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64화 (64/238)

#64연구소 (3) - 이이제이

“우으···.”

유리벽 안, 조승재의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었다.

자해를 못하도록 한 것이었다.

한건우는 <그림자 맹시>를 풀고 나타났다.

허공에서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니, 조승재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으?”

그는 자신을 죽도록 팼던 한건우를 바로 알아보았다.

한건우와 조승재 사이에는 방탄유리보다 더 단단한 유리벽이 있었다.

[특성 발동 : 아그니의 화염]

한건우는 손가락 끝에 지옥의 겁화를 불러내고, 유리벽에 선을 그었다.

츠즈즈··· 쩌억!

고온이 가해지면서, 방탄유리보다 더 단단한 유리벽에 금이 갔다.

퍽!

살짝 충격을 가하자, 금간 벽이 깔끔하게 떨어졌다.

한건우는 안쪽으로 들어가서 조승재의 몸을 묶은 마력 저감장치를 잡았다.

이 장치는 특수한 금속으로 되어있었다.

여기 닿으면 마력을 쓰는 특성을 쓰지 못했다.

그렇다고 물리적으로 부수기도 어려웠다.

금속은 무척 단단했으니까.

끼이이익!

“?”

그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건우가 맨손으로 힘을 주어 마력 저감장치를 휘어버렸다.

조승재는 한건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건 비정상이야··· 근력 스탯이 몇이길래?’

조승재의 눈에 경악이 어렸다.

‘용병 일을 오래 했지만, 이런 괴력은 본 적이 없는데.’

치잉-.

일그러진 마력 저감 장치가 바닥에 뒹굴었다.

조승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그가 떨리는 손으로 스스로 재갈을 풀어냈다.

자유로워진 조승재가 고개를 들자, 한건우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

‘장영표는 어디 있지?’

조승재가 난동을 피우기 전에 그를 보호해야 했다.

한건우가 벽에 손바닥을 댔다.

[특성 발동 : 진동 감지]

연구소 내에서 들리는 소음이 레이더처럼 잡혔다.

연구원들끼리의 대화가 들렸다.

“뭐 하다 불을 냈어?”

“죄송합니다. 그 낙하산 놈이···.”

“하··· 장영표? 걔 뭐 하는 놈이야? 실험에 협조도 안 하면서 사고만 치네.”

“그러게 말입니다.”

“장영표 이 새끼 지금 어딨어.”

“여기 조용히 있으라고 했는데··· 어, 어디 갔지?”

화악!

타다닥.

어딘가에서 다시 피어오르는 불소리를 듣고, 한건우는 그만 웃음이 날 뻔했다.

‘그 인간이라면 그렇지.’

한건우는 장영표가 있는 곳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아까 불이 났던 실험실이었다.

“이제 곧이다! 하하.”

검은 재가 날리는 실험실에서, 한 남자가 미친 과학자처럼 웃고 있었다.

장영표였다.

그의 앞머리와 눈썹은 새까맣게 타버린 채였다.

흰색이던 실험복도 잿빛이었다.

“아다만티움 제련··· 내가 해낸다.”

장영표는 키가 작고 땅땅한 몸집에 손발이 큼직했다.

마치 드워프 같은 모습.

그는 큼직한 망치를 들고 마력 화로를 들여다보며 혼자서 연신 중얼거리고 있었다.

괴이한 모습이었지만, 한건우에겐 익숙했다.

“잘 안 될걸?”

뒤에서 한건우가 대뜸 말을 걸었다.

장영표는 흠칫 놀랐다.

“?”

장영표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다.

한건우가 외부인이라는 것도 전혀 눈치재지 못했다.

자신이 모르는 직원인가보다 했다.

“아다만티움을 녹이려면 이 정도 온도로는 택도 없다고.”

한건우가 덧붙였다.

아다만티움으로 만든 아티팩트는 시스템의 보상으로 얻어질 뿐이었다.

인간의 힘으로 제련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균열에서 아다만티움 원석을 구한다 해도, 그걸 녹일 수 있는 절대적인 화력이 없었으니까.

염제가 쓰는 <아그니의 화염>, 그 지옥의 겁화가 아니고서는.

“당신 뭐야?”

“미래의 고용주.”

장영표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다.

다짜고짜 찾아와서 자기를 위해 일하라느니, 독점 계약을 하자느니.

‘정부 연구소에 들어오면 그런 일이 없을 줄 알았더니.’

장영표는 한건우를 상대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한건우는 장영표의 옆으로 와서, 같이 마력 화로를 들여다보았다.

그건 작은 용광로처럼 보였다.

‘호오.’

그럴싸했다.

염제가 아다만티움을 제련하던 용광로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화로 안에는 아주 조그만 은색 금속 조각이 보였다.

손톱 끄트머리보다 작았다.

거의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였다.

“당신이 아다만티움 제련에 대해 뭘 알아?”

