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43화 (4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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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가치

한건우는 구조대 국장이 왜 망설이는지 훤히 알았다.

‘이 딜을 받아도 되는지 고민되나 보군.’

분명히 정부에 이익이 되는 거래는 맞다.

그러나 섣불리 진행시키기 조심스러울 것이다.

국장의 생각은 이랬다.

‘혹시 나중에 한건우 플레이어가 왜 자세히 말해주지 않았냐며 따지기라도 하면···?’

차림새와 외모를 볼 때, 구조대 현장대원 출신 같았다.

말단에서 국장까지 승진한 사람이면, 멍청할 리는 없었다.

가장 피해야 할 것은, 소탐대실.

S급 플레이어와 척을 지는 건 곤란하겠지.

한건우는 국장의 갈등을 덜어주기로 했다.

“저도 사정은 알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예? 아···.”

구조대 국장은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저건 현재 진행형인 미공략 균열이죠. 그 관리권을 누가 받으려고 하겠습니까? 정부에서 돈을 준다고 해도 아무도 안 받을 겁니다.”

“그렇죠.”

국장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가 관리권을 받게 되면, 이득만 가져가는 게 아니었다.

그 균열로 인해서 생기는 손해도 모두 배상해줘야 했다.

아직 파훼되지도 않은 균열인데, 누가 그런 리스크를 지려고 할까.

솔직히 말할까 하고 망설이던 이야기였다.

한건우 쪽에서 먼저 얘기해주니, 차라리 고마웠다.

“저는 아무래도 저 균열의 파훼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입니까!”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국장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가 납득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했다.

“못 찾는다 해도 C급 균열 수준이니까요. 국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관리할 자신은 있습니다.”

“...그야 그러시겠지만, 왜 굳이 이렇게···.”

국장은 아직 납득을 못 하고 있었다.

한건우가 실마리를 풀었다.

“미공략 균열 파훼법이 발견되고 나면, 관리권 경매에 많은 길드가 참여하죠?”

“네, 당연히 그렇습니다.”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저는 현재 관리권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예?”

“제 길드 설립을 준비하고 있지만, 아직 정식 허가는 받기 전이거든요.”

“아아···.”

국장이 뭔가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충 한건우가 하려는 말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제가 길드 허가를 최대한 빨리 받아와도, 관리권을 따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경험과 자본력이 많은 대형 길드들과 경쟁해야 하니까요.”

“그렇겠군요.”

국장은 한건우의 제안을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한건우의 말을 안 받아주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자기가 관리권을 못 딸 것 같으면··· 파훼법을 알고도 적극적으로 안 나설지도 모르겠군?’

정부 소속 플레이어가 아니니, 억지로 시킬 도리도 없었다.

국장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행비서를 호출했다.

“김 주임, 본부에 연락해서, 균열 관리권 허가 검토 준비하라고 해.”

“예? 국장님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달려온 수행비서가 어리둥절했다.

물론 균열 관리권 허가는 구조국장의 업무이긴 했다.

하지만 타이밍이 이상했다.

‘설마 이 균열 관리권 얘기는 아닐테고···. 지금 여기 현장 정리를 하기도 바쁜데, 무슨 소리시지?’

비서가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않자, 국장이 혀를 끌끌 찼다.

“자네도 참 눈치가 없구만···. 지금 한건우 플레이어가 이 <빙하기의 어둠> 균열 관리권 얘기를 하러 오신 거야. 바로 허가할 수 있도록 준비 시켜.”

“엇, 넵!”

놀란 비서가 뛰쳐나갔다.

국장은 천막 한켠에 놓인 주전자에서 직접 차를 내왔다.

국장은 차를 내주며, 한건우를 새삼스레 살펴보았다.

‘이 젊은이, 꽤 야심이 있군 그래.’

스무 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았다.

날카롭고 노련한 눈빛.

거침없고 당당하지만, 오만하지 않은 태도.

다른 각성자들과는 사뭇 달랐다.

‘최근에 이런 각성자를 본 적이 있던가?’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한 치 앞만 보는 경향이 있었다.

각성한 지 얼마 안 되고 등급이 높으면 더욱 그랬다.

순식간에 강해진 힘에 취하고, 180도 변한 삶에 들뜬다.

그러면 즉각적인 자극만 추구하기 마련이다.

그 정도까지 되지 않더라도, 각성자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했다.

길드에서 받는 높은 보수, 그리고 인기와 명예.

그런데 한건우는 벌써 한 발 더 앞서나가고 있었다.

스무 살에 이 정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장차 어떻게 발전할지 무섭기까지 했다.

심지어 각성자 등급은 S급.

