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참교육 (3) - 후환이 남지 않게
‘물 골렘 소환사가 있다니.’
소환사의 능력은 대단히 뛰어난 듯했다.
‘저놈이 간부급이겠군.’
골렘은 한 번에 한두 마리를 부리기도 어려웠다.
혼자서 골렘 수십 마리를 만들어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걸 보면, MP 운용량이 엄청난 게 분명했다.
그러나 의문이 있었다.
이 정도면 S급 수준, 못해도 A급 소환사의 마력이었다. 일본에 그런 소환사가 있다는 말은 못 들어봤다.
알려지지 않은 실력자였나, 하고 넘어가려던 참이었다.
소환사는 망토 자락으로 손을 가리고 있었다.
망토 자락 사이로 무언가가 보였다.
‘저건 또 뭐지?’
소환사는 매끈한 구슬을 꼭 쥐고 있었다.
한 손아귀에 들어오는 크기였다.
한건우는 소환사를 노려보았다.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어떻게 할까.’
원래 배 안으로 먼저 숨어들려고 했다.
확실히 하고 싶은 게 있어서였다.
야쿠자들이 왜 부산에 왔고, 뭘 하려고 하는지.
물론 어느 정도 감이 왔다.
‘솜브라와 동맹을 맺으려고 한 걸 보니, 대충 알 만하지.’
한건우의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솜브라는 누가 봐도 수상한 조직이었다.
야쿠자들에게 훌륭한 파트너로 보였을 것이다.
굳이 회귀 전의 기억을 더듬을 필요도 없었다.
외국의 각성자 범죄조직이 한국에 진출하려는 일은 항상 있었으니까.
‘인천에는 러시아와 중국이, 부산에는 일본이···.’
그들의 주 종목은 약물이나 인신매매 쪽이었다.
한건우는 모터보트 위에 선 채로 요트를 훑어보았다.
이 요트는 화물을 실을 만큼 크지는 않았다.
어차피 화물이 마약이라면 넓은 공간은 필요 없겠지.
한건우는 작전을 변경했다.
“누구냐?”
“···?”
한건우가 먼저 당당하게 물었다.
갑판에서 내려다보던 소환사는 어이없다는 반응이었다.
야심한 밤에 침입하려다 들킨 상황.
침입자 쪽에서 먼저 이름을 물은 것이다.
소환사가 한쪽 입꼬리를 실룩였다.
“겁이 없군요.”
그의 발음에서 일본인의 억양이 묻어났다.
더 이상 대화할 생각은 없는 듯.
소환사가 망토 안에 숨긴 구슬을 어루만졌다.
수면에서 물 골렘이 서서히 일어났다.
그르르르륵···.
아까보다 몇 배는 컸다.
바닷물로 만들어진 골렘이 한건우가 탄 모터보트로 다가왔다.
그어어어···.
물 골렘이 커다란 주먹을 쥐고 포효했다.
물 골렘은 상대하기 까다로운 편이었다.
물의 응집력을 조절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 골렘의 표면은 돌처럼 단단했다.
그러면서도 공격을 받을 때는 흐물흐물하게 흘려버렸다.
한건우는 그쪽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소환사만 쏘아보며 물었다.
“솜브라의 대장을 죽인 게 너냐?”
“아, 복수라도 하러 온 겁니까?”
“복수?”
소환사가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를 냈다.
“후환이 없도록 다 쓸어버릴까 했는데. 알아서 찾아오니 고맙군요.”
“아무것도 모르는군. 너희들이 죽인 건 솜브라의 대장이 아냐.”
이비현이 고개를 슬쩍 돌려 한건우를 쳐다보았다.
“솜브라의 대장은 나, 유영원이다.”
“···!”
이비현의 동공이 두 배로 커졌다.
소환사는 멈칫했다.
한건우에게 다가오던 물 골렘의 주먹도 멈추었다.
“부하들이 실례를 한 건 사과하지. 이미 죽었으니 사과 정도는 받아 주겠지?”
“···죽기 싫어서 헛소리를 하는 겁니까?”
“너희들이 진짜로 협상해야 할 건 내 쪽이라는 말이야.”
“....”
소환사는 잠시 갈등하는 듯했다.
그때 한건우가 간지러운 곳을 쿡 찔렀다.
