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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 매머드 사냥 (1)
대학생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을 쳤다.
시커먼 균열을 보고, 놀란 심장이 두방망이질치고 있었다.
“허, 헉, 신고, 신고···.”
대학생이 떨리는 손으로 긴급신고 번호를 눌렀다.
알콜 기운은 날아갔지만, 두려움으로 손이 자꾸 떨렸다.
“여··· 여보세요. 여기 홍대에서 상수역 가는 길인데요. 규, 균열이··· 네, 네!”
[균열 신고 접수 완료. 귀하의 GPS 위치를 조회하겠습니다.]
상담원이 재빠르게 신고를 접수했다.
대학생은 조금 안심을 했지만, 곧 근처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식겁했다.
이곳은 차가 다니지 않는 보행자 거리.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무명 가수가 몰래 심야 버스킹을 하고, 사람들은 그 앞에 모여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대학생이 골목 밖으로 뛰어나가서, 필사적으로 팔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도망쳐요! 균열이에요!”
눈이 휘둥그레진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 순간.
휘이이이잉-.
대학생의 등 뒤에서 등골이 얼어붙을 듯한 서늘한 냉기가 불어왔다.
도무지 여름 밤과 어울리지 않는 매서운 칼바람이었다.
“?”
크롸아악!
크르륵.
“...어?”
온몸 관절을 얼어붙게 하는 저주파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듣기만 해도 오금이 저렸다.
대학생의 사고가 정지했다.
‘균열이··· 열렸어?’
대학생은 그만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숨막히는 냉기가 홍대의 밤거리를 얼렸다.
빙하기의 이계가 현실세계에 도래한 것이다.
버스킹 음악도 멎었다.
잠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정적이 흘렀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 앞에, 거대한 마수가 나타났다.
타탁, 탁.
쉬이익!
크고 위협적인 황금색 눈이, 대학생을 정면으로 노려보았다.
크르르르르···.
검은 호랑이처럼 생긴 마수였다.
새까맣고 뻣뻣한 털, 기둥처럼 굵은 네 개의 다리와 솥뚜껑만한 앞발.
날렵해 보이는 근육질의 허리, 콧구멍에서 내뱉는 뜨거운 숨···.
보통의 호랑이와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윗턱에서 길게 자라난 무서운 송곳니였다.
그건 롱소드를 연상케 할 정도로 길었다.
‘검치 호랑이···?’
몸집은 또 얼마나 큰지.
시베리아 호랑이보다 3배, 아니 4배 정도일까?
C급 균열에서 나온 <샤벨 타이거>.
대학생은 그 마수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마수를 이렇게 정면으로 보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절대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으아아악!”
한데 몰려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그러나 샤벨 타이거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친 대학생은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눈을 피하는 순간, 잡아먹혀 버릴 것만 같았다.
“아, 안 돼···. 저리 가···.”
대학생의 얼굴은 삽시간에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었다.
피식자의 공포가 몸을 지배했다.
두 다리는 땅에 뿌리내린 듯 굳어버렸다.
샤벨 타이거가 대학생을 당장이라도 삼킬 듯이 노려보면서 자세를 바꾸었다.
머리를 낮추고, 꼬리를 높이 들었다.
온몸 근육을 잔뜩 긴장시키고, 허리를 양옆으로 움직였다.
‘저건···.’
대학생의 모골이 송연해졌다.
어디서 많이 본 자세다 했더니···.
키우는 고양이가 저러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몸통 앞부분을 낮추고, 춤을 추는 것처럼 엉덩이를 움직이는 자세.
마수의 동공이 무섭게 수축됐다가 커졌다를 반복했다.
‘사냥을 하려는 거야.’
타닥!
샤벨 타이거의 뒷다리가 크게 땅을 박차는 소리가 들렸다.
‘죽는구나···.’
대학생이 눈을 꼭 감았다.
퍼억!
‘...?’
교통사고라도 난 것처럼, 뭔가 둔중하게 강타하는 소음이 들렸다.
샤벨 타이거가 옆으로 나동그러졌다가, 탄력 있게 벌떡 일어나 울부짖었다.
“크왕!”
가로등 조명 아래,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후드를 눌러써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마수 앞에 서있는데도, 그는 믿기지 않을 만큼 태연해보였다.
“...플레이어인가?”
“사··· 살았다.”
미처 도망치지 못한 사람들이 안도했다.
그 각성자, 한건우가 샤벨 타이거와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상황은 만만치 않아보였다.
“히익!”
“저기 봐!”
잠시 안심했던 사람들은 다시 경악했다.
샤벨 타이거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뒷골목에서 몇 마리가 더 다가오고 있었다.
번쩍이는 긴 송곳니가 칼처럼 빛났다.
“네 마리, 아니 다섯 마리나···.”
“구조대는 언제 오는 거야.”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쿵- 쿠웅-
지축을 울리는 묵직한 발소리.
