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53화 (53/238)

#53전투력 측정 (2) - 바위 골렘

“으하핫!”

덩치 큰 남자의 뒤에 있던 길드원들이 크게 따라웃었다.

그 말은 한건우의 길드 전체를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기실 사람들의 시선이 한 군데 모였다.

“···방금은 좀 선을 넘은 거 아냐?”

“이래서 각성자들끼리 좁은 공간에 몰아놓으면 안 돼···.”

“테스트도 하기 전에 여기서 싸움 나겠어.”

대기실에 있는 다른 길드 사람들이 속삭였다.

제일 재미있는 게 싸움 구경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니었다.

길드 허가를 받으려면 비싼 등록비를 내야 한다.

오늘 전투력 테스트를 못 통과하면, 말짱 꽝이다.

안에는 까다로운 정부 요원들이 있었다.

대기실에서 길드끼리 싸움이 붙은 게 알려지면, 오늘 일정에 지장이 생길지도 모른다.

“어···?”

은설아는 눈만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나이가 한참 많은 어른이 자기에게 대놓고 시비를 거는 게 낯설었다.

어른에게 혼나는 것과는 느낌이 확 달랐다.

각성자끼리의 원초적인 기 싸움.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애기는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오고.”

그 모습을 보고, 덩치 큰 남자는 코웃음을 쳤다.

은설아가 겁먹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뭐···?”

“이 자식이.”

임진호와 임수호의 얼굴이 굳었다.

형제는 자존심이 강한 편이었다.

은설아를 안 지는 얼마 안되었지만, 어쨌든 동료였다.

자기 편에 대한 모욕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때 차은비는 한건우 쪽을 흘긋 보았다.

그녀는 한건우의 길드에 소속감이 없었다.

그래서 한건우의 길드가 모욕을 받아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저 딱 한 가지가 궁금했다.

‘한건우 플레이어는 이럴 때 어떻게 나오려나?’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무시할까?

아니면 벌레처럼 짓밟아버릴까?

한건우의 반응을 미처 보기도 전이었다.

대기실 문이 벌컥 열렸다.

“자, 대기실에서는 정숙해주시구요.”

모의전투장의 직원이 들어온 것이다.

직원이 서류판을 보면서 말했다.

“A-7번 팀, 테스트 들어오세요.”

“네, 저흽니다.”

금해준이 번호가 적힌 대기표를 번쩍 들었다.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이봐요, 직원 양반!”

“선착순 아니었어? 아침부터 와서 기다렸는데!”

먼저 와서 기다리던 다른 길드원들이 불만스럽게 소리쳤다.

“이딴 식으로 할 거면, 대기표는 왜 나눠줘? 엉?”

덩치 큰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기세등등하게 삿대질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저는 지시 받고 하는 겁니다. 따질 거면 위에 가서 따지시구요.”

직원은 사무적으로 대꾸했다.

사나운 각성자들 앞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조폭보다 더 거친 각성자들을 매일 상대하는 직원이었다.

보통 멘탈로는 일을 못 할 것이다.

“참 나···. 저게 어디서!”

“형님, 참으십쇼.”

“저 길드가 먼저 들어간들, 금방 도망쳐 나올 텐데요.”

“맞습니다. 길드 허가가 장난도 아니고··· 저희도 겪어 봐서 알잖습니까.”

덩치 큰 남자가 이끄는 길드 무리는 말이 많고 시끄러웠다.

한건우는 스르륵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덩치 큰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건우의 얼굴 아랫부분은 두건으로 가려져 있었다.

시선이 마주쳤다.

‘어?’

덩치 큰 남자는 순간적으로 몸이 바짝 굳고, 등에 잔털이 솟았다.

위축되는 느낌이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남자는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이 있었다.

‘내가 등급만 C급이지, 실력은 거의 B급에 가까운데···.’

남자 정도면, 웬만한 각성자들 사이에서 꿀리지 않았다.

그래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이 감각은 뭐지?’

정확히 표현하면, 고양이 앞의 생쥐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한건우가 남자를 노려본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분노나 경고를 드러낸 것도 아니었다.

설마 상급 각성자일까?

‘에이, 설마. 상급 각성자라면 대형 길드에서 모셔갔겠지! 저런 초소형 길드를 직접 허가받으러 왔을 리가···.’

애써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꺼림칙했다.

뒤에서 그의 부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형님···. 저 꼬맹이··· 은설아 플레이어 닮지 않았습니까?”

“은설아? 그게 누군데.”

남자는 술과 유흥에 빠져 사느라 바빴다.

요즘 각성자 세계의 소식에는 도통 어두웠다.

“어! 맞다.”

“어디서 본 것 같더라니.”

“그러면 설마···.”

남자의 길드원들이 동요했다.

