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참교육 (4) - 버려진 섬
이비현의 눈에 물음표가 가득했다.
“어떻게···?”
한건우가 갑자기 골렘을 연성해서 조종하니,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더 알려고 하면 안될 것 같았다.
‘어차피 날 도와주고 있는걸.’
한건우는 요트의 선실 안을 가리켰다.
“저 안에 뭐가 있는지 살펴봐.”
“네.”
이비현이 선실로 들어갔다.
그 사이, 한건우는 쓰러진 시체를 처리했다.
[특성 발동 : 부패의 시간]
그의 손에서 짙은 마기가 뿜어져나갔다.
누운 시체들은 세월을 직격으로 맞았다.
백골이 되더니, 순식간에 재로 변해 푸스스 날아갔다.
바람에 날리는 재를 보며, 한건우는 생각했다.
‘죄를 지은 자에게 유용한 특성이야.’
그들이 있던 자리에는 무기 아이템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선실에 들어가 있던 이비현이 한건우를 불렀다.
“저, 이것 좀 보세요.”
선실 안에는 비닐에 싸인 가루약이 상자채로 쌓여 있었다.
대놓고 마약이라고 광고하는 것처럼.
“왜 이렇게 허술하게··· 속임수일까요?”
“아니. 이놈들이 죽으면서 아공간 창고가 열린 걸거야.”
“아···.”
아공간 무기집이나 창고는 주인의 마력으로 유지되는 게 대부분이다.
아공간 창고 열쇠를 찾으러 요트를 뒤지는 수고를 덜었다.
한건우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한건우는 가루약이 담긴 비닐을 뜯었다.
붉은빛을 띤 가루를 손바닥에 털어서 흐트렸다.
가루의 결정은 별 모양이었다.
특징이 뚜렷해서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레드 스타···.”
한건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균열에서 나온 이계 식물에서 추출한 신종 마약이었다.
몇 년 후에는 세계적으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다.
‘일본에서 최초로 개발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 때 한국에 들어온 거였나.’
보통의 천연 마약은 효능이라는 게 있다.
대마나 양귀비를 의료용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그러나 이 레드 스타는 그야말로 순수한 악이었다.
인체에 해로운 점뿐이었다.
레드 스타는 신경과 사고를 마비시키고,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혔다.
중독성은 얼마나 심한지, 한두 번 접하면 헤어나오지 못했다.
신체 능력이 뛰어난 각성자마저 중독되는 약이었다.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었다.
“레드 스타···? 그게 뭐죠?”
이비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가 모르는 걸 보니, 아직 한국에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주 강력한 마약이야. 이계의 재료로 만들어서, 기존 약과는 비교가 안 되지.”
이비현의 표정이 굳었다.
“···이건··· 없애죠.”
이비현이 긴장한 표정으로 한건우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말을 한건우가 받아들여줄지 의문이었다.
이번 일의 의뢰인은 이비현이었다.
결정할 권한은 이비현에게 있었다.
하지만 이비현이 무슨 대가를 줘도, 이것보다는 적을 것이다.
한건우는 팔짱을 끼고 레드 스타가 담긴 상자를 바라보았다.
“....”
이걸 가져다 판다면, 어마어마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 마약시장의 판도를 뒤바꿀 정도로 센 물건이니까.
직접 팔지 않고 외국 마약상에게 파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한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없애야지.”
“!”
이비현은 충격을 받았다.
“정말요?”
큰 돈을
한건우는 레드 스타에 중독된 수많은 폐인들을 봤다.
중독자 부모를 둔 아이들의 텅 빈 눈빛도.
“이런 건 세상에 풀리면 안 돼.”
화르르르···.
갑판에서 상자를 태우는 한건우에게, 이비현이 다가왔다.
“지금 이걸 없애더라도··· 이 조직은 계속 한국에 들어와서 마약을 팔려고 하겠죠?”
“그렇겠지.”
한건우도 알고 있었다.
사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따로 있다는 것을.
“이 조직이 오사카에서 온 야쿠자라면서요?”
이비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 하지만 거기까지 찾아갈 수는 없어.”
한건우가 해결사나 탐정이라면 모를까.
관여하는 건 여기까지였다.
그는 그의 사명이 있었다.
특수안보부의 몰락.
그 길로 가는 데 집중해야 하니까.
“보다 보니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어서요.”
“뭔데?”
이비현이 그를 이끌고 요트 조종실로 갔다.
그녀가 조종간 앞 화면을 가리켰다.
“자동 항법장치 좌표가 대마도로 찍혀 있어요.”
“...?”
“그리고 여기 보시면 서류에도···.”