한 발을 내딛을 때마다 주위의 건물들까지 흔들렸다.
‘기갑 매머드.’
C급 균열, ‘빙하기의 어둠’의 주인이 나왔다.
갑주공룡을 연상시키는 두꺼운 진회색 갑주와,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상아는 위압 그 자체였다.
게다가 기갑 매머드는 코끼리와 달리 육식을 하는 마수였다.
한데 모인 사람들을 보고, 매머드가 입맛을 다셨다.
뿌우우우-.
전투 나팔 소리보다 더 큰 울음소리가 들렸다.
쩍 벌린 매머드의 입안에, 상어처럼 뾰족한 이빨이 빽빽했다.
혼비백산한 사람들이 도망가려던 때였다.
인근 골목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끄아아악!”
“사람 살려!”
먼저 도망친 사람들 같았다.
그들은 뭔가에 쫓기는 듯 다급하게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 근처는 이미 안전지대가 아닌 듯했다.
사람들은 이도 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아무래도 각성자 옆에 붙어있는 게 더 나을지도···.’
그러나 과연 저 각성자 혼자서, 흉악한 마수들을 전부 상대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의구심이 담긴 눈으로 한건우의 등을 바라보았다.
쿵 쿵 쿵-.
기갑 매머드가 대지를 박차면서 한건우에게 돌진했다.
크와아아아-.
샤벨 타이거 무리도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며, 한건우를 향해 포효했다.
한건우는 가만히 서서 오른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휘이이- 펑!
밤하늘에 새빨간 불꽃이 수놓였다.
<아그니의 화염>으로 불꽃을 쏜 것이었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양, 갑자기 상황이 변했다.
뿌우-.
콰아앙-!
캬아아악!
“어···?”
사람들은 놀라서 입을 벌렸다.
샤벨 타이거 무리가 돌연 방향을 바꾸어, 기갑 매머드를 일제히 공격한 것이다.
체급으로는 상대가 안 되었다.
그러나 샤벨 타이거는 다섯이고, 기갑 매머드는 혼자였다.
샤벨 타이거는 익숙하게 사냥감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한 놈이 앞에서 주의를 끌고, 나머지는 뒤로 돌아가서 양 발톱으로 갑주를 타고 올라갔다.
푹!
푸욱!
샤벨 타이거의 길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기갑 매머드의 갑주를 뚫자, 기갑 매머드가 분노하며 돌아섰다.
기갑 매머드가 상아를 휘둘러 샤벨 타이거 한 마리를 무참히 날려버렸다.
그때를 틈타, 한건우가 등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저 균열에 하늘을 나는 마수는 없습니다. 모두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서 정부 구조를 기다려요!”
“...네!”
한건우가 명확한 지시를 내리자, 사람들은 얼른 거기에 따랐다.
생각해보니 합리적인 말이었다.
땅 위에서 흩어져서 도망쳐봐야, 멀리 가지 못하고 마수에게 따라잡힐 게 뻔했다.
사람들은 다급히 근처 건물로 나누어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1층 철문을 내리고,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웨에에엥-.
여러 명의 신고가 동시에 접수된 덕분에, 비상 대피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다.
발이 빠른 몇몇 사람들은 벌써 옥상에 이르렀다.
그러자 아래 길거리의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장면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맨주먹으로 기갑 매머드와 대등하게 싸우는 정체 모를 강한 각성자.
그리고 마치 각성자의 동료처럼 매머드를 공격하고 있는 한 무리의 샤벨 타이거.
“우연인가?”
“아니요, 저 마수들은 각성자를 공격하지 않고 있어요!”
그 말이 맞았다.
샤벨 타이거는 한건우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고, 손발을 척척 맞추어 공격하고 있었다.
정말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앗, 저기 위에···.”
누군가가 밤하늘을 가리켰다.
우아한 흰 독수리... 아니, 독수리 머리에 사자 몸을 한 네발짐승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그리핀이다. 도망가!”
“비행 마수가 없다며···?”
그리핀은 최근에 큰 화제가 되었던 마수라서, 일반인 중에서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은 우왕좌왕하며 실내로 들어가려 했다.
“잠깐만, 내 눈이 이상한가? 그리핀 등에 누가 타고 있어···.”
“무슨 헛소리야.”
사람들은 눈을 의심했다.
마수가 소나 말도 아니고···.
마수의 등에 사람이 탄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했다.
심지어 그리핀 등에 탄 것은 작은 여자아이로 보였다.
연신 자기 뺨을 때리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 알겠다는 듯 손뼉을 쳤다.
제법 예리하게 상황을 파악한 것이었다.
“저거··· 테이머야. 은설아 플레이어.”
“그게 누군데?”
“세상에···.”
그러나 옥상에 자리잡은 사람들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아직 지상에 발이 묶인 이들도 있었다.
