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헤드헌팅 (3) - 드래곤 부화
이계와 연결된 미공략 균열이니, 인명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을 터였다.
긴장한 채로 기다린 것도 한참.
“....”
“얼마나 걸리는 거예요?”
“음··· 분명히 금이 가기는 했는데 말이죠.”
마수의 알은 잠잠했다.
도무지 언제 부화할지 알 수 없었다.
“음··· 분명히 금이 가기는 했는데 말이죠.”
“저번에 본부화기에서는 어땠지?”
한건우는 장영표를 재촉했다.
“...저도 기계를 주문받아 만든 것만 봤지, 부화하는 건 못 봤습니다.”
한건우가 잠시 눈을 돌리는 사이였다.
부르르르···..
부화기의 유리돔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어, 안돼!”
은설아가 비명을 질렀다.
금방이라도 돔이 깨져서 유리조각이 알 위로 쏟아질것만 같았다.
‘뭔가 이상한데?’
기계가 고장난 것 같지는 않았다.
이건 알에서 나오는 진동이었다.
티잉-!
찌지직-.
커다란 보라색 알이 꿈틀, 움직였다.
부화기에 박혀있던 드래곤 하트의 색깔이 바뀌고 있었다.
덜컥.
드래곤 하트가 홈에서 빠져나오려 했다.
떨어지려는 걸 한건우가 급히 받쳤다.
두근, 두근.
슈우우우···.
“어.”
한건우는 순간적으로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심장에서 열기가 뿜어져나와 부화기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했다.
‘이런···. 실수했다.’
염동력을 쓸 것을.
왜 직접 손을 댔을까.
-기운이 섞이면... 혼종이 태어나기도 한다죠.
장영표의 말이 귀를 맴돌았다.
치지직···. 퍼엉!
알이 기세 좋게 폭발하듯 깨졌다.
부화기의 유리돔도 부서졌다.
알 속에서는 연회색의 연기가 피어나왔다.
“앗!”
은설아가 깜짝 놀라며 얼굴을 가렸다.
유리조각이 멈추었다.
한건우가 염동력을 쓴 것이었다.
공중에 뜬 유리조각을 치우자, 자욱한 연기가 가라앉았다.
그들 셋은 숨 쉬는 것도 멈추고 그걸 바라보고 있었다.
“뀨욱.”
“?”
한건우와 은설아의 눈이 마주쳤다.
“설아야, 너도 들었···?”
“뀩.”
이런 소리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았다.
갓 태어난 강아지나 고양이였던가.
연기가 사라지자, 꾸물거리는 생물체가 보였다.
“....”
통통한 아기 도마뱀 같았다.
색깔은 검은색에 가까운 보라색이었다.
짧은 다리가 넷.
등 쪽에 달린 조그만 날개가 넷.
꼬리를 동그랗게 말고, 눈도 못 뜬 채로 울고 있었다.
“저게··· 해츨링?”
지고의 마수이자 최강의 생명체인 드래곤.
드래곤은 보통 마수 도감의 맨 마지막 장에 있었다.
도감의 삽화에서는 좀더 징그럽고 울퉁불퉁했던 것 같은데.
영롱하게 빛나는 비늘 탓인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우와, 세상에 너무 귀여워요!”
은설아는 첫눈에 사랑에 빠진 듯했다.
그녀가 겁도 없이 해츨링을 안아들려고 두 손을 내밀었다.
한건우가 만류했다.
“잠깐···.”
“캬아악!”
해츨링이 거부감을 드러냈다.
충격을 받은 은설아가 주춤 뒤로 물러났다.
‘이런. 테이밍이 안 먹혔나?’
한건우는 좌절했다.
드래곤은 드래곤이라는 건가.
알에서 깨워서 눈도 뜨기 전인데도.
폴짝!
그때 해츨링이 네 다리를 쭉 펴고 뛰었다.
“어?”
해츨링이 한건우에게 폭 안겼다.
한건우는 엉겁결에 두 팔로 해츨링을 받쳐들었다.
아기를 안는 것 같은 자세였다.
“흠··· 각인이 일어난 걸까요?”
장영표가 턱을 쓰다듬었다.
“뭐, 각인이라고?”
“알에서 깨어나서 처음 본 걸 부모라고 생각하고 따르는 거죠. 조류에게는 흔한 일이거든요.”
“드래곤도 그런 게 있나?”
마수의 부화나 새끼 양육 같은 건, 흔히 알려진 지식은 아니었다.
