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연구소 (1) - 지름길
“지옥이라니. 어디를 말하는 거냐?”
한건우가 조승재의 멱살을 잡은 채로 물었다.
조승재는 한건우가 다 알면서 자신을 놀리려 한다고 생각했는지,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몸부림을 쳤다.
“으억!”
조승재는 반격을 시도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디버프 공격, <마기 흡수> 특성을 쓴 것이다.
슈우우-!
조승재는 한건우의 마기를 끌어당겼다.
“큭··· 으, 윽?”
이겼다는 듯이 웃던 조승재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조승재의 몸이 혼자서 허공에서 뒤틀렸다.
“크어억!”
“?”
한건우는 손에 맺혀있던 <인드라의 뇌전>을 거두고, 잡은 멱살을 놓았다.
조승재는 바닥에 엎드려서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우욱, 욱!”
‘아하.’
한건우는 무슨 상황이 일어난 건지 파악했다.
조승재가 받아들이기에 한건우의 마기가 너무 강한 모양이었다.
굶주린 사람이 갑자기 기름진 고기를 먹으면 탈이 나는 법.
동물이나 민간인의 극소량 마기만 흡수하던 그에게, S급 이상의 순도 높은 마기는 오히려 독이었다.
게다가 조승재의 특성은 강해지기만 했을 뿐, 활용 범위가 늘어난 건 아니었다.
단순히 마기를 흡수하기만 할 뿐.
그걸 저장하거나 방출하는 것 같은 활용은 할 줄 몰랐다.
‘잠깐··· 뭐지?’
한건우의 감각에 무언가가 감지되었다.
제법 강한 각성자들의 기운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도 여러 명이 동시에.
이비현도 예민하게 주위를 살폈다.
같은 걸 느낀 모양이었다.
“어서 데리고 가시죠.”
“아니.”
한건우는 고개를 저었다.
‘조승재는 누군가 자신을 잡으러 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어.’
범죄를 저질러서 체포되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을 어딘가로 돌려보낼 거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아까의 반응으로 미루어 볼 때, 조승재에게 마기 증폭 시술을 해준 곳 같았다.
‘아무리 별 볼 일 없던 E급이었어도 각성자인데, 각성자를 이토록 겁에 질리게 만들다니?’
그곳은 불법 시술을 해주는 조직 정도가 아닐지도 몰랐다.
파지직!
“큭!”
푸른 스파크가 조승재의 뒷목을 강타했다.
<인드라의 뇌전>이었다.
조승재는 한건우의 마기 때문에 취약한 상태였다.
전기 충격을 받고 기절해서 축 늘어졌다.
한건우가 이비현에게 말했다.
“이비현, 넌 이쯤에서 돌아가.”
“···혼자서 괜찮으시겠어요?”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한건우가 피식 웃었다.
이비현도 쓸데없는 걱정을 한 게 민망한 모양이었다.
어둠 속에서 붉어진 얼굴이 보였다.
“눈에 안 띄게, 은신하고 가.”
“네.”
한건우는 <공간 왜곡> 특성을 풀었다.
투명한 진공 벽이 사라졌다.
밤 골목의 소음이 다시 들려왔다.
이비현은 <그림자 맹시>로 몸을 숨기고, 어둠 속으로 녹아들어 사라졌다.
한건우 역시 그림자 속에 몸을 은신했다.
겉모습만 숨기는 것이 아니라, 각성자의 기운까지 완전히 숨겼다.
한적한 골목길에는 기절한 조승재 혼자 엎드린 채 쓰러져 있었다.
스스슥-!
거의 소리를 내지 않고, 여러 각성자들이 접근해 왔다.
‘하나, 둘, 셋··· 아마도 여섯.’
한건우는 감각의 민감도를 극도로 끌어올렸다.
그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실력을 짐작하기 위해서였다.
‘수준이 상당하군.’
그들은 중구난방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2명씩 한 조를 이루어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한 팀으로 움직이는 걸 오래 훈련한 티가 났다.
“....”
한건우는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뭔가 익숙했다.
타닥.
선두에 선 각성자가 보였다.
군복처럼 보이는 어두운 톤의 전투복.
나이트 비전 고글과 안면을 덮어쓴 마스크.
“···!”
은신한 채 그들을 지켜보던 한건우의 눈이 커졌다.
그가 너무나 잘 아는 조직이었다.
‘이능력 특수전단?’
6명으로 이뤄진 1개 분대였다.
민간인에게 노출될 수 있는 시가전에서는 부대 마크를 달지 않았다.
한건우는 특히 분대장을 유심히 살폈다.
