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42화 (4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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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는 못 주겠군

얼음 벽 틈으로 뭔가가 튀어나와 있었다.

뾰족한 세모 모양의 끄트머리였다.

한건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저건··· 꼬리?”

자세히 보니 파충류형 마수의 꼬리 같았다.

굵기는 사람 팔뚝만했다.

‘먼 옛날에 묻힌 마수 사체인가?’

기온이 낮으니 꽁꽁 얼어서, 썩지 않고 남았나 보다.

빙하 속 깊이 묻혀있는 걸 보니 꽤 오래된 사체 같았다.

살다 살다 마수 화석까지 보게 되다니.

‘이런 얘긴 처음 듣는데.’

빙하기 균열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다른 균열이라면 마수가 죽어도 시체가 썩거나 다른 마수들이 뜯어먹었을 테니까.

한건우가 기억하기로, 빙하기가 온 이계와 연결된 균열은 한국에 여기뿐이었다.

타다닥···.

해자 밑으로 내려간 샤벨 타이거 세 마리가 경쟁했다.

빙벽에 튀어나온 파충류 꼬리를 물고, 장난감 가지고 놀듯이 당겼다.

단단히 파묻힌 꼬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한건우는 갑자기 낯선 감각이 밀려왔다.

그건 본능적인 거부감에 가까웠다.

‘...뭐지?’

그냥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뭔가 수상했다.

한건우는 은설아를 보며 손짓을 했다.

샤벨 타이거를 멀리 보내달라는 뜻이었다.

타닥 탁···.

세 마리의 샤벨 타이거가 황급히 몸을 피했다.

한건우는 빙하를 더 녹여보기로 했다.

[특성 발동 : 아그니의 화염]

콰과과···.

솨아-.

꼬리 주변의 빙벽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얼음이 녹으면서 점점 더 많은 부분이 드러났다.

“어?”

은설아가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 팔뚝만하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가느다란 끄트머리라서 그런 것뿐이었다.

그 꼬리는 생각보다 크고 길었다.

사람의 팔뚝이 아니라, 허벅지만···

아니 사람의 몸통만한가?

“....”

그 이상이 되자, 한건우는 마창 게이볼그를 꺼내들었다.

“저게··· 뭐예요?”

“아직 모르겠어.”

솨아아아···.

주변의 빙벽이 다 녹아내렸다.

빙하가 녹으면서 드러난 것을 보고, 한건우와 은설아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드래곤.’

가장 약한 개체도 소재앙급 마수라는 드래곤이었다.

흰색에 가까운 은회색 비늘로 뒤덮여 있는 것을 보아 하니···.

‘빙룡(氷龍). 아이스 드래곤.’

“아저씨, 저거 죽은··· 거죠?”

“어떤 것 같아?”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잠들어 있거나 가사 상태일 수도 있었다.

은설아라면 알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은설아는 겁에 질린 그리핀을 달래서, 해자 쪽으로 조금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가 정신을 집중했다.

하얀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다.

“...죽은 것 같은데요. 반응이 하나도 없어요.”

“다행이군.”

한건우도 진짜 드래곤을 사냥해본 적은 없었다.

와이번이나 살라만더 같은 아룡종은 잡아봤지만.

저게 살아있는 드래곤이라면 당장 도망쳐야 했다.

S급 플레이어 몇 명이 와도 드래곤 앞에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슈우-

탁!

한건우는 해자 아래로 뛰어내렸다.

<아그니의 화염>을 완전히 잠재우고, 죽은 빙룡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은설아도 그리핀을 타고 내려왔다.

“저 뒤쪽에 문이 있는데요?”

“뭐?”

한건우는 은설아가 가리킨 쪽을 보았다.

정말이었다.

빙룡의 사체 뒤에, 매끄러운 외벽 같은 게 살짝 드러나보였다.

그 벽에는 커다란 문이 달려 있었다.

"...."

“얘가 여기 앞을 지키고 있었나 본데요?”

“지킨다고?”

“네.”

은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 때문에 그런 확신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위치나 자세만 따지면 그럴싸했다.

빙룡은 문 앞에 가만히 앉은 채로 죽어있었다.

마치 지옥문 앞을 지키는 케르베로스처럼....

한건우는 빙룡의 다리를 타고 넘어서, 문 앞으로 다가갔다.

어떤 건물의 일부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주변을 다 녹이자니, 한참이 걸릴 것 같았다.

