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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견장 (3) - 강심장
정면 충돌이었다.
전속력으로 맞부닥친 둘은 잠시 허공에 떠올랐다.
파바박!
오우거 버서커는 몇 발짝이나 뒤로 밀려나갔다.
바닥에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그워억!
오우거 버서커가 뜻밖의 충돌에 놀랐는지 울음을 내질렀다.
버서커 약물을 맞아서 고통은 느끼지 못했다.
“크윽.”
“형, 괜찮지?”
흙먼지가 가라앉자, 방패를 든 임진호가 보였다.
충돌의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그의 디딤발은 모래에 거의 파묻혀 있었다.
“저걸 버티다니!”
“몸무게가 열 배는 차이 날 텐데.”
“외팔이로 여기까지 온 놈이잖아. 보통 독종이 아냐.”
흥분한 관중들이 떠들었다.
<투견>은 도박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흥미진진한 오락거리였다.
임진호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쉬이익!
모래에 묻혔던 발을 살짝 절면서도, 임진호는 선공을 했다.
얼음이 둘러진 방패 끝을 검처럼 휘두른 것이다.
‘대단하군.’
한건우는 임진호를 다시 보았다.
오우거 버서커를 공격하러 나아가는 데 일순간의 본능적인 망설임도 없었다.
오우거 버서커의 단단한 피부에 상처가 났다.
크웍!
푸른 피가 흘렀다.
그러나 오우거 버서커는 절대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스칭-.
무지막지한 워 해머가 허공을 갈랐다.
방패로 막을 수 있는 공격은 아니었다.
임진호는 얼음 방패를 사선으로 기울여, 워 해머가 스쳐서 엇나가게 했다.
무수한 얼음 결정이 허공에 날렸다.
쿠콰앙-!
워 해머가 바닥을 찍자, 중장비 건설기계에서나 날 법한 소리와 진동이 났다.
그러나 임진호는 끄떡도 하지 않고 자기 위치를 잡았다.
‘태생적으로 겁이 없군.’
임진호는 용감했다.
한 팔을 내주면서까지 동생을 구한 남자다웠다.
임진호가 앞에서 시선을 끌며 버티는 동안, 임수호는 준비하던 걸 완성했다.
구경꾼 중에 눈치챈 사람이 있었다.
“저 위에 뭐야?”
“어디?”
‘헬멧.’
커다란 얼음 헬멧이 공중에 떠 있었다.
얼음으로 된 송곳들이 안쪽을 향하고 있었다.
투욱!
그워어어어!
임수호가 얼음 헬멧을 떨어뜨려 오우거에게 씌웠다.
얼음 송곳들은 점점 회전하면서 오우거의 머리를 옥죄며 파고들어 왔다.
오우거는 얼음 헬멧이 거슬려 손으로 벗어버리려 했다.
“그럴 때가 아냐!”
“저놈 먼저 죽여!”
각성자 관중들이 안타까움에 소리를 질렀다.
임수호를 먼저 죽여버리면 특성 발동은 멈출 것이기 때문이다.
오우거는 보기보다 멍청하지 않았다.
잔인하고 흉폭할 뿐, 유인원 정도의 지능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강제로 맞춘 약물 때문에 지능이 떨어진 상태.
오우거는 몸부림을 치며 헬멧을 벗으려 했다.
콰직!
주먹으로 두드려서 헬멧을 부쉈다. 그러면서 얼음 송곳은 오우거의 머리에 더 깊이 박혔다.
그리고 진짜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어느새 오우거 근처의 바닥은 온통 미끄러운 빙판이 되어있었다.
주르르르-
콰아앙!
오우거 버서커는 볼썽사납게 넘어졌다.
오우거는 분노에 차서 바로 일어나려 했다.
임수호는 오우거의 털 난 발바닥에 얼음을 둘러쌌다.
콰광-! 쿠웅-.
오우거가 제대로 자세를 잡지 못하고 계속 미끄러졌다.
타아앗!
임진호가 오우거의 머리 위로 뛰어올랐다.
그의 방패 끝을 타고 날카로운 얼음 칼날이 솟아났다.
쿠직!
임진호의 무쇠 방패가 오우거 버서커의 벌린 입 속에 깊이 박혔다.
깔끔한 한 방이었다.
“....”
잠시 시간이 멈춘 듯, 장내의 수천 명이 할 말을 잃고 침묵했다.
그리고 귀가 아플 정도의 함성이 일었다.
“와아아아아!”
“으아앗!
한순간 몰입해서 이것이 도박임을 잊은 사람들의 순수한 탄성이었다.
“어?”
“...아, 안돼!”
“미친!”
곧 사람들은 자신이 건 판돈을 기억해냈다.
각종 욕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
한건우는 베팅 코너에 전표를 냈다.
“전부 현금으로 교환이요.”
전표를 본 직원의 동공이 흔들렸다.
직원은 기계적으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예,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너무 큰 금액이라, 코너에서 바로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곧 한건우는 VIP석으로 안내되었다.
