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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 매머드 사냥 (2)
스윽-
아주 작은 소리였다.
근처의 누가 들었다 해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정도로.
“그어어···.?”
기갑 매머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멍하니 서 있었다.
한건우가 <그림자 맹시>를 풀자, 놀라운 광경이 나타났다.
한건우가 든 마창 게이볼그가 기갑 매머드의 머리에 깊숙히 박혀있었다.
거의 손잡이 부분까지 파고들어 있었다.
“으헉!”
창문 너머로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이 입을 쩍 벌렸다.
“와···. 각성자는 진짜···.”
“저 정도구나. 얼굴 보여? 대체 누구지?”
놀랄 만도 했다.
일반인 중에서는 각성자가 싸우는 모습을 한 번도 못 본 사람도 있었다.
각성자는 기본적으로 균열 안에서만 싸우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바로 옆에서 미공략 균열이 터져서 마수가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런 광경을 생생하게 볼 일은 없었다.
“...저렇게 큰 마수를 혼자서?”
게다가 한건우가 창을 꽂아버린 기갑 매머드는 크기부터 남달랐다.
C급 균열의 주인인 기갑 매머드.
수십 톤에 달하는 몸무게, 그 몸무게를 지탱하는 어마어마한 힘.
빙하기가 온 이계에서, 기갑 매머드는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갑 같은 갑주가 둘러져 있기 때문에 웬만한 무기로는 흠집을 내기조차 쉽지 않았다.
마검의 재료로 쓰이는 샤벨 타이거의 송곳니 정도가 되어야, 겨우 흠집을 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나마 <가시 글리토돈>은 부드러운 배가 약점이라면, 기갑 매머드는 그런 것도 없었다.
기갑 매머드는 자신의 두꺼운 갑주를 믿고 방심했다.
적이 가까이 다가와도, 물리적으로 자신을 다치게 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한건우가 접근해도 크게 경계하지 않았다.
단지 거추장스럽게 여겼을 뿐.
그리고 그 방심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잘 가라.”
제 아무리 두꺼운 갑주를 가져도, 절대로 덮지 못하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바로 눈이었다.
눈알을 파고들어 찌른 창끝은, 아무 저항 없이 쑥 파고들어가서 뇌까지 이르렀다.
‘<그림자 맹시> 없이는 어려웠겠군.’
갑자기 공격이 들어오면 반사적으로 눈을 감기 마련.
그랬다면 창끝이 이렇게 깔끔하게 파고들기 어려웠으리라.
기갑 매머드는 눈꺼풀까지도 딱딱한 갑주로 되어 있었으니까.
“그워어어···.”
창날은 하필 통증을 느끼는 뇌의 부위를 헤집었다.
기갑 매머드는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
쿠웅- 쿵 쿵 쿵!
한건우의 창에 머리가 뚫린 채, 기갑 매머드가 거리를 질주했다.
죽기 전 마지막 발악이었다.
상아를 잡고 올라타 있던 한건우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다행히 거리에 더이상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건물을 정면으로 들이받는다면, 와르르 무너질지도 몰랐다.
다른 때는 몰라도 지금은 곤란하다.
무엇보다 안전하게 제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했다.
‘준비한 무대가 엉망이 되면 안 되지.’
한건우는 창을 손잡이처럼 잡은 채, 급한 대로 새 특성을 시도했다.
체력 스탯이 200을 넘자 개화한 전격 계열 특성.
‘아직 연습은 못 했지만···.’
별로 큰 기대는 안 했다.
이 특성이 요구하는 체력 스탯이 이렇게 높다는 게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2개의 특성을 가진 권사에게서 흡수한 특성이었다.
그 권사는 이 전격 특성을 부수적으로 사용했다.
즉, 전기로 스턴을 먹이고, 그 틈을 타서 필살기를 날리는 용도로 썼다.
한건우도 그렇게 응용할 생각이었다.
‘그런 것치고는 특성 이름이 너무 과하지.’
그런데, 이게 웬걸.
<특성 발동 : 인드라의 뇌전>.
파지지지직-!
“!”
밤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지는 듯했다.
청백색 전격이 내리쳤다.
창날을 타고, 기갑 매머드의 몸 속으로 전류가 꽂혔다.
“그워억!”
기갑 매머드가 못박힌 듯 멈춰섰다.
