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만주 정벌 (1) - 회담
“네. 만주요. 따로 들은 소식 있으신가요?”
“아니, 말해 봐.”
한건우는 속으로 긴장하고 있었다.
‘그래. 다를 수도 있긴 하지만···.’
한건우가 아는 세계, 그리고 현재 살아가는 세계.
둘 사이의 간극이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첫째로는 한건우가 예전과 다르게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개입함으로써 죽었을 사람들이 살았고, 살아있을 사람들이 죽었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행동의 차이가 변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마치 나비 효과처럼.
하지만 이번 일은 납득이 안 되었다.
‘하지만 이런 큰 재해까지도 앞당겨질 수 있는 건가?’
조금의 오차가 있는 거라면 이해가 될 것이다.
무려 3년의 차이였다.
그가 알기로 만주 사태는 3년 후에나 일어날 일이었다.
이비현은 한건우에게 설명했다.
“조짐은 몇 달 전부터 보였다고 합니다. 중국 만주 지방에 균열이 생기는 빈도가 늘었다고 해요.”
“그런가.”
예전과 달리 외국과의 소통이 활발하지 않은 요즘.
외국의 소식은 고급 정보에 속했다.
각국 정부는 자국민을 지키기도 급급했다.
국경에 아예 장벽을 쌓은 나라가 많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온라인 상으로도 통제가 심했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외국의 소식은 간략하게 단신으로만 내는 편이었다.
사건을 속속들이 취재하거나 보도하지는 않았다.
정부의 통제에 따르는 것이었다.
국내에 알려지면 혼란이 일어날 만한 뉴스가 한둘이 아니니까.
“네, 게다가 그 균열의 등급은 점점 높아졌고요.”
“그건 대형 균열이 터질 징조지.”
“흔히 그렇다고들 하죠.”
이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S급 균열이 터지기 전에 나타나는 징조가 있었다.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하기 전에 몇몇 현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그걸 알고 있었다.
이비현이 태블릿 화면을 보여주었다.
“이 영상을 보세요.”
“뭐지?”
“얼마 전에 북쪽 접경지역에서 내려온 미등록자가 찍은 거예요.”
이비현이 보여준 건 자연 풍경을 찍은 영상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메마른 황무지가 보였다.
곧 카메라 렌즈는 하늘을 향했다.
하늘은 특이한 모양의 구름으로 빽빽하게 차 있었다.
물결로 된 선이 거미줄처럼 퍼지는 듯했다.
“균열운이잖아.”
“···이걸 아세요?”
“뭐?”
한건우는 이비현에게 되물었다.
‘아, 아직은 모르는 건가.’
지금 균열운의 존재는 상식이 아니었다.
균열운이라는 게 세간에 널리 알려진 게 만주 사태 때문이었다.
“만주 지방에 남아있던 몇 안 되는 중국인들이 이 구름을 보고 다 도망갔다고 하네요.”
“....”
균열운.
이계의 에너지가 만드는 특수한 모양의 구름이었다.
최상급 균열이 생기기 전에 간혹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보통은 희미하게 나타나서, 그게 균열운인지 그냥 구름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 영상은 달랐다.
균열운의 형상이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뚜렷했다.
온 하늘을 뒤덮고, 지평선까지 이르러 있었다.
이 정도면 정부 계측기에도 이상 징후가 잡혔을 것이다.
‘이건··· 내가 알던 만주 사태가 맞아.’
한건우는 회귀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정보는 <기억의 석판> 특성으로 머릿속에 저장해 놓았다.
혹시나 미래가 변하면서 기억이 혼동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직접 보아서 아는 사건과 간접적으로 들은 소식도 구분했다.
직접 본 게 아니면 사실과 다를 수도 있었다.
「만주 지방에 S급 균열 10개가 연이어 터진다.」
「중국 정부는 각성자 부대를 급파시켜 위험 상황에 대처하려 애쓴다.」
「3개의 균열은 성공적으로 공략하지만, 미공략된 균열이 생긴다.」
「미공략 균열에서 마수들이 튀어나오고, 만주 지방은 야생화된 마수들이 차지한다.」
「중국 정부는 만주 땅을 포기한다.」
「중국의 각성자 부대는 마수들을 한반도 쪽으로 몰아낸다.」
···
여기까지는 들어서 아는 사실이었다.
