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61화 (61/238)

#61사냥의 시간

“한 명이라고? 어디에 있지.”

“현재 어디 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역시 모든 게 술술 풀릴 리는 없었다.

이비현이 설명했다.

“이름은 조승재. 저주 계열 특성이 있는 주술사입니다. 디버퍼 역할로 용병대를 떠돌아다녔고, 등급은 E급입니다.”

“E급 주술사라···. 별로 부르는 곳은 없었겠군.”

하위 등급에서는 권사나 검사가 잘 팔렸다.

어디서나 필요한 역할이니까.

“맞습니다. 특이한 점은 디버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상대의 마기를 흡수하는 능력이 있었다는 겁니다.”

“흡수?”

한건우에게는 익숙한 단어였다.

“스탯도 등급도 대단하지 않아서 크게 역할은 못 했는데요, 갑자기 2차 각성이라도 한 것처럼 강해졌다고 합니다.”

“얼마나 강해졌지?”

“C급 수준이었다, D급 수준이었다, 대중은 없구요.”

“흠···.”

“확실치 않지만, 목에 독특한 문양이 생긴 걸 봤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는 특별히 못 찾을 것도 없어보였다.

이름도 이미 알고 있겠다, 주변 사람들까지 연락이 닿은 상황.

다시 나타나기를 조용히 기다리면 되지 않나.

“그런데 몇 달 전에 균열에서 사고가 생겼습니다.”

“사고?”

“균열 공략에 후발대로 들어갔는데, 조승재 빼고 후발대는 다 전멸했습니다.”

E급 플레이어만 혼자 살아서 나왔다면 이상하겠지만, 시술을 받고 강해졌다고 하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선발대 중에서 뒤에 낙오된 길드원이 한 명 있었던 겁니다.”

“조승재가 살인하는 걸 봤겠군.”

목격자가 있었던 것이다.

“네. 마수가 아니라 조승재가 후발대를 다 죽였다고 했다더군요.”

“혼자서 다른 용병들을 다 상대했다고?”

“그 균열이 ‘지옥’ 계열이었어요.”

한건우는 바로 납득했다.

각성자의 능력은 균열의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바로 특성과 균열의 상성이었다.

마치 빙하기 균열에서 얼음 특성이 있는 임수호가 활개를 쳤던 것처럼.

악마종 마수가 나오는 지옥 계열 균열.

거기서는 흑마법이나 저주 능력이 원래보다 훨씬 강해진다.

“그렇다면 각성자들이 죽을 때까지 마기를 흡수한 건가? 정부에서 그걸 가만히 놔뒀을 리가 없는데.”

균열 안에서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으면, 각성관리청에서 철저하게 조사를 했다.

게다가 목격자까지 있었다니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조승재는 나오자마자 도망갔고, 지금까지 실종 상태입니다.”

“아하.”

사실 이런 이야기는 한건우에게는 익숙했다.

이능력 특수전단에서 주로 잡으러 다니던 게, 바로 그런 자들이었으니까.

그런 사례를 부르는 별명도 있었다.

‘특성에 잡아먹힌 자.’

각성자 본인의 스탯보다 특성이 더 강해질 때.

특성을 제어하지 못하고 자신의 힘에 취해버린다.

그러면 점점 이성이 흐려지고, 마수가 아닌 인간을 대상으로도 힘을 쓰기 시작한다.

하위 각성자뿐 아니라, 상위 각성자에게도 나타날 수 있는 일이었다.

회귀 전, 염제 신광우가 죽기 전에 화염 특성에 취해버린 것처럼.

“한 번 특성에 취해버리면 끊기가 어려울 테니··· 지금도 마기를 빨아먹고 돌아다니겠군.”

한건우가 뱉은 말에, 이비현이 눈을 크게 떴다.

“맞습니다. 그 말씀을 드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비현이 내민 자료는 한건우의 예상과는 달랐다.

“이게 왜···?”

그건 단신으로 처리된 언론 보도였다.

-골목길에서 숨진 노인 2명 “사인 불명”

-도심 공원에서 노인 사망, 신원 확인 중

-주택가에서 노인 시신 발견 ··· “사인 불명” 경찰 수사 중

“이건··· 민간인 아니야?”

“네.”

모두 길거리에서 급사한 노인들에 대한 기사였다.

한건우는 벼락처럼 한 사건이 떠올랐다.

‘설마, 그 미제사건?’

아직 언론에서는 주목하기 전인 모양이다.

이 사건들은 사실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렇게 죽은 사람이 7명이 넘어갈 때쯤.

