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47화 (47/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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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견장 (4) - 둘은 죽여라

“선수가 잘 싸우는데요? 듣던 대로 7룡성의 투견은 정말 볼만하네요.”

한건우가 태연하게 먼저 말을 걸었다.

염제 신광우가 멈칫했다.

‘아닌가···?’

신광우는 한건우를 의심하고 있었다.

‘저 놈이 나타나고, 임수호가 갑자기 눈에 띄게 강해졌는데....’

증거는 없었지만, 어딘가 꺼림칙했다.

게다가 한건우는 본능적으로 경계가 되는 대상이었다.

‘묘하게 거슬린단 말이야.’

한건우는 여전히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망토 후드로 얼굴을 감싸고 눈만 내놓고 있었다.

“....”

느껴지는 기운은 미약했다.

그것만으로는 속단할 수 없다.

강한 각성자는 자신의 기운을 감출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한건우가 수작을 부린다는 증거는 없었다.

경기장을 둘러싼 마력 그물도 멀쩡했다.

훼손되거나 약화된 곳은 없었다.

‘···기분 탓이겠지.’

신광우는 자신의 직감을 무시해버렸다.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공간 왜곡과 버프 특성을 동시에 다루면서, 태연하게 옆 사람과 대화하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오늘도 행운이 따르시길.”

신광우가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다시 생각해도 한건우의 베팅은 충격적이었다.

한건우는 어제 번 돈을 오늘 도박에 고스란히 다 걸었다.

그 어마어마한 거액을 단 한 판의 승부에 태우다니···.

그것도 질 게 뻔한 쪽에 말이다.

‘멍청한 건지, 용감한 건지?’

어쨌든 곧 한건우는 빈손이 될 것이 뻔했다.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신광우는 피식 웃으면서 손가락을 튕겨서 긴 담뱃대 끝에 불을 붙였다.

VIP석에 잎담배의 독한 향이 퍼졌다.

*

크왕! 컹!

켈베로스의 머리 2개가 위협적으로 짖었다.

슈우우-.

그 와중에 맨 아래에 있는 작은 머리는 숨을 깊이 들이키고 있었다.

‘건우 형이 말한 대로야.’

얼음 방패를 들고 선 임진호가 켈베로스를 관찰했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집중하고 있었다.

한건우는 어제도 몰래 그들을 찾아와서, 미리 켈베로스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겉으로 보기엔 켈베로스의 머리 3개가 모두 지옥불을 뿜는 것처럼 보일거야. 하지만 그게 아냐.’

‘그러면?’

임진호가 켈베로스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했다.

크와아-.

왼쪽 머리는 입을 벌려서 발화 가스를 뿜었다.

츠즈즈즈···.

오른쪽에 있는 머리가 작은 불씨를 토했다. 가스에 불을 붙이는 것이었다.

화염이 일자로 뻗어나왔다. 마치 화염방사기 같았다.

“윽.”

임진호는 얼음 방패를 들고 서서 화염을 막아섰다. 뒤에 있는 동생 임수호를 보호해야 했다.

크와아앍!

맨 가운데, 가장 거대한 머리가 나타났다.

불에 구워진 적들을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역할이었다.

화염 사이로 선홍색 잇몸과 날카로운 허연 송곳니가 드러났다.

치잉!

“크윽.”

방패를 휘둘러서 공격을 흘려내려던 임진호가, 켈베로스의 기세에 뒤로 밀려났다.

‘이 순서가 계속 반복된다고 했어.’

불이 무한으로 계속 뿜어지는 건 아니었다.

한 번 뿜은 발화 가스가 떨어지면, 불도 끊긴다.

그 점은 헬하운드도 마찬가지였기에, 잘 알고 있었다.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건우가 마치 임진호의 마음속을 읽은 것처럼 경고했었다.

‘헬하운드는 머릿속에서 지워.’

‘...!’

‘무게 중심이 완전히 다르고, 움직임도 다르니까.’

켈베로스는 머리가 3개다.

그로 인해, 개 형태의 다른 마수들과는 무게 중심이 달랐다.

그래서 주의해야 할 것이···.

휘이익!

바로 꼬리를 이용한 공격이었다.

“허억!”

“어!”

관중들도 놀라서 숨을 삼켰다.

켈베로스는 머리 쪽이 무거운 만큼, 꼬리도 그에 맞추어 크고 무거웠다.

그리고 그 길고 단단한 꼬리를 휘둘러서 적을 공격했다.

파바박!

아찔한 순간, 켈베로스의 꼬리에 얼음 송곳들이 날아와 박혔다.

“허···.”

임진호는 흠칫 놀랐다.

동생이 만든 얼음 송곳이 어제보다 훨씬 크고 예리했던 것이다.

송곳이 아니라 거의 창에 가까울 정도였다.

숫자도 몇 배로 늘었다.

크와아악!

