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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견장 (2) - 오우거 버서커
한건우는 먼저 질문부터 했다.
“투견장에서 10회를 넘긴 경우는 없어. 그게 왠 줄 알아?”
“그야 점점 강한 마수를 내보내니까···.”
임수호도 알긴 아는 모양이었다.
“그래. 9회차나 10화차엔 분명히 네가 이길 수 없는 마수가 나온다. 그럼 넌 어쩌려고 했지?”
“....”
임수호가 고개를 숙였다.
그의 손등 쪽, 엄지와 검지 사이에 상처가 보였다.
거의 다 나은 희미한 흉터였다.
한건우는 의아했다.
그건 롱소드를 쓰는 검사에게 보이는 상처였다.
“임수호, 너 왜 검을 써?”
“검사 클래스거든.”
“뭐?”
한건우가 기억하는 임수호는 강력한 법사였다.
차라리 마검사라면 이해하겠는데, 검사라니?
“응. 특성 개화는 했는데 보조로만 쓰고 크게 활용도가 없네.”
“....”
그럴 리가 없었다.
임수호는 자신의 잠재력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건우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임수호는 한숨을 쉬었다.
“원래 형이 나보다 검은 잘 다루는데···.”
팔이 저렇게 돼서, 라는 말은 흐렸다.
한건우는 창살을 잡고 특성을 썼다.
[특성 발동 : 공간 왜곡]
“뭐, 뭐야?”
마석 창살은 휘지도, 부러지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창살 사이의 공간이 벌어졌고, 한건우는 방 안으로 들어왔다.
쌍둥이 형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의 눈에 많은 질문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러쿵저러쿵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일단 계약서 스크롤 갖고 있지? 보여줘 봐.”
“그건··· 왜.”
임수호는 머뭇거리면서도 자기 몫의 계약서 사본을 꺼내 보여주었다.
한건우는 계약서를 넘겨받았다.
내용은 간단했다.
-을은 갑이 주최하는 경기에 10회 연속 참가해야 한다.
-위 조건이 이행되면, 갑은 을의 채무를 모두 면제하고, ‘임진호’의 팔이 회복될 때까지 치료를 제공한다.
내용은 임수호가 말한 대로였다.
중요한 건, 계약을 어겼을 때 양쪽에 붙는 제약이었다.
“<전신 쇠약화> 저주?”
“응···.”
각성자의 신체 회복력과 저항력이 사라지는 저주였다.
냉기나 화기, 독 저항 같은 게 모두 없어진다.
힐링이나 보호 특성, 스킬도 먹히지 않게 된다.
신체가 그냥 일반인이나 다름없게 되는 것이다.
사실상 앞으로 플레이어 생활을 못 한다는 사형선고였다.
‘물론 사악한 저주지만, 생각보다는?’
7룡성의 악명치고는 얌전한 계약서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받아들일 계약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나?’
그러나 형인 임진호의 생각은 달랐다.
듣기만 해도 안타깝다는 듯 신음을 흘렸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계약을 나도 모르게 해서는···. 팔 하나쯤 그냥 없이 살면 되는데.”
“말이 되는 소릴 해. 그리고 치료를 안 받으면 계속 악화되잖아!”
임수호가 쏘아붙였다.
그의 말이 맞았다. 악마종에게 물려 디버프가 걸렸다면, 그냥 팔이 잘리는 데 그칠 리 없으니.
계약서를 살펴보는 한건우의 시선이 맨 마지막 서명에 이르렀다.
“...어?”
계약서 스크롤에는 무조건 자신의 본명을 써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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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 - 신광우
을 - 임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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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건우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그가 아주 잘 아는 이름이었다.
“수호야. 이 사람 실제로 봤어?”
“응? 여기 투견장 운영자야. 7룡성 수뇌부 중 하나고.”
“어떻게 생겼지?”
“음··· 남자고 나이는 20대 후반 정도. 옷차림이 요란해서 얼굴은 잘 못 봤네.”
확실했다.
신광우.
사악한 미등록자 <염제>의 본명이었다.
‘염제··· 이게 네 짓이었구나. 그래서 그때 수호가···.’
한건우가 품었던 오랜 수수께끼가 하나 풀렸다.
그리고 생각이 바뀌었다.
‘수호 계약 건만 털고, 조용히 떠나려 했는데.’
그럴 수 없게 되었다.
‘7룡성. 여길 끝장낸다.’
***
다음날, 7룡성의 투견장.