얼굴이 가려져 있었지만,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권석진 대장.’
한건우가 처음 부대에 들어갔을 때, 권석진은 이능력 특수전단의 대장이었다.
A급 각성자로, 뛰어난 마검사였던 권석진.
한건우가 분대장, 소대장을 지나 대장이 되기 직전까지, 권석진은 특수전단 대장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그래···. 특수안보부의 가장 유용한 손발은, 다름 아닌 이능력 특수전단이었지.’
한건우가 주먹을 쥐었다.
이제까지 무의식 중에 외면해 왔던 건 아닐까.
특수안보부에 맞서려면, 먼저 이능력 특수전단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
두근, 두근···.
관자놀이에서 맥박이 거칠게 뛰었다.
권석진 분대장이 쓰러진 조승재를 발견했다.
그가 조용히 주먹을 들었다. 정지 신호였다.
타다닥.
뒤에 따라오던 5명이 각자의 위치에서 일사불란하게 멈추었다.
“확인해.”
권석진이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한 대원이 진압봉 끝으로 조승재를 뒤집었다.
“조승재가 맞습니다.”
“상태는?”
“단순히 기절한 것 같습니다.”
“각성자를 공격하려다 역으로 당한 것 같군. 주변 살펴.”
“근처에 탐지되는 기운은 없습니다. 이미 멀리 이동한 것 같습니다.”
간이 탐지기를 든 대원이 보고했다.
권석진은 그 기기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가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
권석진의 시선이 한건우가 숨어있는 곳 주변을 맴돌았다.
그의 본능적인 감각이었다.
그러나 권석진은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일단 신병 확보해. 신속하게 차로 옮긴다.”
“네.”
권석진의 지시는 항상 빠르고 거침없었다.
우물쭈물 망설이거나 시간을 끄는 법이 없었다.
부하들도 아무런 의심 없이 그의 지시를 따랐다.
그는 한때 한건우가 롤모델로 삼았던 남자였다.
드르륵.
대원이 조립식으로 된 들것을 폈다.
구조대 로고가 있는 모자를 눌러쓰자, 그들은 정부 구조대처럼 보였다.
대원들은 들것에 기절한 조승재를 올리고, 위에 얇은 천을 펴서 덮었다.
동작 하나하나가 신속하고 정확했다.
오랜 훈련의 결과였다.
권석진 분대장이 귀 쪽의 리시버 버튼을 눌렀다.
무전으로 보고하려는 것이었다.
삐- 치지직.
작은 신호음이 들렸다.
한건우는 청각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본부, 여기 A팀. 타겟 확보 완료 보고한다.”
[알았다. 타겟은 즉시 G센터로 반납하기 바람.]
“수사기관이 아니라 센터로? 확실한가?”
[반복한다. 즉시 G센터로 반납.]
권석진은 더 반문하지 않았다.
과거의 한건우라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G센터?’
조승재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곳.
거기로 보내느니 차라리 죽여달라고 빌 정도였으니.
어딘지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한건우는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 이들을 따라가면 확실히 알 수 있을테니까.
한건우는 조금 거리를 두고 특수전단 분대원들의 뒤를 밟았다.
덜컥!
커다란 밴의 뒷문이 열렸다.
대원들은 들것을 올리고, 자기들도 뒷쪽의 공간에 올라탔다.
탁 탁.
뒷자리에서 차의 내벽을 두드렸다.
전부 다 탔다는 뜻이었다.
분대를 태운 차량이 조용히 출발했다.
한건우는 그림자 속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화염의 날개를 펴고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한건우는 특수전단 분대가 탄 차량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차는 골목을 나와서 큰 도로로 접어들었다.
한건우는 도로가 뻗은 방향을 확인했다.
‘경기도로 나갈 것 같군.’
한건우는 화염의 날개를 접고 아래쪽으로 활강해 내려갔다.
**
“데리고 내려.”
“예.”
차량이 멈춘 곳은 시흥의 큰 공장 건물 앞 주차장이었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셋뿐이었다.
권석진 분대장과 이름 모를 대원, 그리고 조승재.
차량의 지붕 위에는 한건우가 타고 있었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한건우는 공장 건물을 유심히 살폈다.
‘여기는?’
녹이 슨 표지판에 낡은 페인트로 공장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금정화학]
‘화학공장인가? 처음 들어보는 곳인데.’
기억을 더듬어보았지만, 분명히 한건우는 와본 적 없는 장소였다.
공장은 버려진 지 오래된 것 같았다.
창문은 몇 개 깨져있었고, 불이 켜진 곳은 없었다.
