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81화 (81/238)

#81참교육 (10) - 알파스 길드

한건우 나오라며 부르는 목소리가 온 협곡에 쩌렁쩌렁 울렸다.

차은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박··· 이경?”

목소리가 익숙했다.

그녀가 소름 끼치도록 싫어하는 남자였다.

크르르르···.

움막 앞에서 워 베어가 으르렁댔다.

“이게 무슨···.”

아레스 길드원들은 다급히 바깥으로 나갔다.

육중한 거구의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나이는 30대 초중반 정도일까.

그의 뒤에는 네 명의 부하들이 따라왔다.

모두 험악한 인상이었다.

마치 라이칸스로프 킹과 그 친위대를 보는 듯했다.

크르릉···.

워 베어가 계속해서 이빨을 드러냈다.

아까와는 달리 섣불리 공격하지는 못했다.

걸어오는 남자에게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느껴졌던 것이다.

남자는 자신의 기운을 구태여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

“누구예요?”

놀란 은설아가 물었다.

은설아 말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 남자를 알아보았다.

“알파스 길드··· 그리고 그 마스터, S급 박이경 플레이어.”

임진호가 담담하게 설명했다.

균열을 공략하고 나서 긴장이 잠시 풀렸는데, 또다른 난관이 찾아왔다.

“한건우, 나와!”

박이경은 불량스럽게 껌을 씹으면서 목을 좌우로 꺾었다.

그는 커다란 가죽 자켓을 걸치고 있었다.

“저런 사람이··· 길드 마스터라구요?”

은설아가 당황했다.

그럴 만도 했다.

알파스는 다른 길드와 분위기가 달랐다.

폭력 조직을 연상케 했다.

순전히 그 마스터인 박이경 때문이었다.

용병이나 보디빌더 같은 우락부락한 외모.

단순 무식한 성미와 거친 말투.

박이경은 거칠고 호전적인 성격을 어디서나 마음껏 드러냈다.

다른 길드나 용병대와 충돌하는 일도 많았다.

S급 각성자인 그에게 먼저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을까.

대부분 박이경이 시작한 싸움이었다.

특히 그는 각성자 사관학교 출신들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박이경의 눈이 차은비에게 멈추었다.

휘익, 그가 휘파람을 불었다.

“이쁜이도 있네. 새 주인은 어디 갔어? 도망갔냐?”

“....”

박이경은 일부러 차은비가 싫어할 말을 골라서 했다.

고개를 돌린 차은비에게서 냉기가 흘렀다.

‘더러워서 정말···.’

차은비가 치를 떨었다.

박이경은 임진호와 임수호를 위아래로 훑었다.

은설아와 그리핀, 워 베어까지 노골적으로 둘러보았다.

“이 균열은 공략이 끝났습니다. 메시지를 보셨을 텐데요.”

임진호가 나섰다.

“오, 네가 한건우 대신이냐?”

박이경이 흥미를 보였다.

임진호는 그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용건이 있으면 저에게 얘기하시죠.”

“그놈은 어디 숨고, 애송이랑 기집애들만 남았어?”

박이경이 큭큭 웃었다.

난데없이 모욕을 당한 임진호가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감히 박이경에게 덤빌 수는 없었다.

박이경은 S급 전투 계열 각성자.

임진호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차은비가 백업을 해 줘도 마찬가지였다.

박이경 혼자여도 상대가 안 될 판인데, 부하들까지 데리고 나타났으니.

박이경이 여기까지 찾아온 건 다름아닌 한건우 때문이었다.

요즘 초신성 취급을 받는 한건우가 매우 거슬렸다.

‘다들 얌전 떨고 있지만, 마찬가지 생각일걸.’

박이경은 한건우가 과도한 주목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온 나라의 골칫덩이인 미공략 균열을 몇 개나 깼다?

전국의 죽어가는 도심을 되살렸다?

그래, 꽤 대단하긴 하지만···.

‘뭐 얼마나 다르다고. 지가 돈 벌려고 그랬지.’

어린 놈이 재벌 3세를 투자자로 끼고, 언론 플레이로 영웅 놀이를 하는 걸로만 보였다.

특히 요즘 박이경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4대 길드? 까고 있네.’

박이경은 코웃음을 쳤다.

막 각성한 애송이를 자신과 동급으로 비교하는 게 무척 자존심 상했다.

열불 터지게도, 어느새 대중들은 거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한건우 VS 박이경. 누가 이길 것 같음?

└ 장난하냐.. 박이경이지.

└ 같은 등급이면 붙어봐야 알아.

└ 박이경 권사 아님? 한건우는 법사고... 그럼 법사가 유리할걸?

