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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먹는 플레이어-83화 (83/238)

#83헤드헌팅 (1)

길드원들은 한건우가 반가웠지만, 섣불리 말을 걸지 못했다.

왠지 그의 분위기가 평소와 다른 듯했다.

‘S급이니 당연히 강한 줄은 알았지만···.’

임진호가 경이로운 눈으로 앞서 가는 한건우를 바라보았다.

방금 일어난 일은 충격이었다.

한건우가 박이경을 이겼다.

누가 봐도 압도적인 격차로.

처음에 임진호는 그저 통쾌하기만 했다.

점점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실감했다.

알파스 길드의 박이경이 누군가.

박이경은 강력한 각성자의 대명사 같은 존재였다.

어린아이도 박이경의 이름 세 글자는 다 알았다.

물론 일성의 태일제나 환인의 원유선도 있지만, 그들은 원로들이다.

그들은 나이가 많고, 일선 전투에서 손을 뗀 지 오래였다.

한건우가 박이경 같은 대단한 네임드를 이기다니.

그 현장을 본 임진호는 가슴이 벅찼다.

앞서 가던 한건우가 문득 임진호를 돌아보았다.

“진호야, 잘 했다.”

“아냐, 뭘···.”

임진호는 고개를 숙였다.

한건우가 자신을 믿고 자리를 비웠는데, 리더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 같았다.

한건우가 제때 나타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그의 마음을 눈치챈 한건우가 말했다.

“정말 잘 해줬어. 앞으로도 믿고 맡길게.”

“....”

무뚝뚝한 말투였지만 진심이 묻어났다.

그때 임수호가 끼어들었다.

“저기, 건우 형.”

“응?”

“박이경 말이야. 왜 안 죽였어?”

“···음?”

임수호가 뜻밖의 질문을 해왔다.

“박이경이 복수심을 품을 것 같은데··· 그러면 나중에 우리 길드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한건우는 임수호를 새삼 다시 보게 되었다.

‘그전이랑 비슷한 면이 나오네.’

침착하고 냉정하던 부관 시절의 임수호가 겹쳐졌다

그때보다 좀더 밝고 소년다운 모습이어서 잊고 있었다.

임진호도 이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도 그 점이 궁금하긴 했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 싶어서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한건우가 자세히 설명했다.

“방금 박이경을 죽였다면, 아마 알파스 길드원들도 모조리 죽여야 했겠지?”

“응, 그렇지.”

임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까지는 이미 생각했던 모양이다.

“균열 바깥에는 정부 구조대가 있어. 허술해 보여도 누가 균열에 들어가고 나가는지 모두 관리하고 있고.”

“아.”

임수호가 눈을 크게 떴다.

“균열에서 사망자가 나오면 정부 구조대의 조사를 받게 돼.”

“정부 조사···.”

임수호는 자신의 경솔한 생각을 반성했다.

균열 안의 사정에만 정신이 팔려서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B급 균열에서 S급 각성자를 비롯해서 알파스의 정예 파티가 전멸하면 어떨까? 그걸 사고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겠지.”

“그럼 아까 기절시킨 건 괜찮을까···?”

“그 정도는 문제 없을 거야. 먼저 시비를 건 건 그쪽이니, 설령 조사를 받게 돼도 참작될걸.”

“아하, 이제 알겠어.”

의문이 풀린 임수호 형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다.

한건우는 굳이 거기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박이경을 여기서 죽이기엔 여러 모로 아깝지.’

눈 쌓인 산을 되돌아오는 길은 꽤 멀게 느껴졌다.

임수호는 균열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한건우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은설아와 차은비를 살폈다.

꽤 활약을 한 것 같은데, 둘은 조용했다.

‘설아, 충격이 컸구나.’

은설아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그리핀을 타고 있었다.

날지 않고 힘없이 걷고 있었다.

아마 죽은 워 베어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잠깐이지만 테이밍이 꽤 깊었던 모양이다.

반면 차은비는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서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한건우도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차은비는 박이경과 사이가 안 좋았었지?’

유독 상극인 둘이었다.

한건우가 박이경을 개 패듯이 패는 모습이 몹시 즐거웠나 보다.

차은비가 콧노래를 불렀다.

슈우우-.

그들이 균열 바깥으로 나왔다.

“한건우 플레이어 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정부 구조대가 진심을 담아 환호했다.

