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참교육 (8) - 워 베어
<라이칸스로프의 산맥> 균열 안.
한건우 없이 길드가 움직이고 있었다.
이름처럼 산 형태의 균열이었다.
“산등성이 너머로 길이 이어져. 이쪽을 따라 가자.”
한건우 대신 리더 역할을 맡은 임진호는 신중하게 루트를 골랐다.
낭떠러지 옆길을 따라 올랐다.
겨울 산은 추웠고, 군데군데 눈과 얼음이 쌓여 미끄러웠다.
하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말 편하네.’
임진호가 속으로 감탄했다.
일단 드래곤 아머 덕분에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얼어붙은 이계에서 사는 빙룡이다.
그 피부를 입었으니 이 정도에 추울 리가 없었다.
드래곤의 발톱과 발바닥을 활용한 부츠는 미끄럼 방지가 되어있었다.
혹독한 환경의 균열 안에서도 파티원들은 평온한 표정이었다.
슈욱-!
뀌에엑-!
“엇, 저기 위!”
“고대 시조새네요.”
고대 시조새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금방이라도 공격할 듯했다.
트드드···.
임수호가 얼음 창을 만들던 때였다.
뀌-. 삐이-.
고대 시조새가 갑자기 얌전해지더니, 살랑살랑 날개를 펴고 돌기 시작했다.
“뭐지?”
파티원들이 당황해하던 때, 임수호가 중얼거렸다.
“설아네.”
슈우우우- 펄럭!
흰 그리핀이 절벽 위로 불쑥 나타났다.
처억.
흰 그리핀은 위엄 있게 가슴을 내밀며 바위 위에 내려앉았다.
그리핀은 은설아와 지내면서 몸집이 부쩍 커졌다.
그래서인지 자신감이 붙은 모습이었다.
[이리 와.]
은설아가 고대 시조새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푸드드···.
고대 시조새가 은설아에게 달려들었다.
“헉.”
임수호가 숨을 삼켰다.
테이밍이란 걸 알고 있는데도, 어쩔 수 없이 조마조마했다.
괴조처럼 생긴 마수가 어린 여자아이에게 달려드는 걸로 보였으니까.
[이 봉우리 너머에는 뭐가 있어?]
은설아는 배운 적도 없는 마수의 말을 했다.
한건우와 똑같이 <비스트 마스터> 특성의 발현이었다.
삐이- 파다다···.
고대 시조새가 날아올랐다.
시조새는 날개를 펴고 산등성이를 넘어 날아갔다.
은설아를 태운 그리핀도 날개를 퍼덕이며 떠올랐다.
‘마수를 정찰병으로 부리는구나.’
임수호가 눈을 반짝였다.
테이밍 능력은 볼 때마다 신비했다.
“테이밍 능력이 엄청 강해지면··· 무슨 균열이든 문제없이 깰 수 있나?”
기대를 잔뜩 담고, 임수호가 형에게 물었다.
“아니, 그렇게는 못할걸.”
“왜?”
“우선 인간형 마수를 테이밍한 사례는 없다고 했어.”
“음··· 그렇구나. 이 균열도 라이칸스로프가 나오니까.”
라이칸스로프는 늑대 머리를 달긴 했지만 이족 보행을 하는 인간형 마수였다.
“그래, 균열 공략까지는 안 된다고 봐야지.”
“테이밍으로 만사 형통이면 편할 텐데. 역시 시스템이 그렇게 둘 리가 없지.”
“또 테이밍도 특성이니까 한계가 있지. 동시에 다룰 수 있는 마리 수도 그렇고, 마수의 종류도.”
“그러고 보니 저번에 설아가 곤충형 마수는 도저히 테이밍이 안 된다고 하더라.”
“나도 들었어.”
임진호는 침착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경계를 잔뜩 세우고 있었다.
‘건우 형이 없을 때, 형의 빈자리를 내가 채워야 해.’
한건우가 자신을 믿고 맡겨주었다.
실수 없이 해내고 싶었다.
