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힐러가 꿀을 빤다
마창 게이볼그.
천명환이 18세에 각성한 이후 7년 동안 찾아 헤매고 있는 신화급 무구 아이템이었다.
‘그 창만 찾으면, 나는 훨씬 더 강해진다···.’
천명환은 처음부터 A급 판정을 받았다.
본래 지능도 높은 편이고, 잠재특성이 두 가지나 되었다.
18세의 그는 각성자 사관학교 시험을 봤다.
일말의 고민도 없었다.
‘이곳은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각성자를 양성하는 곳이니까.’
각성자 사관학교는 다른 걸로도 유명했다.
이곳을 거친 생도들은 ‘각성 후 각성’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천명환도 당연히 희망을 가졌다.
‘반드시 S급으로 2차 각성하고 말겠어.’
그것이 천명환이 바라마지 않는 꿈이었다.
아주 불가능해 보이지도 않았다.
천명환의 잠재특성은 두가지. <마창 게이볼그의 주인>과 <염동력>이었다.
각성자 사관학교의 교수들이 돌아가며 한 마디씩 했다.
‘잠재특성이 2개나 있는데다, 연계성까지 좋군. 자넨 행운아야.’
‘천명환 군은 최강의 창술사가 될 자질이 있네.’
최강의 창술사라니!
천명환의 가슴이 설렜다.
창술사는 물리적 공격을 하는 딜러다.
검사와 달리, 투창이 된다면 원거리 딜까지 가능했다.
천명환이 가진 <염동력> 특성을 강화하면, 투창을 회수하는 것까지 가능하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마창 게이볼그의 주인> 특성은··· 도대체 왜 개화를 안 하는 거야?’
창술과 관련이 있는 특성이니, 창술을 열심히 연마하면 개화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창술이 나름대로 경지에 올랐는데도, 특성창은 잠잠했다.
천명환은 불안해졌다.
자신은 제자리걸음인데, 동기들은 점점 발전하는 것 같았다.
A급이던 후배 차은비가 재각성으로 S급이 되었던 날.
그는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졸업하고 나서, 나만 랭커가 되지 못하면 어쩌지?’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플레이어 중 강한 순서대로 1위부터 100위까지의 각성자를 말하는 ‘랭커’.
매년 말에 발표되고, 실시간 순위는 공개하지 않는다.
A급 하위권은 랭커에 들어가지 못했다.
천명환은 그게 죽도록 두려웠다.
‘교수님, 이 특성은 왜 개화하지 않는 겁니까?’
졸업을 앞두고, 다급해진 천명환이 물었다.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각성자 사관학교의 교수들도 다 모르겠다고만 했으니까.
그저 속이 답답했다.
스탯이 모자란 것도, 훈련을 덜 한 것도 아니었다.
A급이면 각성하자마자 특성을 개화하기도 했다.
새로 온 교수가 말했다.
‘자네의 특성은 특정한 아이템이 있어야만 개화될 거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최근 외국에서 보고된 케이스인데···.’
교수가 몇 가지 사례를 설명했다.
천명환과 흡사한 경우였다.
‘그러니 자네도 <마창 게이볼그>를 가지면 특성이 개화될 가능성이 높지.’
천명환은 기뻤다.
더이상 막연하게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그 아이템만 찾으면 된다.
졸업하고 특수안보부에 들어온 후, 천명환은 온갖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마창 게이볼그를 추적했다.
그건 장인이 만들거나 기술자들이 양산한 아이템이 아니었다.
이계에서 온 신화급 아이템이었다.
‘분명히 우리나라에 있어.’
마창 게이볼그는 몇 년 전에 발견되었다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대체 누가 가지고 있을까.
미친 사람처럼 찾아헤맸다.
‘설마 그 창, 한건우가 얻은 건가···.’
천명환이 빠드득 이를 갈았다.
그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한건우의 창을 직접 봐야겠어!’
이럴 줄 알았으면, 심사장 안에서 영상으로 볼 게 아니었다.