예상보다 빨리 뜬 공략 메시지에 기뻤던 것이다.

‘덕분에 일찍 퇴근한다!’

안전하고 빠른 퇴근.

공무 각성자에게 가장 반가운 일이었다.

균열이 제때 공략되지 않으면, 구조대는 계속 돌아가면서 대기 근무를 서야 했다.

게다가 공략 기한이 줄어들면 속된 말로 똥줄이 탄다.

한건우가 들어가면 어떤 균열이든 신속하게 공략이 되었다.

다른 길드보다 두 배는 빨랐다.

“뭘요. 제가 들어가니 이미 동료들이 해결해 놓았더라고요.”

한건우가 미소 띤 얼굴로 구조대원들에게 인사했다.

그는 이전부터 유난히 구조대에 친절하게 대했다.

다른 거만한 각성자들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진짜 대박이다. 인성까지 갖췄나 봐···!’

구조대 막내 대원의 눈이 반짝였다.

“엇, 그런데 따라 들어갔던 알파스 길드 분들은···.”

선임 대원이 균열 입구를 기웃거렸다.

박이경이 워낙 기세등등하게 들어가서, 안에서 길드 간에 싸움이라도 났을까봐 걱정했다.

한건우의 태연한 모습을 보니 별 일은 없었던 것 같지만···.

“그쪽은 부상자 때문에 지체되는 모양입니다. 나오는 걸 도왔어야 하는데··· 급한 일이 있어서요.”

“아, 예! 살펴 가십쇼!”

한건우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선배님, 매뉴얼에는···.”

“어허, 됐어. 유도리 있게 해.”

원칙대로라면 안에 있는 사람이 전부 다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맞았다.

균열 안에서 범죄가 없었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그러나 이름이 알려진 대형 길드의 경우에는 구조대도 깐깐하게 굴지 않았다.

조금 뒤, 알파스 길드의 파티원들이 뒤따라 나왔다.

구조대원들이 몰려왔다.

부상자가 있다고는 들었지만 꽤 심각해 보였다.

“박이경 플레이어가···.”

“주, 죽은 건 아니죠?”

“힐러! 힐러 불러!”

구조대원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간이 들것 위에 박이경이 누워있었다.

그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박이경은 기절해서 정신을 잃은 채였다.

상의는 갈기갈기 찢겨지고, 온몸에 멍과 상처가 가득했다.

들것을 든 길드원들의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박이경의 몸무게가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알파스 길드원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런 가운데, 한 길드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나섰다.

“마스터는 정신을 잃으셨을 뿐이다. 길드로 데려가 치료해야 하니 당장 비켜라.”

“잠시만요, 부상을 입은 경위는···.”

“지금 그런 거 조사할 때야?”

구조대원들이 꼬리를 내리며 물러났다.

알파스 길드는 하나같이 거칠고 비협조적이기로 유명했다.

길드 마스터를 보고 배워서 그런 것이겠지.

구조대원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흠, 그러면 예외적으로··· 추후에 길드 건물로 조사요원을 보내도록 하···.”

“야, 비켜!”

알파스의 길드원이 몰려든 구조대원들을 밀쳤다.

구조대원들의 감상은 똑같았다.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꼴 좋다.’

*

그날 밤, PBS 뉴스 문철민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고, 한건우 플레이어, 아니 이제 마스터시죠.]

“오랜만입니다, 기자님. 아, 프로그램 축하드립니다.”

[어유 뭘요··· 잘 지내셨죠?]

문철민 기자는 최근 언론인으로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각성자 업계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이 인정받은 것이다.

주말 시사 프로그램도 하나 맡고, 칼럼 지면도 좋은 자리로 옮겼다.

‘이게 다 한건우 플레이어와 연을 맺은 덕분이야.’

역시 뭐니뭐니해도 대한민국은 인맥이다.

문철민은 스스로의 행운을 만끽했다.

“그럼요. 아마 오늘 연락 주신 이유가 있겠죠?”

[하하···.]

문철민 기자가 멋쩍게 웃었다.

그는 용건 없이 수다 떨려고 전화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궁금한 것 있으면 물어보시죠.”

[음, 제가 아는 것부터 먼저 얘기하겠습니다.]

어느새 정보를 교환하는 동업자가 된 걸까.

‘각성자 전문 언론의 정보망. 괜찮지.’

