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44화 (44/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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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견장 (1)

한건우가 향한 곳은 함경북도 최북단.

한국 최악의 빈민굴이 있는 곳이었다.

러시아,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 도시는 슬럼가 그 자체였다.

근처에 미공략 균열이 터진 것도 아닌데도 그랬다.

정부도 완전히 손을 놨다는 소문이 있었다.

실제로는 의도적인 방치에 가까웠지만.

“후우···.”

최상급 플레이어는 신체의 오감이 발달하기 마련.

멀리서부터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행인들의 행색은 초라했고, 눈빛은 혼탁했다.

주민 절반은 약쟁이고, 나머지 절반은 도박꾼이라는 말이 있는 곳.

더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각성자라는 것이었다.

이곳은 한국 각성자들의 최종 막장, 지옥이라고 불리우는 <7룡성>이었다.

‘각성자가 되면 다 잘 먹고 잘 사는 줄 알지만···.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긴 하지.’

각성자는 끊임없이 마수와 싸우다가 반 폐인이 되는 경우가 꽤 있었다.

몸의 상처는 힐러가 치료하지만, 마음은 병드는 줄도 모르는 것이다.

현실세계에 적응을 못하고 사고를 치는 위험한 각성자들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언젠가부터 그런 이들은 이곳으로 흘러들어왔다.

“투견 언제 열린대?”

“내일 정오.”

“거, 형씨. 내일은 종이 뭐요?”

“누가 그러던데... 오우거 나올 것 같다고?”

“오···. 간만에 재밌겠는데?”

“정확한 건 모르지. 하여간 역대급 판돈이라니까, 일찍 와서 대기 타쇼.”

금요일 밤, 이곳은 평소와 달리 묘한 활기를 띄었다.

내일은 <투견>이 있는 날이었다.

이들이 말하는 <투견>은 진짜 개 싸움이 아니었다.

마수와 각성자 간의 싸움이었다.

불법으로 포획한 마수들.

그리고 빚 때문에 7룡성에 제 몸을 판 각성자들.

그 둘이 구경꾼 앞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다.

도박꾼들은 전 재산을 내기 판돈으로 걸었다.

경기가 끝나면 또다른 빚쟁이들이 생겨났다.

이곳은 그런 곳이었다.

‘대체 어디 있는 거냐, 임수호.’

한건우는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행인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지금 임수호의 나이는 19세일 것이다.

임수호와 그의 형 임진호, 그리고 한건우와 한지윤.

넷은 어린 시절 같은 보육원에서 자랐다.

요즘 시대에 흔하디 흔한 ‘균열 고아’였다.

임수호 형제가 북쪽으로 입양을 가면서, 그들은 헤어졌다.

나중에 이능력 특수전단에서 임수호를 다시 만났을 때, 얼마나 반가웠던가.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난 듯했다.

‘건우 형.’

‘살아 있었구나···. 진호는 잘 있고?’

‘···진호 형은 죽었어.’

‘···.’

인사는 짧았지만, 그 속에 담긴 감정은 깊었다.

임수호는 뛰어난 법사였다.

물과 얼음을 다루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한건우의 오른팔이자, 둘도 없는 참모가 되었다.

그야말로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사이였다.

비록 마지막 기억은 좋지 못했지만···.

한건우가 이곳을 찾아온 건, 임수호가 지나가듯 흘린 한 마디 때문이었다.

‘7룡성··· 특수전단 들어오기 전에 거기서 지냈죠.’

그 외에 아무런 실마리도 없었다.

당연히 정확한 주소 같은 건 몰랐다.

임수호는 입대 전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만일 이번에 그를 찾지 못한다면, 뚜렷한 방법은 없었다.

또다시 <솜브라>에 의뢰하고 기다리는 수밖에.

요즘 솜브라는 다른 미등록자 조직과의 갈등으로 여력이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의뢰를 해결할 수 있을까?

여유가 있으면 기다리겠지만, 한건우도 하루가 급한 상황이었다.

‘이러다 금해준 말대로, 건물 앞에 줄 선 지원자 중에서 길드원을 뽑게 생겼군.’

그건 안 될 말이었다.

평범한 길드가 목적이라면 그래도 상관 없겠지만···.

이곳에 임수호가 있다면, 꼭 찾아내고 말리라.

‘일단 투견장 근처에 가보자.’

투견이 있는 주말에는, 성냥갑 같은 빈민촌에서 지내는 사람들도 다 길거리로 나온다고 들었다.

투견 경기는 내일이었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은 있었지만, 북적이는 정도는 아니었다.

한건우는 천천히 걸으면서 주위를 살폈다.

한건우는 조용히 <진동 감지> 특성을 발동했다.

<진동 감지>는 2차 개화를 통해 한 단계 발전했다.

원래는 손바닥을 벽에 대고 건너편의 소리를 듣는 정도였다.