한건우가 모를 정도면 웬만한 각성자는 모른다고 봐야 했다.
하물며 드래곤은 더했다.
많은 부분이 신비에 싸여 있었다.
“아빠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은설아가 신기한 듯이 말했다.
한건우는 자기 품에 편안하게 안긴 해츨링을 내려다보았다.
빙룡의 심장에서 태어나서인지, 체온이 상당히 차가웠다.
“역시 빙룡의 새끼인가?”
장영표도 고개를 저었다.
“빙룡은 은백색 비늘이지 않습니까? 흠, 저런 색의 드래곤이 있던가요?”
“어···.”
한건우도 할 말이 없었다.
이런 색상의 드래곤이 있다는 건 처음이었다.
잠시 혼란에 빠져있을 때였다.
투두두두!
멀리서 한건우가 설치한 포탑이 작동하는 소리가 났다.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된 것이다.
“키이잇!”
해츨링이 한건우에게 안긴 채로 비늘을 곤두세웠다.
조그만 주둥이를 벌리고,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샤아아아악!
눈도 못 뜨고 있는 해츨링의 입에서 작은 바람이 새어나왔다.
“흐억!”
마수 털 코트를 입은 장영표가 머리를 숙였다.
그의 눈썹 털이 금세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드래곤의 부산물로 만든 방어구를 입은 한건우와 은설아는 아무렇지 않았다.
‘벌써 드래곤 브레스 흉내를 내는군.’
드래곤 브레스는 성체가 되어야 제대로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파장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웅-!
“뭐, 뭐죠?”
장영표는 당황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조심해!”
한건우가 <아이기스의 보호>와 <믿음의 방패>를 중첩했다.
미지의 충격으로부터 은설아와 장영표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
근처의 땅바닥이 울렁거렸다.
얼어붙은 단단한 땅이 말랑말랑한 찰흙처럼 우그러졌다.
‘중력 조정이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이 해츨링은 단순한 빙룡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뇌룡이나 다른 드래곤도 아니었다.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던 종류의 드래곤이 분명했다.
한건우는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갔다.
손끝으로 작은 해츨링의 비늘을 쓰다듬었다.
“얌전히 있자. 알겠어?”
해츨링이 다시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각인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말을 잘 듣는 것 같았다.
“흠···.”
한건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아공간 창고를 열었다.
“뀨욱!”
해츨링은 거기 들어가는 걸 한사코 거부했다.
네 개의 날개를 파닥거리며 빠져나가려 했다.
어려서 그런지, 마수의 말이 들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무슨 감정인지는 알 수 있었다.
“아공간 안에 들어가는 게 싫은가봐요.”
“그러네.”
은설아는 호기심 많은 눈으로 해츨링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테이밍에 집중했다.
테이밍은 다른 생명체와 정신을 연결하는 것이다.
그리핀처럼 결이 맞으면 테이밍이 잘 되었다.
‘조금 까다로운데···.’
은설아는 해츨링의 정신에 가만히 접근했다.
번쩍!
은설아의 눈앞이 하얘졌다.
그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어둠이 보였다.
새카만 밤하늘이었다.
스으으으···..
검은 하늘에 빛나는 별들이 보였다.
희뿌연 성운과 은하도 얼핏 본 것 같았다.
“설아야, 일어났어?”
은설아는 어리둥절하며 눈을 떴다.
심각한 한건우의 얼굴이 보였다.
길드 건물의 회복실 침대였다.
‘언제 빙하기 균열에서 나왔지?’
은설아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한건우의 옆에는 차은비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안 좋았다.
은설아가 쓰러진 건 병이나 부상 때문이 아니었다.
힐러인 차은비가 도와줄 수 있는 영역 밖이라는 뜻이다.
“해츨링은요?”
“여기 데려왔어.”
한건우가 자신의 왼쪽 어깨 위를 가리켰다.
그의 어깨 위에 보라색 해츨링이 꼬리를 말고 잠들어 있었다.
“그··· 마스터 어깨 위의 그건, 아룡종 새끼인가요?”
차은비가 물었다.
아까부터 궁금했다.
“아뇨, 드래곤입니다.”
“네?”
한건우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순간 차은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네? 농담이시죠?”
“....”
차은비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한건우나 은설아가 괜한 장난을 칠 사람인가.
그녀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세상에, 어떻게. 아니 이럴 수가 없는데?”
