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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먹는 플레이어-100화 (100/238)

#100크로노스의 미궁 (3) - 미궁 3단계

“앞으로 무슨 트랩이 나올지 모르겠네요. 방금 정도라면 제가 막아낼 수 있겠지만....”

차은비가 걱정스런 말투로 중얼거렸다.

한건우는 골렘을 하나 연성했다.

[특성 발동 : 골렘 연성]

언뜻 보기엔 골렘을 만들 재료가 없어보였다.

미로를 이루는 벽은 건드릴 수 없고, 부서진 돌벽 조각도 모두 환각이니까.

한건우가 고른 재료는 어디에나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스스스···.

‘바람 골렘.’

압축된 공기로 만든 바람 골렘이 일어섰다.

크기는 사람의 2배 정도.

완전히 투명한 것은 아니었다.

자세히 보면 우글거리는 공기의 움직임으로 골렘의 형상이 보였다.

“어?”

“이건···.”

박이경과 차은비는 모두 S급 각성자였다.

바람 골렘 정도는 쉽게 감지할 수 있었다.

“형님. 골렘도 만들 수 있으십니까?”

박이경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그가 진지하게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들이 이렇게 놀라는 이유가 있었다.

골렘을 연성하고 다루는 건 드문 능력이었다.

그건 보상 스킬이나 스킬 주문서 정도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다.

골렘과 관련된 특성을 가진 소환사 클래스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한 줄 알았다.

“...?”

차은비는 얼른 한건우의 두 손을 살펴보았다.

혹시나 고대 소환석 같은 희귀한 아이템이라도 얻은 건가 했다.

그러나 한건우의 손에는 창 한 자루가 쥐어져 있을 뿐이었다.

‘이건 분명히 특성인 거야.’

차은비가 확신했다.

한편으로는 혼란스러웠다.

‘이럴 수가 있나? 대체···.’

한건우가 보이는 능력에는 한계가 없었다

그는 시스템의 축복이라도 받은 것일까?

보통 각성자는 고유 특성 1개가 기본이었다.

2개가 있으면 행운아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런데 한건우가 이제까지 보인 능력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차은비는 한 번도 이런 각성자를 본 적이 없었다.

“....”

차은비는 균열에 들어오기 전에 들은 요청을 떠올렸다.

-태일제 마스터께서 복귀를 요청하십니다.

아니, 그건 요청이 아니라 지시였다.

그녀는 태일제가 보낸 비서에게 확답을 주지 않고 보류했다.

그런 자신이 낯설었다

이전까지는 당연히, 파견 기간만 끝나면 일성길드에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게 왜 당연하지?’

새로운 의문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스으윽-.

바람 골렘이 앞장서서 나아갔다.

압축된 공기로 된 골렘은 사람처럼 두 발로 걸었다.

슈욱!

다시 한 번, 앞 칸에서 강한 산성 독액이 날아왔다.

치지지직···.

바람 골렘은 산성 독액을 흡수하듯이 받아냈다.

산성 독액 트랩은 거기뿐이었다.

미로의 칸마다 트랩은 각양각색이었다.

골렘이 발을 디디는 순간, 트랩이 나타났다.

트드드드···.

바닥에서 뾰족한 쇠침이 솟아오르는 곳도 있었다.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모르고 지나가다가는 꼬챙이에 꿰인 고기 꼴이 될 것이다.

피잉-! 핑-!

천장에서 독화살이 비처럼 내려꽂히기도 했다.

골렘을 앞세우는 건 효과적이었다.

사람이 들어가기 전에 트랩을 미리 작동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트랩이 작동된 뒤에 길을 지나가는 건 쉬웠다.

한건우가 박이경을 돌아보며 충고했다.

“박이경, 거인화를 풀어.”

당장 전투를 하는 것이 아니니, 거인화된 몸을 오래 유지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트랩이 있는 미로에서 몸의 부피가 큰 건 도리어 약점이었다.

“좋습니다!”

박이경이 선선히 대답했다.

이제 박이경은 한건우의 말이라면 거부하는 일이 없었다.

팥으로 메주를 쑨데도 곧이들을 판이었다.

스으윽···.

박이경이 원래 크기로 돌아왔다.

거인화 특성을 풀어도 2미터에 육박했다.

그 직후, 다음 칸으로 이동했을 때였다.

바람 골렘이 뚜벅뚜벅 걸어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칸에는 트랩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한건우도 순간적으로 방심했다.

판단 미스였다.

스릉-!