‘서른... 아니 스물다섯 쯤엔 엄청난 거물이 되겠어. 살아남기만 한다면···.’

국장은 한건우를 그렇게 평가했다.

***

길드 건물 옥상.

금해준은 엄청난 소식에 정신을 못 차렸다.

시시각각 변하는 금해준의 얼굴이 조금 신기하기도 했다.

“예에? 그 균열의 관리권을 따셨다고요? ...대체 왜요?”

사색이 된 금해준이었다.

“잠깐, 생각해보니 아직 길드가 정식으로 만들어진 게 아닌데... 어떻게 허가를 받으셨나요?”

그는 나름대로 날카롭게 허점을 파고들기도 했다.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형님, 무슨 생각이신 건지 저도 좀 알려주십시오.”

금해준은 한건우를 신뢰해 왔다.

정확히는 자신의 안목을 믿었다.

그래서 한건우를 따라 쭉 가보기로 한 것이다.

금해준에게도 큰 모험이었다.

아무리 모험이어도, 이건 너무했다.

‘이상하다, 형님이 막 나가실 분은 아닌데···.’

금해준은 한건우와 함께하고 나서, 처음으로 속이 답답했다.

자칫하면 길드가 시작하자마자 큰 손해를 보게 생겼으니까.

한건우가 물었다.

“너희 LK건설. <피라미드> 공사 수주도 하지?”

“예···. 물론이죠.”

한건우가 갑자기 딴 소리를 하자, 금해준은 갸웃하면서도 순순히 대답했다.

LK건설은 LK그룹의 핵심 계열사 중 하나였다.

현금을 다발로 벌어오는 효자 계열사이기도 했다.

사업의 상당 부분은 정부에서 수주한 <피라미드> 건설이었다.

기술력이 좋은 편이라 외국에 기술 수출을 하기도 했다.

“이번 <빙하기의 어둠> 균열도 일단 피라미드를 씌울 텐데, 그 공사 수주는 웬만하면 너희 계열사가 받도록 해. 가능하겠어?”

금해준의 눈이 반짝였다.

평소에는 눈치가 없지만, 가끔씩 타고난 감각을 보이는 금해준이었다.

특히 그는 숨겨진 가치를 볼 줄 알았다.

그것 덕분에 재벌 회장인 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형님. 그 미공략 균열 안에 뭔가가 있었군요.”

“그래.”

“정부나 다른 길드에는 보여주기도 싫을 만큼 귀한 것인가 보네요?”

금해준이 완전히 감을 잡았다.

한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계의 고대 무덤, 그리고 의미심장한 ‘예언 석판’.

이것만 해도 중요해 보이는 정보이긴 했다.

그러나 한건우에게 당장 와닿는 건, 드래곤의 사체였다.

‘그것만 분해해서 팔아도···.’

드래곤의 사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버릴 게 하나도 없었다.

비늘, 발톱, 가죽, 뼈, 고기.

모두 다 전설급 아이템의 재료가 되었다.

간혹 균열 안에서 백골화된 드래곤 뼈만 발견되어도 난리가 날 정도였다.

같이 들어간 파티원들끼리 드래곤 뼈를 서로 가지려고 싸우고, 심하면 살인까지도 났다.

PK(Player Killing), 즉 각성자 살인은 정말 흔치 않은 일이었다.

우선 각성자는 생명력이 끈질겨 일반인보다 훨씬 죽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것뿐이라면, 강한 각성자가 약한 각성자를 죽이는 걸 막기 어려울 터였다.

핵심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PK를 하면 그 즉시 이능력 특수전단의 목표물이 된다.

한건우가 대장으로 있었던 각성자 잡는 특수부대, 이능력 특수전단.

목표물을 잡을 때까지 지옥까지 쫓아온다는 그 부대였다.

그러니 돈 때문에 PK를 한다는 건, 욕심에 눈이 멀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뼈만 가지고도 그런 일이 벌어질만큼, 드래곤 사체의 가치는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드래곤의 심장.’

드래곤 하트는 그야말로 마정석 중의 마정석이었다.

예외적으로 뇌룡의 심장만이, 아무 가치가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물론 실제로는 딴판이었지···.’

“하아···. 처음부터 말해주시지. 정말 식겁할 뻔했습니다.”

금해준은 드디어 막혔던 숨이 쉬어진다는 듯 오버하며 심호흡을 했다.

“그런데 형님, 그 귀하다는 건 대체 뭡니까?”

“드래곤 사체야. 아이스 드래곤.”

“컥!”

금해준은 침을 삼키다 사레가 들렀다.

꺽꺽대면서 숨도 쉬지 못했다.

