관을 살펴보았다.

“다섯 개의 관이라. 우리도 마침 다섯 명인데.”

“무슨 그런 말을 해요!”

박이경이 별 생각 없이 말했다.

차은비는 소름이 돋았다.

“그냥 그렇다는 거지. 나머지 세 개를 동시에 열어볼까?”

박이경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다.

파티원들이 귀를 기울였다.

“미궁도 바뀌는데, 정답의 위치도 매번 변하지 않겠어요? 차라리 다섯 개를 동시에 여는 쪽이 낫겠어요.”

“아하.”

팔짱을 끼고 듣고 있던 한건우는 기함했다.

‘큰일 날 사람들이네. 단박에 5단계로 가려고?’

한건우가 표지석 앞으로 나서자, 모두 그를 쳐다보았다.

“해석이 틀렸습니다.”

“뭐라고요?”

김도경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한건우를 바라보았다.

“미궁에는 수수께끼가 있기 마련이지만, 이런 말 장난에 홀리면 안 되죠.”

“?”

한건우는 거신상의 뒤쪽을 가리켰다.

아무것도 없는 벽처럼 보였지만, 작은 열쇠구멍이 있었다.

문이 있다는 얘기다.

“김도경 지부장님. 길을 잘 찾으시는 것 같은데. 미로를 돌면서 느끼지 않았습니까? 이 안쪽에는 큰 공간이 있다는 걸요.”

“...맞습니다.”

김도경이 머릿속으로 그린 미로의 지도.

가운데에 큰 공간을 두고, 겉으로만 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곳은 그 공간으로 들어가는 관문인가?’

여기가 최종 목적지를 향해 거쳐가는 관문에 불과하다면, 전제가 바뀐다.

이곳에 크로노스의 왕홀이 있을 리 없다.

김도경의 눈빛이 심각해졌다.

“해석이 틀렸다는 건 뭡니까?”

김도경은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

자신의 말에 반기를 드는 한건우가 괘씸했다.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아서 더 거슬렸다.

그러나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

한건우는 표지석의 룬 문자를 창끝으로 가리켰다.

<죽음>.

“이 균열의 이름이 뭐죠?”

“크로노스의 미궁···이요.”

차은비가 답했다.

“크로노스는 시간의 신이자 죽음의 신이죠. 시간의 흐름은 필멸자에게는 죽음을 뜻하니까요.”

“...그럼 <정답>이라는 건요?”

“룬 문자에서 이 단어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

“정답, 그리고 열쇠.”

“열쇠요?”

차은비는 아직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열쇠가 어디에 있다는 걸까?

한건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창을 들고 다섯 개의 관을 스쳐 지나갔다.

마창 게이볼그의 새카만 창날이 위협적으로 빛났다.

한건우가 창을 돌리면서 크로노스의 거신상 앞으로 다가갔다.

창날 주위에 <검풍>이 날카롭게 일어났다.

타앗!

한건우가 번개처럼 빠르게 몸을 날렸다.

검은 창의 궤적이 허공에 사선을 그었다.

스치잉-!

한건우가 먼저 가볍게 착지하고 난 다음.

“!”

콰과아앙-! 쿠르르르···.

낫을 든 청동 거신상이 파괴되었다.

단 일격에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뜻입니다.”

한건우는 거신상 안에 숨겨져 있던 열쇠를 쉽게 찾아냈다.

“열쇠는 크로노스 신상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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