한건우는 의아했다.
“비현아, 일본어 잘 하니?”
“아, 네. 배울 일이 있었어요.”
이비현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학교도 다니지 않은 그녀가 외국어를 하다니.
한건우는 내심 놀랐다.
“대마도라면··· 음?”
대마도는 지금 버려진 섬이었다.
미공략 균열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난번 울릉도에 나타난 그리핀 떼가 어디서 왔는지 조사하다가 알게 되었다.
금해준이 했던 말도 떠올랐다.
‘대마도요? 거기 미공략 균열이 나온 게 맞습니다. 저희 LK에서 피라미드 공사 수주를 받으려다 떨어졌어요. 음··· 공사는 아마 일본 건설사가 가져갔을 거예요.’
거기 살던 몇 안 되는 주민들은 모두 섬은 떠났다.
한마디로 무인도였다.
“왜 하필 대마도로 가는 걸까요? 아무도 없고 위험한 곳인데.”
한건우는 곰곰이 생각했다.
어느 정도 실마리가 잡혔다.
“아무도 없고, 미공략 균열까지 있는 곳에서 야쿠자들이 해야 하는 게 뭘까.”
“음··· 혹시 저 마약, 대마도에서 만들어서 가져온 게 아닐까요?”
한건우의 생각과 일치했다.
그의 마음이 움직였다.
“비현아, 거기 들렀다 오자.”
“아, 네!”
대마도에 생산시설이 있다면 파괴해 버릴 생각이었다.
본토가 아니라 빈 섬이니, 아무래도 부담이 덜했다.
주민이나 목격자가 없다면 외교적인 문제가 되지도 않겠지.
한건우는 요트 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연료는 충분했다.
“한건우 씨는 못 하는 게 뭐예요?”
이비현이 혀를 내둘렀다.
*
요트의 속력을 최대한으로 올렸다.
쾌속선을 타면 금방일 텐데.
요트라서 한계가 있었다.
‘이비현도 조금 휴식을 취해야 할 테니, 오히려 잘 됐어.’
자동 항법장치가 있으니 조종간을 잡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밤바람이 기분 좋게 불고, 파도는 잔잔했다.
“이비현, 들어가서 눈 좀 붙여.”
갑판 위에 앉아있던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아니에요, 주무세요. 전 불침번 서고 있을게요.”
한건우는 그녀의 옆에 앉았다.
칠흑 같은 밤이었다.
<화식조의 눈> 없이는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부터가 바다인지 구분할 수도 없었다.
“어젯밤부터 제대로 못 잤을 것 아냐. 내일도 전투가 있을지 몰라.”
이비현은 한참 생각하다가 물었다.
“한건우 씨는 왜 저한테 잘 해주세요?”
“....”
내가? 라고 반문하려다 말았다.
실제로 그러고 있었으니까.
유용한 파트너이긴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너는 그렇게 죽을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아.’
한건우는 자기 손으로 이비현을 죽일 때의 기억이 생생했다.
악명 높은 미등록자 조직의 수장, <그림자 왕>을 잡은 것.
그건 한건우에게 큰 업적이었다.
회귀 전의 이비현은 분명히 위험한 존재였다.
부모처럼 따르던 유영원을 잃고 나서 더 그렇게 되었다.
정부에 대한 증오로 가득했고, 많은 정부 인사를 암살했다.
그런 그녀가 죽었을 때였다.
솜브라의 조직원들은 깊은 절망에 빠졌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했다.
솜브라는 바로 풍비박산이 났다.
한건우는 항상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절대적인 신뢰는 어디서 온 것일까.
권력이나 두려움이 답이었을까?
자기 사람들을 가족보다 더 아끼는 그녀를 지켜보니,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더 이상 잘못하지 않으려고.”
“...?”
시간을 거슬러 온 뒤.
한건우는 후회되는 일들을 고쳐 나가고 있었다.
마치 실패한 선을 지우개로 지우는 것처럼.
‘이런 기회를 얻는다면 누구나 똑같이 하겠지.’
이비현은 그를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
바다 위에서는 새벽이 더 빨리 밝아왔다.
목적지로 설정된 대마도의 항구에 도착했다.
보통 입항하면 세관 신고 같은 걸 해야 할 텐데.
개미새끼 한 마리 없었다.
버려진 배 몇 척 말고는, 화물선 두어 척이 세워진 게 전부였다.
멀리 산등성이 사이로 <피라미드>의 끄트머리가 보였다.
‘저게 미공략 균열이군.’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한건우가 요트를 정박시켜 내릴 때까지 항구는 조용하기만 했다.
‘화물 창고는 당연히 항구 근처에 있겠지.’