임진호는 새 방패를 보았다.
“....”
얼마 전, 한건우에게 이 방패를 받은 날을 떠올렸다.
*
‘방패?’
‘응. 지난번에 방패 부서졌지? 마지막 손질이 좀 오래 걸렸대.’
한건우는 아무렇지 않게 방패를 건넸다.
임진호가 방패를 본 첫 인상은, 무척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검은 방패는 세로로 길고 유려한 모양이었다.
위쪽은 각이 졌고, 아래쪽 끝은 뾰족했다.
새카맣게 빛나는 금속은 독특했다.
‘설마 이거···.’
‘아다만티움이야.’
임진호는 할 말을 잃고 새 방패를 바라보았다.
절대 부서지지 않는다는 전설의 금속으로 자신의 방어구를 만들어주다니.
옆에서 임수호가 한껏 부러운 눈길로 임진호를 바라보았다.
‘형, 나 한 번만 들어봐도 돼?’
‘그래.’
‘헉, 무겁네. 난 들고 다니지도 못하겠다.’
아다만티움은 철보다 훨씬 무거운 금속이었다.
임진호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메이스를 안 쓰고 방패로만 갈겨도 나가 떨어지겠군.’
방패 위쪽에 두 개의 보석이 나란히 박혀 있었다.
마치 맹수의 눈이 달린 것 같았다.
‘이건 뭐지? 장식인가?’
대장장이 장영표가 자랑스럽게 나섰다.
‘마스터가 가져온 바실리스크의 눈입니다.’
‘바실리스크의 눈이요?’
미공략 균열에서 만난 바실리스크가 떠올랐다.
<석화 광선>을 쏘는 바실리스크의 두 눈이 방패에 달려 있었다.
‘이 방패를 팔에 끼우고 마력을 운용해 보세요.’
‘어, 이건···.’
‘죽은 마수의 눈알이니 살아있을 때만큼은 안 되지만, 적의 움직임을 느리게 하는 정도는 될 겁니다.’
임진호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
임진호가 말 없이 방패를 내려다보자, 임수호가 말을 걸었다.
“형, 그거 알아?”
“뭐.”
“C급 중에서 이만큼 아이템 빨을 세운 사람은 형밖에 없을 거야.”
임진호는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한건우가 준 아이템은 자신의 능력에 비해 과했다.
이제 아이템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서 보답하고 싶었다.
그때 산봉우리를 넘어갔던 고대 시조새가 돌아왔다.
은설아가 물었다.
[이 너머엔 뭐가 있어?]
끼이이이-.
은설아는 시조새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 균열에는 왕이 둘 있다는데요?”
임진호의 눈썹이 꿈틀했다.
“라이칸스로프의 왕만 있는 게 아니라?”
“네. 이 봉우리를 건너면 두 왕의 영토가 나온대요.”
“....”
“힘이 센 숲의 왕, 그리고 바람처럼 빠른 산의 왕. 두 왕이 서로 영토 싸움을 하고 있대요.”
파티원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임진호가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라이칸스로프 왕이 가진 수정만 얻으면 돼. 아무래도 ‘산의 왕’ 쪽일 것 같으니 그쪽으로 가보자.”
“네.”
은설아는 고대 시조새를 다시 훌쩍 날려보냈다.
임진호가 방패와 메이스를 들고 앞장섰다.
임수호는 <은신의 룬> 주문서를 찢었다.
인간의 냄새를 지우는 스킬을 모두에게 걸어주기 위해서였다.
봉우리를 넘으니 새로운 풍경이 나타났다.
우선 날씨가 바뀌었다.
회색 하늘에서 눈송이가 내리기 시작했다.
눈송이의 크기가 주먹만했다.
지형도 달라졌다.
한쪽에는 빽빽한 삼나무 숲이, 다른 쪽에는 얼음으로 뒤덮인 협곡이 보였다.
협곡 쪽에는 거대한 움막이 보였다.
인간형 마수가 지은 움막 같았다.
“저쪽이겠군.”
