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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실패
등급 측정할 때 말하는 멘트는 정해져 있나 보다.
그전과 똑같았다.
은설아는 혼자서 측정실 안에 있었다.
마석 위에 손을 올리고 있을 것이다.
측정실 옆에 붙은 모니터룸에서는, 측정실 담당 공무원이 지켜보고 있었자.
담당 공무원은 그때 그 사람이었다.
‘EX’라는 초유의 등급을 보고 당황해서 바로 센터장에게 연락했던 그 공무원.
그는 한건우가 ‘등급외(EX)’ 판정이 떴다는 사실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 공무원도 그 사실을 의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좀전에 복도에서 한건우와 마주쳤을 때, 혼자 찔렸는지 펄쩍 뛰기도 했다.
‘오히려 고마울 지경인데 말이지.’
한건우는 이렇게 된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매뉴얼대로 행동했다면, 더 골치 아플 뻔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잘 모르는 건, 남들도 모르는 게 나아.’
EX급이라는 측정등급은, 한건우가 아는 15년 동안에는 없는 정보였다.
‘진짜로 없었던 건지, 아니면 나처럼 숨겼던 건지.’
그것조차도 확실하지 않았다.
EX급이 의미하는 게 뭘까?
그게 밝혀지면 어떤 파장이 있을까?
한건우는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잘 됐지.’
지금처럼 S급이라는 가면을 쓰고 활동하는 게 훨씬 나았다.
원래 도달하려던 목표 등급이 S급이기도 했고.
그때, 모니터룸 안에서 놀라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엇···!”
측정실 공무원이 낸 소리였다.
‘또 무슨 수작이야?’
한건우는 <진동 감지>로 모니터룸 안에서 들리는 소리를 유심히 듣고 있었다.
이 특성은 아주 미세한 소리까지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별다른 행동을 하는 기척은 안 느껴졌다.
측정실 공무원은 곧바로 침착을 되찾았다.
그가 속임수가 없는 듯한 담백한 목소리로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A급이 나오셨네요.”
“우와! 와! 진짜예요? 제가요?”
은설아의 감탄사가 들렸다.
그녀가 제자리에서 방방 뛰는 것 같았다.
모니터룸에서 지켜보던 측정실 직원이 바람 빠지듯이 허허 웃는 소리까지, 한건우에게 다 들렸다.
철컥!
쾅-.
한건우가 모니터룸 문을 활짝 열었다.
“뭐, 뭡니까!”
화면 앞에 앉아있던 측정실 공무원이 기함을 했다.
수식과 숫자로 가득찬 커다란 화면이 보였다.
“음···.”
“하, 한건우 플레이어 님···. 저,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측정실 공무원은 용기를 내서 항의했지만, S급 플 레이어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한건우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화면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복잡한 화면에서 금방 결괏값을 찾아냈다.
[Player Magnitude : A]
은설아는 등급외 판정이 나온 게 아니었다.
한건우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확실하군.”
하긴 한건우가 겪은 일은 예외적인 것이겠지.
측정 발표는 정확하게 하는 게 정상일 거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건우는 자신이 등급외 판정을 받았던 이유를 알아내고 싶었다.
‘단순히 회귀 전보다 높은 등급이라고 하면 차라리 이해가 되는데···. 그것도 아니었어.’
측정시스템에서 ‘등급외’라는 건, 기존의 등급 체계로는 담아낼 수 없다는 소리이다.
즉 한건우가 다른 각성자와 구별되는 점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차별화되는 점이 너무 많긴 하지···.’
객관적으로 봐도 그랬다.
등급외가 나온 이유로, 한건우는 크게 세 가지를 추측하고 있었다.
첫째, 몸의 변화였다.
한건우는 뇌룡의 심장 조각과 융합하여, 재앙급 마수인 뇌룡과 한 몸이 되었다.
그 덕분에 15년의 시간을 거슬러 오기까지 했다.
둘째, 특성의 개수였다.
한건우는 악마의 권능으로 죽인 자의 특성을 흡수할 수 있다.
현재 그가 가진 특성만 자그마치 100개가 넘는다.
셋째, 측정 전의 사정도 달랐다.