왜들 난리인지, 덩치 큰 남자는 영문을 몰라 당황했다.

“뭔데. 유명한 애야?”

끼기긱-!

바깥 주차장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낡은 지프차가 멈추었다.

한 남자가 다급하게 내렸다.

어깨에는 언론사 완장을 차고 있었다.

초소를 통과할 때 받은 것이었다.

차 옆좌석에서 큼직한 카메라를 든 카메라맨도 내렸다.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호기심을 드러냈다.

“기자다.”

“응? 기자가 왜 왔어?”

기자가 몰고 온 지프차 문에 언론사 이름이 붙어있었다.

“PBS뉴스래.”

“각성자 뉴스 다루는 데잖아.”

“뭘 찍으러 왔지? 우리?”

PBS의 문철민 기자는 성큼성큼 걸어 대기실 문을 열었다.

그가 대기실 안 사람들을 휘 둘러보았다.

문철민 기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한건우 플레이어! 여기 계셨군요. 제가 조금 일찍 왔습니다.”

“!”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사람들의 귀에, ‘한건우’라는 이름이 쏙 들어왔다.

여기서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덩치 큰 남자는 온몸에 식은땀이 쫙 났다.

머리가 띵하고, 눈앞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괜히 S급 각성자 앞에서 깝쳤구나···.’

몸을 사리고 입을 다물걸.

경솔했던 자신이 그렇게 후회될 수가 없었다.

‘당장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빌까? 하···.’

한건우는 그 남자 나이의 절반도 안 되었다.

그러나 상급 각성자 앞에서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길드원들 앞에서 자존심이 몹시 상하겠지만, S급 각성자에게 찍히는 것보다는 낫지 싶었다.

덩치 큰 남자가 엉거주춤 고개를 숙이려는 무렵.

한건우는 그 남자 앞을 그냥 지나쳤다.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한건우가 문철민 기자에게 말했다.

“금방 나오겠습니다. 아마 꽤 기사 거리가 될 겁니다.”

“예, 조심하시고요!”

한건우와 그 일행은 안내직원을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문철민은 대기실 탁자에 노트북을 세팅했다.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카메라맨도 분주하게 자리를 잡았다.

한건우를 취재하러 온 게 분명했다.

누군가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한건우 플레이어··· 몇 분 몇 초를 찍으려나?”

모두의 시선이 대기실 화면에 모였다.

[LAP TIME - 00:05 ··· ]

이미 한건우 팀의 전투력 테스트가 시작된 모양.

사람들은 떠들던 것도 멈추고, 화면에 뜬 기록시간만 바라보았다.

***

복도를 따라가면서, 금해준이 차은비에게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차은비 씨는 이거 해보셨어요?”

“아뇨. 저희 일성길드가 여길 통과한 건, 제가 입사하기 훨씬 전이에요.”

차은비는 아직 소속이 바뀐 게 익숙하지 않았다.

입버릇처럼 ‘저희 일성길드’라는 말이 나왔다.

“아하, 그렇겠네요.”

금해준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 허가에 처음부터 이런 테스트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10년 전, 정부는 무분별한 길드 설립을 막고 각성자 안전을 보호하겠다며, 모의전투 테스트를 만들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기존에 이미 영업하고 있던 길드도 전부 테스트를 받도록 한 것이다.

대부분의 길드는 정부 정책을 거부하려고 했다.

분위기를 바꾼 건 일성 길드였다.

과거 ‘만년 2위’로 불리던 일성이 나서서 정부 편을 들었다.

일성의 최정예 팀이 모의전투에 응시했고, 깔끔하게 통과했다.

눈치를 보던 대형 길드들도 하나둘 시험장에 왔다.

그후, 모의전투는 당연한 절차가 되었다.

첫 랩타임 기록이 길드의 이름 값으로 통하는 분위기도 생겼다.

[LAP TIME - 11:38 (ILSUNG)]

그리고 10년이 지난 아직까지, 일성길드의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었다.

일성이 자타공인 1위 길드로 인정받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테스트 전에 간단히 안내 드리겠습니다.”

외부로 통하는 출구 앞에서 직원이 돌아섰다.

“먼저, 길드 허가를 위한 모의전투 테스트의 수준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네?"

금해준이 놀란 척 펄쩍 뛰었다.

“여기서 나오는 대상물은 C급에서 E급 균열에 나오는 마수 정도입니다.”

“아하.”

모르는 척 열심히 반응하는 금해준이었다.

“이 모의전투는 그야말로 최소한의 기준입니다. 이걸 못 통과한다면, 길드 활동을 제대로 하기는 어려우실 겁니다.”

“넵.”

한건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다만, 그 설명은 불친절했다.

‘중요한 건 다 빼고 말하는군.’

