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77화 (77/238)

#77참교육 (6) - 요검 이페탐

검귀의 회심의 기술인 무기 파괴술.

적의 무기와 얽혀서 대치 중일 때 사용하는 기술이었다.

<검풍>을 접점에 응축시켜 적의 무기를 산산조각내는 것이었다.

툭, 투둑.

검귀의 팔을 타고 진동이 전해져 왔다.

무기에 금이 가는 느낌이었다.

검귀가 음흉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보아하니 좋은 창 같은데, 아깝게 됐군」

트드드드···..

검귀는 검에 더 힘을 주며 밀어붙였다.

한건우의 창이 깨질 거라고 생각했다.

“시도는 좋았다.”

타앗!

서로 얽혀있던 두 무기가 떨어졌다.

한건우가 창을 회수해서 빙 돌렸다.

「어?」

검귀는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한건우가 든 창이 한 눈에 들어왔다.

긴 창은 흠집 하나 없이 매끈했다.

검은 창날에는 은빛으로 된 룬 문자가 빛나고 있었다.

「이럴 수가···?」

검귀는 자신의 요검 이페탐을 내려다보았다.

요검의 날에 미세하게 실금이 가 있었다.

내구도가 상당히 깎인 상태였다.

「아, 안돼···.」

검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이건 자신을 흑천회의 두목으로 만들어준 검.

사람의 피를 먹여가며 강화해온 검이었다.

“멍청한 놈.”

한건우는 그를 비웃었다.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지.”

요검 이페탐은 전설급 무구였다.

한 나라에서 몇 개 볼 수 없는 무기였다.

그러니 검귀는 상상도 못했으리라.

한건우가 신화급 무구를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전설급 무구는 신화급 무구보다 두 등급이나 아래였다.

무기 파괴술이 먹힐 리가 없었다.

위이이잉-!

한건우는 창을 빠르게 돌리면서 크게 휘둘렀다.

치잉-!

「으윽!」

검귀는 이제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입장이 되었다.

요검의 내구도가 아슬아슬했다.

까앙-! 챙!

검귀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왼쪽 위를 막자마자 오른쪽 위로 내리치는 창.

말도 안 되는 궤도였다.

‘창이 어디로 움직일지 전혀 예측할 수 없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건우의 창은 길이가 길었고, 무게도 상당했다.

관성, 그리고 반동.

그 두 가지가 있으니, 무기의 동선이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런데 한건우의 창은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것 같았다.

무기의 반동에 얽매이지 않는 신체적 스펙 때문이었다.

위이이- 채앵! 챙!

검귀는 거의 본능으로만 한건우를 상대했다.

「흐윽···.」

검귀의 한쪽 어깨와 정강이에 자상이 생겼다.

그는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일격 일격이 태산처럼 무거웠다.

채앵- 치지지직-!

요검으로 창날을 막아내며 버텼다.

검귀는 오른팔에 둔중한 통증을 느꼈다.

요검의 내구도가 뚝뚝 떨어졌다.

검귀가 별안간 두 손에서 검을 놓았다.

“!”

휘익-!

검귀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집을 검처럼 들고 휘둘렀다.

한건우의 허점을 노린 것이었다.

차아악-!

그의 특성인 <검풍>은 검집을 들 때도 작용되었다.

칼날 같은 바람이 한건우의 몸통을 노렸다.

그러나 빈틈이라는 건 검귀의 착각이었다.

치지직···. 터엉!

<인드라의 뇌전>이 맺힌 주먹에 검집이 맞아서 날아갔다.

「크윽!」

별안간 전격을 맞은 검귀는 혼이 나갈 뻔했다.

각성자가 아니었다면 즉사했을 것이다.

검귀는 뒤쪽으로 굴러서 한건우와 거리를 벌렸다.

「어떻게 이런···?」

검귀는 마른침을 삼켰다.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내가 직접 검을 맞대본 자 중에서··· 이 자가 가장 강하다.’

검귀는 그제야 한건우를 제대로 살폈다.

얼굴을 포함해서 온몸을 가린 한건우였다.

20대 정도로 보이는 체격 좋은 한국인 남성.

검은 창을 능숙하게 다루는 각성자.

검귀는 짚이는 바가 있었다.

한국의 S급 각성자는 일본에서도 관심을 가지는 대상이었다.

「설마··· 한건우 플레이어?」

한건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검귀는 확신했다.

한국의 13번째 S급 각성자, 한건우.

그 남자가 분명했다.

「...이제까지 나를 놀린 건가.」

“?”

검귀는 모욕을 당한 듯 분한 얼굴이었다.

‘한건우 플레이어는 화염 특성을 쓴다고 들었다. 그런데 순전히 무술로만 나를 꺾으려 하고 있어.’

한건우는 자신의 특성이나 클래스를 확실히 얘기한 적이 없었다.

언론이나 대중들은 그저 추측할 뿐이었다.