“들어가 보시게요?”

“보고.”

문에는 손잡이는 안 보였고, 작은 열쇠 구멍만 하나 있었다.

“음···.”

문을 밀어도 보고, 주먹으로 때려 보기도 했다.

예상은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강철도 패일 법한 주먹인데, 흠조차 나지 않았다.

“열쇠 같은 거 없어요?”

은설아가 열쇠구멍을 가리키며 순진하게 물었다.

“그런 게 있을 리가···.”

한건우는 잠깐 뭔가가 생각났다.

‘설마.’

변이 균열을 해결하고 받았던 보상 아이템.

이 시스템은 어려운 과업을 해결할수록 좋은 보상을 준다....

‘그 열쇠?’

한건우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아이템을 꺼냈다.

낡은 청동색 열쇠였다.

[아이템 : 숨겨진 방의 열쇠]

-놀라운 업적 달성 보상.

-???.

이걸 얻고 실망했던 기분이 생생했다.

당장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보상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꼭... 열릴 것 같은 각인데?’

한건우는 홀린 듯이 열쇠를 열쇠구멍에 넣었다.

철컥.

당연하다는 듯이, 열쇠가 돌아갔다.

띠링-.

[아이템 : 숨겨진 방의 열쇠]

-놀라운 업적 달성 보상

-'예언 석판' (1 / 7)

원래 가려져있던 부분이, 새로운 정보로 바뀌었다.

‘예언 석판? 1/7? 이게 다 뭐지.’

한건우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물음표가 생겨났다.

생각할 새도 없이, 문이 스르르 열렸다.

“아저씨. 들어가실 거예요?”

“응. 넌 여기 있어.”

“....”

“혹시 내가 너무 늦게 나온다 싶으면, 바로 그리핀을 타고 균열 밖으로 나가.”

은설아는 잔뜩 겁에 질려 얼굴이 파래졌다.

“이 안에 뭐가 있으면 어떡해요?”

“당연히 뭐가 있어야겠지.”

그렇지 않으면 들어가는 보람이 없다.

한건우는 창을 쥐고 문 안으로 들어갔다.

여차하면 방어를 해야 하니, 보호 특성을 준비하고 있었다.

“....”

긴장한 것이 무색하게, 안쪽은 고요했다.

개미새끼 한 마리 없었다.

실내 벽은 아무 장식이 없이 매끄러웠다.

실내 전체가 한 눈에 들어왔다.

‘별로 넓지는 않군.’

벽과 기둥을 자세히 보고, 한건우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벽은 매끄러운 게 아니었다.

온통 알 수 없는 이계의 문자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것도 한 가지 문자가 아니었다.

여러 가지 언어로 쓰여진 것 같았다.

한건우는 언어의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글자의 생김새와 구조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니, 같은 말이 여러 가지 언어로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어딘가 섬뜩한 광경이었다.

"...."

언제 트랩이나 마수가 튀어나올지 몰랐다.

한건우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체적으로 보니, 이곳은 하나의 홀이었다.

이곳을 만든 생명체는, 적어도 사람만큼의 지능을 가졌을 것이 틀림없었다.

이 정도 수준의 건축도 하고, 언어도 쓰고 있으니.

어쩌면 인간보다 더 발달한 문명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곳은 아무것도 없이 휑하기만 했다.

인간형 생명체가 쓸 법한 물건은 하나도 안 보였다.

한건우의 생각은 하나로 좁혀졌다.

‘...무덤인가?’

한가운데로 가자, 커다란 석관이 보였다.

예상이 맞았다.

그 안에는 3m 정도의 거인 백골이 하나 누워있었다.

“....”

분명히 인간은 아니었다.

머리뼈가 유난히 크고 길었으니까.

인간형 마수일 것 같았다.

‘여기 전체가··· 이 자 하나의 무덤이라고?’

게다가 이 무덤 앞을 드래곤이 지키고 있다니.

엄청난 낭비가 아닐 수 없었다.

백골 거인의 가슴 위에는 부장품이 딱 하나 놓여있었다.

새까만 금속 판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금속 같았다.

한건우가 눈을 크게 떴다.

‘혹시 그 예언 석판이라는 게···.’

한건우는 그 금속판을 집어들었다.

앞뒤를 면밀히 살폈지만, 뜻밖이었다.

‘아무 글자도 없는데?’

이계의 문자라도 적혀있다면, 기회가 닿는 대로 해석이라도 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쓰여있다니.