└ 한건우 클래스는 오피셜 안 떴음

꼭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박이경은 한건우에게 반감이 컸다.

이참에 기를 꺾어서 누가 위에 있는지 보여줘야지.

‘균열에 끼어들어서 보스를 먼저 잡아버리려고 했는데···.’

그 계획은 이미 실패했다.

아레스 길드가 생각보다 빨리 보스를 잡고 균열도 공략해 버렸다.

여기 온 김에 한건우의 얼굴은 꼭 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한건우의 길드원들 앞에서 그를 꺾어 버리고 싶었다.

1대 1 싸움에서는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 박이경이었다.

“하, 재미 없게··· 시간 낭비했어.”

한건우가 없다는 걸 발견하고, 박이경이 씹어 뱉듯 말했다.

박이경이 위협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크워어-!

워 베어가 두 다리로 번쩍 일어났다.

은설아를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부웅-

워 베어가 앞발을 휘둘렀다.

박이경의 눈이 번뜩였다.

[특성 발동 : 신체 강화]

턱!

“!”

박이경이 가볍게 팔을 들어 막았다.

워 베어가 휘두른 앞발은 너무 쉽게 가로막혔다.

그으으···.

워 베어는 앞발에서 아릿한 고통을 느꼈다.

강철로 된 벽을 때린 듯한 충격이었다.

박이경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특성 발동 : 거인화]

박이경이 가죽 자켓을 벗어던졌다.

그의 육체가 순식간에 거대해졌다.

안 그래도 2m에 가까운 박이경이었다.

<거인화>된 그의 키는 3m가 넘었다.

근육도 터질 듯이 부풀어올랐다.

탁! 부우웅-!

박이경이 워 베어의 앞발을 붙잡고 다리를 걸었다.

엎어치기였다.

워 베어의 뒷다리가 땅에서 떨어졌다.

터엉!

워 베어의 몸통이 바닥에 부딪쳤다.

워 베어는 거인화된 박이경보다도 훨씬 컸다.

그런 워 베어를 맨몸으로 엎어치다니···.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끄으으으···.

땅바닥에 내쳐진 워 베어가 꿈틀거렸다.

임수호는 퍼뜩 은설아를 돌아보았다.

“설아야. 얼른 테이밍 끊어!”

은설아는 벌써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테이밍 중인 마수가 죽기라도 하면, 테이머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은설아는 주먹을 꾹 쥐면서 워 베어를 일으키려고 했다.

“포기해.”

차은비가 은설아를 말렸다.

박이경은 워 베어의 가슴에 올라탔다.

워 베어의 머리에 주먹을 박아넣었다.

퍼어억!

S급 권사의 정권이었다.

단 한 방으로 워 베어의 숨이 끊겼다.

“아아···.”

은설아가 가벼운 공황 상태에 빠졌다.

워 베어가 죽기 직전, 테이밍의 연결은 끊었다.

그러나 심리적인 충격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후.”

박이경이 손을 털면서 일어났다.

거인화된 그는 인간이 아닌 괴물처럼 보였다.

스으으···.

박이경은 다시 원래 크기로 돌아왔다.

그의 상체는 맨몸이었다.

울퉁불퉁한 근육이 위협적이었다.

그의 부하가 가죽 자켓을 들고 다가갔다.

“어? 너는···.”

그 부하는 어둡고 진지한 인상의 젊은 남자였다.

임수호는 그를 바로 알아보았다.

“네크로맨서···.”

“음?”

임진호도 그 남자를 유심히 보았다.

그는 7룡성의 경기장에서 보았던 선수 중 한 명이었다.

과거 임진호 형제와 같은 처지였다.

‘그래, 저 얼굴. 기억나.’

그는 네크로맨서 클래스로, 경기장에서 죽은 시체를 되살려 싸웠다.

마지막에 임진호 형제가 각성자 선수들을 풀어줄 때, 그는 이미 탈출한 후였다.

“살아 있었구나···.”

임수호는 왠지 모를 동지의식에 반가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상대방은 묵묵부답이었다.

임수호 형제의 얼굴을 분명히 알 텐데.

인사는 물론이고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완전히 안면몰수하는 태도였다.

“뭐냐, 너. 아는 놈들이야?”

박이경이 흥미를 보였다.

그러나 네크로맨서는 말이 없었다.

조용히 눈빛만 오갔다.

“세상 좁네. 우리 막내랑 아는 사이다 이거지.”

“....”

“막내 실력 테스트 좀 할 겸. 싸움 좀 붙여볼까?”

“싸움이라뇨? 그런 건 원치 않습니다.”

임진호가 인상을 찌푸리며 뚜렷한 거부를 표시했다.

지금은 임시로 리더를 맡고 있는 상태였다.

