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참교육 (5) - 검귀
아침 해가 막 떠오른 시간.
항구 근처에는 물안개가 피어 있었다.
한건우는 물안개 사이로 나타나는 신형들을 보았다.
“벌써 맞으러 나왔군.”
한건우가 창을 한 바퀴 돌려 잡았다.
다가온 자들은 모두 여섯.
모두 하급 각성자였다.
넥타이까지 동여맨 시커먼 정장을 입었다.
도무지 바닷가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었다.
야쿠자 행동대원이라고 광고라도 하는 듯했다.
어이가 없어진 한건우가 중얼거렸다.
“저 놈들은 균열에도 정장을 입고 들어가나?”
「뭐야? 부두목님이 아닌데?」
「뭐 하는 놈들이야.」
행동대원들은 당황했다.
저 요트는 분명히 야쿠자 부두목의 것이었다.
당연히 그가 부산에서 돌아온 줄 알고 맞으러 나왔다.
기다리던 부두목은 안 보이고, 처음 보는 한건우만 보인 것이다.
“뭐라는 거야?”
한건우가 이비현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통역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비현이 안 보였다.
그녀가 연기처럼 사라진 것이다.
“!”
이비현은 번개처럼 이동했다.
첫 번째 희생자의 그림자 뒤로.
스걱!
그녀의 맹독 시미터가 남자의 목을 일자로 그었다.
잔인하면서 효율적인 동작이었다.
「끄으윽···.」
「제압해!」
슈욱!
그렇게 외치는 자의 목에는 단검이 날아가 박혔다.
각성자이니, 곧바로 죽지는 않았다.
큰 상처를 입은 채로도 검을 들고 맞서 싸우려 했다.
채앵-! 스걱!
이비현은 손목을 내리쳐서 검을 떨구었다.
두 번째 희생자도 순식간에 시체가 되어 털썩 쓰러졌다.
「주, 죽여라!」
그들은 배 위에 있던 놈들과 비슷했다.
야쿠자 행동대원들은 주로 근접 전투 계열에 편중되어 있었다.
그나마 주술사 클래스가 한 명 있었다.
치지직-!
주술사의 손에 검은 뇌전이 맺혔다.
「이야앗!」
파직-!
그가 이비현을 향해 저주의 뇌전을 날렸다.
이비현은 허공에서 팟 하고 사라졌다.
또다시 옆 사람의 그림자로 숨은 것이다.
「크아아악!」
주술사가 날린 뇌전은 자신의 동료에게 정통으로 맞았다.
저주의 뇌전은 감전을 일으키며 체력을 깎아먹었다.
쓰러진 남자가 사지를 부들부들 떨었다.
“저런.”
한건우는 남자를 보면서, 왼손을 뻗었다.
파지지직-!
짙푸른 번개처럼, <인드라의 뇌전>이 꽂혔다.
팔다리를 떨고 있던 남자는 그대로 즉사했다.
한건우는 내심 특성 흡수를 기대했다.
그런데 권능창은 묵묵부답이었다.
한건우가 한숨을 쉬었다.
“영양가 없는 놈.”
특성 개화도 못 한 각성자라니.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이, 이럴 수가···.」
한건우가 쓴 특성을 보고, 주술사는 겁에 질려 주춤했다.
‘내 <저주의 뇌전>보다 훨씬 강력해···.’
비교하는 게 실례가 될 정도였다.
주술사는 황망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놀라서 다리에 힘이 풀릴 뻔했다.
어느새 같이 온 행동대원들이 모두 쓰러져있었다.
‘그 악마 같은 년이···.’
주술사는 정신을 다잡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살 길이 있다고 했다.
퍼엉!
주술사가 폭약 아이템을 터트렸다.
큰 폭발음과 함께, 흰 연기가 뿜어져나왔다.
시야를 가리는 매캐한 연기였다.
주술사는 그 사이를 뚫고 전속력으로 도망쳤다.
아니, 도망치려 했다.
슈우-!
「억!」
주술사는 영문도 모르고 쓰러졌다.
땅을 짚고 일어나려는데, 헛발질이었다.
“?”
일어날 수가 없었다.
무릎 아래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예리한 창날에 두 다리가 잘린 것이었다.
그제야 고통이 밀려왔다.
「크어억···.」
엎드린 채 비명을 지르려던 주술사가 입을 턱 다물었다.
그의 목에 칼날의 냉기가 느껴졌다.
“길 안내 시킬 겸 살려둘까요?”
이비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주술사는 알아듣지 못햇다.
그저 남아있는 두 손으로 빌기만 했다.
「제발 한번만 살려주십쇼···.」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야쿠자들 앞에서 똑같이 빌었다.