그러나 하필 켈베로스는 불을 뿜는 마수였다.

허공에 떠있는 얼음 송곳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켈베로스의 입가에서 나오는 열기 때문이었다.

파바바박-!

얼음이 녹기 전에, 임수호는 자신이 만든 얼음 송곳을 총동원해서 켈베로스를 공격했다.

커엉! 컹!

치지징!

켈베로스는 두터운 앞발을 들어서, 털가죽에 박힌 얼음 송곳을 쳐냈다.

화가 잔뜩 난 켈베로스가 길길이 날뛰었다.

형제는 그 사이 조금 거리를 두고 떨어졌다.

오우거 때와 달리, 바닥을 미끄럽게 만드는 전략은 택하지 않았다.

불을 뿜어서 바로 녹여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

얼음을 만들자마자 공격에 쓰는 게 효율적이었다.

임진호가 외쳤다.

“수호야, 나 곧 들어간다. 준비해!”

“알겠어!”

임진호는 켈베로스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얼음 송곳을 다 떨쳐낸 켈베로스가 임진호를 보며 으르렁댔다.

쿠웅- 쿵 쿵!

켈베로스가 땅을 박차며 임진호 쪽으로 돌진해왔다.

임진호는 방패를 든 채, 때를 기다렸다.

될지 안 될지는 모른다.

실패를 두려워해 본 적은 없었다.

강력한 마수인만큼, 오히려 공격 패턴은 단순한 편.

먼저 가스를 뿜고, 불을 붙여서 뿜으면서 이빨과 앞발로 공격할 것이다.

쿠웅-.

켈베로스가 임진호를 덮치기 위해 마지막으로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왼쪽 머리가 가스를 뿜으려고 아가리를 벌리고 숨을 내뱉으려는 그 순간.

‘조금 늦었나···!’

백 분의 1초 차이로 타이밍을 놓쳤나 싶었다.

임진호는 벌려진 켈베로스의 입을 노리고 돌진했다.

[특성 발동 : 일점돌파]

쿠콰과광-!

퍼억!

임진호의 몸이 탄환처럼 쏘아져나갔다.

‘어?’

일점돌파의 속도와 위력이 훨씬 강해졌다.

임진호는 놀란 와중에도 상황을 확인했다.

크에에···.

가스를 뿜으려고 크게 벌린 켈베로스의 입 안에, 방패가 세로로 박혔다.

켈베로스는 입이 벌려진 채로 고정되어 다물지도 못했다.

푸스스스···.

발화 가스가 밖으로 채 분출되지 못하고 안에서 역류했다.

‘됐다!’

임진호는 즉시 방패를 놓고, 왼쪽으로 크게 굴렀다.

켈베로스의 반대쪽 머리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불씨를 붙이려 했다.

작은 불꽃이 튀었다.

화르르르···.

불꽃은 역류한 가스를 타고 왼쪽 머리의 목구멍 안으로 타고 들어갔다.

크워어억!

왼쪽 머리는 고개를 흔들며 괴로워했다.

아무리 불을 다루는 마수지만, 목구멍 안 깊은 곳까지 지옥불을 머금은 적은 없었다.

역류한 불꽃을 타고 켈베로스의 몸 속이 익어갔다.

왼쪽 머리는 눈을 까뒤집었다.

방패 사이로 거품이 새어나왔다.

본체가 죽을 만큼의 타격은 아니었다.

그러나 켈베로스의 기세는 한풀 꺾였다.

크르릉···.

앞발톱으로 위협하며 땅을 긁었지만, 바닥으로 처지는 꼬리는 숨길 수 없었다.

임진호가 땅을 짚고 일어났다.

그의 잘린 팔뚝에서 뭔가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드드드드-

붕대로 감은 팔 위로, 얼음이 고드름처럼 자라났다.

“저, 저게 뭐야?”

“검··· 장검이다!”

흥분한 관객들이 외쳤다.

임진호의 잘린 왼팔에는 견고한 얼음으로 된 롱소드가 생겨났다.

뾰족한 부분이 아래로 향하도록, 마치 역수로 잡은 듯한 형태였다.

임진호는 한건우의 마지막 조언을 되새겼다.

‘켈베로스는 머리와 앞발, 꼬리가 강하지. 그럼 약한 방향은 어디일까?’

‘···없는 거 아냐?’

‘위쪽.’

타닥-.

임진호는 켈베로스의 꼬리를 딛고 뛰어서 등뼈 쪽으로 올라갔다.

켈베로스의 등 한가운데에 올라서서 중심을 잡았다.

그가 얼음 롱소드를 아래로 조준했다.

푸욱!

켈베로스의 뒷목에 얼음으로 된 롱소드가 깊숙히 박혔다.

“!”

임진호가 오른손을 들어 동생에게 신호를 보냈다.

얼음으로 된 검을 놓겠다는 뜻이었다.

“아.”