최대한 문제를 안 일으키고 싶었다.

그러나 저쪽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네크로맨서가 워 베어의 시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스으윽.

“헉!”

워 베어의 시체가 감은 눈을 떴다.

새까맣던 눈동자에 푸른 기운이 감돌았다.

워 베어의 시체가 서서히 일어났다.

머리가 깨져 흉측한 몰골이었다.

근처에 널려 있던 라이칸스로프의 시체들도 비척비척 일어났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움막 안에서도 수상한 기척이 들렸다.

스으으···.

라이칸스로프 킹과 그 친위대가 일어났다.

배가 갈라지고 뼈가 뒤틀린 마수 시체.

끔찍한 광경이었다.

“!”

임수호의 표정이 변했다.

‘한 번에 시체를 이렇게 많이··· 저 네크로맨서가 저렇게 강했었나?’

클래스는 다르지만, 실력은 자신과 비슷한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충격이었다.

박이경이 껄껄 웃었다.

“거기 방패 든 친구.”

“...?”

박이경이 지목한 것은 임진호였다.

“혼자서 우리 신입이랑 붙어 봐. 이기면 너네 길드는 모두 무사히 보내 준다.”

일대일 대결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훨씬 불리했다.

워 베어에 라이칸스로프 킹과 그 친위대, 수십 마리의 라이칸스로프까지···.

임진호 혼자서 동시에 상대하라는 거나 다름없었다.

보다 못한 차은비가 임진호의 앞을 가로막았다.

“진호 씨. 저런 말 들을 필요 없어요.”

“차은비, 대신 싸우고 싶어서? 안 말릴 테니 해보던가.”

“하···.”

차은비는 분통이 터졌다.

이런 적이 사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일성이나 환인의 길드원에게도 호시탐탐 싸움을 거는 박이경이었다.

더 화나는 건, 막을 방법이 없다는 거였다.

물론 일성이나 환인에도 S급 전투 계열 각성자가 있었다.

그러나 자존심 강한 S급끼리 붙는 건 위험했다.

둘 중 하나가 죽자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게다가 박이경도 바보는 아니었다.

3위라는 자신의 위치를 무척 잘 활용하고 있었다.

1, 2위 중 한 길드와 척을 지면, 반대쪽에 붙을 테니까.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다들 그런 마음으로 박이경과의 갈등을 피했던 것이다.

임진호는 입술을 꾹 다물고 박이경의 가슴팍을 노려보았다.

‘네크로맨서가 되살린 시체는 살아있을 때보다 약해. 좀비처럼 고통을 못 느끼는 게 문제인데···. 시체를 박살내서 더이상 못 싸우게 해버리면 돼.’

생각을 마친 임진호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방금 한 말 지키세요.”

“물론이지. 남자가 한 입으로 두 말 하겠어?”

박이경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한건우와 못 만나게 되어서 짜증이 난 상황.

간만에 재미있는 구경으로 해소해보려 했다.

그때였다.

피유우우-!

콰아아-!

“...뭐야!”

박이경은 본능적으로 옆으로 몸을 피했다.

박이경이 서 있던 자리는 운석이 떨어진 듯 움푹 패여 있었다.

고온의 화염에서 열기가 피어올랐다.

“앗, 마스터!”

은설아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눈이 멈춘 회색 하늘.

불타오르는 화염의 날개를 접고 한건우가 착륙했다.

슈우우-

타앗.

한건우를 보고, 모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박이경. 내 길드원들 괴롭히지 마.”

한건우가 박이경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흐흐···. 주인공이 나타나셨군.”

“기다렸나?”

초면인 한건우가 당당하게 나오자, 박이경은 무척 흥분했다.

“어린 놈이 주제 모르고 건방진 게 맘에 들어. 그래야 밟는 맛이 나거든.”

한건우는 다가오던 걸음을 멈추었다.

[특성 발동 : 그래비티 필드]

한건우는 <전륜성왕의 구슬>을 잡고, 일순간에 막대한 MP를 집중적으로 쏟아부었다.

지이잉-.

작은 블랙홀도 만들 수 있는 중력이었다.

그 중력이 박이경의 몸을 내리눌렀다.

“으윽?”

박이경이 신음을 토했다.

<신체 강화>로 버텼지만 금방 한계가 왔다.

그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이건 피해야 한다.

오랫동안 느껴본 적이 없는 위험 신호가 느껴졌다.

단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박이경의 코에서 주르륵, 피가 흘러나왔다.

“마, 마스터?”

그의 길드원들은 무슨 상황인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끄으으···.”

투욱.

박이경은 도저히 중력을 이기지 못했다.

그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의 눈에 핏발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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