벽이나 기둥에는 쓸데없이 빽빽하게 글자를 써놓았으면서 말이다.

혹시나 해서 살짝 열을 가해보기도 하고, 빛을 비춰보았다.

모두 허사였다.

[히든 아이템 : 예언 석판(1 / 7)]

-???

-???

‘어?’

이것 역시 아이템이었다.

그것도 히든 아이템.

한건우는 아공간 금고에 금속판을 넣었다.

그리고 결심을 완전히 굳혔다.

‘여기는 남에게는 못 내주겠군.’

***

균열에서 나오니, 정부 구조대가 출동해있었다.

그리고 기갑 매머드를 비롯한 마수들의 사체는, 금해준이 떡하니 지키고 서 있었다.

“형님! 다 끝내셨군요!”

금해준이 반가워하며 손을 흔들었다.

마수의 사체는 돈덩어리나 마찬가지였다.

감히 한건우 플레이어가 잡은 마수에 손대는 사람은 없겠지만.

괜한 분란을 예방하기 위해 금해준에게 부탁해놓은 것이었다.

“설아 너도. 고생 많았어!”

금해준이 은설아를 보며 밝게 웃었다.

은설아도 쑥스럽게 손을 흔들었다.

얼마 전, 금해준과 은설아를 서로 소개시켰다.

길드 매니저와 미래의 첫 길드원의 만남.

어색할 줄 알았다.

뜻밖에 금해준은 아이와 친화력이 좋았고, 마지막에는 꽤 화기애애하게 헤어졌다.

‘정신연령이 비슷해서 통했던 걸지도···.’

“구급차 더 불러.”

“큰 부상자는 없습니다. 일단 지프차로 대피시켜도 될 듯 합니다.”

정부 구조대가 현장을 정리하고,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

몇몇 대원들이 한건우에게 먼저 다가왔다.

“한건우 플레이어,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뒷처리는 우리가 맡겠습니다. 어서 들어가시죠!”

구조대원 중에서는 이미 한건우와 안면을 튼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들의 태도는 우호적이었다.

경외심 반, 고마움 반이 섞인 눈빛이었다.

한건우는 구조대장에게 다가가 깍듯하게 인사하고 물었다.

“구조대 국장님을 뵙고 싶습니다.”

“앗, 저희 국장님요···.”

구조대장이 머뭇거렸다.

“...특별한 사유라도 있으신지요?”

“직접 뵙고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한건우가 미소를 띤 채로 재차 말했다.

“음, 알겠습니다.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S급 각성자 정도면, 정부 인사를 만나는 건 쉬웠다.

그것도 한건우처럼 요새 떠오르는 거물이면 더했다.

곧 한건우는 현장에 세워진 천막 안으로 안내되었다.

“오, 한건우 플레이어!”

구조대 국장이 벌떡 일어나서 한건우를 맞이했다.

국장은 현장 구조대원과 똑같이 낡은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직접 구조에 참여하고 있었던 듯했다.

국장의 이마에는 땀과 먼지가 묻어 있었다.

한건우가 고개를 숙였다.

“국장님, 안녕하십니까.”

“제가 직접 뵈러 갔어야 하는데요. 우리 국민들 구해주셔서 대신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서로 시간이 많은 사람들은 아니었다.

인삿말을 한 번 나누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디 보자, 한건우 플레이어께서 저를 보자고 한 이유는요?”

“이 미공략 균열. 저에게 관리권을 주십시오.”

국장은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예···? 뭘 잘못 말씀하신 게 아닌지.”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이 <빙하기의 어둠> 균열 관리권이요.”

국장이 머뭇거렸다.

‘한건우 플레이어가··· 뭔가를 한참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파훼법이 밝혀진 미공략 균열은, 정부가 사용료를 받고 길드에 ‘관리권’을 내주곤 했다.

마석을 캐는 광산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냥 미공략 균열은 ‘관리권’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권한이 아니라 의무라고 보아야 했다.

정부는 막대한 인원과 예산을 들여서 미공략 균열을 관리했다.

'설마 한건우 플레이어가 이미 파훼법을...? 아니, 아니야.'

지금도 균열에서 빙하기의 냉기가 불어오고 있었다.

파훼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이걸 덥썩 받아들이면, 정부에는 큰 이익이 될 수 있었다.

반면 한건우 플레이어는 분명히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하지.’

갈등하던 구조대 국장이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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