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헤드헌팅 (2)
“이 사람들을요?”
“그래.”
한건우가 건네준 명단에는 십수 명의 소속과 이름이 쓰여있었다.
금해준은 혹시나 유명한 각성자가 있나 해서 두 번 세 번 훑어봤다.
아는 이름이 하나도 안 보였다.
대형 길드에 소속된 각성자도 없었다.
대부분 현재 소속이 없거나, 개인 용병대 소속이었다.
‘왜 굳이 이런 각성자들을?’
금해준은 알았다는 듯이 미소지었다.
“아하! 지인 분들이시죠?”
“아니. 직접 아는 사람들은 아니야.”
금해준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다면 무슨 기준으로 추천하신 겁니까?”
“같이 일하면 좋을 것 같은 사람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금해준은 받아들였다.
가장 어려운 일은 인재 선발.
회사든 길드든 똑같았다.
길드 마스터가 직접 지명을 해주었으니 나쁠 건 없었다.
‘형님은 사람 보는 눈은 확실하니까.’
금해준은 은설아와 임수호, 임진호를 떠올렸다.
뛰어난 재능에다 노력까지.
흠 잡을 데가 없었다.
그들을 콕 집어 데려온 게 한건우였다.
한건우는 저 명단을 꽤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다.
회귀 전 기억을 더듬어서 동료가 되면 좋을 만한 사람들을 선별했다.
이능력 특수전단에서 만났던 부하들.
알고 지냈던 용병들.
믿을 만하고 뒤통수 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실력은 좋은데 외부적 사정으로 인정을 못 받은 사람들도 많았다.
“전부 다 데려오려고 애쓸 필요는 없어. 참고해서 컨택 시도만 해줘.”
“네.”
“물론 이외에 실력이 괜찮은 사람이 있으면 추가하고.”
“알겠습니다!”
점차 금해준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 정도면 꽤 자율성이 보장된 것 같았다.
“연락 돌리는 데 시간은··· 2주면 될까?”
“네. 해보죠.”
금해준은 자신감을 보였다.
행정 인력들이 놀고 있는 것 같으니, 이참에 제대로 굴릴 생각이었다.
2주 후.
긴장한 얼굴의 각성자들이 길드 건물 앞에 모여들었다.
그 수는 50명 정도 되었다.
어떤 이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높은 빌딩을 올려다보았다.
모두 아레스 길드의 연락을 받거나, 입사를 희망한 사람들이었다.
구성은 남녀노소 다양했다.
그들은 각성자 등록증을 보여주고 로비 입구를 통과했다.
“와···.”
각성자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몇몇은 으리으리한 건물의 위용에 살짝 기가 죽었다.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아무도 말이 없었다.
숨막힐 듯 어색한 분위기였다.
그런 공기를 해소하려는지, 한 중년 남자가 옆에 있던 젊은이에게 말을 걸었다.
“형씨도 여기는 처음이요?”
“···아, 예.”
말을 건 중년 남자는 인상 좋고 털털한 인상이었다.
그의 옆에 있던 젊은 각성자는 내키지 않는 어투로 짧게 대답했다.
“솔직히 엄청 놀랐지 뭐요. 이런 잘나가는 길드에서 뭣 때문에 날 불러줬는지.”
“....”
“처음에는 사기나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다니까. 진짜인 걸 알고 가족들이랑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중년 남자의 말이 끊이지 않았다.
“인생에 세 번은 기회가 온다는데, 이게 마지막 기횐가 싶더라니까. 첫 번째는 각성이고, 두 번째는 내 마누라를···.”
그가 아무도 묻지 않은 인생 이야기를 계속 떠들었다.
젊은 각성자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무시했겠지만···.
‘여기서 만났다는 건, 앞으로 직장 동료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거니까.’
오늘 입단 테스트를 하고 최종적으로 선발이 된다고 했다.
젊은 각성자는 인내심을 발휘했다.
“여튼 잘 해보자고. 오늘 잘 보여야 뽑히겠지.”
털털한 중년 남자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씩 웃었다.
띠링-!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그동안 조용히 있던 다른 사람들도 입을 열었다.
“그런데 입단 테스트로 대련을 한다고 했는데···. 왜 길드 건물로 부른 걸까요?”
“뭐··· 오리엔테이션 같은 걸 하고 야외 훈련장으로 넘어가지 않겠어요?”
고속 엘리베이터가 최상층에 멈추었다.
“균열···!”
“저거 인공 균열이에요.”
“와···.”
지원자들은 입을 딱 벌렸다.
이제 막 대기업에서 연구개발을 마치고 상용화하기 시작한 인공 균열.
그건 가격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희귀한 장치로 알고 있었다.
도심 속 건물의 꼭대기 층에 인공 균열이 설치되어 있다니.