가까이서 맨눈으로 직관을 했어야 했다.
'아니, 그래도 어려우려나....'
아이템 창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무기에 접촉해야 한다.
남의 손에 자기 무기를 순순히 내주는 플레이어는 흔치 않았다.
‘어떻게 한다?’
무기를 한번 확인해보자고 강요할 수도 없었다.
자신보다 약하거나 사관학교 후배라면 모를까.
한건우는 이제 위험한 거물이 되어가고 있었으니까.
일단 마창 게이볼그가 맞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다.
만약 맞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창은 내가 가져야 해.'
천명환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
길드 회의실.
금해준이 보고를 한다고 서 있었다.
“길드 마스터께 첫 보고 드립니다. 드디어 저희 길드가 정식 허가를 얻어 발족을 하게 됐습니다. 이건 발족식 계획이구요.”
회의실이 지나치게 넓어서 목소리가 왕왕 울렸다.
“발족식? 6명이서 무슨···.”
“규모가 작아도 형식을 갖추고 싶은, 제 작은 마음입니다.”
계획서는 언뜻 봐도 요란했다.
“···좀 이따 볼게. 그건 뭐야?”
“우리 길드의 가장 중요한 자산, 드래곤의 사체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계획입니다.”
한건우는 보고서를 받아들고 유심히 보았다.
요약하면, LK그룹의 기술팀 중 믿을 만하고 실력 좋은 인력을 잠시 데려오겠다는 것이었다.
드래곤의 사체를 해체하고, 일부는 마켓에 팔고, 일부는 직접 재가공해서 아이템을 만들겠다고.
“좋다. 그런데 재가공은 하지 말고, 해체와 판매까지만 하자.”
“앗, 하지만 수익을 극대화하고, 길드원들 아이템을 자급자족하려면···.”
금해준이 허둥지둥했다.
“재가공을 하지 말자는 건 아냐. 더 잘할 만한 사람이 있어서.”
“아··· 네, 알겠습니다.”
금해준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라 있었다.
균열 아이템 관련해서는 LK그룹 기술팀만한 데가 없었다.
‘어디 인맥이 있으신가 보다.’
한건우가 말한 데로 해서 틀린 적이 없으니, 금해준은 금방 납득했다.
몇 가지 자잘한 보고를 마치고, 금해준은 부담스럽게 목소리를 깔았다.
“형님, 저 굉장히 감동했습니다.”
“음?”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러는지.
“저는 형님이 왜 그렇게까지 하셨는지 몰랐거든요.”
“뭐, 기자 부른 거?”
“네. 저는 단순히 언론홍보 효과를 노리신 줄만 알았습니다.”
“....”
“그런데 심사위원회 분위기를 들어보니, 그 타이밍에 속보를 깔지 않았다면 허가가 어려울 뻔했더군요.”
역시 LK그룹의 정보력은 달랐다.
길드 허가 심사위원까지 찾아내서 선이 닿은 모양이었다.
“너, 설마 위원들한테 뇌물도 먹였어?”
“아니오! 그럴 리가요. 우리 길드의 시작을 그런 떳떳하지 못한 일로 더럽힐 수는 없고···.”
이제껏 지켜본 결과 그가 한건우에게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횡설수설하는 게 영 수상했다.
‘이 녀석, 심사위원들에게 뇌물을 줄지 말지 고민했나 보군.’
한건우는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앞으로도 그런 건 하지 마. 괜히 정부에 발목 잡히니까.”
“예, 명심하겠습니다.”
부정한 행위를 했다가는 약점을 잡히기 십상이었다.
조금 품이 들더라도, 다른 방법을 이용하는 게 나았다.
“난 인공 균열에 갔다올게.”
“같이 가시죠! 길드원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한건우와 금해준은 빌딩 맨 위층으로 갔다.
인공 균열이 설치된 곳이었다.
스스슥-.
고원 형태의 인공 균열.