치지지직···.
매머드의 몸 속이 고기처럼 타들어갔다.
“그우우···..”
슈우웅-
콰앙-!
제자리에서 휘청거리던 기갑 매머드가,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땅이 흔들리면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고기가 타는 냄새가 온통 올라왔다.
‘이게 뭐야.’
한건우는 간만에 크게 당황했다.
‘너무 강하잖아.’
<인드라의 뇌전>은 그저 그런 보조 특성이 아니었다.
엄청나게 강력한 공격 특성이었다.
‘아그니의 화염···. 그 이상이다.’
악명 높은 미등록자 ‘염제’를 탄생시킨 화염 계열 공격 특성보다도···.
체감상 더 강했다.
스으윽-!
까맣게 타버린 기갑 매머드의 머리에서, 한건우가 마창 게이볼그를 회수했다.
한건우가 은설아를 올려다보았다.
눌러쓴 후드가 뒤로 넘어갔고, 얼굴이 드러났다.
한건우를 가장 먼저 알아본 건, 아까의 대학생이었다.
“...하, 한건우 플레이어다.”
그 대학생은 은설아는 몰랐지만, S급 한건우 플레이어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았다.
“한건우 플레이어였어···. 아까 날 구해준 게.”
대학생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급기야 스마트폰을 꺼냈다.
무개념으로 보일 걸 각오하고, 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은 진작부터 촬영하고 있었다.
‘아, 아까부터 찍을걸.’
대학생이 자책하는 동안, 한건우가 손을 들어 은설아를 불렀다.
그녀가 흰 그리핀을 타고 사뿐하게 지상으로 내려왔다.
은설아가 땅으로 내려오자, 샤벨 타이거 세 마리가 근처로 다가와서 얌전히 앉았다.
두 마리는 기갑 매머드와의 싸움에서 희생되고 말았다.
한건우가 말했다.
“균열에 들어가야 해.”
“왜요? 다 끝난 것 아니에요?”
은설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공략 시간을 넘겨버린 미공략 균열이니까. 계속 이계와 연결되어 있어.”
“그럼 마수가 계속 나오는 거네요.”
“그래.”
이전의 암흑 균열처럼, 파훼법을 알아낸 경우가 아니라면 그랬다.
그녀가 그리핀의 깃털을 쓰다듬으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요?”
“정부에서 <피라미드>를 만들어서 덮어 씌우지. 그렇지만···.”
이 ‘빙하기의 어둠’은 미래에도 파훼법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 특수안보부마저 해결을 못했다.
계속 남겨졌던 균열이었다.
그러면 앞으로 진행되는 절차는 정해져 있었다.
<피라미드>라 불리는 마석을 이용한 보호장치로 균열을 덮는다.
피라미드는 완벽하지 못하니, 마수가 빠져나오는지 계속 관리하고 감시해야 한다.
이때만 해도, 정부의 대처는 많이 어설펐다.
“이왕 손댄 거, 깔끔하게 해야지.”
한건우는 균열의 틈 앞에 섰다.
“넌 여기서-.”
“아뇨, 저도 가볼래요.”
은설아가 적극적으로 나서자, 한건우는 잠시 고민했다.
‘딱히 위험한 일은 없겠지.’
첫 몬스터 웨이브로 튀어나온 마수들은 다 처리했다.
두 번째 웨이브가 오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균열의 주인급 마수인 기갑 매머드는 이미 잡았다.
만약 마수가 튀어나오더라도, 더 약한 마수일 것이다.
“많이 추울 거다.”
한건우는 <아그니의 화염> 특성을 갖고 있는 터라, 기본적인 냉기 저항이 있었다.
그러나 은설아는 아니었다.
급한 대로 기본적인 방어구를 건네주었다.
“이거 입어.”
한건우가 자신이 입고 있던 후드 케이프를 벗어서 건넸다.
평범한 옷처럼 보였지만, 기본적인 방어력은 있는 아이템이었다.
“네, 고맙습니다.”
은설아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슈우우우-.
균열 안은 빙하가 보이는 설원이었다.
그리핀이 갑작스런 추위에 놀라 깃털을 부풀렸다.
세 마리 샤벨 타이거는 익숙한 공간에 돌아오자 신이 나서 날뛰었다.