한국이 떠들썩할 정도로 난리가 났다.

‘이 피해자들, 노인이 아니었지.’

죽은 이들은 모두 1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젋고 건강한 사람들이었다.

미스테리한 일이었다.

멀쩡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피부가 쪼글쪼글해지고 관절이 굽어, 죽기 직전의 노인처럼 변해서 죽은 것이었다.

경찰은 아무 단서도 찾지 못했고, 결국 미제 사건이 되었다.

몇 년간 시사 프로그램과 인터넷 방송의 단골 주제였다.

‘그때도 뭔가 이상했지···.’

각성자들은 아무래도 각성자 중에 범인이 있는 게 아닐까 의심했었다.

그러나 수사망도, 언론도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염두에 두지 않았다.

알려지지 않은 흡정 마수의 소행인 걸로 몰고 가는 분위기였다.

이 사건이 조승재의 소행이었단 말인가.

지금 생각하니 앞뒤가 맞춰지는 듯했다.

“그런데 이비현. 이걸 어떻게 생각해냈지?”

미래를 다 알고 있는 한건우조차 이걸 바로 연결시키지는 못했다.

이비현은 쑥스러운 듯 머리를 쓸어넘겼다.

“조승재는 마기를 흡수하는데, 지금 혼자이니 균열에 들어가기 어려울거고, 사회에서 각성자를 몰래 죽이는 건 더 힘들잖아요. 그러니 일반인으로 타겟을 돌렸을 거라 생각했죠.”

“그렇군.”

“아마 누가 막지 않으면 계속 같은 짓을 할 것 같아요.”

한건우도 동감이었다.

각성하지 않은 사람도 마기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생명체가 가진 생명력이 바로 마기의 일종이었다.

그러나 마수나 각성자에게서 흡수하는 마기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 되니, 목이 마를 수밖에.

가만 놔두면 피해자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일반인을 노리는 각성자라니 끔찍한 일이었다.

아무리 약한 각성자라도 일반인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 수 있었으니까.

“좋아. 잡으러 가자.”

“어떻게요?”

한건우는 신문기사에 나온 장소를 모두 지도에 표시했다.

서로 멀지 않은 장소였다.

조승재는 혼자서 추적을 피해 도망다니고 있으니, 도보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았다.

문철민 기자에게 전화해서 묻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기자님, 혹시 최근에 사망사고 중에서 보도되지 않은 사건 좀 알 수 있을까요?”

[엇, 잠깐만요.]

모든 범죄나 사고가 언론에 나오는 건 아니니까.

언론사에서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해서 보도를 안 한 소식들이 있을지도 몰랐다.

[네, 있습니다.]

문철민 기자가 문서 파일을 몇 개 보내주었다.

정식으로 보도되지 않은 기사 가안이었다.

교통사고, 산재, 친족 간 범죄···.

이 사건과는 별 관계가 없어보였다.

“흠···.”

한건우는 전화를 끊으려다가, 한 가지 생각이 났다.

“기자님. 사람 말고, 혹시 동물이 죽은 것에 대한 제보는 없었나요? 금천구 근처에서요.”

[그걸 대체··· 어떻게 아셨습니까? 데스크에서 짤려서 기사도 안 나갔는데요.]

문철민 기자는 어리둥절했지만, 곧 자료를 찾아서 보내주었다.

내용을 확인하고, 한건우가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추후 사례하죠”

[별 말씀을요.]

그 장소까지 지도에 추가했다.

알기 쉬운 모양이 그려졌다.

“원을 그리고 있네요?”

“그렇군.”

이제 작전 타임은 끝이다.

사냥의 시간이었다.

*

새벽, 한적한 주택가의 골목길.

“여기가 맞을까요?”

“아마도.”

한건우는 혼자 오지 않고, 이비현을 데려왔다.

조승재를 낚을 미끼로 쓰기 위해서였다.

직접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니는 것보다, 이게 제일 빠를 것 같았다.

이비현은 조금 불만스러운 얼굴이었지만, 순순히 수긍했다.

그녀가 항상 깊이 눌러쓰고 다니는 회색 망토를 벗었다.

새하얀 피부 위로 붉은 머리카락이 물결쳤다.

복장도 전투복이 아니었다.

각성자 티가 나지 않는 평범한 티셔츠와 반바지였다.

이렇게 보니 평범한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무도 상상조차 못 하겠군.’

이 여자애가 무시무시한 미등록자 조직의 리더라니.

한건우는 <그림자 맹시>로 몸을 숨기고, 화염의 날개를 폈다.