주술사는 한 번도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는 자비가 돌아오기를 기도했다.
한건우는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필요없어.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 봤거든.”
스윽.
이비현이 맹독 시미터를 깊숙히 그었다.
바실리스크의 맹독은 무서울 정도로 강했다.
치명상에 맹독이 더해졌다.
각성자의 신체로도 이겨내기 어려웠다.
주술사의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차르릉-.
이비현은 시미터의 칼집에 칼을 꽂아넣었다.
「누구냐!」
“....”
또였다.
지치지도 않는지, 같은 패턴으로 네 명이 달려왔다.
슬슬 지겨워지려고 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우리 흑천회를 우습게 알다니.」
「해치워!」
행동대원들이 소리쳤다.
대충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뒤를 맡길게. 너라면 충분할 거야.”
한건우는 이비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네?”
타다닥!
한건우는 당황한 이비현을 남겨두고, 먼저 자리를 떴다.
*
항구에 붙은 대형 물류창고 단지.
가장 큰 창고 안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각성자의 마기였다.
‘꽤 강한 각성자가 하나, 나머지는 그저 그렇고.’
창고 문 앞을 지키는 사람은 없었다.
프리 패스였다.
‘아까 거기로 달려온 놈들이군.’
한건우는 창을 고쳐 잡고, 창고 문을 발로 찼다.
콰앙-!
“···!”
창고 안에는 순간 침묵이 흘렀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한건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중앙에 보이는 풍경이 이상했다.
한 남자가 독특한 검을 차고 서 있었다.
그는 키가 껑충하게 컸고, 기인처럼 보였다.
길게 기른 머리를 묶고, 사무라이 같은 전통 복장을 입고 있었다.
남자의 앞에는 한 여자가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그녀는 팔다리가 앙상했고, 밧줄로 꽁꽁 묶인 채였다.
‘각성자가 아니라 일반인 같은데?’
여자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울고 있었다.
절망에 체념한 듯했다.
한건우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의아했다.
안쪽을 훑어보았다.
수십 명의 야쿠자들이 있었다.
몇몇은 웃통을 벗거나 러닝 셔츠 차림이었다.
한쪽 벽에는 상자가 쌓여 있었다.
배에서 본 마약 상자와 같은 모양이었다.
그 양이 엄청났고, 독한 약품 냄새가 풀풀 풍겼다.
‘정확히 찾아왔군.’
이곳은 일본 정부조차 손을 떼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무인도.
이렇게 각성자 범죄조직의 기지가 되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창살로 막힌 컨테이너 안에는 여자들이 묶여 있었다.
수십 쌍의 겁먹은 눈이 한건우를 향했다.
붙잡혀 있는 여자들은 모두 젊었고,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이었다.
한건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가지 가지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인신매매까지 하는 건가?’
사무라이 복장을 한 남자가 한건우를 쏘아보았다.
광기 어린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나의 요검은 3일에 한 번은 사람을 베어야 날이 유지되지.」
“···?”
통역해 줄 이비현이 없었다.
조금 답답한 와중이었다.
‘저 눈매··· 왜 익숙하지?’
사무라이 복장을 한 남자가 낯이 익었다.
광기 어린 눈빛과 짙은 눈썹.
분명히 어디서 봤다.
한건우는 한 번 본 사람은 잊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어봐도 이런 일본인을 만난 적은 없었다.
‘잊어버리기도 어렵게 생겼는데?’
한건우가 그 남자가 눈을 마주치고 있을 때.
묶여 있던 여자가 기어서 도망치려 했다.
처억.
남자가 검집에 꽂힌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의 얼굴에는 잔인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기억났다. 수염이 없어서 못 알아봤군.’
한건우는 드디어 그 남자를 알아보았다.
직접 만난 것은 아니었다.
외국의 각성자 자료에서 보았을 뿐이었다.
야쿠자 조직인 흑천회의 두목.
<검귀>라 불리는 자였다.
10여년 후, 이 남자는 일본의 모든 야쿠자 조직을 통일한다.
그리고 스스로 그 연합 총재 자리에 오른다.
파아-!
한건우의 손에서 바주카포 같은 불덩이가 쏘아져나갔다.
<아그니의 화염>으로 만든 폭염탄이었다.
타앗!
검귀는 엄청난 반사신경으로 폭염탄을 피했다.
그의 흰 옷자락에서 연기가 났다.
「건방진 놈.」
검귀는 다시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검이 독특하게 휘어져 있었다.
‘저게 바로 요검 <이페탐>이군.’
저 검을 얻기 전에, 이 자는 그저 야쿠자의 행동대원이었다.
실력 좋은 검사였지만 그뿐이었다.
사람을 잡아먹는 요검 이페탐.