은설아는 자신이 들어온 균열 입구를 계속 돌아보았다.
이미 열려버린 균열이라, 공간의 틈으로 아직 서울의 골목이 보였다.
“신기하다···.”
“조심해.”
한건우가 경고했다.
아직 첫 번째 웨이브의 마수들이 다 튀어나온 게 아니었다.
“저건···!”
“가시 글리토돈이야.”
새카만 가시 글리토돈 수십 마리가 이쪽으로 느릿느릿 기어오고 있었다.
부웅-.
꼬리에 달린 철퇴가 위협적으로 회전했다.
푸드득!
흰 그리핀은 놀라서 은설아를 태운 채로 날아올랐다.
한건우는 새로운 특성을 시험해보았다.
'원거리 공격도 먹힐까?'
<특성 발동 : 인드라의 뇌전>
파지지지직-!
청백색 스파크가 온 설원을 뒤덮었다.
그 전류는 한건우가 의도한 대로만 뻗어갔다.
“크워억!”
“그으으윽···.”
지지지직···..
가시 글리토돈은 모두 한 순간에 펄쩍 튀어올랐다.
강한 전류에 튀겨지는 듯했다.
아까처럼 고기 타는 냄새가 올라왔다.
“으···.”
은설아가 괴로운 신음을 뱉었다.
글리토돈 고기의 타는 냄새는 그만큼 역했다.
한건우가 고개를 들었을 때, 설원 위에서 움직이는 마수는 놀란 샤벨 타이거 세 마리뿐이었다.
한건우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균열의 입구 근처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설원 바닥에 두 주먹을 댔다.
<특성 발동 : 포탑 건설>
바닥에 빛으로 된 원이 그려지더니, 얼음으로 된 방어 포탑이 올라왔다.
사용자의 의지를 심어서 만든 방어 포탑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얼마 지속되지 않고 사라지는 포탑이다.
그러나 한건우는 이 포탑을 반영구적으로 운용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연료를 먹여야지.’
한건우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마정석을 한 웅큼 꺼냈다.
울릉도에서 그리핀 무리의 심장을 가르고 꺼낸 것이었다.
방어 포탑 속에 마정석을 넣었다.
우우웅-.
다른 각성자들이 오가는 곳이라면 실천하기 어려운 아이디어.
다행히 이곳은 다른 사람들이 들어올 일이 없는 곳이었다.
‘누군가 들어올 일이 생긴다면, 어차피 이 포탑의 생명력은 끝난 뒤겠지.’
우웅-.
두 개의 방어 포탑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
<인드라의 뇌전>을 맞고도 목숨이 겨우 붙어있던 글리토돈 한 마리가 꿈틀거리자, 포탑이 사정없이 마력 포탄을 쏘았다.
“흠···.”
한건우는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
현재는 설원 한가운데에 균열의 입구와 포탑이 설치되어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놔두면, 마수들이 한번에 많이 몰려올 경우 금방 포탑이 파괴될 수 있다.
한건우는 금방 해결책을 생각해냈다.
“해자를 파야겠군.”
한건우가 양 손을 폈다.
<특성 발동 : 아그니의 화염>.
콰아아아악-.
링 형태의 불꽃이 일어났다.
한건우와 포탑, 그리고 샤벨 타이거가 있는 균열 주위만 남기고, 고리 형태로 화염이 타올랐다.
그러나 불꽃의 방향이 거꾸로였다.
하늘을 향해야 할 불꽃이, 땅밑을 향하고 있었다.
“끼에엑!”
열기에 놀란 그리핀이 하늘 높이 날아올라갔다.
‘빙하를 녹인다.’
콰직-!
콰르릉-.
설원의 눈이 삽시간에 녹아내렸다.
그 아래의 단단한 빙하도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건우가 서 있는 균열 입구 쪽은, 마치 섬처럼 변했다.
‘이 정도면 충분한가?’
포탑 주변에 판 깊은 해자.
그리고 해자를 지킬 호랑이들.
비행 마수가 없으니, 쉽사리 넘어오지는 못할 것이다.
한건우가 균열 입구를 통해 다시 나가려는데, 갑자기 이상한 기척이 느껴졌다.
“크르르르릉···..”
샤벨 타이거들이 사냥감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해자 밑으로 몰려갔다.
녹은 빙하 사이로, 뭔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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