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66화 (66/238)

#66강적

“생존자가 하나 있습니다. 군 소속, 이능력 특수전단 대원이요.”

“이능력 특수전단?”

김도경이 눈썹을 꿈틀했다.

“네. 대원 한 명을 붙박아 놓고 연구소 정문 경비를 해달라고 지시했었나 봅니다.”

각성자를 사냥하는 이능력 특수전단.

국방부 소속의 특수부대지만, 특수안보부의 직속 부대나 다름없었다.

“특수전단 대원이 있었는데, 고작 각성자 하나의 폭주를 막지 못했다?”

“···네.”

천명환은 새로운 상사의 눈치를 살피느라 긴장해 있었다.

자신이 담당자가 아니라서 천만 다행이란 생각밖에 안 들었다.

“현장을 봐야겠어. 지금 당장.”

김도경이 명령했다.

*

천명환은 우산을 받쳐들고 운전석에서 내렸다.

하필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김도경은 천명환의 안내를 기다리지 않았다.

혼자서 차 문을 열고 성큼 앞서 나갔다.

물류창고로 위장했던 연구소 건물.

화재로 엉망이 되어있었다.

그들은 현장에 둘러진 출입금지 선을 넘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김도경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고작 E급 각성자 하나 때문에, 우리가 이런 손해를 입었다고?”

베테랑 연구원들이 죽은 것도 아쉽지만, 무엇보다 아직 보고되지 않은 자료의 손실이 뼈아팠다.

“조승재라는 자인데, 마기 증폭 시술··· 개발 초기 실험대상자였습니다. 아무래도 안정이 덜 됐던 모양입니다.”

천명환이 긴장한 투로 설명했다.

“명환아, 너는 이게 이해가 되니?”

“예?”

부드럽게 물어보는 게 더 무서웠다.

“체포한 각성자에게 마력 저감장치를 채우는 건 기본이잖아.”

“그날 출동했던 특수전단 부대원들에게 확인했습니다. 분명히 채워서 인계했다고 합니다.”

“시체에서도 확인했어?”

“그게, 실험실에 있던 인화성 물질 때문에 작은 폭발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폭발 근처에 있던 시체 몇 구는 완전히 소실됐고, 조승재의 시체도 많이 손상됐습니다.”

화재에 폭발까지 일어나서, 현장은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사고 원인을 의심하지 않았다.

증거가 너무 명확했기 때문이다.

멀쩡히 남아있던 시체가 모두 노인처럼 변한 형상이었다.

연구원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각성자 경비원들마저 당했다.

그날 근무하던 연구소 직원들은 모두 처참하게 마기를 빨려 죽고 말았다.

예외는 단 한 명.

이능력 특수전단 대원만 혼자 가까스로 도망쳐 나온 모양이었다.

그는 건물 앞에서 기절한 채 발견되었다.

그 기현상의 해답은 한 가지뿐이었다.

실험대상이던 조승재의 폭주.

실험 부작용으로 나타난 특성 폭주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심해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김도경의 눈빛은 매서웠다.

“참 편리한 대답이야. 안 그러니?”

“예? 무슨 말씀이신지.”

천명환은 김도경 앞에 서면 자존심을 잃고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너무 깔끔한 스토리가 아니냐는 거야.”

김도경은 깊은 생각에 빠진 듯했다.

‘누군가 이 연구소를 파괴하려고 공작했다고 의심하는 건가?’

천명환은 고개를 갸웃했다.

신중한 건 좋지만, 상상이 과한 것 아닐까.

천명환은 감히 확신했다.

‘우리 정도 되는 조직이 아니면, 이런 일을 꾸밀 순 없어.’

사고를 조작한다고?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시술에 실패한 각성자를 때마침 체포당하게 만들어서, 특성 폭주를 일으킨다니?

그런 작전은 특수안보부가 직접 나선다 해도 어려울 것 같았다.

‘김도경 선배님이 근거 없이 이러실 분은 아닌데?’

천명환은 의문이 담긴 눈으로 김도경을 바라보았다.

김도경은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는 듯, 느릿느릿한 말투로 물었다.

“화재, 화재라··· 왜 그때 불이 났지?”

“그건 생존자인 이능력 특수전단 대원이 이미 진술했다고 합니다. 담당에게 들었습니다.”

“뭐라고 하던가?”

“정문을 지키다가, 안쪽에서 불이 났다고 해서 들어갔더니, 연구원 중 한 명이 마력 화로를 다루다가 실수로 불을 냈더랍니다.”

천명환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김도경이 묻는 내용은, 모두 자신도 생각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미리 사실관계를 알아본 터였다.

“실수라.”

