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전투력 측정 (3) - 최고치 갱신
길드 허가를 위한 전투력 테스트에서, 한건우의 목표는 뚜렷했다.
‘무조건 일성 길드를 제치고 역대 1위를 한다.’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임진호가 시간을 끈다면 곧바로 개입하려 했다.
임진호가 잡은 바위 골렘은, 물리적 방어와 공격력을 보는 테스트였다.
‘방어력에 공격 센스까지.’
임진호는 모두의 앞에서 기대 이상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차은비도 속으로 놀랐다.
일성 길드의 최정예 팀만 보아서 눈이 높은 그녀였다.
‘임진호 플레이어, C급이라고 들었는데?’
임진호와 임수호 형제 둘 다, C급 각성자라고 했다.
C급이면 일성 길드에서는 명함도 못 내미는 수준이다.
그전에 본 임진호의 첫인상은 충격이었다.
지저분하고 허름한 옷차림에, 외팔이기까지···.
‘게다가 그전에 길드에 들어간 적도 없다면서? 나이도 어리고. 전투 경험이 많이 없을 텐데?’
차은비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쪽으로.”
한건우가 앞장서서 손짓했다.
그들은 바위 골렘이 넘어왔던 장애물을 타고 넘어갔다.
시험장의 화살표를 따라가다가, 한건우가 손을 올렸다.
“정지.”
모두 자리에서 멈추고 전투태세를 취했다.
샤벨 타이거의 등에 올라탄 은설아도 마찬가지였다.
한건우가 바닥을 보면서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특성 발동 : 쇼크웨이브]
-마력 파동으로 충격파를 만든다.
타아앗-!
스스스스···.
평범한 모랫바닥처럼 보이던 게 한순간에 사라졌다.
환영 마법으로 이뤄진 함정이었다.
감각이 둔한 자라면 눈치채지 못하고 빠졌을 것이다.
그 안에는 슬라임 형태의 물 골렘이 고여 있었다.
스르르-
물 골렘이 함정에서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였다.
전투를 예상하고, 차은비가 광역 버프를 준비했다.
[특성 발동(희귀) : 신의 가호]
‘가호’ 계열 특성의 최고봉인 ‘신의 가호’ 특성이었다.
병이나 상처를 치료할 수도 있는 건 물론.
각성자의 HP나 MP를 회복해줄 수 있었다.
다른 각성자의 특성을 강화하는 버프를 넣어줄 수도 있었다.
대상자는 한 명이 아니라, 광역으로도 가능했다.
물 골렘을 향해서, 임수호가 특성을 썼다.
[특성 발동 : 빙정난류]
타다다다닥···.
물 골렘들은 모양 그대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
물 골렘은 고통스러운 듯 몸을 뒤틀며 일행을 공격하려 했다.
쩌저저저···.
버프까지 받은 얼음 특성은 강력했다.
승자는 임수호였다.
물 골렘들은 뒤틀리는 모양 그대로 얼어붙었다.
임수호가 얼려놓은 물 골렘들에게 임진호가 다가갔다.
콱!
쩌엉-!
임진호는 메이스를 휘둘러 물 골렘을 산산조각냈다.
그때 한건우가 경고했다.
“아래쪽을 조심해.”
“앗!”
쉬이익!
경고하자마자, 굵고 탄력적인 나무줄기가 휘어져 날아왔다.
나무줄기는 먼저 은설아를 노렸다.
휘리릭!
굵은 나무줄기가 은설아의 발목을 채찍처럼 휘감았다.
“어···!”
은설아가 중심을 잃고 휘청일 때였다.
크와아아!
“헉!”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시커먼 마수가 튀어나왔다.
샤벨 타이거였다.
크르르··· 캬악!
나무 골렘의 덩굴줄기가 스르르 풀렸다.
샤벨 타이거는 나무 골렘과 엉키면서 데굴데굴 굴렀다.
샤벨 타이거는 호랑이보다 몇 배는 컸다.
윤기나는 새카만 털로 덮인 온몸은 두툼한 근육질이었다.
촤아악!
거대한 송곳니와 앞발이 나무 골렘을 순식간에 찢어발겼다.
“!”
임진호는 난데없이 나타난 마수에 바짝 긴장했다.
‘테스트의 일부인가?’
임진호가 방패와 메이스를 치켜들었다.
“형, 저건 설아가 데리고 있는 마수야.”
동생이 귀띔을 했지만, 임진호는 인상을 풀지 않았다.
“···저게 대체 어디서 나왔지?”
“그건-.”
각성자들이 아공간 무기집을 가지고 다니는 것처럼, 은설아는 아공간에 마수들을 데리고 다녔다.
샤벨 타이거가 나무 골렘들을 찢고 부수는 그때.
반대쪽에서 뜨거운 열기가 훅 끼쳐왔다.
“불 골렘···!”
골렘들의 공격은 점점 정신없이 몰아쳤다.
물론 테스트가 아니라면 훨씬 간단하게 깰 수 있었다.
소환사들이 있는 곳을 찾아내서 죽여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정부에서 만든 테스트이니, 장단을 맞춰줘야겠지.