물론 한건우는 검귀가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굳이 검귀를 농락하거나 괴롭히려고 한 건 아니었다.

창을 겨뤄본 이유는 호기심이 더 컸다.

‘검귀라 불리는 자의 검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했는데.’

문서 자료에서만 보았던 일본의 검귀.

기회가 된다면 한번쯤 겨뤄보고 싶었다.

‘발도술과 무기 파괴술··· 여기까진가?’

뭔가 얻어갈 점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건우는 살짝 실망했다.

‘마주친 시점이 이르니 어쩔 수 없나.’

검귀는 처음부터 높은 등급의 각성자는 아니었다.

요검 이페탐을 얻고 차츰 강해져서 최종 S급이 될 뿐.

그러니 아직 검귀의 실력이 정점에 이르기 전이었다.

요검 이페탐에도 주로 민간인의 피를 먹인 상태.

이후에 야쿠자끼리 죽고 죽이는 전쟁을 하면서, 각성자의 피를 먹여서 더욱 강해진 것 같았다.

한건우의 손에 고온의 화염이 피어났다.

「허억···!」

검귀는 물류창고 안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혼자서는 무리였다.

부하들에게 도움을 청하려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화염을 막아내줄 인간 방패가 필요했다.

조금이라도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십수 명의 부하들이 동시에 한건우에게 덤벼든다면···.

그 때를 틈타서 도망갈 수도 있었다.

「멍청한 놈들! 빨리 나와!」

검귀는 눈치 없는 부하들을 욕했다.

두목이 고군분투하는데 구경만 하고 있다니.

그러나 어째 창고 안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검귀는 속이 답답했다.

바닥에 떨어진 요검을 주워들고, 물류창고 안으로 후다닥 뛰쳐 들어갔다.

「뭐 하는···?」

검귀가 창고 가운데서 우뚝 멈춰섰다.

그의 부하들이 바닥에 꼴사납게 엎어져 있었다.

등 뒤에서 습격당한 모양새였다.

한 명이라면 모를까, 어떻게 다들 뒤에서 습격을 당한단 말인가?

많은 적이 동시에 작전을 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눈을 씻고 봐도 적은 안 보였다.

사실 적이 침입할 수도 없었다.

입구 앞에서 한건우와 검귀가 싸우고 있었으니까.

‘....’

귀신에라도 홀린 듯했다.

검귀의 사고가 멈추었다.

살아남은 부하는 오직 하나뿐.

그마저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일본도를 사방에 겨누면서 불쌍할 정도로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동료들이 보이지 않는 적에게 소리없이 죽어나가는 걸 목격했으니.

한건우는 천천히 걸어서 검귀를 따라왔다.

그는 안쪽의 상황을 보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비현이 왔구나. 요즘 부쩍 물이 올랐어.’

그때 허공에서 이비현이 유령처럼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야쿠자의 그림자 뒤였다.

오른손에 시미터를 역수로 잡고 있었다.

그녀가 야쿠자의 목을 뒤에서 확 끌어안듯 했다.

스걱.

비정한 손길이 목을 가로로 그었다.

야쿠자는 본능적으로 손으로 상처를 눌렀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바실리스크의 맹독이 피에 스며들고 있었다.

「흐어어···. 히, 힐···.」

야쿠자는 힐러를 찾으며 무릎 꿇었다.

모두 죽었는데 힐러가 있을 리가.

이비현은 창고에 들어오자마자 힐러나 법사부터 해치웠다.

구별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무기가 없는 놈들부터 죽이면 되지.’

검귀가 바닥에 못박힌 듯 서 있었다.

도저히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흐윽···.”

“흑.”

창고에는 숨죽인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창살 안에 갇혀있던 여자들이 흐느끼는 소리였다.

한 여자가 검귀를 손가락질하며 이비현에게 뭐라뭐라 소리쳤다.

이비현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저놈이 두목이래요. 사람을 납치해서 파는 조직인데··· 말을 안 듣는 여자들은 저 놈이 하나씩 죽였다네요. 자기 검에 사람의 피를 먹여야 한다면서···.”

한건우는 이미 눈치채서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이비현의 목소리에서 증오가 뚝뚝 떨어졌다.

그녀가 맹독 시미터를 꽉 쥐었다.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듯했다.

한건우는 얼른 한 손을 들어서 이비현에게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

이비현은 의아해하면서도 그의 지시를 따랐다.

‘<검풍> 특성은 흡수할 가치가 있겠어.’

검날이 아닌 검집을 휘두를 때도 <검풍>이 발동되는 걸 보았다.

그렇다면 한건우의 창에도 적용할 수 있겠지.

한건우의 손바닥 위에 다시 <아그니의 화염>이 피어올랐다.

그 때였다.

검귀가 기이한 행동을 했다.

사아악!

검귀가 요검 이페탐으로 자기의 왼쪽 팔뚝을 그은 것이다.

검귀의 피가 요검의 날에 빨려들어갔다.