작은 인공 태양과 구름까지 있어서 풍경이 그럴싸했다.
은설아가 흰 그리핀을 타고 가볍게 날고 있었다.
“훈련하고 있으랬더니.”
“지금 하고 있었어요!”
은설아를 태운 그리핀이 바닥으로 활강했다.
제법 빠른 속도였다.
슈우우우-!
콰아- 퍼버벅!
단단한 더미가 산산조각났다.
그리핀의 강철 같은 발톱이 더미를 쪼갠 것이다.
“잘 했어, 흰둥아!”
은설아는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하얀 그리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키에엑!
하얀 그리핀이 만족스러운 듯이 부리를 열고 울었다.
병약했던 흰 그리핀은 부쩍 튼튼해졌다.
다른 동족보다 더 크고 강해보였다.
‘테이밍 계열 특성에는 육성 효과도 있으니.’
한건우는 이번엔 은설아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은설아가 그리핀을 탄 자세가 상당히 좋아졌다.
그전처럼 어설프게 엎드린 것이 아니었다.
슈우우-
퍼덕!
은설아는 두 다리로 몸을 단단히 고정하고, 능숙하게 중심을 잡고 있었다.
이제까지 얻은 경험치로 스탯을 올린 덕분이었다.
그래도 몇 가지 교정할 부분이 있었다.
“설아야, 하강할 때 손목을 꺾어서 잡지 마.”
“네?”
“손목을 꺾으면 미세 조정이 어려워.”
“아···.”
은설아는 그게 무슨 말인지 고민했다.
‘목깃을 잡는 손목을 펴라는 건가?’
손목을 펴자, 저절로 팔꿈치를 붙이게 되었다.
훨씬 안정적으로 변한 걸, 그녀 스스로도 느꼈다.
은설아는 활강 공격을 계속 연습했다.
다양한 각도와 높이로, 집요하게 반복했다.
한건우가 만족스러워할 정도였다.
퍼억! 퍽! 콰직!
연습용 더미가 처참하게 깨져나갔다.
싸구려 더미가 아니었다.
간단한 AI로 움직이는 기능이 들어간 값비싼 더미였다.
“크윽···.”
옆에서 금해준이 작게 신음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금해준이 소심한 성격은 아니었다.
길드에 꼭 필요한 투자라면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부모님 돈을 펑펑 쓰는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한건우가 엄청난 돈을 끌어오긴 했지만, 최근 길드에 막대한 지출이 생겼다.
‘길드 운영에서 제일 무섭다는, 인건비···.’
금해준은 자기도 모르게 차은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무그늘에 앉아 팔짱을 끼고 있었다.
차은비는 대단한 인재였지만, 그만큼 비쌌다.
그녀가 일성 길드에서 받던 수십억의 연봉을 맞춰 줘야 했으니까.
“?”
차은비는 자기를 쳐다보던 금해준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새침하게 고개를 홱 돌렸다.
차은비는 속으로 자존심이 상한 상태였다.
‘여기서 내 역할은··· 뭐지?’
그녀가 그런 근본적인 의문을 품은 건 처음이었다.
일성 길드에서 차은비는 항상 귀한 대접을 받았다.
월급이나 복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위험한 균열에 들어갈 때, 그녀가 오면 다들 환호했다.
웬만한 딜러보다 차은비의 활약이 훨씬 컸다.
‘귀찮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병풍이 되어보니 이게 더 힘드네.’
한건우의 길드가 신기록을 세우고 나서도, 이런 소문이 돌았다.
-차은비 힐러의 역할이 컸을걸?
-차은비가 없었다면 어려웠을지도···.
그러나 진실은 달랐다.
차은비가 민망할 정도였다.
‘이 사람들, 내가 없었어도 테스트를 쉽게 깼을 거야.’
테스트가 아니고 균열에서의 실제 전투였다면 어땠을까.
힐러가 갖은 욕을 다 먹었을 것이다.