아까 관중석에서 올려다보던 곳이었다.
여기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전투장이 훤히 눈에 들어왔다.
뒤에서 VIP석으로 들어오는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가죽 드레스에 하이힐을 신은 육감적인 여자였다.
“안녕하세요, 손님. 많이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여자도 각성자의 기운이 풍겼다.
한건우는 그녀의 얼굴을 기억해냈다.
‘염제의 애인이던가.’
한건우는 아직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자신의 마기도 일부러 억눌러 감추고 있었다.
여자는 한건우를 슬쩍 훑어보았다.
‘각성자긴 한데 높은 등급 같지 않네. 나이도 어린 것 같고.’
그녀는 속을 드러내지 않고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경기는 재밌게 보셨나요? 먼저 금액은 전액 지급해드리겠습니다.”
여자는 고풍스런 가죽 가방을 열어서 수표 다발을 보여주었다.
“....”
한건우가 수표를 들춰서 살펴보았다.
위조 수표는 아니었다.
물론 상대편이 건 판돈을 받는 것이라지만, 현금이 아닌 신용으로 베팅한 사람도 많았다.
주최측에 현금이 부족할 테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돈 주는 걸 미룰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다.
여자가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런데 손님, 오늘 베팅하신 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어떻게 그렇게 과감하세요?”
“운이 좋았습니다.”
별 말도 아닌데, 여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내일도 재미있는 경기를 준비할 텐데, 오늘 떠나시나요? 구경하고 가시죠.”
“내일요?”
“그럼요. 저희가 사실 손님을 위해 최고급 VIP 숙소도 준비했답니다.”
한건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
7룡성 탑의 옥상.
쇳물을 끓이는 용광로가 있었다.
<염제> 신광우는 옥상 기둥에 앉아 용광로 안에서 끓어오르는 쇳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아무리 뜨거운 불 앞에서도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한 여자가 기둥 아래쪽에서 신광우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까 한건우를 찾아왔던 여자였다.
그녀는 무서운 상사에게 살짝 불만이 있었다.
‘평소에는 장난도 잘 치시는데··· 조용할 때가 더 무섭단 말이야.’
그녀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났다.
화기 저항을 뚫고 열기가 전해져 왔다.
침묵을 깨고, 신광우가 여자에게 물었다.
“아까 그놈, 어땠어?”
“···어린 각성자고, 평범해요.”
그럴 리가.
신광우는 여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늘 한건우 때문에 신광우도 뼈아픈 손해를 보았다.
<투견장>은 결과를 짜놓고 돌리는 불법 도박판이었다.
당연히 신광우도 차명으로 돈을 걸고 있었다.
오늘은 오우거가 이기는 판을 짜놓았다.
그런데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다.
“그놈, 투견장엔 처음이라던가?”
“그렇다고 하네요.”
“일단 붙잡아 놨지?”
“네.”
“돈 다 털 때까지 무슨 수를 써서든 잡아 놔.”
한건우가 딴 돈은 결국 신광우의 돈이나 다름없었다.
돈을 다 쓰기 전에 7룡성을 빠져나가려 하면 제거할 생각이었다.
단, 오늘 당장은 곤란했다.
큰 돈을 딴 사람이 자꾸 실종된다는 소문이 나면 안 되니까.
관중들의 관심이 꺼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탁.
신광우가 손가락을 튕기자, 용광로의 화염이 두 배로 커졌다. 화들짝 놀란 여자가 더 뒤로 물러났다.
“너도 오늘 봤지? 림수호가 갑자기 눈에 띄게 강해졌어.”
“네··· 그동안 능력을 숨겼던 걸까요?”
신광우가 코웃음을 쳤다.
“림수호는 죽을 뻔한 위기가 많았어. 그 상황에서 그런 연기가 된다고? 정말이라면 플레이어 때려치고 배우 해야지.”
“그러면 대체···.”
“2차 각성이라도 했나···. 하긴, 알 게 뭐냐.”
신광우는 임수호 형제가 무사히 10판의 경기를 뛰고 나가도록 해줄 생각이 없었다.
오늘 그 둘은 오우거의 손에 죽었어야 했다.
혹시나 천운으로 이길 때를 대비해서, 10번째 판은 재미있는 계획을 해둔 게 있었는데···.
“아쉽군.”
“어떤 게 아쉬우세요?”
“다음 판에는 사이좋은 쌍둥이 형제끼리 싸움을 붙여 보려고 했지. 너도 궁금하지 않아? 눈물나는 우애가 이기는지··· 버서커 약물이 이기는지.”
“....”
놀란 여자의 입술이 벌어졌다.
신광우는 알면 알수록 잔인하고 무서운 남자였다.
“하지만 그건 취소다. 오늘 보니까 마수랑 붙이는 게 더 흥행이 되겠어.”
“네, 그 사람도 내일 또 돈을 걸 것 같아요.”
신광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박장에 온 놈이 그냥 구경만 하고 갈 리 없었다.
