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48화 (48/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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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견장 (5) - 염제 신광우

“···!”

한건우의 방에 침입한 여자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강철보다 단단한 마석 사슬 그물을 맨손으로 찢다니.

각성자라고 해도 놀라운 괴력이었다.

그 사이에 임진호와 임수호도 마석 그물에서 벗어나 전투 태세를 갖췄다.

임진호는 방패를 들고 있었고, 임수호는 그 뒤에서 암살자들의 위치를 살폈다.

“당신··· 정체가 뭐야?”

한건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곧 세상을 떠날 자들과 말을 섞을 필요는 없으니까.

‘죽여 달라고 달려드는 데는 도리가 없지.’

사슬을 떨쳐버리고 일어난 한건우가 손바닥을 뻗었다.

[특성 발동 : 아그니의 화염]

한건우의 손에서 지옥의 겁화가 솟아났다.

파아아악-!

“이, 이건!”

불꽃을 본 여자는 크게 당황했다.

<염제>가 쓰는 특성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불꽃이 뱀처럼 목표물을 노리고 휘어졌다.

공격하던 1선의 암살자들이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한건우의 불꽃은 멀리 2선에 있는 암살자들부터 노렸다.

발코니 쪽에 석궁을 들고 있거나, 문 밖에서 단도를 들고 숨어있는 놈들이었다.

화르르르···.

“크악!”

암살자들이 예상하지 못한 공격패턴이었다.

7룡성의 암살자들은 삽시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그들은 평소에 화기 저항 아이템을 걸치고 있었다.

실수로 염제의 화염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이템만으로 완벽히 막을 수는 없었다.

치이이···.

“아아악!”

후방에 있던 2선 암살자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방 안에 들어와있는 1선의 암살자들이 당황해서 대형이 무너진 사이.

푸욱! 파바박!

“커억!”

암살자들의 목이 뚫렸다.

임수호의 얼음 창이었다.

“어떻게···!”

암살자들을 지휘하는 여자가 입술을 깨물었다.

‘특수훈련을 받은 자인가? 이럴 수가 없는데···.’

습격을 받으면, 당장 눈앞에 있는 적부터 공격하는 게 본능 아닌가.

꽤 강한 각성자를 습격해본 적도 있었지만, 다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한건우는 당황하지 않고 2선을 먼저 공격했다.

마법과 원거리 공격으로 지원해주는 2선이 뚫린 것이다.

전세가 순식간에 기울었다.

‘위험한 자다. 해치워야 해.’

아직 수적으로는 암살자 쪽이 우세했다.

그녀가 약속된 손짓으로 지시를 보냈다.

“형!”

슈우-!

파바박.

십여 개의 맹독 수리검이 날아왔으나, 임진호는 방패로 막았다.

거의 단도에 가까운 크기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타닥, 탁 탁···.

임진호의 얼음 방패에 박혀있던 수리검이 살아있는 것처럼 튀어나갔던 것이다.

“···어?”

임진호와 임수호도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경계만 세우고 있던 그때.

[특성 발동 : 염동력]

스스스슥!

맹독 수리검들이 일제히 공중에 정렬하더니, 날아올 때보다 더 빠르게 주인에게 되돌아갔다.

“큭!”

“커억!”

암살자들이 쓰러졌다. 기둥이나 가구 뒤에 숨어있던 자들도 예외없었다.

맹독이 삽시간에 번지는지, 쓰러진 자들이 거품을 무는 것이 보였다.

그들을 지원해줄 힐러는 없었다.

몇몇은 끝까지 정신을 놓지 않고 해독제를 찾아 아공간 주머니를 뒤졌다.

콰직!

콰앙-.

전투불능이 된 적들을, 임진호가 방패로 마저 처리했다.

화염에 반쯤 구워져 쓰러진 적들도 확인 사살했다.

타다닥.

그 사이, 여자는 거미처럼 벽을 타고 회피했다.

도망치는 여자의 등 뒤로 임수호가 얼음 창을 날리려 했다.

한건우가 그를 말렸다.

“?”

채쟁-!

그녀가 바깥으로 통하는 창문을 깨고 나갔다.

밤바람에 커튼이 출렁였다.

한건우가 임수호 형제에게 말했다.

“난 저 여자를 따라가서 신광우를 잡을 거야.”

“....”

“수호, 진호. 너희들은-.”

“형, 우리도 신광우와 싸우러 가고 싶어.”

임진호가 나섰다.