파아앗!

<그림자 맹시>는 그림자 속에 숨는 특성이라 낮에는 공간의 제약을 받았다.

대신 완전히 어두운 밤에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한건우는 밤하늘의 어둠에 몸을 숨기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한적한 주택가가 한 눈에 들어왔다.

<화식조의 눈>으로 보니, 미세한 움직임도 보였다.

쓰레기 봉지를 뜯는 길고양이와 쥐.

주택 옥상에서 붉게 빛나는 담뱃불.

빌라 창문을 닫는 손···.

그리고 혼자서 걷고 있는 이비현이 조그맣게 보였다.

조승재를 낚으려고, 일부러 느릿느릿 걷는 그녀였다.

가냘프고 위태롭게 보이기도 했다.

‘조승재도 깜빡 속겠군.’

며칠 밤은 기다릴 각오를 했다.

그러나 이게 웬걸.

이비현의 뒤로 다가가는 한 남자가 있었다.

“···!”

벌써 입질이 오다니.

한건우는 좀 더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어쩌면 조승재가 아니라 그냥 괴한일지도.’

그러나 그 생각은 곧 깨졌다.

가까이 다가가자 각성자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건우의 예민한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조승재의 차림새는 엉망이었다.

거적때기 같은 옷을 걸치고, 깎지 않은 수염이 무성했다.

눈은 반쯤 돌아가 있었다.

조승재는 눈앞에 보이는 이비현의 뒷모습을 보았다.

찰랑이는 긴 머리를 높게 묶어서 희고 가느다란 목선이 드러났다.

‘저 여자도 흡수하고 싶어···.’

발소리를 죽이며, 조승재가 입맛을 다셨다.

좁은 뒷골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생기를 다 빨아먹을 작정이었다.

‘고양이나 개 따위로는 만족이 안 돼.’

사람 대신 동물로 바꿔보려고, 나름대로 노력도 해봤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동물의 기운을 흡수하면 영 찌뿌드드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오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조승재는 또다시 스스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다.

항상 마지막이라고 되뇌이면서, 사람을 죽이고 또 죽였다.

그것도 저항 못하는 민간인을.

이비현이 비좁은 뒷골목으로 연결되는 길을 지날 때였다.

파박-

조승재가 이비현에게 달려들었다.

쉬익!

이비현이 맹독 시미터를 뽑으며 돌아섰다.

조승재가 당황했다.

그 순간.

퍼어억! 쿠웅-

“크억!”

공중에서 대각선으로 내리꽂힌 한건우의 발차기가 조승재의 등을 걷어찼다.

예상치 못한 일격이었다.

조승재는 볼썽사납게 머리를 박고 바닥을 굴렀다.

[특성 발동 : 공간 왜곡]

한건우는 <공간 왜곡> 특성으로 주변 공간을 진공 벽으로 둘러쳤다.

비명 소리가 바깥에 들리는 걸 차단하는 용도였다.

일종의 소리 감옥이었다.

“크, 흐윽···.”

조승재는 아직도 일어나지 못했다.

고통에 차서 바닥을 짚은 채 쿨럭거렸다.

한건우에게 걷어차일 때 혀를 씹고 있었는지, 입에서 선혈이 주르륵 흘렀다.

“일단 좀 맞자.”

한건우는 쓰러진 조승재에게 성큼성큼 다가와서, 다시 한 번 워커발로 그의 상체를 걷어찼다.

퍼억!

“흐억.”

한건우는 그의 멱살을 잡고 일으켰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턱에 주먹을 먹였다.

퍼억! 퍽! 퍽!

딱 기절하기 직전까지만 조절해서 팼다.

증폭 시술이고 뭐고, 한건우 앞에서는 일반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이었다면 단 한 대만 맞아도 죽었을 것이다.

쿨럭.

조승재가 체념한 얼굴로 힘없이 기침했다.

피 섞인 앞니가 하나 뽑혀 나왔다.

막대한 힘의 차이를 느꼈다.

반격할 생각은 없었다.

때릴 것 다 때리고 가 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한건우는 그의 목에서 ‘이빨 자국’을 확인했다.

‘시술을 받은 게 확실하군.’

조승재는 한건우가 자신의 목 부분을 본다는 걸 눈치챘다.

“허윽···.”

조승재가 갑자기 온몸을 덜덜 떨었다.

완전히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차, 차라리 날 죽여라.”

“?”

“다신 그 지옥으로 안 돌아가. 빨리 죽여!”

‘이게 무슨 소리지?’

한건우는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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