젊은 놈이 한순간에 일확천금을 했으니, 세상의 행운이 온톤 자기 것인 양 들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설마, 연속으로 역배당을 하는 강심장은 아니겠지.
“내일은 마수 편에 걸지 않을까 싶네.”
“그럼··· 마수를 조금 약화시킬까요?”
여자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신광우는 뭐가 웃긴지 낄낄거리며 웃었다.
“됐어. 예정대로 해.”
“아···.”
“그놈이 딴 돈은 무슨 일이 있어도 7룡성을 못 빠져나가게 할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공손하게 대답한 여자가 열기를 피해서 도망치듯 나갔다.
기둥 뒤의 그림자 밑에서, 한건우가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
<투견>이 연달아 열린다는 소식이 온 7룡성에 퍼졌다.
어제 돈을 잃고, 1주일을 어떻게 기다리나 하고 실의에 빠져있던 도박꾼들은 다시 활기를 찾았다.
뜨거운 관심 속에 대진표가 공개되었다.
<투견>의 대진표는 50 대 50, 아니면 40 대 60의 확률 정도로 승부를 예측하기 어렵게 짜여졌다.
그러나 이번에도 딱 한 경기는 예외였다.
바로 임수호가 나오는 마지막 경기였다.
도박꾼들은 혀를 내둘렀다.
“야···. 이건 진짜로 백 프로 아니야?”
“죽으라는 거지.”
“7룡성 놈들. 잔인하네.”
“오우거는 어떻게 이겨도, 이건 안 될걸.”
경기도, 도박도 아니다.
그냥 살육일 거라는 예측이 대부분이었다.
경기장으로 나가기 직전, 열악한 대기 공간에서 임수호는 심호흡을 했다.
‘이번만 이기면 다 해결돼.’
이 경기만 버텨내면, ‘을’로서의 계약 조건을 다 이루는 거다.
형 임진호는 잘린 팔에 두텁게 붕대를 감고 있었다.
어깨부터 팔뚝까지 빈틈없이 감았다.
무뚝뚝한 임진호가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수호야, 나 때문에 고생이 많다.”
“···그런 얘긴 다 끝나고 해.”
전투를 앞두고 진지한 분위기를 잡다니.
괜히 불길한 느낌에 임수호가 짜증을 냈다.
삐이-!
치이이잉-!
경기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임진호가 오른팔에 무쇠 방패를 단단히 끼고 앞서 나갔다.
원래 선수는 경기 전까지 무슨 마수를 상대하게 될지 까맣게 모른다. 이번에는 한건우가 미리 알려주었다.
쿠르르르···.
쉬이익-.
지하에서부터 올라오는 듯한 깊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가스가 새는 듯한 소리도.
“으아아···.”
관중석에서 신음소리가 번져나왔다.
상대는 지옥문의 경비견 켈베로스.
B급 균열에서나 나올 법한 강력한 악마종 마수였다.
크르릉···.
켈베로스는 집채만한 사냥개 같았다.
흉하게 생긴 3개의 머리에서는 숨을 쉴 때마다 지옥불이 뿜어졌다.
크와아악!
쿠아아!
켈베로스가 세 개의 머리로 으르렁대면서 뒷발을 굴렀다.
내뿜는 화염의 열기가 멀리 관중석까지 느껴졌다.
“윽···.”
각오는 했지만, 임수호는 주춤했다.
균열에서 형의 팔을 물어뜯은 마수가 바로 악마종 헬하운드가 아니었던가.
켈베로스는 그 헬하운드보다도 몇 단계 위였다.
두려움이 들 수밖에 없었다.
“수호. 정신 차려!”
정작 그 헬하운드에게 팔을 뜯긴 임진호는 멀쩡했다.
임수호는 이를 악물면서 정신을 집중했다.
타다다다···.
이전보다 더 큰 얼음 결정이 임진호의 방패를 뒤덮었다.
치잉, 칭-
허공에 얼음 송곳들이 생겨났다.
“와아-”
볼만한 구경거리였다. 관중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역시 임수호. 하루만에 크게 발전했군.’
한건우는 이번엔 VIP석에 초대되어 앉아 있었다.
그러나 구경만 할 생각은 없었다.
[특성 발동 : 공간 왜곡]
외부에서 전투에 개입을 못하도록, 투견장에는 투명한 마력 보호막이 그물처럼 촘촘하게 쳐져 있었다.
한건우는 마력 보호막의 미세한 틈을 벌렸다.
그리고 동시에, 임수호에게 버프를 넣었다.
[특성 발동 : 용맹의 가호]
-다른 플레이어가 발동하는 특성을 일시적으로 강화한다.
“헉.”
임수호가 헛숨을 들이켰다.
순간적으로 그의 흰자위가 돌아갔다.
치지징- 치잉- 칭!
허공에 뜬 얼음 송곳의 개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한건우는 바로 근처에 앉은 염제 신광우를 흘긋 돌아보았다.
“....”
신광우는 이미 한건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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