새하얀 검신이 묘하게 빛났다.

“뭐죠, 저건?”

검귀가 갑자기 자해를 하자, 이비현이 당황했다.

한건우도 아는 바가 없었다.

한 가지 추측은 가능했다.

‘자기 자신의 피를 먹인다···?’

목숨을 건 최후의 수단 같았다.

염제 신광우도 그랬다.

죽음을 예감한 순간, <염화>를 통해 자신의 생명력을 불로 바꾸어 대항했다.

검귀가 요검 이페탐을 치켜든 순간, 한건우가 손바닥을 들었다.

화아아악!

한건우는 검귀에게 지옥의 겁화를 쏟아부었다.

「으아아!」

쿠과과가가-!

요검 이페탐은 그에 맞서서 폭풍처럼 거센 검풍을 쏘았다.

주인의 피를 마신 요검은 무서울 정도로 강해졌다.

검풍의 바람 때문에 지옥의 겁화가 사방으로 번졌다.

‘이런.’

한건우는 재빨리 <공간 왜곡>을 펼쳤다.

검귀와 자신을 둘러싼 공간의 감옥을 만든 것이었다.

주변에 있는 이비현과 여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공간의 감옥은 지름이 십 미터 정도 되는 원형이었다.

타아아앗-!

검풍이 워낙 강력해서, 투명한 공간의 벽이 세차게 흔들렸다.

“꺄아악!”

“흐악!”

공포에 질린 여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지옥의 겁화와 섞인 검풍은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했다.

다행히 화염 섞인 검풍은 공간의 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불꽃이 보이지 않는 벽을 타고 안으로 휘어졌다.

한건우는 아그니의 화염을 거두었다.

「이야아아!」

검귀가 한건우에게 뛰어오며 요검을 크게 휘둘렀다.

콰과과과···.

검귀의 생명력을 담은 검풍이 다시 밀려왔다.

아까의 검풍과는 차원이 달랐다.

거기 말려들면 웬만한 각성자도 온몸이 찢길 것이다.

‘공간의 벽은 못 버티겠어.’

검귀를 먼저 죽여도 한번 쏘아진 검풍은 주변을 초토화시킬 것이다.

한건우는 다치지 않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달랐다.

찰나의 순간, 한건우는 정신을 집중했다.

[특성 중첩 : 암흑의 별]

[특성 중첩 : 그래비티 필드]

- 죽은 별의 냉기와 어둠을 불러온다.

- 일정한 공간의 중력을 가중한다.

검귀와 한건우 사이의 허공.

아주 작고 새카만 점이 생겨났다.

주의깊게 봐야만 보일 정도로 조그만 크기였다.

쉬이익!

블랙홀과 같은 작은 흑점은 순식간에 검풍의 에너지를 집어삼켰다.

마치 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는 것처럼.

「그어어어···!」

흑점에 가까이 있는 요검과 검귀의 손끝이 늘어나고 있었다.

공간의 벽도 안쪽으로 휘어졌다.

파앗!

한건우가 특성 중첩을 없앴다.

블랙홀 같은 흑점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터엉! 탁!

그 반동으로 검귀의 몸이 위로 쏘아져 올라가더니, 공간의 벽을 맞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검귀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였다.

만신창이가 되고서도 요검을 잡고 한쪽 무릎을 꿇고 일어섰다.

한건우가 검귀에게 다가갔다.

차아악!

「큭···!」

먼저 창날이 검귀의 오른팔을 내리쳤다.

요검이 검귀에게서 떨어졌다.

스릉!

한건우가 창을 휘둘렀다.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검귀의 목에서 머리가 굴러 떨어졌다.

“...헉.”

이비현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건우가 뭘 했는지 모를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한건우는 요검 이페탐을 바라보았다.

‘요검’이라는 별명이 붙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 검은 끊임없이 인간의 피를 원했다.

그걸 위해서 검의 주인을 계속 강하게 해주었다.

‘피에 미친 살인귀로 만든다는 소리겠지.’

한건우는 목이 떨어진 검귀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한건우가 죽이지 않았다면, 10년 후 야쿠자 조직을 통일하고 총재가 되었을 남자였다.

한건우는 그 후의 미래도 알았다.

검귀는 총재의 자리에 오르고도 만족하지 못했다.

무고한 사람을 끊임없이 희생시키다가 부하들의 배신으로 자멸하고 만다.

요검 이페탐은 배신한 부하의 손에 들어갔다.

검귀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이 검의 주인은 하나같이 저주받은 길을 걸었지.’

한건우는 요검 이페탐의 손잡이를 잡았다.

아이템 창이 떴다.

[요검 이페탐(전설급)]

아까 검귀의 피를 마신 덕분에, 검의 내구도가 어느 정도 회복되어 있었다.

-우우우···.

한건우의 손이 닿자, 요검이 진동했다.

요검이 새로운 주인을 유혹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