우연히 이 검을 얻고, 그의 검술에는 날개가 돋쳤다.
그의 특성인 <검풍>도 힘을 얻었다.
검귀는 그의 요검과 함께 점점 강해졌다.
한건우는 검귀의 동작에 주목했다.
단순히 칼을 뽑으려는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발도술!’
검귀의 첫 번째 기술, 발도술이었다.
차아아악!
검을 뽑자마자, 고도로 압축된 공기가 칼날처럼 쏟아졌다.
검귀의 특성인 <검풍>을 더해서 위력을 실었다.
검이라는 한계를 극복해서, 원거리 공격까지 가능했다.
타앗!
한건우는 발도술을 예측하고 있었다.
날아오는 공격을 쉽게 피했다.
「피했어?」
지켜보고 있던 야쿠자 부하들도 놀라 입을 벌렸다.
「두목의 발도술을 피하다니···.」
「이제까지 그런 자가 있었나?」
검귀는 발도술 하나로도 많은 적을 물리쳐왔다.
발도술 자체가 강해서가 아니었다.
허를 찌르는 공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 보는 자가 발도술을 회피했다.
스릉···.
요검 이페탐을 겨누며, 검귀가 이를 악물었다.
한건우는 발도술의 여파를 받은 곳을 슬쩍 보았다.
시멘트 바닥이 깊이 패여있었다.
한건우가 중얼거렸다.
“고작 저건가?”
검을 한 번 휘두르는 정도의 타격.
애써 피하지 않고 맞았어도 될 뻔했다.
한건우에게는 드래곤 아머 수트가 있으니까.
한건우의 말을 들은 검귀가 흠칫했다.
「조선인인가?」
“뭐?”
그 말은 알아들었다.
한건우가 얼굴을 구겼다.
「방금은 운이 좋아 피했는지 모르지만···.」
검귀가 요검 이페탐을 치켜들었다.
괴물의 송곳니처럼 휘어있는 새하얀 칼날이 요요하게 빛났다.
「네놈 따위 요검의 먹이가 될 뿐이다.」
“뭐라는 거야.”
「죽여주마!」
검귀가 한건우가 있는 입구 쪽으로 정면으로 돌격했다.
한건우는 뒤로 물러나면서 창고 바깥으로 나갔다.
전장이 야외로 바뀌었다.
타앗- 쉬이익!
검귀가 요검을 수직으로 잡고, 위에서 아래로 크게 베었다.
제법 호쾌한 동작이었다.
그가 요검을 휘두를 때마다, <검풍>의 칼바람이 몰아쳤다.
치잉-! 파직.
요검 이페탐과 마창 게이볼그가 부딪쳤다.
날이 마찰되며 불꽃이 튀었다.
검귀의 눈도 번뜩 빛났다.
‘내 공격을 받아치다니.’
요검과 충돌하면, 웬만한 무기는 부서져 버렸다.
‘부서지지 않았지만, 이가 나갔겠지.’
검귀는 몸의 중심을 유지하면서, 한 발을 뒤로 빼면서 회전했다.
촤아악-!
요검을 수평으로 깊숙히 그었다.
매끄러운 연계동작이었다.
채앵- 차르르-.
한건우는 창날로 요검의 날을 흘렸다.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고 미세하게 사선으로 튼 것이었다.
「으윽···.」
검귀의 손목이 좌우로 흔들렸다.
아릿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가 이를 악물고 맹공을 퍼부었다.
챙-! 치잉-! 치이잉-.
타아앗!
예측하기 어려운 각도로 이어진 3격.
반동을 감수하고, 검을 무자비하게 휘두르며 밀어붙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이 조선 놈··· 왜 전혀 밀리는 것 같지 않지?’
요검 이페탐의 3합을 연이어 받아냈다.
그런데 한건우는 당황하기는커녕, 여유로워 보였다.
<검풍> 특성의 칼바람을 온몸에 맞고도,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했다.
‘말도 안 돼.’
가까이에서 맞으면 방어구나 갑옷도 박살내는 게 <검풍>이었다.
그걸 견딜 만큼 강한 방어구라면, 무겁고 둔하기 마련.
그러나 한건우의 움직임은 민첩했다.
검귀는 상황을 반전시킬 타이밍을 노렸다.
크칭-!
한건우가 창의 봉 부분으로 검날을 막았다.
치지지직-!
요검 이페탐의 날이 창을 따라서 주욱 긁혔다.
「지금이다!」
‘무기 파괴술.’
요검 이페탐에서 흰 빛이 번쩍였다.
<검풍>을 압축시켜서 한 점에 집중한 것이었다.
쩌엉-!
두 무기가 닿은 곳에서 큰 소리가 났다.
「됐어!」
검귀가 입이 찢어질 듯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