한건우는 등급 측정도 하기 전에, 신화급 특성이 이미 개화한 상태였다.
‘세 번째는 이제 확실히 제외하면 되겠군.’
만약 이유가 그거였다면, 은설아도 똑같이 등급외 판정이 나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특성 개수 문제도··· 아마 아닐 거야.’
한건우는 두 번째 이유도 조심히 제외했다.
가끔씩 잠재특성이 2개나 3개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특성 개수가 많다고 등급이 높지는 않았다.
한건우가 보기에, 특성은 무기와 같은 것이었다.
‘무기가 여러 개 있다고 반드시 강한 건 아니야.’
무기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아야 강한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그건가.’
한건우는 시간을 거슬러오기 전에 본 메시지를 떠올렸다.
[특성(신화급) 발동 : 비스트 마스터]
- 마수의 신체와 합체합니다.
- <뇌룡의 심장 조각>과 융합 중···
“....”
생각을 정리한 한건우는, 화면에 나타난 레벨을 자세히 보았다.
은설아는 거의 S급에 가까운 A급이었다.
“오···.”
상당히 희망찬 수치였다.
‘2차 각성을 이끌어낸다면, 나중에 S급이 될 수 있을지도.’
“저, 제발 나가 주세요···!”
측정실 공무원은 완전히 겁에 질렸다.
한건우는 뒤늦게 양해를 구했다.
“제가 후견인이라 궁금해서요, 실례 많았습니다.”
“···.”
측정실 공무원은 아무 말도 못하고 눈만 꿈벅거렸다.
한건우가 복도로 나오자마자, 은설아가 있던 측정실 문이 벌컥 열렸다.
“아저씨!”
은설아가 쪼르르 뛰어나왔다.
“맞춰 보세요. 저 무슨 등급이게요?”
“글쎄, 뭘까?”
한건우는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세등등하게 퀴즈를 낸 것과 달리, 은설아는 갑자기 조금 쑥스러워했다.
자기 입으로 말하기 민망한 모양이었다.
“A급...이래요!”
“정말?”
한건우는 크게 놀란 척했다.
어린 시절 여동생과 놀아준 가닥이 있어서, 애들을 대하는 건 익숙했다.
“저도 못 믿겠어요. 이거 엄청 대단한 거죠···?”
은설아는 어안이벙벙했다.
마수를 부르는 자신의 능력이 이상한 저주 같은 걸로만 알고 살아왔다.
아무도 못 찾을 만한 곳에 숨어서, 사람을 멀리하고 마수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줄 알았다.
한건우에게 설명을 듣기 전에는 <테이머>가 뭔지도 몰랐던 그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신은 각성자였고, 그 중에서도 <테이머>라는 존재였다.
- 테이머는 드물긴 해도, 절대 비정상인 게 아니야.
한건우는 그녀도 몰랐던 그녀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주었다.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일어났던 사고도,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 사고일 뿐이라고 했다.
- 너는 위험한 존재가 아냐. 강한 능력을 가진 것뿐이지.
한건우는 그녀가 강하다고 계속 강조했었다.
“그런데 A급이 우리나라에 몇 명이나 돼요?”
“음··· 아마 100명 안팎이나 될까.”
은설아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것밖에 안 돼요?”
“각성자 절반 이상이 F급이야. C급 이하가 98%고···. B급만 되어도 거의 상위 1%에 가깝지.”
언론에서는 B급, C급은 만만한 것처럼 떠들지만, 현실은 달랐다.
각성자 등급은 완전히 피라미드 구조에 가까웠다.
“헉··· 그럼 저는.”
“그래. 이제 유명해질 수도 있겠다."
한건우는 아직 한 가지 고민거리가 남아있었다.
특수안보부가 은설아를 음해할까봐 걱정이었다.
‘설마, 뇌가 있는 놈들이라면, 보육원 사건을 들쑤시지는 않겠지···.’
은설아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보육원에서의 사고.
정부 실험실에서 탈출한 키메라 마수가 은설아가 있던 보육원으로 숨어들었고, 그녀는 그걸 몰래 숨겨주었다.