“한국에 판로를 개척하러 온 것 아닌가? 그냥 돌아가면 주인을 볼 면목이 없을 텐데.”
“···!”
소환사는 허가 찔린 표정이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묻고 싶은 듯했다.
‘어떻게 알았긴. 아니면 왜 여기까지 오겠냐.’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것이었지만, 한건우가 워낙 자신감 있게 말하니 다르게 들렸다.
‘반응을 보니, 조직의 간부급이라는 건 사실이군. 최종 결정권자는 아니고.’
배후에 진짜 리더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침음하던 소환사가 또다시 구슬을 어루만졌다.
그워어어···.
물 골렘이 다가왔다.
잔뜩 긴장한 이비현이 시미터를 휘두르려 했다.
“괜찮아.”
한건우가 그녀를 진정시켰다.
물 골렘은 한건우와 이비현이 탄 모터보트를 통째로 받쳐 들었다
보트가 뒤집어질 것처럼 기우뚱했다.
엘리베이터를 탄 것처럼 위로 쑥 올라갔다.
터엉-.
한건우가 요트의 갑판 위로 뛰어올랐다.
이비현도 소리 없이 따라왔다.
소환사는 혼자가 아니었다.
갑판 위에는 십수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일본도를 빼들고 서 있었다.
시커먼 정장을 빼입거나 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잔인한 눈빛과 우락부락한 체구만 보아도 이들의 정체를 짐작할 만했다.
‘모두 각성자군.’
콰직- 콰지직···.
“앗···!”
이비현이 뒤를 돌아보며 당황했다.
물 골렘이 그들이 타고 온 모터보트를 박살내고 있었다.
철판으로 된 보트를 종잇장 구기듯 했다.
투웅-.
우그러진 엔진과 철판 조각이 수면 위에 둥둥 뜨다가 가라앉았다.
“같이 오신 분은 여성분이었군요.”
소환사가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이비현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이비현은 분노와 함께 소름이 쫙 끼쳤다.
‘지금 죽일까?’
이 자가 정든 부하들을 다섯이나 죽였다.
이비현은 참기 힘든 살인 충동을 느꼈다.
저 목줄기에 시미터의 칼날을 꽂아 넣고 싶었다.
한건우가 덤덤한 태도로 말했다.
“먼저 물건을 보고 싶은데, 지금 확인할 수 있나?”
“그렇습니다만··· 당신이 솜브라의 대장이라는 걸 어떻게 믿죠?”
소환사는 의심을 버리지 못했다.
‘물건을 여기 가져왔다는 말이군.’
한건우가 씩 웃었다.
이제 알고 싶은 건 다 알아냈다.
나머지는 죽이고 나서 알아보면 된다.
“솜브라에 <그림자 사신>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봤을 거야.”
“그렇습니다.”
소환사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 선 야쿠자들 중 몇몇도 술렁였다.
“그게 바로 나다.”
“···!”
한건우의 신형이 허공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이비현도 <그림자 맹시>를 발동했다.
어이없다는 표정이었지만, 타이밍은 잘 맞았다.
「없어졌어!」
「은신 스킬인가?」
혼비백산한 야쿠자들이 일본어로 욕설을 내뱉었다.
치잉-!
그들은 각자의 무기를 들고 자세를 잡았다.
일본도가 제일 많았고, 철곤과 사슬낫도 있었다.
슈웅- 터억!
“?”
한 야쿠자의 목이 갑판에 떨어졌다.
한건우의 창에 목이 날아간 것이었다.
목 없는 시체는 잠시 그 자세로 서 있다가, 옆으로 털썩 쓰러졌다.
다른 이들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
쉬익!
「크윽, 윽···!」
사슬낫을 잡고 있던 야쿠자의 목에 붉은 선이 죽 그어졌다.
그가 무기를 놓고, 목의 상처를 누르며 무릎을 꿇었다.
「그윽··· 사, 살려···.」
순식간에 그의 상처에서 거무튀튀한 기운이 번졌다.
그는 얼굴이 검어진 채로 푹 쓰러졌다.
이비현의 시미터에 발라진 바실리스크의 맹독이었다.
「흩어지지 말고 모여라!」
소환사가 명령하자, 남은 이들이 일사불란하게 모였다.
은신한 적이 있을 때는 한데 모여야 했다.