-힐러가 꿀을 빤다!
-힐러가 버스를 타더라!
차은비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상상만 해도 자존감이 떨어졌다.
물론 그녀는 단순히 비즈니스로 파견된 게 아니었다.
차은비도 눈치채고 있었다.
중요한 순간에 그녀는 한건우를 배신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도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능구렁이 같은 태일제 영감이랑, 특수안보부 때문에···.’
여러모로 기분이 착잡했다.
차은비가 표정을 구기고 있는데, 한건우가 그녀를 불렀다.
“차은비 플레이어, 설아랑 같은 편을 해주시죠.”
“···네?”
딴 생각을 하고 있던 그녀가 화들짝 놀랐다.
“직접 대련하는 게 더 빨리 느니까요.”
한건우는 은설아와 직접 대련하면서 훈련을 시켜줄 생각이었다.
화아아악-!
한건우의 등에서 화염의 날개가 뻗어나갔다.
차은비의 입술이 벌어졌다.
“아···.”
슈우우
한건우가 한순간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마치 중력이 없는 것 같았다.
차은비는 믿어지지 않는 얼굴로 한건우를 올려다보았다.
“대체 무슨···?”
비행 능력을 가진 각성자는 드물었다.
<경공> 같은 스킬 주문서를 사면 몸을 공중에 띄울 수 있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지속 시간도 짧고,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한건우의 움직임은 새처럼 자유로워 보였다.
차은비는 놀라운 사실을 또 발견했다.
‘이 팀에는 공중전이 가능한 사람이 둘이나 있어.’
한건우, 그리고 은설아.
“시작하는 거죠?”
은설아가 그리핀의 옆구리에 박차를 가했다.
슈우-!
한건우에게 정면으로 달려들지는 않았다.
훨씬 위쪽으로 올라갔다가, 한건우의 뒷편으로 돌면서 습격하려 했다.
‘이제 제법 머리를 쓰네.’
한건우가 피식 웃었다.
피유우-!
피유우웅-!
그의 손끝에서 수십 발의 불덩이가 쏘아졌다.
불덩이는 총알처럼 단단히 뭉쳐 있지만, 조금 느렸다.
“앗.”
차은비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은설아를 지원했다.
[특성 발동(희귀) : 신의 가호]
차은비는 금세 집중했다.
테이밍 특성은 더 강화할 필요가 없어보였다.
그 대신, 은설아의 신체에 이속 버프를 주었다.
민첩 스탯이 올라간 듯한 효과였다.
스으으-!
차은비의 손에서 흰 빛이 뻗어나갔다.
은설아, 그리고 은설아와 연결된 흰 그리핀까지 반응했다.
쿠에에!
그리핀은 활력이 솟아나서 공중에서 힘차게 펄떡였다.
그리핀의 움직임이 날쌔고 민첩해진 게 보였다.
한건우의 손끝에서 쏘아진 화염의 탄환을, 그리핀은 속속 피했다.
“내 몸을 한 번이라도 건드리면, 너희 편이 이긴 거야.”
한건우가 도발을 하자, 은설아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그리핀도 덩달아 심각하게 부리를 다물었다.
슈우-!
그리핀이 날개를 접고 빠르게 돌진해왔다.
그러나 한건우의 털끝 하나 닿지 못했다.
차은비도 어쩐지 오기가 났다.
은설아와 그리핀에게 한껏 버프를 넣어주었지만, 결과는 같았다.
“한건우 씨, 애랑 놀아주는 거예요?”
갑자기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차은비는 섬칫 놀랐다.
‘아무런 기척도 못 느꼈는데?’
그 여자는 허름하고 칙칙한 진회색 망토를 온몸에 덮어쓰고 있었다.
후드를 깊이 눌러써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내 감각을 속이고 들어왔지?’
아무리 특성 발동에 집중하고 있었다지만, 납득이 안 되었다.
S급 각성자의 감각을 속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차은비는 새로 나타난 낯선 여자를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