막다른 골목길에서 도망갈 길이 가로막힌 사람들이었다.
“사, 살려 주세요···.”
“어으···.”
‘빙하기의 어둠’ 균열에서 나온 마물은, 기갑 매머드와 샤벨 타이거 뿐만이 아니었다.
아르마딜로와 비슷한 <가시 글리토돈>도 있었다.
가시 글리토돈은 온몸이 가시 돋은 갑주로 덮여있었다.
속도는 느리지만, 철퇴 같은 꼬리를 휘두르며 먹이를 사냥하는 무서운 마수였다.
이 중에서, 지금의 은설아가 테이밍할 수 있는 마수는 샤벨 타이거뿐이었다.
은설아의 테이밍에는 아직 한계가 있었다.
포유류나 조류 형태의 마수에만 친화력이 높았다.
파충류나 곤충까지는 커버가 안 되었다.
뇌가 지나치게 큰 기갑 매머드나 인간형 마수도 무리였다.
하지만 이 정도로 충분했다, 아직은.
크워어어!
철갑으로 뒤덮인 가시 글리토돈이 울부짖으며, 막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가시 글리토돈은 철퇴와 같은 꼬리를 빙빙 휘둘렀다.
저기 맞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이다.
“아악!”
“살려 주세요!”
구조 요청이 들리자, 기갑 매머드를 상대하던 한건우가 신호했다.
“설아야?”
한건우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은설아는 그리핀에 탄 채 한 바퀴 크게 돌았다.
위기에 몰린 사람들을 발견하고, 은설아는 샤벨 타이거들을 보냈다.
[저쪽을 도와줘!]
기갑 매머드에 매달려 있던 샤벨 타이거들이, 일제히 막다른 골목 쪽으로 뛰어갔다.
슈우우-
파악!
크르르르르···.
샤벨 타이거 한 마리가 제 몸으로 글리토돈의 가시 철퇴를 막아냈다.
죽음의 위기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양 팔로 머리를 감싼 채 바짝 굳었다.
근처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보던 사람들도 입을 딱 벌렸다.
“헉!”
“방금 봤어?”
“마수가... 사람을 구했어?”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남은 샤벨 타이거들은 영리하게 협업해서 가시 글리토돈을 경사진 곳으로 유인했다.
결국 가시 글리토돈을 거꾸로 뒤집는 데 성공했다.
비교적 여린 배가 드러났다.
샤벨 타이거의 송곳니가 거침없이 가시 글리토돈의 배에 박혔다.
샤벨 타이거가 사람들에게 분명히 고갯짓을 했다.
“저쪽으로 가라는 것 같은데···?”
“설마.”
“빨리 가요!”
샤벨 타이거는 도망가는 사람들을 엄호하기까지 했다.
그쯤 되자, 건물 위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얼이 빠졌다.
“테이밍이 저런 거였어···?”
“대박이다···.”
한건우는 땅에서도 사람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관찰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성공인가.’
이 많은 목격자의 입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
이 목격담이 널리 퍼지면, 정부가 대놓고 테이머를 박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미래가 바뀌고 있었다.
회귀 전 한건우는 이날을 생생히 기억했다.
막 각성해서 군에서 대체복무 중이던 때였다.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홍대의 여름 밤.
균열 감지기가 몇 시간이나 오작동하는 바람에, 초기 골든 타임을 완전히 놓치고 말았다.
그건 불의의 사고였다.
하지만 인재이기도 했다.
민간인의 희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상급 각성자가 한 명이라도 우연히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면, 결과는 달랐을텐데···.
뒤늦게 구조대와 민간 용병, 군대까지 총출동했지만, ‘빙하기의 어둠’은 미공략 균열로 남았다.
홍대 근처에는 <피라미드>가 세워졌고, 이곳은 완전히 슬럼화되었다.
당시 한건우는 군인이었지만 고작 F급 각성자에 불과했다.
사후 수습과 외곽 경비를 도울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죽은 사람들은, 한건우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민간인의 시체를 수습할 때의 참담한 감정을 잊을 수 없었다.
하물며 시체조차 못 건진 가족을 찾으려고 근처를 맴돌던 이들은 어땠으랴···.
‘이제 그런 일은 없게 해야지.’
사람들의 시선은 은설아와 그리핀, 그리고 사람을 구한 샤벨 타이거들 쪽에 쏠려 있었다.
상황이 다 끝난 것처럼 환호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타앗-!
한건우는 훌쩍 뛰어서, 기갑 매머드의 상아 위에 올라탔다.
쿠웅- 쿠우-
분노한 기갑 매머드가 한건우를 떨어뜨리려고 앞발을 높이 쳐들었다.
기갑 매머드가 포효하려는 순간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오프 더 레코드다.”
한건우가 마창 게이볼그를 꺼내 쥐었다.
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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