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65화 (65/238)

#65연구소 (4) - 생존자

“그으으···.”

쓰러진 각성자 경비원의 모습은 처참했다.

파이어 애로우를 쏘느라 쉴드 밖으로 벗어났던 대가였다.

사람이 늙어서 죽는 모습을 빨리감기로 보는 듯했다.

아니, 그보다 훨씬 끔찍했다.

투두둑, 투둑.

힘없이 쓰러진 경비원의 척추가 새우처럼 굽었다.

경비원의 피부는 흙빛으로 메말라 쪼그라들었다.

볼이 움푹 패여들고, 급기야 이도 빠졌다.

슈우우-.

조승재는 눈을 감고 타인의 마기를 욕심껏 흡수했다.

각성자의 마기는 순도가 매우 높았다.

“이거야.”

조승재는 무척 만족스러웠다.

무더위에 시달리다가 시원한 단물을 들이킨 듯했다.

일반인에게 뽑아낸 미약한 생명력과는 차원이 달랐다.

조승재는 악귀처럼 웃고 있었다.

“흐익!”

다른 경비원들이 경악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들이 서로 긴밀하게 눈빛을 주고받았다.

“쉴드 올려!”

“더 물러나! 거리 벌려야 해.”

한건우는 뜻밖이라고 생각했다.

연구소 경비고 뭐고, 다 놔두고 도망칠 줄 알았다.

그만큼 책임감이 강하다는 뜻이었다.

여기서는 어리석다는 뜻도 되었다.

‘안타깝군.’

한건우는 조용히 <용맹의 가호> 버프를 올렸다.

조승재는 각성자 경비원들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저벅, 저벅.

치지지익!

경비원들이 스킬로 만든 쉴드가 얇아지기 시작했다.

경비원 중 한 명이 용단을 내렸다.

“쉴드 꺼지기 전에, 근접으로 돌격하자!”

현명한 선택으로 보였다.

원거리 무기는 없고, 시간을 끌어봤자 불리해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일 대 다의 상황.

조승재가 아무리 증폭 시술을 받고 강해졌다 해도, 여러 명이 동시에 덤빈다면 승산은 있었다.

나름대로 괜찮은 판단이었다.

이 자리에 한건우만 없었다면.

“들어가!”

파바박!

그들은 동시에 튀어나가 조승재를 덮쳤다.

경비원들은 대부분 검사나 권사 클래스.

무기는 보급받은 숏소드나 너클 정도였다.

퍼엉!

한 경비원이 <독나방 가루> 아이템을 썼다.

조승재는 마비를 일으키는 가루를 피하지 못했다.

가루 덩어리가 그의 안면에 정통으로 쏟아졌다.

“으!”

조승재의 시야가 흐려졌다.

<마기 흡수> 특성도 주춤했다.

‘이때다.’

경비원들은 직감했다.

승기를 잡았다는 것을.

쉬이익-

경비원들의 무기가 조승재의 몸통에 박히기 직전.

챙- 채앵!

무기의 날이 서로 허무하게 부딪쳤다.

“어!”

“뭐야.”

조승재의 몸이 부자연스럽게 뒤로 훅 밀쳐진 것이다.

자석에 끌려가는 것 같았다.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않았고, 심지어 조승재 본인도 놀란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그의 목덜미를 당겨서 도와준 것처럼 보였다.

물론 한건우가 개입한 것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공간 왜곡>과 <그래비티 필드>의 연계.

안 그래도 까다로운 두 가지 특성이었다.

그걸 신속하게 펼치기란, 한건우에게도 쉽지는 않았다.

“사, 살았어···.”

조승재도 얼빠진 표정이었다.

한건우는 그런 조승재가 딱하게 느껴졌다.

‘어디까지 떠먹여줘야 하나.’

방금은 아슬아슬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조승재가 죽어버릴 뻔했다.

그러면 곤란했다.

한건우는 자신이 관여했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이곳을 소거할 계획이었으니까.

그걸 위해서는 조승재가 끝까지 활약해줘야 했다.

조승재가 다시 비척비척 일어섰다.

쩌억!

“어?”

경비원들을 보호하던 쉴드가 깨졌다.

이제 주술이나 마법 공격이 먹히게 되었다.

슈우우-.

“크아악!”

조승재가 바라보는 경비원들부터, 팔다리가 시들어갔다.

아비규환이었다.

방금까지는 좋은 팀워크를 보여주었지만, 그건 희망이 남아있을 때의 이야기.

이제 상황이 달랐다.

쿠당탕!

그들의 눈빛이 변했다.

“!”