전체적으로 을씨년스러운 느낌이었다.
한건우는 공장 부지 주변을 살폈다.
폐공장 건물 하나만 달랑 있었다.
민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은 개미새끼 한 마리 안 보이는 허허벌판이었다.
도로에는 가로등 불조차 없었다.
‘사람 몇 명 갖다 묻어도 티도 안 나겠군.’
조용히 움직여야 하는 한건우에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허억, 흑···.”
조승재가 신음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조승재는 오는 길에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두 발로 비척비척 걷고 있었다.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조승재의 머리에는 사형수처럼 천이 덮어씌워져 있었다.
양 손목에는 사슬 수갑을 차고 있었고, 목에는 개목걸이 같은 게 걸려있었다.
한건우는 그게 뭔지 쉽게 알아보았다.
이능력 특수전단에서 각성자를 제압할 때 쓰던 물건이었으니까.
‘마력 저감장치···.’
좁은 차 안에서 함부로 특성을 쓰지 못하도록 구속해놓은 것이었다.
조승재는 앞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도 계속 몸부림쳤다.
“조승재. 얌전히 걸어. 다시 기절하고 싶지 않으면.”
대원이 진압봉으로 조승재의 등을 쿡 찔렀다.
조승재가 겁에 질려서 조용해졌다.
그들은 폐공장 뒤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한건우는 조용히 그들을 뒤따라갔다.
한건우는 권석진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치의 잔동작 없는 걸음걸이가 그다웠다.
‘권석진 대장··· 참 군인이었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그랬다.
명령이 내려오면 최선을 다해 수행하고, 작전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던 권석진.
한 가지 면만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작전에서는 칼 같이 냉정했지만, 평상시에는 잔정이 많았다.
그러니 부대원들의 신망이 두터울 수밖에.
‘은퇴하고 시골로 내려가서 편히 산다는 말만 듣고, 소식이 끊겼었는데···.’
정확히는 권석진 쪽에서 일방적으로 부대 사람들과 연락을 끊었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서운했다.
하지만 한건우는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우리 일이 기분좋은 일도 아니고, 은퇴하고 계속 떠올리고 싶지는 않을 거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믿자.’
섭섭하게 생각하는 대원들을 한건우가 달랬다.
‘나도 은퇴만 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거니까.’
그렇게 농담 아닌 농담도 했었다.
한건우가 회상에 잠긴 사이, 그들은 버려진 자재 창고 앞에 섰다.
권석진이 창고 문 옆에 달린 낡은 벨을 눌렀다.
안쪽의 사람과 연결되었다.
[바깥에 비가 옵니까?]
안에서 뜬금없는 질문이 흘러나왔다.
한건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특수전단의 암구호야.’
생체인식, 식별 아이템···.
별의 별 방법이 다 나와도, 특수전단은 암구호를 계속 사용했다.
완벽하진 않지만 가장 단순하고 빠른 방법이니까.
특수전단의 암구호 문답은 책자로 인쇄하거나 메모하지 않았다.
부대원들은 수백 가지의 문답을 구전으로 암기했다.
이능력 특수전단의 대원이라면, 이걸 모를 수는 없었다.
한건우는 아직도 모든 암구호 문답이 생생히 기억났다.
권석진이 뭐라고 말할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알 수 있었다.
‘폭풍을 대비해야 합니다.’
“폭풍을 대비해야 합니다.”
삑-. 끼리릭-.
창고로 들어가는 입구가 열렸다.
한건우는 오늘만큼 <그림자 맹시> 특성이 고마운 적이 없었다.
이게 없었다면 안으로 숨어들기가 훨씬 까다로웠으리라.
“!”
창고 안은 완전히 별세계나 다름없었다.
대낮처럼 불이 환했다.
흰 실험복을 입은 연구원 몇이 오가고 있었다.
모두 보호장비를 갖춰 입고 있었다.
연구원 한 명이 권석진 일행을 보고 반색을 하며 다가왔다.
연구원은 밤샘에 찌든 얼굴이지만, 눈빛은 형형했다.
“이거, 조승재 맞죠? 고생 많으셨습니다.”
한건우는 확신했다.
‘이곳은 특수안보부의 비밀 연구소 중 하나였군.’
특수안보부를 뒷배경으로 둔 범죄조직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특수안보부 산하의 연구소였다니.
마기 증폭 시술을 인체실험하고, 범죄자들에게 심어서 이용하고···.
그들의 악행은 한건우가 알던 것보다도 훨씬 직접적이었다.
지름길로 온 느낌이었다.
한건우는 기분이 고양되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