한건우에게 모든 사정을 듣고, 신광우에 대한 증오심이 커졌던 것이다.

그럴 만도 했다.

어제 10번의 <투견>을 마친 임수호 형제에게, 한건우는 진실을 말했다.

‘신광우는 처음부터 계약을 이행할 마음이 없었어.’

‘...무슨 소리야.’

‘그 치료소가 7룡성과 연결된 곳이란 건 알고 있었지?’

‘그건 눈치챘어··· 하지만 이제 와서는 상관없어. 난 형이 치료만 받으면 돼.’

한건우도 안타깝지만 이 말을 해야만 했다.

‘거긴 처음부터 진호의 팔을 치료할 능력이 없었어.’

‘뭐? 아냐···. 분명히 낫고 있었어!’

‘마수 때문에 걸린 디버프는 그 마수가 죽으면 없어진다는 건 알지?’

‘그렇지.’

형제는 그 균열에서 헬하운드를 죽이지 못하고 놓쳤다.

그 후 다른 파티가 균열을 닫았으니, 디버프를 풀 기회도 없어진 것이다.

‘뛰어난 힐러는 마수를 죽이지 않고도 디버프를 없앨 수 있다는 것도.’

‘응···.’

여기까지는 각성자들이 흔히 아는 상식이었다.

그러나 아직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었다.

4~5년 후에야 널리 알려지는 사실이었다.

‘악마종 마수의 디버프는 S급 힐러가 아니면 절대 제거할 수 없어.’

‘뭐?’

‘네 팔은 낫고 있는 게 아냐. 낫는 것처럼 눈속임만 했을 뿐···.’

한건우가 임진호의 잘린 팔뚝을 잡았다.

스스스···.

시커먼 글자 같은 것이 나타났다가 지워졌다.

그건 환각을 만드는 <몽환의 룬>이었다.

룬 문자가 사라지자, 잘린 팔의 진짜 모습이 드러났다.

‘뭐야!’

잘린 팔뚝은 시체처럼 시퍼렇게 죽어 있었다.

처음부터 속았다는 걸 알고, 임진호가 이를 갈았다···.

그러니 임진호 형제가 신광우를 직접 죽이고 싶어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한건우는 단호했다.

염제와 싸우는 데 둘은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

“진호야, 오늘은 내가 말한 대로 하자.”

“···알겠어.”

임진호는 힘들게 수긍했다.

이제까지 한건우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었으니까.

정확한 등급은 모르지만, 한건우는 꽤 상급 각성자가 분명했다.

그런 한건우가 혼자 싸우겠다고 판단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싶었다.

임진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건우 형, 조심해.”

“그래.”

임진호는 먼저 방을 나갔다.

임수호도 형을 따라서 얼른 계단으로 갔다.

그들은 탑 밑으로 내려갔다. 한건우가 따로 시킨 일이 있었다.

한건우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도망친 여자의 궤적을 찾았다.

<화식조의 눈>으로 탑의 외벽 표면을 살폈다.

도망친 여자가 외벽을 타고 지나간 자취가 보였다.

‘옥상으로 올라갔군.’

염제는 어제처럼 옥상의 용광로 근처에 있는 모양이었다.

*

“주인님!”

여자가 다급하게 숨을 몰아쉬며 옥상에 나타났다.

염제 신광우는 끓는 용광로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그가 옥상 바닥으로 훌쩍 뛰어내려, 여자에게 다가왔다.

신광우가 여자를 내려다보며 날카롭게 물었다.

“설마, 놓쳤어?”

“아뇨···. 그게, 이상해요. 그 자가···  <아그니의 화염>을 쓰는 것 같아요.”

신광우의 얼굴이 사납게 구겨졌다.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쿠과과광-!

신광우는 반사적으로 몸을 피했다.

그 자리에 돌로 된 용 머리가 떨어져 부서졌다.

탑 가장자리를 장식한 드래곤 장식이었다.

한건우의 공격이었다.

신광우는 눈으로 확인하기도 전에 반격했다.

슈우웅-

파악!

신광우의 손끝에서 폭발하는 불덩이가 탄환처럼 쏟아졌다.

한건우는 바로 방어 특성을 펼쳤다.

[특성 발동 : 아이기스의 보호]

-물리적 공격을 제외한 모든 마법, 독, 저주에 대해 신체 보호막을 형성한다.

“윽.”

치지지직···.

한건우는 조금 타격을 입었다.

화염 마법 계열의 특성이니, <아이기스의 보호>로 충분히 막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탄환 같은 불꽃은 마치 물리적 무게를 가진 것 같았다.