눈이 밝은 임진호가 신음을 내뱉었다.
“음....”
“형, 왜 그래?”
“라이칸스로프가 너무 많아.”
라이칸스로프는 무리 생활을 하는 생물이었다.
움막 근처에는 수십 마리의 라이칸스로프가 우글거리고 있었다.
‘건우 형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임진호는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한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때 은설아가 손을 들었다.
“저, 라이칸스로프 말고 다른 마수라면 테이밍이 될 것 같은데···.”
“그건 왜?”
“숲의 왕도 마수일텐데, 테이밍이 되면 함께 싸울 수 있지 않을까요?”
파티원들은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좋아, 아직 시간 여유가 있으니.”
임진호는 숲의 경계선 쪽으로 길을 타고 내려갔다.
그를 길잡이 삼아서, 다른 파티원들도 눈에 띄지 않게 바짝 따라왔다.
“엇.”
뒤따라온던 임수호가 놀랐다.
삼나무 숲의 경계선.
눈밭 위에 라이칸스로프 대여섯 마리의 시체가 보였다.
모두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온기가 남아있었다.
몸통이 으깨진 놈, 두개골이 박살난 놈.
모두 끔찍하게 죽은 모양새였다.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다 한 방에 죽었어.”
“대체···.”
그들은 긴장했다.
다른 이들이 라이칸스로프 시체를 보고 있을 때, 임진호는 근처의 땅바닥을 살폈다.
눈이 쌓인 곳에 찍힌 발자국을 살펴본 임진호가 내뱉었다.
“발이 엄청나게 큰 마수가 있어.”
“발이라고?”
“응, 발자국 지름만 1m가 넘는 놈이야.”
“혹시 저것도 발자국이야?”
임수호가 나무 위를 가리켰다.
“뭐? 그건 너무 높···.”
그때 숲속 가까운 곳에서 동굴처럼 낮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우어어어어···.
파티원들은 흠칫 놀랐다.
울음소리가 매우 높은 곳에서 들렸기 때문이다.
나무 사이로 흐릿하게 거인 같은 곰의 그림자가 보였다.
“!”
곰은 두 발로 일어서자 7m가 넘을 듯했다.
솥뚜껑 같은 앞발은 유난히 큼직했다.
차은비가 말했다.
“워 베어에요.”
우어어어!
워 베어가 화답하듯 포효했다.
끼에엑!
흰 그리핀이 날개를 퍼덕이며 달려들려 했다.
“잠깐···!”
은설아는 그리핀을 달래 진정시켰다.
그녀는 그리핀을 타고 워 베어에게 다가가 테이밍하려 했다.
퍼억!
워 베어의 앞발이 아슬아슬하게 그리핀의 몸통을 스쳤다.
그으으···. 터엉!
높이 자라난 삼나무가 통째로 부러졌다.
“...윽.”
은설아의 정신이 방벽에 부딪친 것처럼 타격을 입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설아야!”
“아, 안 돼요! 죄송해요!”
은설아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분노한 그리핀이 날개를 퍼덕거렸다.
이곳은 나뭇가지가 빽빽한 숲속이었다.
그리핀이 날거나 움직이기가 여의치 않았다.
반면, 워 베어는 숲속에서도 움직임에 구애받지 않았다.
투두둑!
거대한 앞발을 쳐들자 나뭇가지들이 부러졌다.
쿠웅-! 쿵!
워 베어가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왔다.
임진호는 방패를 들고 마력을 운용했다.
‘바실리스크의 눈!’
처음으로 써보는 기능이었다.
이번엔 그다지 소용이 없었다.
워 베어는 잠깐 멈칫했을 뿐이었다.
압도적인 힘은 막을 수 없었다.
우우우- 콰앙!
임진호가 서있던 자리에 워 베어의 앞발이 떨어졌다.
크스스스···.
땅이 패이고 눈발이 날렸다.
뒤로 물러난 임수호가 공중에서 날리는 눈송이를 노려보았다.