본능적으로 누군가를 첫 번째 희생양으로 만들려고 했다.

마치 맹수에게 쫓길 때, 다른 사람의 발을 걸고 도망치려는 것처럼.

“으윽!”

조승재에게 또다시 한건우의 버프가 쏟아졌다.

잔인할 만큼 강한 버프였다.

조승재는 이제 자신의 특성을 주체하지 못했다.

파아아악!

조승재의 온몸에서 검은 마기가 솟구쳤다.

그의 몸이 담기에는 너무 강한 힘이었다.

“아, 안돼.”

경비원들은 조승재로부터 조금이라도 멀어지려고 안간힘을 썼다.

소용 없었다.

그들은 동시에 폭삭 쪼그라들었다.

“후우···.”

조승재는 각성자들의 마기를 탐닉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으드득.

조승재의 고개가 부자연스러운 각도로 꺾였다.

한건우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그의 눈은 이성을 잃고 시뻘개져 있었다.

지속된 버프로 겁을 상실한 상태.

이제는 한건우의 마기가 탐난 모양이었다.

‘배은망덕하군.’

예상한 대로라고 해도,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파아-!

조승재는 한건우의 마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아이기스의 보호> 같은 특성을 쓰면 막을 수 있겠지만, 한건우는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한건우의 몸에는 아무런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마기는 방대한 바닷물과 같았다.

바가지로 조금 퍼 쓴다고 달라질 게 없었다.

“!”

조승재는 한건우의 마기에 전율했다.

아까는 한건우의 마기를 아주 조금 흡수하고도 구역질을 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각성자들의 마기에 적응이 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조승재는 한건우가 죽을 때까지 마기를 흡수하고 싶은 충동을 참지 못했다.

화악!

그가 겁도 없이 한건우에게 달려들었다.

한건우는 이번에도 아무 방어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어···?”

문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장영표가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한건우는 숨기고 있던 기운을 완전히 개방했다.

그러자 한건우의 마기가 조승재에게 강제로 밀려 들어갔다.

기세 좋게 달려들던 조승재가 허공에서 헛발질을 했다.

중심을 잃은 그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우욱···.”

쓰러진 조승재의 얼굴이 시퍼랬다.

속이 뒤집어지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이건··· 인간의 마기가 아냐!’

조승재는 덜컥 겁이 났다.

거대한 해일을 막는 작은 둑이 된 듯했다.

아니, 둑에 난 작은 구멍을 몸으로 막고 버티는 기분이었다.

채 막기도 전에, 둑이 터져버렸다.

“크억!”

조승재의 입에서 검은 피가 주르륵 흘렀다.

눈을 뜬 채로 숨을 깊이 들이쉬더니, 그대로 동작을 멈추었다.

숨이 끊긴 것이었다.

“이··· 이런.”

숨어있던 장영표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야말로 시체 밭.

한건우의 뒤에 숨지 않았다면, 장영표도 마찬가지 신세였을 것이다.

화르르르···.

그 와중에, 불길이 벽을 타고 번지고 있었다.

아까 명중하지 못한 파이어 애로우에서 시작된 불이었다.

그 불을 끌 경비원들은 다 죽어서 누워있었다.

“흠.”

장영표의 표정이 묘하게 침착해졌다.

어떤 생각에 잠긴 눈치였다.

그가 실험실에서 마력 화로를 질질 끌고 나왔다.

“음?”

한건우가 의문의 눈길을 보내자, 장영표가 말했다.

“이거, 사고로 불이 붙은 것처럼 할까요?"

“허.”

이렇게 앞서 간다고?

브레이크 없는 장영표의 성격에, 한건우는 헛웃음이 날 정도였다.

장영표가 끌고 나온 마력 화로에는 균열에서 캔 석탄이 가득 들어있었다.

장영표가 불 위에 그걸 들이부으려 할 때였다.

“잠깐만 기다려.”

한건우가 제지했다.

불로 덮어버린다는 건 좋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건우는 지하층으로 내려갔다.

지하에는 연기가 깔려 있었다.

그리고 복도로 기어나온 채로, 엎드려 기절한 남자가 있었다.

한건우가 때려눕힌 이능력 특수전단의 대원이었다.

한건우는 그 대원을 들어서 떠메고 나왔다.

“그 사람은 뭡니까?”

장영표가 고개를 갸웃하며 뚱하게 물었다.

다른 사람은 다 죽게 내버려두더니, 왜 그 사람은 구해서 나오는지 의문이었다.

“일단 나와.”

“이건요?”

한건우는 고개를 젓고, 두 말 하지 않고 앞서 나갔다.