군부대는 실험체 제거를 위한 무리한 작전을 강행했다.
결과는 최악이었다.
키메라도, 출동한 부대원도, 보육원 사람들도 다 죽었다. 은설아만이 가까스로 살아남아 울릉도로 도망쳤다.
정부는 그 사건의 실체를 철저히 숨겼다.
산 속에 외따로 있던 보육원이라 가능했다.
‘가스 폭발이라고 발표했던가?’
그리고 특수안보부에 의해, 은설아는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아마 은설아를 찾을 때를 대비해서 그랬을 거야. 비밀 실험실로 데려가든 뭘 하든 마음대로 하려고 한 거겠지···?’
어쨌든 그런 민감한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서 피차 좋을 게 없었다.
특수안보부도, 은설아도 밝히기 싫어할 내용이었다.
그러니, 특수안보부가 이제 와서 그 사건을 들고 나오며 은설아를 공격하려고 할 것 같지는 않았다.
‘특수안보부 놈들 말고는... 은설아를 알아볼 만한 사람도 없어.’
학교라도 다녔으면 친구들이 있었을텐데.
등교도 거부하고 보육원에서만 틀어박혀 살던 은설아였다.
‘은설아’라는 이름 역시 본명이 아니었다.
보육원에서 별명처럼 불리던 이름일 뿐이었다.
한건우가 그 이름을 불렀을 때 그녀가 놀랐듯이,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다 죽었다.
이름도, 신분도 바꾸고, 새로 시작하니 걸리적거릴 게 없었다.
그러나 한건우는 신중하기로 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지.’
한건우는 은설아의 데뷔 무대를 계획하고 있었다.
때마침 며칠 후면, 적당한 상황이 만들어질 것이다.
***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이어지는 자정.
홍대 뒷골목은 술 취한 행인들로 북적거렸다.
마치 균열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세상 같았다.
술 취한 대학생들은 흥청망청 젊은 밤을 소진하고 있었다.
“어···.?”
전봇대를 잡고 어지러움을 달래던 대학생 하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물에 젖은 개가 후드드 몸을 터는 것처럼, 그 대학생은 거세게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이 취해서 잘못 보았나 싶었다.
“....”
아니었다.
“...끄아악!”
대학생이 고함을 지르고 엎어지는데도,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위는 그야말로 개판 오분전이었다.
크게 소리를 지르는 사람, 왁자지껄 떠들고 웃는 무리, 세상 떠나가게 우는 사람까지
웬만한 행동으로는 시선을 끌기가 어려운 판국이었다.
맨땅에 엉덩방아를 찧은 대학생이 다리를 끌며 뒤로 물러났다.
그의 얼굴에 짙은 두려움이 담겨있었다.
“저···. 저··· 저건.”
사람 하나 지나갈 만한 비좁은 골목 사이로, 시커먼 공간의 틈이 보였다.
학교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고, 방송에서 그렇게 많이 봤던 것이었다.
‘균열···.’
바리게이트가 쳐지고, 이미 구조대나 길드가 출동 중인 균열은 종종 보았다.
그런데 저렇게 무방비 상태로 열린 균열은 처음 보았다.
“말도 안 돼···.”
대학생이 당황할 만도 했다.
대한민국의 균열 관리 시스템은 꽤 고도화되어 있었다.
정부는 감지기를 작동해서 전국에 시시때때로 터지는 균열을 파악했다.
그리고 즉시 근처에 있는 구조대를 출동시켰다.
반경 2km 이내에 있는 사람들에게 비상 대피 문자도 보냈다.
혹시 구조대가 못 도착할 경우를 대비해서, 근처에 있는 각성자나 길드에도 알림을 보냈다.
그러나 모든 시스템에는 오류가 있기 마련이다.
불운하게도, 그게 이 시각, 이 장소일 뿐.
지역을 감시하는 두 개의 감지기에 동시에 에러가 발생한 것이었다.
파지지직-!
검은 균열에 빛이 번뜩였다.
대학생은 각성자가 아니라서,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거기에는 이런 메시지가 나오고 있었다.
[C급 균열 - 빙하기의 어둠]
-공략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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