마치 고대 로마의 검투장을 연상케 하는 모양새였다.
7룡성에서는 투견장에 술과 음식을 풀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한 잔만 더!”
“줄 앞에 서려면 빨리 가야 해.”
도박꾼들의 열기는 더욱 뜨거웠다.
멀리서 원정 온 사람도 있었지만, 이 근처를 떠돌며 사는 사람들도 상당수였다.
각성자는 현금이 없어도 자기 이름을 걸고 사채를 쓸 수 있었다. 그 끝이 파멸이란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손님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우와아!”
“시작한다, 빨리.”
장내 안내방송이었다.
제법 진행자까지 갖추었다.
[오늘의 투견들을 소개합니다! 제1경기···]
진행자는 오늘의 대진표에 나오는 마수를 읊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이 기다리시는 제3경기! 잔인하고 흉폭한 늪지대의 마수···. 몸 길이만 무려 4미터. 몸무게는 1톤!]
분위기를 달구는 설명이 이어졌다.
[...각성자를 맨손으로 찢어버리는 괴력의 소유자죠! 오우거입니다!]
“와아아!”
“오우거!”
이미 대진표를 보고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시간대별로 경기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임수호와 임진호가 나오는 경기는 맨 마지막이었다.
[자, 그러면 베팅, 시작합니다!]
베팅 코너가 열렸다.
여러 경기의 결과를 연속으로 모두 맞추는 베팅도 있었고, 딱 하나만 맞추는 베팅도 있었다.
어떤 베팅을 택하든, 한 가지는 거의 똑같았다.
오우거가 나오는 경기는 마수가 이기는 쪽에 거는 것.
“하··· 역시 배당이 너무 낮아.”
“어쩔 수 없지, 안전빵인데.”
각성자 편에 돈을 거는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하하··· 역배만 터지면···.”
“이제까지 꼴은 거 다 회복만 하면 고향 돌아간다!”
고수익 역배당으로 마지막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아주 극소수였다.
오우거 편의 배당률은 거의 1.01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때 한건우가 두건을 눌러쓴 채로 베팅 코너 앞에 섰다.
그는 수표를 묶음째로 내밀었다.
“제3경기. 전부 다 각성자 쪽에.”
“...네, 알겠습니다.”
숙련된 접수원이 수표 묶음을 받았다.
놀란 티를 내지 않고,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한건우의 뒷줄에 선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미친 놈이다.”
“우와, 저 정도면 비율 자체가 흔들리겠는데?”
“오우거에 더 걸자!”
베팅이 끝날 무렵, 사람들은 경기장 좌석에 자리잡았다.
한건우는 관중석보다 위에 있는 VIP석을 유심히 보았다.
‘<염제>도 저기서 보고 있을까?’
삐이-!
치이잉-!
경기 시작을 알리는 요란한 신호음이 들렸다.
경기장 양쪽의 마석 창살 문이 열렸다.
각성자들이 몇 명 떠밀려 나왔다.
임수호가 나오는 경기는 아니었다.
이 빠진 롱소드, 녹슨 무쇠 방패···.
형편없는 기본 무기만 쥐어준 채였다.
그들의 상대방은 트롤이었다.
상대방을 보기도 전에, 그들의 눈빛은 이미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콰아악!
그어어어어!
흉측한 트롤이 튀어나왔다.
오우거보다는 작지만, 충분히 위협적인 마수였다.
트롤의 팔은 땅에 닿도록 길었다.
한 손에는 쇠몽둥이를 질질 끌고 있었다.
트롤이 쇠몽둥이를 빙빙 돌리다가 공격적으로 휘둘렀다.
휘이잉-.
팍!
“흐억.”
뒤로 물러나던 각성자의 머리가 깨졌다.
그걸 지켜본 다른 선수들은 패닉에 빠졌다.
한건우는 무심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권사나 검사뿐···.’
등급도 낮은데다, 변변한 아이템도, 스킬 주문서도 없으니.
트롤을 상대하기에 최악의 구성이었다.
그들은 제대로 된 공격도 못 해보고, 트롤의 몽둥이에 맞아 허무하게 쓰러져갔다.
마지막 선수가 쓰러지는 데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제1경기, 마수 승.]
“이야아아!”
“이런 젠장, 망할 놈들! 지난 번엔 잘 해놓고!”
희비가 엇갈렸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이어진 제2경기는, 각성자 쪽의 승리였다.
“오···.”
한건우는 방금의 전투를 보고, 꽤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각성자 중 한 명은 처음부터 맨손으로 서 있었다.