그들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역시는 역시구나.’
‘재벌이 후원한다더니 때깔이 다르군.’
그때 길드의 투자자인 금해준이 앞으로 걸어왔다.
머리를 넘기고 정장을 입은 채였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아레스 길드의 매니저 금해준입니다.”
금해준은 대중이나 언론에 얼굴을 자주 드러낸 편은 아니었다.
지원자 중 상당수는 충격을 받았다.
‘투자자라던 금해준이 이렇게 어렸어?’
“오늘 여러분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 까닭은, 아시다시피 최종 입단 테스트 때문입니다.”
금해준은 그들을 한눈에 담으려는 듯 죽 둘러보았다.
‘형님이 추천한 명단은 거의 다 왔고.’
미리 언질이 되어있던 것도 아닌 듯, 다들 놀라는 반응이었다.
그런데도 다른 사정이 있다며 거절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하긴 거절하기엔 너무 좋은 제안이지.’
추천인만으로 이뤄진 건 아니었다.
아레스 길드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게 온통 소문이 났다.
따로 공고도 안 했는데, 헤드헌터에게 역으로 연락해온 사람들이 한 트럭이었다.
예전에도 한건우의 길드에서 일하고 싶다면서 찾아오는 각성자들은 많았다.
그런 이들은 주로 열정이 앞서는 젊은이들이었다.
‘이번엔 지원자들의 수준이 달랐지.’
서류 심사로 1차를 거르는 게 힘들 정도였다.
그때 한 여자 지원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금해준이 말해 보라는 제스처를 했다.
“최종은 몇 명이나 붙나요?”
“그건 저도 모릅니다. 길드 마스터가 대련 후 결정할 겁니다.”
금해준의 설명을 듣고 각성자들이 흠칫 동요했다.
“마스터가 직접요···? 저희가 한건우 플레이어와 대련이라도 한다는 건가요?”
“그건 들어가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금해준이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입단 테스트는 안전이 보장된다고 사전에 계약했으니···.’
지원자들이 바짝 긴장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들이 인공 균열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또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어떤 이세계의 자연 환경을 뚝 떼어놓은 듯했다.
‘다행히 기온이나 습도는 지구와 비슷해.’
스스스···.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다.
“무기 들어!”
50여명의 각성자들 중 하나가 소리쳤다.
털털하고 말이 많던 중년 남자였다.
그는 이미 배틀액스를 들고 있었다.
“뭐지.”
사람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몇몇은 이미 인공 균열에 들어오자마자 무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어어어···.
고원의 흙에서 괴물 같은 형상이 솟아났다.
“흙 골렘이다!”
배틀액스를 든 중년 남자가 소리쳤다.
아까와는 딴판으로 날카로운 태도였다.
“궁수 없나? 흙 골렘은 물리 공격이 들어가야 해!”
피유우웅-!
쇠뇌와 석궁을 든 궁수들이 재빨리 골렘을 공격했다.
쿠어어!
쿠우우우···.
흙 골렘은 한 마리가 아니었다.
사방에서 자꾸만 솟아났다.
“어이, 거기서 놀지 말고 따라와! 골렘의 머리를 부수자구.”
배틀액스를 든 남자는 초면인 수십 명의 각성자를 능숙하게 지휘했다.
휘익-.
그가 뜻밖에 날렵한 몸놀림으로 흙 골렘을 타고 올라갔다.
콰직!
호쾌하게 휘둘러진 배틀액스가 흙 골렘의 머리통을 부쉈다.
모두가 그의 명령을 따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은 제법 잘 돌아갔다.
“중요한 건 따로 있어. 먼저 골렘 소환사를 찾아야지.”
한 법사가 탐지 마법을 발동했다.
그의 옆에서 눈치 빠르게 MP를 보조해 주는 버퍼도 있었다.
흙 골렘들이 차근차근 쓰러져갔다.
한건우는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그림자 맹시>로 몸을 은신한 채였다.
‘실력이 괜찮군.’
한건우는 그 중에서 임기응변에 능한 사람을 높이 샀다.
그런 이들이 실전에서 강하니까.
마지막 흙 골렘이 쓰러졌을 때, 한건우가 창을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허억!”
“하, 한건우다···.”
자기도 모르게 면전에서 이름을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한건우는 한 손으로 창을 돌리면서 다가왔다.
“이제 저와 대련입니다.”
“?”
지원자들은 바짝 굳었다.
한건우는 자신의 기운을 전혀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최상위 각성자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온몸을 엄습했다.
분명히 같은 인간인데.
포식자 앞에 선 것처럼 오금이 저렸다.
“저에게 덤벼 보세요. 전부 동시에.”
“허허.”
배틀액스를 든 중년 남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사람들은 헉 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보게들, 언제 이런 기회가 오겠어?”
“...?”