이제는 발을 딛고 선 지면을 통해, 주변의 거의 모든 소리를 감지할 수 있었다.

한건우는 모인 이들의 대화를 하나하나 훑듯이 들어봤다.

마치 생체 레이더를 켠 듯했다.

“들었어? 내일 오우거 푼다는 말.”

“음···. 그거 상대할 만한 선수는 있고?”

“없지. 아마 뼈도 못 추릴걸.”

오우거는 키가 4m에 이르는 흉폭하고 막강한 마수였다.

중급 균열의 주인급 정도 되었다.

오우거 사냥은 경험 많은 파티가 모여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 오우거를 경기장에서 상대하게 하다니, 충격적인 일이었다.

“내일은 필승해야 하니까, 마수 편에 걸어야겠네.”

“배당이 1.1보다 낮겠네. 이겨 봐야 무슨 소용이야.”

“그럼 넌 각성자 편에 걸게?”

“미쳤어?”

낄낄대는 웃음이 들렸다.

흔한 투견 중독자들의 대화였다.

더이상 관심이 안 갔다.

한건우가 다른 무리의 대화를 들어보려 할 때였다.

“내일이 림수호 마지막 경기겠군.”

“아쉽다. 그놈이 그나마 볼만했는데.”

“림수호가 얼마나 버텼지?”

“여덟 경기.”

“그만하면 오래 버텼지 뭐···. 7룡성에 선수로 팔려가서 죽은 어린애가 한 둘이야?”

“...?”

한건우는 귀를 의심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임수호가··· 투견장에 선수로 나가고 있다고?’

7룡성의 각성자 중에 ‘임수호’라는 이름이 또 있지는 않을 테고.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지만, 그런 얘기는 한번도 듣지 못했다.

회귀하고 바로 임수호부터 찾으러 갔어야 하는데.

무심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한건우는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그의 머리는 한없이 차가워졌다.

***

7룡성의 수뇌부가 있는 곳을 찾는 건 쉬웠다.

지저분한 도시 한가운데에 큰 탑이 솟아 있었다.

‘7룡성’이라는 이름처럼, 탑 지붕에는 일곱 종류의 드래곤을 장식해놓았다.

소재앙급에서 재앙급에 이르는 화룡, 수룡, 지룡, 빙룡, 뇌룡.

그리고 신화급 마수인 광룡과 암룡.

도시 분위기와 안 맞게, 탑의 장식은 거창하고 화려했다.

‘일단 임수호를 만나야 해.’

저녁 7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다.

해결할 수 있었다.

그가 돈 때문에 팔렸다면, 돈을 주고 빼내오면 될 일이었다.

한건우는 <그림자 맹시>를 써서 탑 안으로 숨어들었다.

탑의 중간층 정도에서, 한건우는 투견장의 ‘선수’들로 보이는 사람들의 방을 찾아냈다.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거기만 독특한 구조였으니까.

‘교도소 독방과 비슷하군.’

독방은 한쪽 면이 창살로 되어있었다.

복도에서 방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우선 복도를 어슬렁거리는 경비원 같은 놈이 둘.

경비원은 하급 각성자로 보였다.

‘조용히 처리하자. 뒤탈 없게.’

[특성 발동 : 그림자 맹시]

스슥-.

한건우는 순식간에 그들의 등 뒤로 달라붙었다.

퍼억!

퍽!

뒷목에 깔끔한 한 방을 먹였다.

“억.”

“크흑.”

경비원들은 기침 같은 숨소리만 내고, 영문도 모른 채 기절했다.

풀썩!

경비원들이 나란히 앞으로 엎어졌다.

한건우는 그들의 허리춤을 뒤져서 열쇠 꾸러미를 꺼냈다.

‘정신을 차리려면 적어도 30분···. 길면 1시간 정도는 걸리겠군.’

마석으로 된 창살 너머 독방에는 각성자들이 한 명씩 들어있었다.

제각기 침상에 눕거나 앉은 채였다.

한건우는 그림자 속에 숨은 채, 그들을 확인하며 지나쳤다.

‘이상하군.’

조용히 제압하긴 했지만, 기척을 완전히 없앤 건 아니었다.

밖에서 소리가 나면 호기심을 가지는 게 정상 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갇힌 각성자들의 분위기는 어둡고 침울했다.

탈출하려는 생각조차 없어보였다.

마지막 복도 끝방에서, 한건우는 임수호를 찾아냈다.

“....”

얼굴이 조금 핼쓱해지긴 했지만, 건장한 체격은 여전했다.

임수호는 멍하니 허공을 보고 앉아있었다.

한건우는 자신이 아직 <그림자 맹시>를 풀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한건우가 복도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두건을 벗었다.

임수호는 한건우와 눈이 마주쳤지만, 아직도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다.

“...수호야.”

“...?”

“나야, 한건우.”