한건우는 불 골렘들 앞에 섰다.
시뻘겋게 달궈진 불 골렘의 숨에서 불씨가 튀었다.
그어어어···.
불 골렘이 입을 벌려 마그마를 뿜으려는데, 한건우가 손바닥을 들었다.
[특성 발동(전설급) : 아그니의 화염]
콰아아아-!
한건우의 손에서 가공할 만한 화염이 쏟아졌다.
불 골렘은 처음에는 달궈지면서 에너지를 얻는 듯했다.
그러나 오래 가지 못했다.
파시시식···..
‘작은 불은 더 큰 불로 잡을 수 있지.’
엄청난 고온의 화염에, 불 골렘들은 한순간에 타버리면서 힘을 잃었다.
버프가 들어온 걸 감안해서 수위를 조절한 게 이 정도였다.
한건우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무 골렘과 물 골렘, 불 골렘이 처참하게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처음에 그들을 맞이한 바위 골렘은 돌무덤이 된 지 오래였다.
스르르릉-.
한건우는 그제야 자신의 창을 뽑았다.
신화급 아이템, 마창 게이볼그.
투창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명중하는 창.
한건우는 자신의 창에 <인드라의 뇌전>을 입혔다.
그가 투창 자세를 잡고 하늘로 던졌다.
피유우우-!
“어?”
한건우가 갑자기 허공으로 창을 던지자, 임수호 형제는 당황했다.
콰악!
치지지지지···.
허공의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마창 게이볼그가 명중했다.
마력의 전류가 흐르고, 그것이 스르르 와해되었다.
한건우는 <염동력> 특성으로 창을 회수했다.
“바람 골렘이었어.”
“그런 게···.”
테스트의 마지막 함정.
모든 종류의 골렘을 해치웠다고 안심하고 있으면, 보이지 않는 골렘에게 습격을 받게 되어있었다.
삐이-!
[길드 전투력 측정이 종료되었습니다.]
끝을 알리는 신호음와 함께, 스피커로 안내 멘트가 나왔다.
“엇··· 벌써?”
임수호가 놀랐다.
다들 비슷한 반응이었다.
‘특수부대 훈련은 이 정도로 끝나지 않는데.’
정신적, 심리적 충격을 가하는 테스트도 있었다.
이런 테스트에는 넣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차피 그런 마수가 나오는 균열은 흔치 않으니까.
“와, 저희 통과한 거예요?”
은설아는 샤벨 타이거에서 내려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에 손이 닿지 않아서 깨금발을 딛었다.
샤벨 타이거는 은설아의 손에 제 머리를 슥슥 갖다대며 문질렀다.
은설아가 꺄르륵 웃었다.
“까망이, 고마워.”
“....”
충격적인 이름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한건우는 시계를 보았다.
‘당연한 일이지.’
8분 20초.
역대 최고의 신기록이었다.
**
띵동-.
[LAP TIME - 08:20(NONAME)]
10년 동안 미동도 없던 1위 기록이 갈아치워졌다.
아직 이름조차 없는 한건우의 길드가 1등을 찍은 것이다.
일성 길드부터 모든 길드의 기록들이 줄줄이 한 등씩 아래로 떨어졌다.
“우와아!”
“허억!”
대기실이 들썩였다.
어차피 한건우나 일성이나, 그들의 경쟁상대는 아니었다.
스포츠를 보는 것처럼 순수한 흥분의 도가니였다.
한쪽 구석에 있는 길드들만 사색이 되었다.
아까 시비를 걸었던 덩치 큰 남자가 이끄는 길드였다.
“망했다···.”
“형님, 좀이따 다같이 머리 박을까요?”
“하··· 아무리 그래도 기자도 있는데···.”
옆에서 듣던 다른 길드장이 키득거리면서 말했다.
“어이, 형씨들. 괜히 기억에 남을 짓 하지 말고, 조용히 쭈그러지는 게 나을걸?”
덩치 큰 남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죽상이 되었다.
*
반면, 건물 안에 있는 본심사장은 조용했다.
“음··· 이번에 허가 심사할 길드는···.”
정부에서 초빙한 심사위원들이 앉아있었다.
그 중에는 각성관리청에서 보낸 걸로 위장한 천명환도 있었다.
길드 허가심사에 막대한 뇌물이 오가는 건 기본이었다.
심사위원으로 누가 올지 알아내서 미리 돈을 먹이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번 한건우 길드의 심사는 뇌물이 끼지 않았다.
대신, 상부의 경고가 있었다.
위원장과 몇몇 위원들은, 어제 현금과 함께 경고 메시지를 받았다.
경고의 내용은 단순했다.
-각성관리청에서 보낸 위원의 의견을 따라라.
그 경고가 정부의 한참 위 어디선가 내려왔다는 걸, 그들은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각성관리청에서 왔다는 위원, 즉 천명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심사위원회에는 기묘한 침묵이 흘렀다.
“분명히 기록이 뛰어난 건 사실입니다만.”