장영표가 공격적인 말투로 툭 던졌다.

그는 자기 일에서는 고집과 자존심이 셌다.

어릴 때부터 학교를 안 다니고 정비공으로 일한 장영표였다.

금세 천재 소리를 들었다.

고학력 엔지니어들도 그를 찾아와서 일을 물어봤다.

그리고 스무 살 무렵, 장영표는 각성했다.

고유 특성은 놀랍게도···.

<장인 드워프의 손길(희귀)>.

‘내가 각성자가 쓰는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니!’

아이템 제작자.

그건 모든 엔지니어의 꿈이었다.

본인이 각성자가 아니면 아이템을 제작하기 어려웠기에, 꿈으로 그칠 줄 알았다.

고유 특성에 맞게 대장장이 클래스를 골랐다.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희귀한 직업이었다.

혼자서 골방에 틀어박혀서 아이템만 만들었다.

그의 아이템에는 Y. P.라는 서명이 들어갔다.

장영표가 만든 아이템은 명품 소리를 들었다.

입소문을 듣고 와서 비싼 선금을 내놓는 사람도 있었다.

맘만 먹었다면 큰 돈을 벌었으리라.

그러나 장영표는 장사 같은 것에는 흥미가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별 볼 일 없는 각성자들이 내가 만든 아이템을 쓰는 게 싫으니까.’

장영표는 그 정도로 괴짜였다.

그러니 한건우의 참견에 화를 내는 게 당연했다.

장영표가 매서운 눈으로 한건우를 노려보았다.

한건우의 손이 아공간 주머니로 들어갔다 나왔다.

‘각성자였군!’

장영표는 긴장해서 망치를 부여잡았다.

한건우가 무기를 꺼내는 줄 안 것이다.

그의 손바닥 위에 금괴 모양으로 제련된 금속이 떡하니 올려져 있었다.

“억?”

쿠웅-!

장영표의 ‎곰 같은 손에서 망치가 떨어졌다.

“아다만티움···.”

색깔은 은이나 백금과 비슷했지만, 광채가 깊고 영롱했다.

게다가 이렇게 큰 덩어리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걸로 아이템을 만들어보고 싶지 않나?”

“뭐요?”

장영표가 정신을 못 차리는 동안, 한건우는 직격타를 가했다.

“원한다면 드래곤 사체도 재료로 쓰게 해주겠어.”

“....”

장영표는 귀신에 홀린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곧 물에 젖은 개처럼 세차게 고개를 털었다.

“어디서 사기를 치고 있어!”

역시 말만으로는 믿기 어렵겠지.

한건우가 다시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

한건우가 꺼낸 것을 보고, 장영표의 입이 떡 벌어졌다.

왼손에는 아다만티움 덩어리, 오른손에는 드래곤의 심장.

한건우는 거의 약소국의 1년 예산을 양 손에 들고 있는 셈이었다.

장영표의 눈에 한건우는 마치 신처럼 보였다.

“나에게 무기를 만들어 줘.”

한건우는 장영표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장영표가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니었다.

큰 돈을 벌고 싶었다면, 애초에 대형 길드와 계약했을 것이다.

쓸만한 아이템 제작자는 부르는 게 값이니까.

장영표는 그걸 극구 거부했다.

시키는 대로 아이템을 양산하기는 싫다고 했던가.

회귀 전에도 그는 시골에 혼자 은거했다.

강한 각성자가 직접 찾아와서 부탁하면, 기분이 내킬 때 무기를 만들어주면서.

“무기를···?”

“당신이 원하는 대로, 뭐든지 자유롭게. 재료와 비용은 내가 다 지원하겠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제안이 이어졌다.

“그리고 가장 강한 플레이어들이 그걸 다루게 될 거야.”

한건우는 자신의 각성자 등록증까지 보여주었다.

블랙 카드.

S급 각성자 등록증의 표시였다.

“....”

장영표는 자신의 뺨을 한 대 때리기까지 했다.

난생처음 보는 한건우가 그의 내밀한 소망을 읽은 것 같았다.

‘개꿈인가?’

아무리 봐도 눈앞의 한건우는 진짜였다.

‘이건··· 도저히 거부하기가···.’

태어나서 이렇게 심장이 거세게 뛰는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합리적 의심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왜 나한테··· 그런 일을 맡기는 겁니까?”

장영표는 긴장해서 존댓말을 하고 있었다.

스스로 인식하지는 못했다.

“장영표 명장. 당신은 최고의 아이템 제작자니까.”

한건우는 단호하게 말했다.

장영표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알았냐고도 묻지 않았다.

‘이미 다 알고 왔군···. 그 정부 놈들처럼.’

장영표를 이 연구소에 박아넣은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장영표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었다.

그들을 생각하니, 장영표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아, 이런.”

마법 같은 기회를 앞두고, 현실적인 문제가 떠오른 것이다.