“아직 썩지 않고 멀쩡하게 있더군.”

“...!”

냉동 보관된 드래곤 사체라니.

길드의 시작이 좋았다.

“그래서 말인데, 길드 허가를 앞당겨야겠어.”

“물론이죠! 저도 빨리 정식 운영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그것 때문이 아냐.”

법에 따르면 균열 관리권은 개인 자격으로는 받을 수 없었다.

오로지 길드만 가능했다.

한건우는 구조국 본부에서 받아온 허가서를 내밀었다.

길드 이름을 쓰는 칸은 비어있었다.

길드 마스터를 쓰는 칸에만 한건우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구조국장은 최대한 한건우에게 유리하게 해주려고 애썼다.

하지만 법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했다.

결국 구조국에서 찾아낸 해법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적으로 한건우의 이름으로 허가권을 내준다.

다만, 이 허가의 효력은 정식으로 길드가 꾸려진 다음부터 시작된다.

“어··· 이 말은 그럼···.”

“맞아. 길드가 정식으로 시작을 해야만, 균열 안에 있는 것들을 합법적으로 가질 수 있어.”

“헉!”

금해준의 눈이 뒤집혔다.

드래곤 사체를 정부에 뺏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급해진 모양이었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급한 대로 오늘 당장 5명을 채우죠···!”

“뭐?”

“저 사람들 중에서 제일 괜찮은 플레이어로 뽑으면 어떨까요?”

옥상 난간에 붙은 금해준이 아래쪽을 가리켰다.

“?”

한건우는 뭔가 하고 따라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건물 앞에는 어느새 각성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이 일반인이 아니라는 것은, 멀리서 풍겨오는 기운만 느껴도 알 수 있었다.

의아해진 한건우가 중얼거렸다.

“저 자들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우리 길드에 들어오려고 기다리는 겁니다.”

“뭐?”

아직 길드가 생기지도 않은데다가, 건물 내부공사도 진행중이었다.

무엇보다 모집 공고를 낸 적도 없었다.

금해준이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요즘 각성자들 사이에서 ‘S급 한건우 플레이어가 LK그룹 3세와 손잡고 대형 길드를 만드려고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합니다. 아주 장안의 화제라네요.”

“흠···.”

정식으로 채용 공고를 낸 것도 아닌데 무턱대고 찾아오다니.

환상을 가진 초보 각성자들일 가능성이 컸다.

“정식 전투원은 말고, 행정요원이 필요하면 네 직권으로 몇 명 뽑아도 상관없어.”

“아하··· 네.”

“전체 지원자 명단은 따로 나에게 보여주고.”

한건우는 미리 당부했다.

만에 하나, 진흙 속의 진주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런 일은 거의 없겠지만.

“네, 전투원은 전에 말씀하신 대로죠?”

“그래. 데려올 사람들이 있어.”

“알겠습니다. 형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금해준은 선선히 대답했다.

길드 허가를 받으려면, 정식 길드원으로서 전투요원 5인 이상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딱 5명이서 길드를 만드는 경우는 드물었다.

일성이나 환인, 알파스 같은 대형 길드는 수백 명의 전투원을 데리고 있었다.

하위등급 각성자나 일반인인 행정요원까지 합하면, 인원이 더 많았다.

금해준은 나름대로 독창적인 길드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었다.

‘전투원은 소수정예 5인 원팀으로 하되, 그걸 지원하는 전담팀 위주로 구성해야지.’

길드의 중심은 최강자인 길드 마스터와 그 파티여야 한다.

‘보안유지가 필요없는 잡일은 우리 계열사에 외주를 줘서, 인력은 컴팩트하게 가고.’

금해준은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게 있었다.

길드를 매니징한다면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꽤 구체적으로 상상했다.

남들이라면 망상에 그칠 일이었다.

금해준은 달랐다.

그걸 실제로 해볼 자본이 있으니까.

거기다 오늘 한건우에게 들은 드래곤 사체에 관한 정보를 더하면···.

‘균열 채굴 전담팀도 있어야겠다. 아이템 연구도 필요한데··· 그룹 연구소에서 파견교육 형식으로 인재풀을 좀 데려오자.’

길드 시스템을 제대로 돌리려면, 강한 각성자뿐만이 아니라 유능한 직원들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금해준은 LK그룹에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꿈에 부풀어 있을 때, 한건우가 말했다.

“내일부터 난 잠시 없을 거야.”

“아하. 길드원을 데려오러 가시는군요. 은설아 플레이어도 함께 가나요?”

한건우는 고개를 젓고 돌아섰다.

“애들이 갈 데는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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