차은비가 이토록 당황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드래곤은 그 존재 자체가 재해인 공포의 마수였다.
살아있는 성체 드래곤이 균열 밖으로 나오면, 작은 국가는 거의 망할 정도였다.
드래곤은 성격도 몹시 잔인하고 공격적이었다.
역사상 그 어떤 테이머도 드래곤을 테이밍한 적은 없었다.
“아니 그리고··· 색깔이 보라색이잖아요?”
드래곤의 비늘 색은 그 속성을 보여주었다.
화룡은 붉은색이고 수룡은 푸른색.
갈색의 지룡, 은백색의 빙룡, 황금색의 뇌룡도 있었다.
이들 다섯은 소재앙급에서 재앙급 마수였다.
그리고 신화급 마수라는 순백색의 광룡과 검은색의 암룡까지.
여기까지가 알려진 정보였다.
어디에도 자색 드래곤 같은 건 없었다.
“그렇게 됐습니다.”
한건우는 설명을 일축했다.
차은비의 눈이 흔들렸다.
물론 모든 마수가 발견되고 알려진 건 아니었다.
정보가 없는 낯선 마수는 ‘언노운’이라고 불렸다.
‘언노운 드래곤···이라는 건가?’
차은비는 머리가 아파 오려고 했다.
“뀨욱···.”
해츨링이 잠꼬대를 하다가, 작게 기침을 했다.
빙룡의 피가 섞인 해츨링의 숨결은 차가웠다.
회복실의 기온이 몇 도는 낮아진 것 같았다.
‘잠깐··· 이게 성체가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한건우의 세력이 얼마나 강해질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제가 먼저 세상에 공개할 때까지, 비밀은 지켜 주시죠.”
한건우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차은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특수안보부에서 이걸 지금 알아선 안 돼.’
한건우가 드래곤을 길들였다는 사실은 득이 됐으면 됐지, 숨겨야 할 정보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의 해츨링은 너무 취약해 보였다.
그들이 지금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다 크기 전에 해츨링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밀지도 모른다.
‘일성 길드에도 비밀로 해야겠다. 천명환 선배는 말할 것도 없고.’
차은비가 굳게 마음을 먹었다.
한건우가 하는 일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
한 달 후, 국경 너머 만주 지방.
계절은 가을이지만 겨울 같은 칼바람이 불었다.
「왜 이렇게 춥지.」
「이 지방이 원래 그렇습니다. 상해 쪽이랑은 다릅니다.」
중공군의 각성자 군인 2명이 정찰을 하고 있었다.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군. 본부도 무심하지. 나를 이런 데로 보내다니···.」
간부가 추운 날씨를 불평했다.
그는 갑자기 먼 지방으로 차출되어, 황량한 평야를 순찰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아무 사정도 전해듣지 못했다.
만주 땅의 분위기는 을씨년스러웠다.
거의 황무지에 가까웠다.
‘요즘 변경 지방은 다 이렇다고 하더니.’
중국 정부는 넓은 영토를 제대로 관리하기 어려웠다.
때로는 민가 근처에 야생화된 마수가 출몰하기도 했다.
「저, 상위님. 돌아가실 때 저도 힘써주실 수 있으십니까?」
「뭐? 자네는 원래 이쪽 지방 출신이지 않나.」
「그게···. 여기 요즘 낌새가 이상합니다. 사람 살 곳이 아닙니다.」
「흠. 어려울 것 없어. 내 힘써 보겠네.」
간부는 자신의 인사 조치도 막지 못했으면서, 한껏 허세를 떨었다.
부하 군인은 그것도 모르고 뛸 듯이 기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상해로만 데려가 주신다면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그들이 대화에 빠져 있을 때.
우르르르···.
대지가 한 차례 흔들렸다.
「뭐야! 균열 발생인가?」
그들은 당황하면서도 침착하게 무전기를 잡았다.
삐이이- 픽!
「으윽.」
무전기에서 날카로운 소음이 났다.
기기가 먹통이 되어 버렸다.
EMP탄 공격이라도 당한 듯했다.
지원 요청을 할 방법이 막혔다.
그들은 진동의 원인을 찾으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 상위님, 저기.」
「···?」
간부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황무지 저 멀리에 균열이 생겨 있었다.
문제는 그 크기였다.
그 균열의 입구는 산봉우리처럼 우뚝 솟아있었다.
균열의 윗부분이 구름에 닿겠다 싶을 정도였다.
[S급 균열 - 황혼의 서리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