위원장이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맨 끝에 앉은 젊은 위원이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네? 이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차원의 기록입니까? 이건 따로 심사할 이유도 없습니다. 저는 무조건 통과라고 봅니다.”
그 위원은 따로 현금도, 경고도 받은 게 없었다.
“음, 진정하시고···. 물론 역대 1위인 건 사실이지요.”
위원장이 떨떠름하게 수긍했다.
그동안 일성 길드의 초기 기록을 뛰어넘어 보겠다고 호언장담한 길드는 많았다.
일성이 11분대이니, 심리적 한계선도 10분이나 11분이었다.
한건우의 길드는 사람들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8분 20초라니.
상식적으로 믿기지 않는 기록이었다.
탁, 탁.
천명환이 불만스럽다는 듯이 펜을 탁자에 두드렸다.
그러자 위원장이 입을 다물었다.
위원장과 몇몇 위원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경고를 받은 게 자기만이 아니란 걸 확인한 것이다.
“흠···.”
천명환이 헛기침을 하자, 그에게 시선이 모였다.
“한 가지 의문점이 있습니다. 중간에 나온 그 마수는 뭡니까?”
천명환이 날카롭게 물었다.
‘길드 허가를 반대해야 하는구나!’
약삭빠른 위원장은 얼른 분위기를 파악했다.
“허, 그러고 보니···. 은설아 플레이어가 테이머 계열이라고는 하지만, 마수 사육은 우리나라에서 아직 합법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문제가 해결이 안 됐죠.”
“맞습니다.”
젊은 위원은 납득이 안 되었다.
“그게 길드 허가랑 무슨 관련입니까? 은설아 플레이어는 이미 테이밍 능력을 이용해서 많은 국민들을 구한 걸로 압니다. 법적인 미비점이 있다면 따로 보완을 하면 되는 거고요. ”
젊은 위원은 열변을 토했지만, 반응은 미미했다.
“일리가 있습니다만···. 오늘 바로 허가하는 것보다, 보류는 어떻습니까?”
“법적 문제가 보완될 때까지 보류가 좋을 듯 합니다.”
허가하기도 어려웠고, 그렇다고 불허하기도 마음이 걸렸다.
심리적으로 가장 편안한 방법은 ‘보류’였다.
젊은 위원이 끝까지 반대했지만, 그쪽으로 가닥이 지어지고 있었다.
그때 심사장 밖에 서 있던 직원이 쭈뼛거리며 들어왔다.
위원장이 인상을 썼다.
“뭐야? 심사 중인데.”
“저, 위원장님. 심사하시는데 이건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직원이 들고 있던 휴대폰을 위원장에게 보여주었다.
“···갑자기 이건 왜···.”
위원장이 말을 흐렸다.
사이트의 첫 화면에는, 이미 특보로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나 있었다.
‘그래, 여기까진 예상했지···.’
역대 1위 기록을 갈아치웠으니, 언론의 주목을 받는 건 당연했다.
생각보다 조금 빠를 뿐, 언젠가 일어날 일이었다.
그런데 그 방향과 강도가 예상 밖이었다.
[(특보) 한건우(S급), 길드의 시작··· “새로운 길 지켜봐달라”]
[(속보) S급 한건우 길드, 8분 20초··· 최단 신기록 깨져]
[한건우, 모의전투 결과 최고치 갱신과 함께 길드 ‘순항’]
[(30초 영상) 홍대 대형참사 막은 은설아 테이머··· 한건우 길드 ‘1호’ 멤버]
엄청나게 앞서나가 있었던 것이다.
“아니, 이게 다··· 언제?”
위원장의 표정을 보고, 위원들도 각자 휴대폰으로 뉴스를 확인했다.
이번에는 PBS뉴스 단독이 아니었다.
문철민 기자는 모든 언론사에 소스를 뿌렸다.
그 결과, 동시다발적으로 다채로운 기사가 쏟아졌다.
국민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원래 각성자 세계는 빈익빈 부익부.
대형 길드가 다 해먹는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 와중에, 어린 S급 플레이어가 신선한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대형 길드의 고연봉 제의도 마다하고, 큰 재앙이 될뻔한 사건에 맨몸으로 뛰어들었다.
자연스럽게 한건우를 지지하는 분위기가 대세가 되었다.
“···.”
천명환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국민 여론이 이 정도면··· 주관적인 심사로 길드 허가를 막는 건 부담이 있어···.’
천명환은 바로 태세를 전환했다.
“저기 끝에 앉으신 위원님 말씀이 맞다고 봅니다. 테이머에 대한 법률 개정은 다른 문제죠.”
“!”
“한건우 플레이어의 길드는 허가를 내기에 모자람이 없다고 봅니다.”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이건 어쩔 수 없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천명환은 계속해서 한 영상을 돌려보고 있었다.
한건우의 모의전투 영상이었다.
‘뭔가 거슬리는데.’
천명환은 한건우가 던진 창에 눈길이 갔다.
투창을 할 수 있는 형태였고, 창날의 색깔은 먹처럼 검었다.
대충 봐도 보통 수준의 무구는 아니었다.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마창 게이볼그?’
천명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