이 다음부터는 한건우가 직접 체험했다.
‘정부는 이 사건을 국가 존폐급의 위기로 보고, 계엄령을 선언했지.’
특수안보부가 전면에 드러나 총 지휘를 맡았다.
역시 특수안보부는 영리했다.
이 절체절명의 사건을 도리어 기회로 사용했으니까.
전시 작전이 시작되었다.
군부대를 동원한 건 물론이었고, 전국의 각성자들을 호출했다.
전술 배치는 교묘하게 짜여졌다.
그들은 평소 자기들에게 우호적이지 않던 강자들을 가장 위험한 곳에 배치했다.
정부는 결국 사태 진압에 성공했다.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
그리고 각성자들의 세계는 특수안보부가 원하는 대로 재편되었다.
한편 그들이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일어났다.
만주에서 죽은 사람들은 모두 등록 각성자였다.
그들이 죽고 나자, 반대급부로 미등록자들의 세력이 커졌던 것이다.
특수안보부는 이번에는 미등록자에게 칼을 빼들었다.
‘각성자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국가적 배신자!’
미등록자들에게 낙인을 찍었다.
친정부 언론도 미등록자를 총공격하기 시작했다.
범인이 잡히지 않은 악랄한 범죄도 덮어씌웠다.
그전까지는 비교적 음지에서 탄압했다면, 그때부터 양지에서도 탄압이 이어졌다.
특수안보부는 자신들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 미등록자를 마음껏 사냥하고 학살했다.
한건우가 속해 있던 이능력 특수전단이 그 손발이 되었다.
국민들은 묵인했다.
오히려 환호하는 분위기였다.
특수안보부의 입지는 더욱 두터워졌다.
돌이켜볼수록 확실한 한 가지.
‘만주 사태는 특수안보부에게 천운이었어.’
그들이 손해본 것은 하나도 없었다.
철저하게 이득만을 챙겼다.
하지만 이제는 다를 것이다.
한건우가 미소지었다.
‘좋아, 차라리 잘 됐어.’
특수안보부에게 기회가 되는 일이라면, 한건우도 마찬가지였다.
“비현아, 이 영상 언제 찍은 거라고 했어?”
“어제요.”
한건우의 표정이 바뀌자, 이비현이 어리둥절하면서도 대답했다.
“그렇다면 곧 호출이 오겠군.”
“호출이요?”
“정부의 호출. 이 사태는 국가 규모로 진압하려고 할 거야.”
“...!”
이비현이 눈을 크게 떴다.
한건우가 저렇게 확신하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졌다.
그걸 알기에 한건우의 말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다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불안해졌다.
그런 그녀에게 한건우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너희 솜브라도 최정예 인력을 준비해 줘.”
“네? 설마··· 저희보고 정부 소환에 응하라는 건 아니시죠?”
황당해진 이비현이 물었다.
한건우는 고개를 저었다.
“정부는 아니지. 나를 도와주면 좋겠어.”
“....”
이비현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했다.
생각보다 더 큰 일이 닥쳐온다는 걸 느꼈다.
**
한건우가 자신의 집무실 문고리를 잡았다.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상당했다.
‘기다리던 불청객이 왔군.’
특수안보부의 심부름꾼이 벌써 도착한 모양이었다.
길드 마스터 집무실에 숨어들어 있다니.
그들다운 행동이었다.
집무실 안에 한 남자가 우뚝 서 있었다.
이능력 특수전단의 권석진이었다.
‘뭐지? 권석진 대장이 직접··· 아, 아직 분대장이지.’
한건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한건우 플레이어,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권석진 분대장이 깍듯하게 인사했다.
“저는 이능력 특수전단 소속 권석진입니다. 긴히 전할 말씀이 있습니다.”
“고생 많으십니다. 어떤 용건이시죠?”
한건우가 전혀 기분나쁜 기색 없이 응대했다.
권석진 분대장은 흠칫 놀랐다.
그러나 그는 훌륭한 군인으로,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권석진 분대장이 본론을 말했다.
“오늘 저녁 8시, 각성관리청장 주관으로 길드마스터 긴급 회의가 열릴 예정입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이니 반드시 참석해 주십시오.”
권석진 분대장은 예의를 갖추었지만, 겁먹거나 위축되지 않고 당당한 태도였다.