벽의 보이지 않는 틈에서 레이저와 비슷한 광선이 쏘아졌다.

광선은 순식간에 가로 방향으로 훑으며 지나갔다.

바닥으로부터 딱 2미터 정도의 높이였다.

스컹!

“!”

바람 골렘의 허리가 반토막이 났다.

사아아···.

박이경은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모면했다.

그의 굵은 머리카락이 몇 가닥 잘려서 허공에 흩날렸다.

“어···.”

방금의 레이저 트랩은 엄청나게 빨랐다.

박이경도, 차은비도 반응하지 못할 정도였다.

박이경은 <신체 강화>를 한 상태였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신체 강화는 물리적인 공격에는 잘 버티지만, 광원 공격에는 취약하니까.

만일 박이경이 거인화를 한 상태로 저걸 정통으로 맞았다면···.

“....”

바짝 긴장한 박이경이 마른침을 삼켰다.

“...시간차가 있는 트랩도 있었군.”

한건우가 바람 골렘을 다시 연성했다.

레이저가 조금만 아래로 지나갔어도, 박이경의 머리 윗부분이 잘려나갔을지도 모른다.

“이제 바로 들어가지 말고 몇 초는 지켜보자.”

“네.”

그때부터는 간격을 두고 지켜봤다.

이동 속도는 조금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몇몇 칸은 아예 트랩이 안 나왔다.

“트랩이 없는 칸도 있네요?”

차은비가 물었다.

“아마 환각 트랩이었을 겁니다.”

“아···.”

양쪽의 벽이 점차 좁혀들어온다던지, 갑자기 쏟아지는 물에 잠긴다던지.

환각을 이용한 트랩은 더 악랄했다.

한건우 일행은 정신 방어력이 높아진 상태였다.

서리거인의 뿔피리 덕분이었다.

환각 트랩은 아예 걸리지 않았다.

실체를 가진 물리적인 트랩만 작동하는 셈이었다.

그때 박이경이 미로의 구석을 가리켰다.

“저기 있는 건 뭡니까?”

“?”

희미한 실 같은 게 허공에 휘날리며, 금빛 광채를 뿌리고 있었다.

“음··· 테세우스의 실타래 같아요.”

그걸 신중하게 관찰하던 차은비가 말했다.

“그게 뭔데?”

“미궁 균열에서 쓰는 아이템이에요. 아마 김도경 선배님 같은데요? 이걸 따라가보면···.”

“하, 선배님? 하여간 각성자 사관학교 놈들.”

박이경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그가 이상한 쪽에 꽂힌 모양이었다.

차은비는 애써 못 들은 척했지만, 박이경은 계속 시비를 걸었다.

“너네들은 그게 문제야. 깡패들이냐? 서로 평생 형님, 아우 하면서.”

“뭐예요? 깡패 같은 건 알파스 길드랑 박이경 씨겠죠!”

“뭐라고?”

“후우···.”

한건우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그들 둘은 흠칫 놀랐다.

“차은비 씨 말대로 이 실타래를 따라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한건우가 침착하게 말했다.

이 실타래는 김도경이 지나간 궤적을 보여주었다.

김도경이 지나간 방향대로 은은하게 빛결이 흐르고 있었다.

이걸 따라가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미로를 헤매는 김도경과 합류하거나, 김도경이 도달한 목적지에 다다르거나.

현재로서는 둘 다 나쁘지 않은 선택지였다.

그리고 똑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무사하셨군요.”

“!”

코너를 돌자, 원유선과 마주쳤다.

그녀는 마치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 같았다.

한건우는 원유선을 달리 보았다.

‘기척을 저렇게 완벽히 속인다고?’

각성자가 기척을 숨길 수야 있었다.

그녀의 기척은 무생물에 가까울 정도로 깨끗했다.

원유선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케 안 죽고 살아있었네?”

박이경이 원유선을 보고 이죽거렸다.

그가 비웃은 이유가 있었다.

원유선은 정신 계열 능력자였다.

그녀의 특성은 <마인드 컨트롤>.

그녀는 다른 이들의 정신을 조종하는 능력이 있었다.

암시를 걸거나 환영을 보게 해서 정신착락을 일으켰다.

정신 방어력이 낮은 사람이면,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을 정도였다.

이처럼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원유선이었다.

그런 그녀도 단 한 가지 취약한 점이 있었다.

“혼자 있을 때는 별 도리 없잖아. 아닌가?”

원유선의 강점은 타인이 있을 때 빛을 발했다.

주위에 아무도 없으면 능력을 쓸 수 없지 않느냐고.