중년 남자가 씩 웃으면서 짧은 브리핑을 했다.
“검사들은 날 따라와. 법사와 궁수들은 멀리서 엄호해!”
이번엔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하고 따랐다.
그리고 50여명의 각성자는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났다.
*
50여명의 지원자 중에서, 최종 선발된 것은 20명이었다.
등급은 높지만 실전에서는 미숙한 각성자.
주변 사람의 동선이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는 자.
이런 자들은 냉정하게 걸러졌다.
지원자들은 대체로 결과를 받아들이는 반응이었다.
놀라거나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실력이 낱낱이 까여졌기 때문이다.
선발되지 못한 사람들의 어깨가 무거웠다.
“지원자 분들, 가시기 전에 이쪽으로 와주십시오.”
행정요원이 모두에게 봉투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이건?”
봉투 안에는 꽤 큰 돈이 들어있었다.
“면접비 지급해 드렸습니다.”
“...면접비요?”
길드 입단 면접을 보면서 이런 걸 챙겨주는 곳은 처음이었다.
‘왠만한 균열 일당보다 낫다!’
붙은 사람이나 떨어진 사람이나, 모두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거 참, 거마비까지 챙겨주시고. 감사합니다.”
배틀액스를 들고 활약하던 중년 남자가 다시 유들유들한 태도로 웃었다.
그는 모두의 예상대로 1등으로 선발되었다.
‘저 아저씨는 대체 정체가 뭐지. 저런 사람이 안 알려지고 어디에 숨어있었담.’
탈락자들은 그 중년 남자를 흘깃거렸다.
**
홍대 근처, <빙하기의 어둠> 균열.
한건우는 감회에 잠겼다.
“그때 여기를 확보하길 정말 잘했군.”
아무 정보가 없던 미공략 균열.
여기서 한건우는 빙룡의 시체와 이계의 유적을 발견했다.
이 균열의 관리권을 따내려고 급히 길드 설립을 진행했다.
그렇게 급조했던 길드가, 지금은 전투원만 25명인 길드가 되었다.
‘어엿한 중견 길드··· 라기엔 아직도 인원이 조금 적지만.’
지금 20명의 신입 길드원은 혹독한 훈련을 하고 있었다.
팀전으로 모의 전투를 하면서 가장 적합한 구성을 맞춰보는 중이었다.
“부화기는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2시간 전에, 마수의 알에 금이 하나 갔고요.”
아이템 제작자 장영표가 말했다.
두터운 마수 털 코트를 입은 그는 평소보다 더 드워프처럼 보였다.
한건우는 마수 알 부화기를 유심히 보았다.
기계 자체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커다란 계란 부화기와 비슷하게 생겼다.
동그란 유리돔 안에 마수의 알을 넣어놓았다.
타조알보다 큰 신비한 보라색의 알이었다.
온도와 습도를 맞춰주는 건 물론이고, 마정석을 끼우는 틈도 있었다.
마정석은 알에서 태어날 마수에게 새 생명을 준다고 했다.
그 마정석은 다름아닌 드래곤 하트였다.
여기서 발견된 빙룡의 심장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한건우가 물었다.
“자연 상태에서는 어떻게 부화하는 거지?”
“어미가 알을 품어주고, 죽은 동족의 마정석을 물어오죠. 그러면 동족의 새끼가 나옵니다.”
“음···. 이종족이 태어나는 경우도 많나?”
“실수로 다른 종족의 마정석을 물어오기도 하고. 다른 마수를 잡아먹고 기운이 섞이는 경우도 있어서··· 혼종이 태어나기도 한다죠.”
한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여기서는 그럴 일이 없을 것 같았다.
혹시나 미공략 균열의 마수들이 포탑과 해자를 넘어와서 부화기를 건드릴까봐, 부화기 자체를 왜곡된 공간에 숨겨놓았다.
한거우의 뒤에 은설아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은설아는 마수 알 부화기로 다가갔다.
“빨리 태어났으면···.”
마치 신생아실에 있는 아기를 보는 것처럼 희망찬 눈빛이었다.
한건우는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은설아의 <친화력> 스탯을 최대한 올려놓았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도 각오하고 있었다.
‘드래곤 새끼가 태어났는데··· 테이밍이 안 된다면?’
그렇게 힘들게 얻은 새끼 드래곤을 죽여야 할지도 몰랐다.
만약의 일이 두려워서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는 없는 일.
방법은 그때 가서 찾아보면 된다.
티딕!
마수의 알에 실금이 하나 더 갔다.
“앗!”
세 사람이 동시에 똑똑히 보았다.
한건우는 간만에 긴장이 되었다.
‘새끼라고 해도 드래곤은 드래곤···.’
안에서 어떤 괴물이 태어날지 몰랐다.
그가 아공간 무기집에 손을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