한건우는 유력한 길드의 수장이자 공식적으로 S급 각성자였다.
그 앞에서 고개를 뻣뻣이 들고 일정을 통보한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놀랄 만한 일이었다.
권석진의 전투력은 A급 중에서 최상위였다.
S급 최하위권과 비벼볼 수 있을 만큼 강했다.
그러나 그게 이유는 아니었다.
‘이능력 특수전단이라는 이름 덕분이겠지.’
문제를 일으키는 각성자를 처리하는 각성자 특수부대, 이능력 특수전단.
웬만한 각성자는 피하고 싶어하는 조직이었다.
아무리 강한 각성자라도 이능력 특수전단을 대놓고 건드리지는 않았다.
길드 마스터들은 콧대가 높고 자존심이 셌다.
길드 허가권을 틀어쥔 정부지만, 쉽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능력 특수전단에서 직접 나와서 메시지를 전한 건 일석 이조의 효과가 있었다.
사안이 얼마나 심각한지 강조하고, 회의에 불참하면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간접적인 경고도 할 수 있었으니까.
‘원래도 이런 식이었나.’
한건우는 만주 사태 당시 이능력 특수전단 소속의 일개 부대원일 뿐이었다.
간부들의 움직임까지는 몰랐다.
“또한 회의에 관한 내용은 전부 보안사항입니다. 길드원들에게도 비밀로 해 주십시오.”
“잘 알겠습니다.”
권석진 분대장이 짧게 묵례를 하고 나갔다.
아레스 길드 건물을 빠져나온 권석진은,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한건우 플레이어··· 예상과 전혀 다르군.’
오늘 권석진은 길드 연락책을 맡아 하루종일 대형 길드를 돌아다녔고, 여러 명의 길드 마스터를 보았다.
반응은 대체로 예상한 대로였다.
알겠다면서도 불쾌함을 숨기지 못했고, 회의를 여는 이유를 끝까지 캐물었다.
그에 비하면 한건우와의 만남은 짧고 깔끔했다.
‘그런데··· 내 얼굴을 알고 있었나?’
분명히 처음 만나는 사이였다.
그런데 한건우는 잘 아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자신을 익숙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권석진 분대장은 그 미세한 차이를 구분했다.
‘자기소개를 하기도 전에 나를 알아본 것 같았어. 특수전단 간부 프로필을 입수한 건가? 철저한 놈이군···.’
권석진 분대장은 오해를 키우고 있었다.
**
저녁 7시 55분, 청와대 회의실.
8시 회의를 앞두고 모여있는 인원은 15명 정도였다.
모두 유력한 길드의 마스터였다.
“크흠···.”
예상치 못한 정부 호출을 받고 저녁 일정을 취소하고 온 터라, 모두 심기가 불편했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서 급히 온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도 회의가 왜 열렸는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최소 A급.
S급도 몇 명 있었다.
그들의 존재감은 공간의 분위기를 얼려 버릴 듯했다.
“오늘 회의, 각성관리청장 주관이라며. 왜 청와대로 부른 거야? 불편하게시리.”
한 길드 마스터가 큰 소리로 불평했다.
청와대 안으로 들어오려면 몇 중의 마력 보호막을 통과해야 했다.
국회나 청와대, 주요 부처는 각성자들의 테러를 막기 위해서 나름의 보호장치가 있었다.
그때 한 중년 여성이 회의장에 들어오면서 그를 비웃었다.
환인 길드의 원유선이었다.
“어리석긴.”
원유선을 보고, 안에 있던 자들은 흠칫 놀랐다.
‘환인의 마스터까지? 그럼 일성이나 알파스, 아레스에서도 오나?’
‘이거 보통 규모가 아닌데···.’
몇몇 이들은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불평을 했던 자의 얼굴은 울그락푸르락했다.
다른 길드 마스터들 앞에서 면박을 당하는 건 참기 힘든 모욕이었다.
“아니, 유선 누님···. 어리석다뇨.”
그가 소심하게 반항했다.
“장소가 장소인데 모르겠니? 대통령 주관인 거지.”
원유선이 말을 끝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회의실 앞문이 열렸다.
“...어?”
착석해 있던 길드 마스터들이 놀랐다.
비서나 경호원도 없이 혼자서 걸어들어온 남자는 대한민국의 대통령, 정남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