항구 옆에는 컨테이너 박스가 쌓여있었다.
“먼저 섬을 살펴보고 올까요?”
이비현이 의욕적으로 나섰다.
원래 같으면 그녀에게 정찰을 시킬 것이다.
한건우는 가능하면 돌다리를 두드려보는 성향이었다.
이능력 특수전단에서 대장으로 지내던 세월.
작전에 나가면 자신이 책임져야 할 목숨이 수십이었다.
전략 판단에 실수가 있으면 부하들의 목숨이 왔다갔다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한건우의 부대는 그들보다 강한 적과 싸워왔다.
‘좀 달라져도 좋겠지.’
몸을 사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이제는 인정할 때가 됐다.
‘적어도 1대1로 붙었을 때 나보다 강한 각성자는··· 거의 없다.’
한건우는 이비현에게 말했다.
“아니, 정찰은 필요없어.”
그가 창을 꺼내들고 앞서나갔다.
***
길드 건물의 체력단련실.
“해준 오빠, 아니 매니저 님.”
“응?”
은설아가 금해준에게 다가왔다.
금해준은 의자를 가져와서 훈련을 참관하고 있었다.
“마스터랑 통화해봤어요? 언제 돌아오신대요?”
임진호 형제도 동시에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도 궁긍했던 모양이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설아, 이제 건우 형님 보고 아저씨라고 안 하네?”
“길드 마스터잖아요. 원래 이렇게 불러야 한대요.”
금해준이 픽 웃었다.
한건우와 금해준은 고작 한 살 차이인데.
은설아의 눈에는 한건우가 한참 어른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삐이-.
모두의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임진호는 수건으로 땀을 닦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긴급> 현재 중구 명동9가 B급 균열 발생 / 길드 지원 요망]
정부에서 보낸 재난문자였다.
균열 발생이 감지되면, 가까이 있는 길드에 먼저 메시지가 온다.
대부분은 길드에서 출동하겠다고 나섰다.
아무도 나서지 않으면 전체 메시지가 간다.
근처의 각성자 모두에게 도움을 청하고, 일반인에게 대피령을 보내는 식이었다.
“B급 균열이네요?”
“네, 마스터의 말씀에 따르면···.”
금해준은 한건우의 말을 되새겼다.
-내가 없다고 해서 마냥 기다릴 필요는 없어. B급 이하 균열이 열리면 공략해도 좋아.
모두들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죠.”
임진호가 결단을 내렸다.
B급 균열이면 그에게는 상당한 도전이었다.
‘그래도 해볼 만 해.’
임진호가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임진호는 새로 얻은 장비 덕분에 자신감이 생겼다.
한건우가 자신을 믿고 맡겼으니, 잘 해내는 모습을 보이고 싶기도 했다.
금해준은 아레스 길드를 대표해서 출동하겠다고 회신했다.
[균열 공략 신청합니다. 길드명 : ···]
아레스 길드가 출동한다는 사실은, 다른 길드에도 안내가 될 것이었다.
“준비 철저히 하셔서 안전하게 다녀오십쇼.”
*
임진호는 균열 입구에서 다시 한 번 정보를 확인했다.
내내 미공략 균열만 들어가다가, 오랜만에 일반적인 균열에 들어가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B급 균열 - 라이칸스로프의 산맥]
- 공략 조건 : 라이칸스로프 왕이 숨기고 있는 수정을 얻는다.
- 잔여 시간 : 26시간 39분 1초
“음···.”
공략 조건 내용이 애매했다.
여느 때보다 공략 시간이 넉넉한 것도 눈에 띄었다.
뒤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차은비가 말했다.
“라이칸스로프 왕이 균열의 주인, 그러니까 보스 몹이겠죠. 보스 몹이 숨기고 있는 보물을 얻으라는 건, 결국 보스 몹을 죽이라는 소리구요.”
임진호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러고보니 조언을 구할 사람이 바로 옆에 있었다.
상급 균열 레이드 경험이 많기로는, 차은비만한 힐러가 없을 것이다.
“라이칸스로프가 나오는 균열에도 가보셨나요?”
“그럼요.”
임진호가 그녀에게 물었다.
“라이칸스로프는 어떻죠?”
“힘이 세고 속도가 빨라요. 다른 마수보다 겁이 없고 고통에 강해서, 한 번에 치명상을 입혀야 제압할 수 있죠.”
파티원들은 긴장한 기색이었다.
차은비는 그들을 둘러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B급 균열의 라이칸스로프··· 솔직히 이 정도 실력이면 충분하지.’
임진호를 선두로, 그들은 균열 입구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