하나씩 각개격파 당하는 걸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제기랄···.」
소환사가 욕설을 내뱉었다.
은신 스킬 비슷한 걸 여럿 봤지만, 기척을 살짝 죽이는 정도였다.
이처럼 완벽하게 사라지는 은신은 처음이었다.
놀라운 점은 더 있었다.
이곳의 야쿠자들은 전원 각성자였다.
눈이 안 보여도 다른 감각으로 싸울 수 있는 자들이었다.
손도 못 써보고 두 명이나 허무하게 당하다니.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쉴드 없어?」
광역 방어를 할 수 있는 힐러나 법사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근접 전투 계열만 데려온 건 뼈아픈 실책이었다.
한 명이 정신을 차리고 부랴부랴 스킬 주문서를 꺼냈다.
슥!
주문서를 꺼내던 손목이 베어져나갔다.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그가 앞으로 쓰러졌다.
적이 어디 있는지 모르니, 야쿠자들에게 공포감이 엄습했다.
「으아아!」
퍽!
한 명이 겁을 먹었다.
허공에 마구잡이로 일본도를 휘둘렀다.
「멍청한 놈, 그만둬!」
한 명이 이성을 잃자, 대형이 우수수 흩어졌다.
그야말로 아비규환.
소환사는 한숨을 쉬면서 몸을 낮추고 대형에서 떨어졌다.
보호 기능이 있는 망토를 뒤집어쓰고, 오른손으로 구슬을 짜내듯이 세게 쥐었다.
크와아아아-!
요트 옆에서 순식간에 세 마리의 물 골렘이 솟아났다.
터엉- 터엉-!
물 골렘들이 갑판 위로 기어 올라왔다.
골렘 하나는 소환사의 옆을 지켰다.
나머지 둘은 요트 위를 성큼성큼 걸으며 포효했다.
그워어어-.
‘이제 됐어.’
소환사가 쾌재를 불렀다.
이곳은 좁은 배 위였다.
은신을 해도 시간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는 강력한 물 골렘을 무한으로 만들 수 있었다.
물량공세로 쏟아붓는데 버틸 재간이 있을까.
터엉-! 텅! 텅!
요트 갑판 위로 계속해서 물 골렘이 올라왔다.
어느새 수십 마리로 늘어났다.
배가 무거워지면서, 갑판이 수면과 가까워졌다.
‘어디 간 거지···? 발 디딜 틈도 없는데.’
퍼억! 퍽!
골렘들의 주먹은 허탕만 쳤다.
애꿎은 요트 갑판이 우그러졌다.
소환사는 갑판의 바닥만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눈은 속여도 몸무게를 속일 수는 없어!’
바닥의 미세한 움직임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소환사가 그 모양이니, 골렘들도 덩달아 바닥만 보고 다녔다.
정작 한건우와 이비현은 위쪽에 있었다.
요트의 돛대 위였다.
‘굳이 골렘을 상대할 필요는 없지.’
여기가 훈련소라면 모를까, 지금은 실전이었다.
소환사만 죽이면 골렘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어떻게 저런 놈이 간부가 되었지?’
경험 많은 골렘 소환사는 몸을 숨긴다.
저 소환사는 반대였다.
마치 처음으로 힘을 얻은 어린애처럼 자신을 과시했다.
‘골렘을 수십 마리나 불러내는 걸 보니 강한 건 확실한데··· 느껴지는 기운은 그저 그렇고.’
수수께끼였다.
한건우가 한 손으로 창을 빙빙 돌렸다.
위이잉- 타앗!
한건우가 돛대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의 창끝은 소환사를 향한 채였다.
모든 무게와 힘을 한 점에 실어서 거세게 내리찍었다.
창은 본래 선의 형태를 이루는 무기이다.
그 선이 일점으로 수렴하는 순간.
슈우-
“!”
소환사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푸욱-.
창끝의 점에 모든 무게가 응축되었다.
보호구고 뭐고, 몸통까지 한 번에 뚫어버렸다.
소환사의 심장에 창이 정통으로 박혔다.
퍼어엉!
거대한 물 골렘들이 동시에 폭발하듯 터졌다.
소환사를 잃은 골렘이 물로 돌아간 것이다.
집채만한 물풍선 수십 개가 갑판 위에서 터지는 모양새였다.
“으아악!”
“어억!’