‘화염 특성을 저렇게 쓸 수도 있다고?’

한건우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가 기억하는 몇 년 후의 염제는 반 미치광이였다.

무언가를 한순간에 재로 만드는 것에 미쳐있었다.

주로 민간인들의 피해가 컸다.

‘오히려 지금이 특성 활용도는 훨씬 좋을 수도 있겠군.’

“하하.”

놀란 한건우의 얼굴을 보고, 신광우가 웃었다.

신광우가 과장되게 양 팔을 펼쳤다.

화려한 셔츠를 입고 있어, 마치 연극 배우처럼 보였다.

쿠구구구···.

옥상 난간을 둘러싸고 높은 불꽃의 벽이 생겨났다.

한건우를 이곳에서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것 같았다.

‘뜨겁군.’

화염 특성을 가진 각성자는 불에 내성이 있다.

불에 데여도 쉽게 상처입지 않는 것이다.

화염 특성을 가진 한건우에게도 상당한 열기가 느껴졌다.

그런데 한건우보다 훨씬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악!”

츠즈즈즈···.

타오르는 열기에 고통받는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그녀는 화염 계열 각성자가 아니었다.

화기 저항이 있는 섭취형 아이템을 먹은 것뿐이니, 지옥의 겁화를 버텨내기에는 모자랐다.

그러나 염제 신광우는 여자의 고통에 무심했다.

신광우는 여자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한건우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네 놈도 화염 특성이 있다면서?”

“....”

신광우가 소름 끼치게 낄낄대며 웃었다.

“어디 보여줘 봐. 구경 좀 하게.”

신광우는 스스로 화염 계열 각성자 중에서 최강자라고 생각했다.

등록 각성자는 아니지만, 거의 S급에 가까우니, <염제>라는 별명은 과장이 아니었다.

‘이놈이 <아그니의 화염>을 쓴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릴.’

신광우는 자신만만했다.

한건우가 벽을 짚고 도약했다.

한건우는 옥상 가장자리를 장식한 드래곤 모양의 석상 위에 올라섰다.

높은 위치를 점하는 게 유리하다는 건 모든 전투의 상식이었다.

화르르···.

한건우의 궤적을 따라서 신광우의 화염이 폭발하듯 쏟아졌다.

어제 본 켈베로스의 지옥불보다 더 뜨거울 듯했다.

‘마치 화룡종 드래곤을 상대하는 것 같군···.’

한건우는 가까스로 수룡의 석상을 밟고 올라섰다.

피유우웅-!

피유우-!

한건우가 신광우를 향해 수십 발의 파이어 스피어를 퍼부었다.

<아그니의 화염>을 응용한 것이었다.

그걸 본 신광우의 동공이 커졌다.

그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 뭐냐?”

화아아-

치지지지지···.

신광우는 화염을 방패처럼 둘러쳐, 파이어 스피어를 막았다.

공중에서 시뻘건 화염이 맞부딪쳤고, 불꽃이 튀었다.

맞불이 일어난 것처럼 서로 나아가지 못했다.

신광우의 표정이 잔뜩 굳어졌다.

“···진짜였잖아.”

신광우도 화염 계열 각성자를 본 적 있었다.

모두 신광우 자신보다 약한 특성이었다.

자신의 특성과 똑같은 게 세상에 또 있을 줄이야···.

신광우의 한쪽 입술이 올라갔다.

특성이 같다고 해서 능력도 똑같은 건 아니니까.

“어디, 얼마나 쓸 줄 아는지 볼까?”

신광우는 눈을 감고 팔을 뻗었다.

자아도취가 심한 그는, 모든 자세가 연극적이었다.

파아앗-!

신광우의 등 뒤로, 붉은 날개가 솟구쳤다.

검은 밤하늘을 배경으로, 타오르는 거대한 날개가 뻗어나갔다.

마치 피닉스가 소환되기라도 한 듯한 위용이었다.

타앗!

신광우가 화염의 날개를 펄럭였다.

그가 공중으로 가볍게 날아올랐다.

“!”

한건우가 놀라 입을 벌렸다.

화염 특성으로 저런 것까지 가능한 줄은 상상도 못했다.

‘특성 활용의 가장 큰 적은, 상상력 부족이라더니···.’

신광우가 <아그니의 화염>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그를 죽이기 전에 낱낱이 알아내야겠다.

지금의 한건우는 그걸 그대로 써먹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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