[특성 발동 : 빙정난류]
슈우- 트드드드···.
떨어지는 눈송이가 단단한 결정으로 변했다.
날카로운 얼음 결정이 총알처럼 워 베어에게 쏘아져 날아갔다.
퍼버벅!
제대로 맞긴 했으나, 화만 돋구었을 뿐이었다.
워 베어의 털가죽은 무척 두꺼웠다.
그어억!
화가 난 워 베어가 임수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스치잉-!
임수호는 눈바닥에서 얼음 창을 솟아나게 했다.
그어어!
비교적 연한 발바닥을 찔린 워 베어가 분노해서 울부짖었다.
쿠웅- 쿠웅-
워 베어가 임수호에게 걸어왔다.
임진호가 방패를 들고 뛰쳐나갔다.
뒤에서 차은비가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특성 발동(희귀) : 신의 가호]
차은비는 임진호의 근력 스탯에 힘을 실어주었다.
콰아악-! 퍼억!
임진호는 아다만티움 방패로 워 베어의 배를 올려쳤다.
동시에 메이스로 워 베어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그워어···.
워 베어가 잠시 기우뚱했다.
스스스스···.
임수호는 재빨리 워 베어의 한쪽 다리를 얼음으로 둘러쌌다.
임진호가 메이스를 고쳐잡았다.
퍼억!
아까 때린 옆구리를 다시 한 번 내리찍었다.
다리가 묶인 워 베어가 중심을 잃고 넘어갔다.
쿠우웅-!
워 베어가 큰 바위가 있는 쪽으로 엎어졌다.
워 베어가 넘어지면서 바위에 머리를 정통으로 박았다.
워 베어는 멀쩡했고, 바위만 반동강이 났다.
워 베어가 누운 채로 콧김을 뿜었다.
벌떡 일어나려 했으나, 어지러운지 헛발질을 했다.
임진호가 방패를 치켜들었다.
그때 은설아가 말렸다.
“잠깐만요! 한 번만 더요.”
그녀가 워 베어의 눈을 마주치며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나타난 변화는 놀라웠다.
그으으···.
워 베어가 순박하게 눈을 꿈뻑였다.
짐승에도 표정이 있던가.
흉폭하던 눈빛이 초식동물처럼 유순하게 바뀌었다.
[괜찮아.]
은설아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녀는 방금 자기의 한계를 넘었다.
이 균열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그러나 워 베어는 B급 균열의 주인에 비견되는 마수였다.
균열의 주인급 마수에 테이밍을 성공한 건 처음이었다.
한건우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바로 그 점을 짚으면서 은설아를 격려해줬을 것이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파티원들은 다행이라고만 여겼다.
“와, 이 커다란 마수가 테이밍이 된다고?”
“아무래도 곰이어서 그런가.”
크르르르···.
워 베어는 그 말을 알아들은 듯이 공격성을 드러냈다.
“아픈가 봐요.”
은설아는 워 베어의 머리통을 잡고 쓰다듬었다.
머리만 해도 자기 키보다 컸다.
“치유해 줄게.”
차은비가 선뜻 나섰다.
마수에게 힐을 주다니. 그전의 차은비라면 경악을 했을 일이었다.
어느새 차은비는 조금 변했다.
신선한 길드 분위기에 조금 익숙해진 것 같았다.
차은비의 손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신성한 빛무리가 번져나갔다.
“와···.”
워 베어의 외상이 눈에 띄게 나았다.
인간보다 몇 배는 크니, MP도 많이 소모될 것이 뻔했다.
그러나 차은비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어어···.
워 베어가 건강한 모습으로 네 발로 일어났다.
임진호는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았다.
혹시 건강이 돌아오면 테이밍이 풀릴까봐 걱정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는 모양이었다.
은설아가 워 베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가자.]
워 베어는 숲의 경계선 밖으로 나왔다.
라이칸스로프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다.
쿠웅- 쿵- 쿠웅- 쿵-
워 베어가 네 발로 질주했다.
목적지는 라이칸스로프가 사는 협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