임수호는 머뭇거렸다.

그의 표정은 반가움보다 당혹에 가까웠다.

“...건우 형?”

“그래.”

임수호가 철창으로 가까이 다가와서 복도 쪽을 살폈다.

“이게 어떻게···. 말도 안 돼. 형이 여기는 왜 왔어?”

임수호의 얼굴을 보니, 최근 바깥 소식은 전혀 모르는 모양이었다.

뉴스나 신문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 한건우가 S급으로 각성했다는 것 정도는 알았을 테니까.

“뭐야. 누구 왔어?”

임수호 옆에 담요를 덮고 누워있던 사람이 비척거리며 일어났다.

쌍둥이 형인 임진호였다.

“...!”

임진호가 아직 살아 있었구나.

한건우가 동요했다.

“수호야, 진호야. 여기서 나가자.”

한건우가 경비원에게서 빼앗은 열쇠로 문을 열려고 했다.

“···안 돼.”

“뭐?”

임수호는 반기기는커녕 손사레를 쳤다.

현실 변화를 못 받아들이고 부정하는 것일까?

“내가 빼내 줄 수 있어.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 없으니.”

“···꼭 돈 때문이 아니라···.”

임수호는 그간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보육원에서 입양을 가고 나서, 처음에는 좋았는데 살아보니 몹쓸 집이었다고 한다.

쌍둥이 형제는 곧 가출했다.

임수호와 임진호는 남들보다 일찍, 청소년기에 각성했다. 둘은 각성 시기도 거의 비슷했다.

일란성 쌍둥이에게 종종 보이는 현상이었다.

첫 각성 등급은 둘 다 C급.

그 정도면 각성자 중에서 상위 5% 이내. 제법 쓸만한 등급이었다.

형제는 곧바로 동반 입대하여 복무를 하고 나왔다.

어두웠던 형제의 인생에 빛이 들기 시작했다.

좋은 길드의 헤드헌터로부터 연락도 오고, 조건을 재고 있던 때···.

그들 형제에게 불행이 닥쳤다.

잠깐 일당이 필요해 용병으로 들어갔던 균열이 문제였다.

“뭐라고?”

“형이... 나를 구해주려다 악마종 마수한테 물려서 팔이 잘렸어. 그것도 왼팔이···.”

임수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고개를 숙인 임진호의 왼손 팔뚝이 허전했다.

그는 잘린 팔뚝에 붕대를 감은 채였다.

타격이 클 것이다. 두 형제는 왼손잡이였으니까.

그러나 각성자라면 회복 가능한 부상 아닌가?

“치료소 힐러가 회복시켜 줄 수 있지 않아?”

“특수한 암흑 계열 디버프를 먹었는데, 딱히 치료할 수 있는 힐러가 없어서···.”

“....”

수소문해서 찾아간 치료소는 악명 높은 곳이었다.

실력은 좋았지만, 치료비를 다른 곳보다 몇 배나 비싸게 받았다.

형제는 아직 목돈이 없었다.

소속 길드가 없으면 은행 대출도 별로 안 나왔다.

임수호는 급히 여러 길드에 문을 두드렸지만, 이상하게도 하나같이 그를 문전박대했다.

그전에는 원하는 연봉을 먼저 불러보라던 곳들이었다.

치료소는 자체 금융서비스를 연결해주었는데···.

이 다음부터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치료비는 쌓이고,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러나 치료소를 쉽게 옮길 수도 없었다.

형의 팔은 분명히 회복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속도는 감질나게 느렸지만.

몇 달이 지났다.

임수호 형제는 더이상 빚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치료비로 불어난 사채를, 결국 ‘7룡성’이 사들였다.

그리고 7룡성은 유혹적인 제안을 했다.

“<투견> 경기를 딱 10번만 나가면 형 팔이 다 나을 때까지 치료해주고, 치료비랑 이자 전부 탕감해준다고 해서··· 이미 계약서 썼어.”

“....”

7룡성에서 쓰는 계약서라면, 페널티 역시 터무니없이 강력할 것이다.

“내일이 아홉 번째야. 어떻게든 두 경기만 버티면 다 해결돼.”

임수호의 눈빛은 절박했다.

그게 희망 고문이라는 걸 몰라서는 아니겠지.

<투견>을 열 경기나 버틴 각성자는 한 명도 없었다.

한건우는 마음이 괴로웠다. 마치 자기의 옛 이야기 같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원래는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거지?’

분명히 임수호는 살아남아서 이능력 특수전단에 들어왔다.

정말로 <투견> 열 경기를 버티고 계약대로 나온 것일까?

어차피 지금 그걸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부터는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한건우는 쌍둥이 형제를 마주보았다.

그들은 다른 독방에 있는 각성자들과는 달랐다.

눈빛에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좋아. 내일 경기에서 이기고 싶다면, 이제부터 잘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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