“당장은 이직 못 합니다. 여기서 일하는 걸로 빚을 대납하기로 해서···.”

“빚?”

“아이템 재료비 때문에 사채가 조금.”

‘조금일 리가.’

아이템 재료라면, 보통 물건들이 아니었다.

주로 균열에서 채굴한 광석이나 마수의 시체.

어마어마하게 비쌌다.

그런 걸 주문도 안 받고 사비로 사들여서 아이템을 만들었다.

아이템을 마켓에 적극적으로 팔지도 않았다.

날로 빚이 쌓여갈 수밖에.

특수안보부는 그걸 이용해서 장영표를 붙잡아둔 것 같았다.

분위기를 보니, 이대로 놔두면 아다만티움 제련에 빠져서 실패만 거듭하다 쫓겨날 것 같지만···.

한건우에게 돈 문제는 문제가 아니었다.

남는 게 돈이니까.

‘다이렉트로 빼오기 좀 그러면, 대리인을 내세워서 빚을 대납해도 되고.’

그때 실험실 밖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심상치 않은 소란이었다.

“아악! 살려줘!”

“경비원!”

이번에는 실험실 화재 따위가 아니었다.

‘풀려난 조승재가 움직이는구나.’

그때 장영표의 눈빛이 이상하게 번뜩였다.

그가 한건우의 팔을 붙잡았다.

“부탁이 있습니다.”

“응?”

“전 그냥 오늘 사고로 죽은 걸로 하겠습니다.”

“....”

“그리고 바로 데려가 주십쇼.”

‘단단히 미친 놈이구나.’

한건우마저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럴싸했다.

‘음··· 나쁘지 않잖아?’

오히려 먼저 그 생각을 못해낸 게 아쉬울 정도였다.

장영표는 등록 각성자였다.

등록 각성자는 일정 기간마다 정부에서 상태를 파악한다.

한건우의 ‘아레스’ 길드에서 그를 데려간 것도 금방 밝혀질 것이다.

장영표가 사망자로 위장해서 미등록자가 된다면, 그를 몰래 데리고 있을 수 있었다.

혹시나 이직할 걱정도 없이 독점적으로.

“좋아. 일단 따라와.”

“예.”

벌컥!

한건우는 실험실 문을 열고 나왔다.

장영표도 따라붙었다.

‘가관이군.’

조승재가 첫 폭주를 했던 균열이 이랬을까?

슈우우우···.

조승재는 거의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초식동물의 우리 안에 야수가 풀어진 듯했다.

특성을 한계까지 쓰면서 연구원들의 마기, 즉 생명력을 빨아먹고 있었다.

“크흐흐···.”

조승재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좋았다.

그를 학대한 연구원 놈들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싸그리 죽여버리고 싶었다.

죽이고 싶은 사람을 죽이는 기쁨.

이걸 체험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으아아!”

연구원들이 몸부림쳤다.

그들의 피부가 순식간에 주름지고 쪼그라들었다.

아까 조승재를 때리고 걷어찬 연구원도, 인체실험을 하면서 낄낄 웃었던 놈도 있었다.

“제압해!”

각성자 경비원들이 쉴드를 치고 사방에서 다가갔다.

조승재를 제압하려는 것이었다.

맨 앞에 선 각성자 경비원이 외쳤다.

“이능력 특수전단 파견 대원은? 어디 간 거야. 그 사람이 제일 필요한데.”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안 보입니다.”

궁수 클래스인 그 대원을 찾는 모양이었다.

경비원보다 훨씬 강한 건 물론이고, 원거리 공격 특성이 있으니까.

실내를 지키는 경비원들이라 대부분 근거리 딜러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조승재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마기를 빨리니, 원거리 공격이 절실했다.

‘그 대원? 지금 팔다리가 부서진 채로 지하에 누워있지.’

한 경비원이 <파이어 애로우> 스킬을 썼다.

고육지책이었다.

피유우-!

퓨우-!

조승재가 멈칫했다.

파이어 애로우는 조승재에게 명중하지 못하고 벽과 바닥에 박혔다.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건우가 조용히 버프를 걸었다.

[특성 발동 : 용맹의 가호]

-다른 플레이어가 발동하는 특성을 일시적으로 강화한다.

“···흐윽!”

조승재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원천을 알 수 없는 힘이 용솟음쳤다.

조승재의 얼굴이 벌개지고, 눈에 핏발이 섰다.

스스로의 힘이 이렇게 강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왜 갑자기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이유는 궁금하지 않았다. 이 힘을 쓰고 싶었다.

조승재의 눈이 뒤집어졌다.

붉어진 흰자위가 보였다.

“죽어라!”

스샤아아악-!

조승재의 <마기 흡수> 특성이 뱀처럼 뻗어나갔다.

멀리서 파이어 애로우를 쏜 경비원이 픽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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