“네, 신임으로 들어온 연구원이었는데, 원래 화재 사고를 잘 내던 놈이라 그런가 보다 했다는데요.”

장영표라는 신임 연구원.

그는 폭발에 휘말려 시체를 찾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마력 화로를 다루느라 바로 근처에 있었을 테니, 그럴 만도 했다.

김도경의 눈이 가늘어졌다.

“조승재가 불을 낸 게 아니고, 조승재가 폭주하기 전에 미리 불이 나 있었다고?”

“예.”

악재가 겹치긴 했지만,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평소 같으면 각성자 경비원들이 불을 껐을 것이다.

조승재가 난동을 피우는 바람에 화재 진압을 못한 거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었다.

“그러면 조승재에 대해서는 뭐라고 진술했다던가?”

“···대원은 조승재가 잡혀 들어오는 건 봤지만, 그 이후에는 못 봤다고···.”

천명환도 그제야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대원의 진술에서 뭔가가 뚝 잘라낸 것처럼 비어 있었던 것이다.

폭발 충격에 휘말려서 온몸의 뼈를 다쳤다던 대원의 진술도 갑자기 의심스러웠다.

김도경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한숨을 쉬었다.

“그 대원 지금 어디 있어.”

**

천명환은 발걸음이 무거웠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중압감이 숨막힐 정도였다.

‘내가 담당이 아니라서 천만 다행이군.’

김도경이 담당자 보고를 못 믿고, 직접 확인하러 온 것이다.

천명환은 담당 직원을 떠올리고 마음 속으로 애도했다.

아마 반 죽지 않을까.

천명환을 숨을 고르고 병실로 들어갔다.

병상 위에는 잔뜩 신경을 곤두세운 환자가 있었다.

이능력 특수전단의 대원이었다.

그 사고에서 혼자 살아남은 사람.

대원은 부상이 심했고, 치료실에서 장기 치료를 받고 있었다.

“누구시죠?”

“특수안보부의 천명환입니다.”

이능력 특수전단 대원 앞에서는 신분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

“아··· 고생 많으십니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대원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제대로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천명환의 뒤에 거구의 김도경이 따라 들어왔다.

대원은 더욱 바짝 긴장했다.

“이, 이분은···.”

천명환이 조용히 하라는 표정으로 매섭게 눈짓했다.

대원은 입을 다물었다.

대원도 눈치는 있었다.

천명환이 직접 모시고 온 걸 보니, 특수안보부의 고위직이 분명했다.

김도경은 경계심을 낮추기 위해 부드럽게 웃었다.

“A급 마정석 치료실은 예약이 다 찼었나요? 거기 가면 더 빨리 나을 텐데요.”

“아, 예···.”

대원은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특수안보부 고위직 앞에서 말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큰일 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명환아, 많이 더우신가 본데. 물 좀 따라와 봐라.”

“네, 알겠습니다.”

천명환은 병실 한켠에 있는 탁자로 가서, 물컵에 찬물을 따랐다.

아까 김도경의 지시로 아이템을 하나 챙겨 왔다.

[마아트의 눈물].

작은 유리병에 든 물약 형태의 섭취형 아이템.

특수안보부에서 애용하는 귀한 아이템이었다.

진실의 여신 마아트의 이름이 붙어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 용도는 뚜렷했다.

‘자백제.’

효과 역시 확실했다.

이걸 먹으면 아이템이 활성화되는 동안은 거짓말을 못하게 된다.

입을 다물 수도 없다.

무조건 묻는 말에 진실을 말하게 되는 약이었다.

또륵.

천명환은 물컵에 <마아트의 눈물>을 따랐다.

그리고 대원에게 물컵을 가져가 내밀었다.

대원은 엉겹결에 받아들었다.

천명환이 명령조로 말했다.

“드시죠.”

대원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뭔가 수상한 걸 물에 탄 것 같은데···?’

심지어 그들은 그걸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무엇을 내밀어도, 대원은 말없이 먹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니까.

대원은 눈을 꼭 감고 물을 마셨다.

희미하게 쓴맛이 느껴졌다.

“!”

<마아트의 눈물>이 활성화되었다.

대원의 동공이 점점 힘없이 풀어졌다.

“연구소에서 그날 본 걸 말해봐요. 조승재가 잡혀들어오기 직전부터.”

김도경이 최면을 거는 것처럼 나직하게 말했다.

“저는··· 무전으로 연락을 받았습니다. 권석진 대장님이 조승재를 잡아서 인계하러 온다고 했고···.”

자백제의 효과는 대단했다.

대원은 마치 책이라도 읽는 것처럼, 멍한 눈으로 단조롭게 사건을 그려냈다.

중간까지는 천명환이 아는 대로였다.