저 말만 들으면 착각하기 십상이다.

중하급 수준 길드원이라도 많이 모아오면, 테스트는 쉽게 통과할 수 있다고.

등급이 낮으면, 쪽수로 밀어붙이면 된다고 말이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각성자들이 태반이었다.

저 밖에 있는 수염 난 덩치처럼···.

그러나 이 모의전투는 강한 길드를 뽑는 것이 아니었다.

‘구멍이 없는지 보겠다는 거지.’

둘은 비슷한 것 같지만, 분명히 다르다.

합리적인 방식이기도 했다.

균열을 공략하는 데는 강한 각성자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러나 사고 없이 공략하려면, 구멍이 없어야 한다.

한건우는 이 모의전투가 숨 쉬는 것보다 익숙했다.

‘1주일에 한 번씩 하던 건데.’

모의전투는 부대의 훈련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매주 월요일 아침, 부대 내에서 랜덤으로 팀을 구성해 모의전투 훈련을 했다.

그것도 훨씬 강화된 버전으로···.

그리고 매주 결과에 따라 일주일간 뺑뺑이를 돌았다.

“전투원 5명으로 나와있는데, 6명이신가요?”

“아니오, 저 빼고 5명입니다. 저는 매니저 자격으로 여기서 봐도 될까요?”

금해준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러시죠.”

직원이 어깨를 으쓱하며 버튼을 눌렀다.

스으으으···.

바깥으로 통하는 출구가 열렸다.

높은 철조망과 담으로 둘러진 공터가 보였다.

각종 장애물과 시설로 가득했다.

군대의 훈련장처럼 보였다.

“···여긴 뭐지?”

임수호는 긴장했다.

이곳은 어딘가 <투견장>을 생각나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긴장할 것 없어. 내 말대로만 해.”

한건우는 모의전투에 대해서 길드원들에게 미리 알려주지는 않았다.

‘새 길드도 연습이 필요하니까.’

한건우는 이 모의전투를 훈련 개념으로 접근했다.

안내 직원이 문을 닫으며, 벨을 눌렀다.

삐이-!

“시작합니다.”

쿠우우- 쿠쿵-!

쿠워어어-

“앗! 저기!”

은설아가 손가락으로 장애물 너머를 가리켰다.

시작하자마자, 커다란 마수 같은 것이 장애물을 넘어왔다.

온몸이 바위로 만들어진 울퉁불퉁한 거인이었다.

거대한 바위 주먹이 무시무시했다.

“바위 골렘이야.”

차은비가 말했다.

정부 소속 소환사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때 임진호가 나섰다.

“형, 내가 혼자 해봐도 돼?”

“좋아.”

임진호는 새롭게 자라난 왼팔을 쓰고 싶어서 근질근질한 상태였다.

차은비는 길드에 들어오자마자, 임진호의 잘린 팔을 말끔히 회복시켜 주었다.

그녀의 힐링 능력은 경이로웠다.

잘린 팔이 새로 돋았을 때, 임진호는 얼마나 감격했던가.

순간적으로 차은비가 성녀처럼 보였다.

‘오히려 그전보다 더 튼튼하고 강해진 느낌까지 들어.’

임진호는 주먹을 힘차게 쥐었다 폈다.

임진호의 컨디션은 그 어느 때보다 최고였다.

한건우가 직접 골라준 갑주와 방패, 그리고 길다란 메이스.

탱커 역할에 맞추어 장만한 것이었다.

투두두두···.

임진호는 바위 골렘에게 맞서서 달려갔다.

긴 메이스를 어깨에 장창처럼 받쳐 끼운 채였다.

[특성 발동 : 일점돌파]

파바박-!

두려움 없는 돌진이었다.

임진호는 바위 골렘과 정면 충돌했다.

콰앙-!

바위 골렘의 약점인 어깨 관절 부분이 처참하게 부서졌다.

바위 골렘의 오른팔이 떨어져나갔다.

터엉-! 텅!

임진호는 튕겨나오는 바위 조각을 방패로 막았다.

임진호가 몸을 회전하면서 공중에 반쯤 떠올랐다.

그가 왼손에 든 메이스로 바위 골렘의 머리를 후려쳤다.

투콰아아-!

바위 골렘의 머리가 보기 좋게 산산조각났다.

텅 빈 눈구멍에 들어온 빛이 희미해지다가 꺼졌다.

형을 서포트해 주려던 임수호는 깜짝 놀랐다.

‘들어갈 타이밍도 없이 끝났어.’

임진호는 투견장에서 변변한 장비도 없이 외팔로 마수들과 싸워 이겼다.

그건 운이 아니었다.

“잘 했어. 앞쪽으로 가자.”

한건우는 먼저 앞장서면서 손목시계를 보았다.

‘여기까지 2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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