뭔가 했더니, 네크로맨서 클래스였다.
방금 제3경기에서 죽은 시체들을 되살려서, 자신의 병사로 부렸던 것이다.
[제2경기, 각성자 승.]
또다시 한숨과 환호가 엇갈렸다.
그리고 모두가 기다리는 마지막 경기가 열렸다.
“림수호! 림수호!”
관중들은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8번의 투견 경기를 버틴 그는 이미 유명인이었다.
하지만 임수호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다수가 오우거 쪽에 큰 돈을 걸었기 때문이다.
결과가 예측 가능했기에, 판돈은 평소보다 컸다.
크르르르···.
창살 안에서 오우거가 불규칙하게 으르렁대는 소리가 들렸다. 한건우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소리가 묘한데?’
먼저 반대편 문이 열렸다.
임수호와 임진호 형제가 등판했다.
그들 형제도 처음에는 여러 명의 팀원이 있었다.
중간에 한 명씩 희생되었을 뿐.
한건우는 그들의 무기를 살펴보았다.
칼과 방패의 수준은 아까 본 것과 거기서 거기였다.
주최측에서 주는 무기는 형편없었다.
‘그러니 법사나 주술사가 유리할 수밖에.’
그때 관중석에서 동요하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림수호 형제라는 외팔이 놈···. 무기가 없는데?”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원래 임진호는 잘린 왼쪽 팔뚝에 짧은 검을 붕대로 묶고 싸웠다.
그러나 오늘 임진호의 착장은 달랐다.
우선 공격 무기를 전혀 들지 않았다.
멀쩡한 오른팔로, 큰 무쇠 방패 하나만 들고 있었다.
한건우의 조언을 따른 것이었다.
쿠과과과광!
오우거가 문을 부수고 뛰쳐나왔다.
쏘아진 대포알 같은 기세였다.
“허어억!”
“와···.”
산전수전 다 겪은 도박꾼들조차 숨을 삼켰다.
크르르···..
오우거가 으르렁댔다.
오우거는 워 해머를 들고 있었다.
한건우가 인상을 썼다.
‘저건···?’
분명히 보통 오우거와는 달랐다.
그 오우거의 눈알 흰자위는 핏빛이었고, 온몸의 떨림을 주체 못하는 듯했다.
한건우에게는 익숙한 모습이었다.
‘버서커 약물을 맞췄구나.’
한건우는 확신했다.
그건 블랙마켓에서나 구할 수 있는 불법 약물이었다.
마수나 사람을 강제로 ‘버서커’ 특성이 발동한 것처럼 만들어버리는 약물이었다.
그러나 한건우는 동요하지 않았다.
‘저 정도는 수호가 해결할 수 있어.'
쿵, 쿠웅, 쿵쿵쿵쿠쿠-.
오우거 버서커가 워 해머를 치켜들고 임수호에게 포악하게 뛰어갔다.
탐나는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 같았다.
그 전에 임수호가 침착하게 자신의 특성을 썼다.
[특성 발동 : 빙정난류]
얼음 결정을 다루는 특성.
임수호는 그 특성의 진가를 모르고 있었다.
물을 조금 얼리는 것 외에는, 별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무한했다.
어제 한건우는, 임수호에게 단 한 가지를 알려줬을 뿐이었다.
‘물을 얼릴 수 있다고? 그게 전부가 아냐. 너는 언제 어디서나, 보이지 않는 공기 중의 수분도 얼릴 수 있어.’
‘!’
임수호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걸 깨닫자마자, 임수호는 공기 중의 수분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 걸어둔 특성의 제약이 사라진 것이었다.
형 임진호가 든 철제 방패에 순식간에 성에가 끼었다.
샤아아-.
단지 얼어붙는 데 그치지 않았다.
표면에 고드름 같은 게 점점 자라나더니, 방패 전체의 넓이가 얼음 조각에 뒤덮여 두 배나 커졌다.
치지지지직···.
방패의 표면은 칼날처럼 날카로운 얼음 결정으로 완전히 뒤덮였다.
임진호는 방패를 든 채로 오우거가 뛰어오는 쪽으로 돌진했다.
[특성 발동 : 일점돌파]
임진호의 특성이었다.
원래 검을 들고 돌파하는 데 썼지만, 이번에는 다른 용도였다.
쿠과광-!
임진호는 달려오는 오우거의 몸통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걸 본 한건우가 미소를 지었다.
‘길드에 훌륭한 탱커가 생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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