“좋아요. 뭡니까.”

[오늘 A급 힐러 여러 명이 알파스 길드로 불려 갔다는데요.]

문철민 기자가 이미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박이경의 부상은 한건우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힐러들이 동시에 달라붙어도 역부족이라··· 박이경 플레이어가 눈을 뜨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고 합니다.]

“박이경이 일어났군요.”

한건우의 말투가 의미심장했다.

문철민 기자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제대로 짚었구나.’

[정부 구조대의 조사요원이 알파스 길드를 방문했다는데요.]

“박이경이 뭐라고 했답니까?”

[아무 대답도 안 했답니다.]

“....”

조금 뜻밖이었다.

한건우를 물고 늘어지며 고발하든지, 마수에게 다쳤다며 둘러대든지.

둘 중 하나일 줄 알았다.

자존심 강한 박이경이라면 후자일 거라 생각했는데.

[균열에서 왜 다쳤는지 조사요원이 여러 번 물었지만, 아무런 이유도 대지 않고 침묵했다고 합니다.]

한건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원래 기자님이 듣고 싶은 얘기를 해주고 싶었지만···.”

[예?]

“저도 예의상 침묵해 줘야겠군요.”

[아···.]

이 정도만 해도 눈치 빠른 사람은 충분히 알아들으리라.

문철민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바보가 아니라면 알 수 있는 얘기지.’

오늘 B급 균열에 한건우의 길드가 공략을 신청했다.

갑자기 박이경이 파티원들을 끌고 와서 어깃장을 놓았다.

뒤늦게 한건우가 따라 들어갔고, 박이경은 반죽음 상태가 되어서 나왔다.

여기서 누가 다른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까?

“다만 한 가지는 말씀 드릴게요.”

[그게 뭡니까?]

문철민 기자가 바로 반응했다.

한건우가 주는 정보는 하나같이 가치 있었다.

다른 소스로는 얻을 수 없는 고급 정보였다.

문철민은 언론인이니 그 가치를 더욱 생생하게 느꼈다.

“저희 길드가 곧 인력을 크게 증원할 겁니다.”

[네?]

문철민 기자가 펄쩍 뛰었다.

한건우의 길드 아레스는 극도의 소수정예로 유명했다.

행정 요원은 따로 있지만, 전투원은 길드 마스터 포함해서 5명이 전부.

5명은 길드 허가를 받기 위한 최소 인원이었다.

그걸로 이 자리까지 온 게 역대급이었다.

[전투원을 늘리신다는 거죠?]

“그렇죠.”

문철민 기자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업계의 흐름을 미리 알고만 있어도 그의 몸값이 달라진다.

문철민은 조심스럽게 더 파고들었다.

[혹시 기조가 변한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어떤 계기라도 있던 겁니까?]

“우리 길드의 기조는 변한 적이 없습니다. 이제 확장할 때가 된 것뿐입니다.”

한건우는 적당한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금해준에게 새 계획을 알렸다.

“인력 증원이요? 백번 찬성입니다!”

한건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인건비에 허리가 휜다고 고민하던 걸 몇 번 봐서 그런가.

금해준이 반대할 줄 알았다.

“왜 이렇게 반가워해?”

“음··· 언제 말씀하시나 했습니다.”

금해준은 이번에 뼈저리게 느낀 게 있었다.

길드 마스터를 중심으로 한 원팀 체제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었다.

최정예 파티를 하나 두고, 그 보충 인력으로 쓸 팀을 여러 개 꾸리고 싶었다.

그러면 유사시에도 문제 없이 운영이 가능할 것이다.

그게 금해준이 구상하던 이상적인 길드의 형태였다.

“각성자 커뮤니티에 공고를 올릴까요? 아마 이번 일로 지원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겁니다.”

금해준은 의기양양했다.

하룻밤 사이, 한건우가 박이경을 꺾었다는 게 기정사실이 되어 있었다.

익명의 목격담으로 시작되어, 모든 온라인 커뮤니티가 발칵 뒤집히지 않았던가.

물론 공식적으로 인증된 건 없었다.

언론보다 더 무섭다는 소문의 힘이었다.

“아니, 헤드헌팅을 의뢰할게. 네가 맡아줘.”

한건우는 미리 준비한 각성자 명단을 내놓았다.

금해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명단을 읽었다.

“어···. 이 사람들요?”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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