임수호는 형의 뜻을 알아듣고, 정신을 집중했다.

롱소드의 손잡이 부분이 푸스스 수증기로 돌아갔다.

임진호는 그대로 땅으로 뛰어내렸다.

그가 켈베로스를 돌아보았다.

켈베로스는 거대한 몸을 휘청거리다가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우오아아아!”

방금의 전투에 몰입했던 관중석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어제보다 더 큰 함성이 한참 동안 끊이지 않았다.

“....”

반면, VIP석 부근은 겨울이 온 듯 싸늘했다.

한건우는 염제를 돌아보았다.

염제 신광우의 눈동자에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

“저희 투견장이 개장한 이래로··· 이렇게 많이 따신 분은 손님이 처음이세요.”

여자가 한건우를 보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염제의 애인이자 부하인 그 여자였다.

그녀가 한건우의 호텔 방까지 카트를 직접 끌고 왔다.

카트에는 한건우가 딴 현금 다발이 실려 있었다.

가방 한두 개로는 감당이 안 되는 액수였다.

아공간 금고도 꽉 차겠다 싶을 정도였다.

“며칠 더 놀다 가시지 그러세요? 이 방은 계속 쓰게 해 드릴게요.”

여자가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이곳은 VIP를 위한 호텔 방으로, 7룡성의 수뇌부가 사는 탑 위층에 있었다.

한건우처럼 큰 돈을 딴 사람을 잡아두기 위해 제공되는 곳이었다.

딴 돈을 다 쓰고 빈털터리가 될 때까지였다.

만약 그 전에 나가려 한다면···.

“감사하지만 바쁜 일이 있네요.”

“어머, 그냥 보내드리기 아쉬운데···. 언제 출발하셔야 해요?”

여자가 안타깝다는 듯 은근히 물었다.

“내일 아침에 일찍 나가려고 합니다.”

“너무 아쉽네요. 다음에 또 놀러오셔야 해요?”

여자가 눈웃음을 치면서 돌아섰다.

그날 밤, 여자는 한건우의 방에 몰래 숨어들어왔다.

터억!

“윽···.”

칠흑 같은 어둠 속.

한건우의 손아귀에 목을 잡힌 여자가 당황했다.

‘은신 스킬을 썼는데···?’

발소리를 죽이는 스킬을 써서 조용히 들어왔다.

그런데도 바로 찾아낸 것을 보니, 그녀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던 것 같았다.

“혼자야?”

한건우가 물었다.

그는 내심 신광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퍼억!

물음에 답하기도 전에, 여자가 옆으로 튕겨나갔다.

심상찮은 기척을 듣고 달려온 임진호가 주먹을 날린 것이었다.

그녀는 허공에서 민첩하게 자세를 잡아서 착지했다.

밤길의 고양이처럼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건우 형! 괜찮아?”

“암살자인가.”

한건우의 방에 임수호와 임진호 형제가 있는 것을 보고, 여자의 눈이 커졌다.

“한패였구나.”

한건우는 여자에게 마지막 기회를 줬다.

“가서 네 주인에게 전하고, 넌 돌아오지 마.”

“하.”

그녀는 한건우의 경고를 웃어넘겼다.

애초에 혼자 온 것도 아니었다.

‘쌍둥이 형제가 같이 있을 줄은 몰랐지만.’

문 밖에서, 바깥 발코니에서 7룡성 소속 암살자들이 속속 나타났다.

그들 형제가 강해졌다 해도, 이곳은 미로 같은 7룡성의 탑이었다.

7룡성의 암살자들에게 벗어나 도망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여자는 한 가지 문제점을 떠올렸다.

‘아... 림수호는 조심히 다뤄야 되는데.’

임수호와 신광우 사이의 계약 때문이었다.

‘을’인 임수호는 <투견> 10판을 다 참가했다.

오늘부로 신광우와의 계약 조건을 완수한 것이다.

반면, ‘갑’인 신광우는 아직 조건을 다 이행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갑이 을을 해한다면, 계약위반으로 간주된다는 조항이 있었다.

계약서 스크롤의 작용은 엄격하고, 돌이킬 수 없었다.

계약을 무조건 이행하라는 뜻에서 만들어진 것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부하를 시켜서 해치는 것도 계약위반이 되려나···?’

확실히는 모르지만, 여자는 일단 조심하기로 했다.

여자가 천장에 있는 장치를 터트렸다.

퍼엉!

“엇.”

침실 천장에서 샹들리에가 폭발하더니, 마력 저감 그물이 한건우와 임수호, 임진호를 덮었다.

특수한 마석으로 짜여진 촘촘한 그물이었다.

이 안에서는 특성을 사용하기 어렵고, 사용해도 평소보다 훨씬 약하게 발동되었다.

여자가 명령했다.

“림수호는 두고, 나머지 둘은 죽여라.”

“...?”

으드드득!

한건우가 맨손으로 마석 그물을 찢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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