박이경은 바로 그걸 꼬집는 것이었다.

“박이경.”

한건우가 경고의 의미로 이름을 부르자, 박이경이 멋쩍게 두 손을 들었다.

원유선이 피식 웃었다.

‘미친 개한테 주인이 생겼군 그래.’

원유선은 처음 균열에 떨어지자마자, 이 미로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고대의 환각이네.’

고대의 환각은 진짜라고 믿을수록 실제와 가까워졌다.

그러니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이었지만, 원유선에게는 별 것 아니었다.

환각을 예사로 만들어온 그녀였다.

어느 벽이 환각이고, 어느 벽이 진짜인지 구별하는 건 땅 짚고 헤엄치기만큼 쉬웠다.

처음에는 미로가 단순했다.

마수도 나타나지 않았고, 목숨을 위협하는 함정도 없었다.

원유선은 어려움 없이 길을 나아갔다.

마침 김도경이 썼을 법한 <테세우스의 실타래>의 흔적도 발견했다.

김도경과 합류하기 위해서 그 궤적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나 도중에 ‘미궁 2단계’라는 메시지가 떴다.

한순간에 상황이 바뀌었다.

‘박이경 말이 틀린 건 아니네.’

정신을 속이는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면 무엇 하는가.

속일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는데.

원유선은 S급 미궁의 갖가지 함정 앞에서 뼈아픈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다른 탱커와 힐러가 파티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혼자서 모든 걸 헤쳐나가는 상황까지는 대비하지 않았다.

그게 패착이었다.

이 안에서 함부로 움직이다가는 어이없이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상황일텐데?’

파티원 없이 혼자서 버틸 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김도경이나 한건우 정도면 모를까···.’

그 와중에 세 사람의 기척이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원유선은 안심하고 있었다.

박이경의 건방진 도발 같은 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이쪽을 따라가시죠.”

한건우는 깍듯하게 원유선을 맞이하고, 테세우스의 실타래가 향한 방향을 가리켰다.

“이걸 따라가면 김도경 선배님이 있겠죠?”

차은비가 한건우에게 물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미로의 끝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미로의 끝이요? 하지만 김도경 선배님이 <크로노스의 왕홀>을 찾았다면 벌써 균열이 공략됐을 텐데···.”

한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왕홀은 아직 찾지 못했다는 얘기죠. 좀 속도를 내겠습니다.”

“어떻게요...?”

한건우는 바람 골렘을 여러 개 만들었다.

이제 경로가 확실하니, 골렘과 함께 붙어서 이동할 필요가 없었다.

골렘 여러 마리를 연성해서, 계속해서 선발대로 보냈다.

실타래를 따라가도록 한 것이다.

쿠구구국!

콰르르···.

앞쪽에서 무시무시한 트랩들이 작동되는 소리가 들렸다.

원유선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놀란 눈으로 한건우를 바라보았다.

‘이게 뭐야. 골렘 소환까지···?’

사실 원유선은 이전부터 의심을 품고 있었다.

한건우가 능력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고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 만주 원정에서는 한건우의 자세가 달라진 것 같았다.

더이상 자신을 숨기는 것 같지 않았다.

‘이제 자신을 드러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나?’

원유선은 그 판단을 조소했다.

‘아무리 강해도 어느 정도는 숨기는 편이 나을텐데. 역시 어리긴 어려.’

한건우의 나이를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현명하지 못한 젊은 각성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려고 안달이니까.

띠링-!

그때 또다시 알림음이 들렸다.

“허.”

한건우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마를 짚었다.

“?”

다른 이들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알림음에 이어서 또다시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긴급)균열 조정 : 미궁 3단계]

“어!”

다들 경악하는 가운데.

한건우는 김도경을 저주했다.

‘김도경 이 미친 놈. 길은 또 왜 이렇게 잘 찾아?’

김도경은 그 사이에 미로를 두 번째로 주파해서, 또다시 헛짓거리를 한 모양이었다.

‘덕분에 미궁의 난이도만 올라갔군.’

우워어어···.

쿠웅···.

미궁 곳곳에서 깊고 묵직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황소의 울음을 연상시키는 마수의 소리였다.

“저건 설마···.”

“미노타우르스.”

박이경이 너클을 쓰다듬으며 제깍 대답했다.

“헉···.”

미노타우르스면 웬만한 <미궁> 계열 균열에서는 최종 보스인 주인 급이었다.

그런 강력한 마수가 이제는 미궁 곳곳에 돌아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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