대원이 그전에는 전혀 안 하던 소리를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저는 양동 작전은 아닐까 우려했습니다. 누군가 불을 내서 시간을 끌고, 실험자료를 훔치려는 건 아닌지 걱정했던 겁니다. 지하층에 내려갔더니···.”

담당자 보고에 누락된 제3의 인물이 있었던 것이다.

“잠깐. 그거 담당자에게 보고를 했나요?”

“예, 모두 제가 본 대로 진술했습니다.”

“....”

김도경은 차분하게 웃고 있었지만, 천명환은 알고 있었다.

저건 그가 가장 화났을 때의 얼굴이었다.

‘그 담당 새끼가. 보고 누락을 했어?’

천명환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겨우 가라앉혔다.

아마 문책이 두려워서 대원의 진술을 삭제한 모양이었다.

감히 허위 보고를 하다니.

그 담당자 놈은 절대 가만 두지 않으리라, 천명환은 다짐했다.

“침입자가 있었는데, 상당히 강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추측일 뿐이라 진술 때 얘기를 안 했는데요.”

대원의 몽롱한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괜찮으니 말해 봐요.”

“그 침입자는 저희 이능력 특수전단···에서 은퇴한 대원인 것 같았습니다.”

“뭐라고?”

천명환은 놀라움을 참지 못하고 육성으로 내뱉었다.

“저희 부대에서만 배우는 무술이었습니다. 확실합니다. 훈련 교관··· 아니 교본보다 더 정확했습니다.”

“...!”

뜻밖의 이야기에 천명환은 몹시 당황했다.

그래도 이능력 특수전단 퇴직자라면, 엄청나게 범위가 좁혀진 게 아닐까.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하나하나 찾아보면 추적을 못할 것도 없겠지.

천명환은 그렇게 현재의 한건우와는 전혀 상관없는 쪽으로 타겟을 잡았다.

김도경이 마지막 질문을 했다.

“그 사람이 당신을 구해줬군요.”

“네, 맞습니다. 저를 공격하긴 했지만, 죽이려면 죽일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하층에 쓰러져 있었는데, 누군가 옮겨 주었습니다···.”

“그 사람의 외관은 어땠죠. 각성자로서 능력을 쓰는 걸 봤나요?”

“얼굴은 가리고 있어서 보지 못했고, 체구는 컸습니다. 특성이나 스킬 같은 건 전혀 쓰지 않았고, 맨손 격투만으로 제압을 당했···.”

대원이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김도경은 충분히 만족했다.

알고 싶은 말은 다 알게 되었으니까.

“으윽···.”

대원은 자백제의 후유증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마비되었던 이성이 돌아오면서, 두통이 몰려왔다.

“괜찮으시죠?”

김도경이 세상 멀쩡한 사람처럼 물었다.

대원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김도경의 손끝에서 가느다란 빛줄기가 솟아나고 있었다.

거미줄처럼 가는 광선이었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지, 천명환은 잘 알고 있었다.

‘광휘의 성기사, 김도경.’

김도경의 별명이었다.

얼핏 숭고하게 들렸지만, 김도경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그 별명을 두려워했다.

그는 원소 중에서도 가장 강한 빛 계열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빛의 파동과 입자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은 언제 봐도 경이로웠다.

“시간을 많이 뺏었군요. 가보겠습니다.”

김도경은 몸이 불편한 대원을 부축해서 눕혀주었다.

그의 손끝에서 뻗어나온 가는 빛줄기가 자연스럽게 휘어졌다.

천명환은 그 빛줄기가 어디를 향하는지 보았다.

스윽.

대원의 머릿속에 있는 혈관이 툭 끊어졌다.

대원은 자기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지 못했다.

김도경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갯짓을 했다.

천명환은 얼른 문을 열고 대기했다.

‘이제 곧 죽겠군.’

김도경은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 자는 더이상 쓸모없다고.

이 대원은 자기가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을 것이다.

천명환은 대원을 위해 극히 짧은 애도를 표했다.

김도경이 살인을 하는 걸 볼 때는, 천명환도 가끔 간담이 서늘했다.

사람을 죽인다는 자각조차 없는 것 같았다.

실험실 생쥐를 잡아 죽여도, 그보다는 더 표정 변화가 있으리라.

“명환아.”

“앗, 예?”

딴 생각에 빠져 있던 천명환이 퍼뜩 놀랐다.

"우리 꽤 강적을 만난 것 같다, 그렇지?"

"...."

“그리고 내가 없는 사이에, 내부 기강이 많이 흐트러졌나 보다”

“....”

사람을 죽일 때는 한 치의 표정 변화가 없던 김도경이었다.

심지어 은은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지금은 달랐다.

웃음기가 사라진 김도경의 눈빛이 사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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