야쿠자들은 덮쳐오는 물에 중심을 잃었다.
이비현은 그들이 순순히 바다에 빠지도록 두지 않았다.
돛대에서 뛰어내린 그녀는 <그림자 맹시>를 풀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춤을 추듯이 야쿠자들을 상대했다.
일격 일격이 목과 급소에만 박혔다.
“하···.”
이비현이 선 채로 숨을 골랐다.
그녀의 회색 로브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이비현이 고개를 돌려 창에 찔린 소환사를 보았다.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자기가 죽이고 싶었나?’
한건우는 피식 웃으면서 눈짓을 했다.
뒤를 조심하라는 뜻이었다.
파아아-!
“윽!”
한건우의 손가락 끝에서 마탄과 같은 불덩이가 쏘아졌다.
일본도를 들고 달려들던 마지막 야쿠자의 몸에 구멍이 났다.
‘간만에 총도 가져왔는데, 못 써보는군.’
이비현은 시미터를 들고 마저 확인사살을 했다.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한건우의 눈앞에, 각성자를 죽일 때마다 나오는 권능창이 떴다.
[악마의 권능(유일) 발동 : 탐식]
-죽인 자의 특성을 흡수합니다.
-특성 흡수 중
···
-특성 흡수 완료.
한건우는 죽은 소환사에게 다가가 마창 게이볼그를 뽑았다.
창은 매끄럽게 쑥 뽑혀나왔다.
검은 창날은 인간의 피를 흡수하고 고고하게 빛나고 있었다.
한건우는 특성 창을 켰다.
새로 흡수한 특성을 보고 싶었다.
[특성 : 골렘 연성]
-주위의 자연물로 골렘을 연성하여 조종한다.
예상대로였다.
한건우는 특성을 바로 시험해보았다.
[특성 발동 : 골렘 연성]
그으으으···.
바닷물에서 덩어리가 일어났다.
모양은 투박했다.
대형 해파리 같은 덩어리가 몽글거렸다.
“....”
요령을 알려면 조금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았다.
한건우는 창끝으로 소환사의 망토를 뒤적였다.
그가 숨기고 있던 구슬이 뭔지 궁금했다.
‘골렘 조종이랑 관계가 있는 것 같았어.’
또그르르···.
소환사의 망토 속에서 구슬이 굴러져 나왔다.
구슬은 가느다란 사슬로 칭칭 감싸인 채, 소환사의 손목에 묶여 있었다.
치잉!
한건우는 창날로 바닥을 쳐서 사슬을 끊었다.
염동력으로 구슬을 띄워 올렸다.
구슬을 손바닥 위에 띄워서 이리저리 굴려 보았다.
‘겉보기엔 평범한 구슬 같은데.’
한건우가 손끝으로 구슬을 건드렸다.
아이템 창이 떴다.
[전륜성왕의 구슬(희귀)]
-운용하는 마력을 증폭한다.
우우웅-!
“?”
쿠과과과-!
우렁찬 폭포 소리 같은 게 들렸다.
대형 요트가 뒤집어질 듯 기우뚱 흔들렸다.
쿠구구구···.
대형 요트 옆에, 바닷물로 만들어진 거인이 일어섰다.
아까 한건우가 만들어낸 골렘이었다.
한건우의 심장이 기분 좋게 뛰었다.
‘이건 설마···?’
구슬에 손을 대자 강화 시술이라도 받은 것처럼 마력이 솟구치는 게 느껴졌다.
마기 증폭 시술을 만들려고 정부에서 그렇게 애를 썼는데. 부작용 없는 희귀한 증폭 아이템을 얻은 것이다.
한건우는 갑판 위를 훑어보았다.
아직도 이비현과 대치 중인 야쿠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무기가 서서히 내려갔다.
그들은 황망한 얼굴로 거인 골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어어···.
거인 골렘이 주먹을 들었다.
콰아앙!
거인 골렘이 주먹으로 갑판을 내리쳤다.
벌레를 때려잡듯이, 한 방에 그들을 때려잡았다.
“와···.”
한건우를 돌아보는 이비현의 눈이 아까보다 세 배는 컸다.
요트 갑판 위는 야쿠자의 시체로 가득했다.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다 죽였다.
죽은 소환사의 말이 정답이었다.
‘역시 후환이 남지 않게, 다 쓸어버리는 게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