장영표는 마력 화로를 놓고 따라갔다.

한건우는 연구소를 빠져나오고 나서, 안쪽을 돌아보았다.

[특성 발동 : 염동력]

무거운 마력 화로가 스스로 공중에 둥실 떴다.

타오르는 불 속에 균열에서 나온 고체연료가 엎어졌다.

불꽃이 잠깐 줄어드는 듯하다가, 순식간에 무섭게 치솟았다.

화아아악!

인적이 드문 경기도 낡은 폐공장의 창고.

소방관이 오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한건우는 지하실에서 떠메고 나온 대원을 공장 앞마당에 내려놓았다.

'....'

얼굴도 모르는 부대원이지만, 불타 죽게 내버려두는 건 내키지 않았다.

한건우는 장영표를 데리고 공장 부지를 빠져나왔다.

그의 등 뒤, 검은 밤하늘을 배경으로 불길이 높이 타올랐다.

***

특수안보부 서울지부.

천명환은 요새 들떠 있었다.

무능하고 한심한 상사가 드디어 좌천된 것이다.

‘잘 됐다!’

서울에서 한참 먼 지방의 지부장으로 발령받았다고 하니.

사실상 집에 가라는 소리나 다름 없었다.

‘설마 눈치없이 냉큼 받지는 않겠지?’

뭐, 이제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천명환은 여기서 새로 오실 서울지부장을 잘 모시면 되니까.

구관이 명관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

누가 와도 그전 상사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전 상사는 나이만 많고 필드 경험은 별로 없었다.

그 탓인지, 우유부단하고 겁이 많았다.

사소한 결정도 혼자 못 내려서 천명환에게 사사건건 의존했다.

존경은커녕 상사로 존중하기조차 힘들었다.

절대 고위직에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었다.

천명환의 희망사항은 단순했다.

‘각성자 사관학교 선배가 오면 좋겠다. 말도 통하고 뭔가 다르겠지?’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아무리 레이더를 세워 봐도, 들리는 소식이 하나도 없었다.

특수안보부 서울지부장 자리.

이 자리를 욕심낼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빈 자리가 생겼는데도 놀랄 만큼 조용했다.

그리고 오늘.

천명환은 동기에게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누구라고?”

“김도경 선배라니까.”

천명환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 중국에 있다고 들었는데?”

“중국 파견 끝내고 승진까지 해서 돌아오는 거야. 30대에 벌써 지부장이라니. 파격 승진이지.”

천명환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이건 너무 극단적이잖아!’

S급 각성자 김도경.

각성자 사관학교에서 전설이 된 생도.

모든 교수와 선배들이 칭송하는, 특급 엘리트라고 불리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후배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남자였다.

‘그 싸이코 천재가··· 내 상사로.’

김도경은 천명환이 사관학교를 다닐 때, 겸임 교수로 수업을 하기도 했다.

“...하.”

엄청나게 혹독한 수업이었다.

수업 때의 끔찍한 기억이 생각났다.

믿기지 않지만, 벌써 예전 상사가 그립기까지 했다.

‘한심하고 무능해도 사람을 죽도록 갈구지는 않았는데···.’

그러나 천명환의 우려가 무색할 정도였다.

김도경은 정식으로 발령을 받기도 전에 천명환을 따로 불러냈다.

“명환아, 오랜만이다. 잘 있었니?”

“...예? 그럼요.”

그 김도경이 웃으면서 인사하다니.

그것도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면서.

마치 평범한 사람처럼 말이다.

물론 그는 외관만으로도 평범할 수 없었다.

190cm를 넘는 근육질 거구.

칼같이 똑바른 자세에 남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까지.

‘왜 이래? 갑자기.’

천명환은 아직 떨떠름한 반응이었다.

“이번에 연구소 이슈 있었다며? 부임 전이지만 한번 현장에 가보자.”

“네, 알겠습니다.”

연구소라면, 최근에 사고가 난 그곳을 말하는 것이겠지.

서울지부장은 수도권 전체를 책임지는 자리니, 벌써 대응책에 관심을 가진 모양이었다.

천명환은 그 사건을 떠올리고 코웃음을 쳤다.

‘내가 보기엔, 관리가 너무 해이했어.’

위에서도 똑같이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 지역 담당자들은 모두 호되게 문책을 당했다.

자기가 담당하던 연구소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하여간, 김도경이 김도경 하네.’

천명환이 혀를 내둘렀다.

중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정식 부임도 하기 전에 벌써 업무를 챙기다니.

“거기 생존자 있던가?”

김도경이 물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가벼운 말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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